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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Dec 07. 2022

김장 축제

김장하는 날이다.

검정색 티에 검은 바지, 양말까지 검정색으로 깔맞춤 하고 출근을 한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봄바람?은 좀 그렇지만 살랑이는 바람이 정겹게 느껴지는 정도였는데, 며칠 새 매서운 겨울바람으로 돌변했다. 오늘은 바깥에서 배추를 다듬어, 물에 씻고, 소금에 절이는 날인데...

생각만 해도 춥다. 그래서 오래된 패딩까지 꺼내 입고 중무장을 하고 왔다.

그런데... 어랏, 3년째 김장을 이어오고 있는 김장 베테랑들의 복장은 뭔가 다르다.

슬리퍼에 반팔 티라니...

" 추워서 안돼. 감기 걸리면 또 고생이니 얼른 옷 챙겨 입어."

" 안돼요 선생님, 옷이 더러워진단 말이에요. 차라리 추운게 나아요."

역시 젊다. 위아래 칭칭 동여매고 나온 내 모습이 갑자기 초라하게 느껴진다. 평소 스물다섯이라고 빡빡 우기고 다니면서 이렇게 자꾸 들통 난다.

'에잇, 그래 젊다고 몸 함부로 굴렸다가 나중에 피 본다. 니 마음대로 해라!'

나중에 꼭 피를 봤으면 하는 마음은 물론 아니다. 그냥 그렇게라도 말하면 초라한 내 모습에 조금은 위로가 될까 싶어 소리쳐봤다. 마음속으로!


사실 나는 친정에서나 시댁에서나 김장을 한 기억이 거의 없다. 매 해 맛있는 김장 김치를 주셔서 일 년 내내 맛있게 먹고 있으면서도 말이다.(갑자기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이... ㅜㅜ)  

그런데 사실은 지금 9년째 김장을 담그고 있다. 학교에서!

"소금을 팍팍 쳐라, 그래야 1년 내내 먹지."

"배추를 이렇게 놓고 저 안쪽까지 구석구석 양념을 넣어야 해."

"청각이라는 거야, 그게 김치를 더 맛깔나게 해 줘."

내가 이렇게 김장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나? 완전 김장 선수다.

우리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완전 선수다.

"아 이거 숨이 너무 안 죽었어요. 괜찮을까요?"

"작년보다 절이는 시간이 좀 짧았을까요? 그렇게 안 짠대요."

"올해는 양념이 풍부해서 훨씬 더 맛있는 것 같아요."


한국사람은 밥과 김치를 먹어야 산다. 아무리 고기가 맛있고, 스파게티, 햄버거가 좋지만 그건 특별식 또는 간식으로서의 의미가 아닐까 싶다. 해외여행을 떠나면 길어야 일주일? 이면 대부분 김치가 그리워진다.

엄마가 집에서 김장을 하지 않는데 우리 아이가 어떻게 김장을 할 수 있을까?  

사 먹으면 되지 뭐가 문제일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김장에 오랫동안 참여하다 보니 '김장'에는 지금까지 몰랐던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김장'은 김치를 만드는 '일'이 아니라, 김치를 담그는 '축제'다.

밭에서 배추를 뽑아 와, 다듬고 씻고 절이고 뒤집고 물기를 뺀다. 갖은 야채와 고춧가루 등을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사실 양념은 거의 주방 선생님이 도맡아 하셔서 그 비법은 아직도 모른다. ) 그리고 둘을 합체한다.

이 과정은 실제 작업에만 2~3일이 걸린다.

축제의 피날레는 완성된 김장 김치에 수육을 먹는 것이다. (막걸리 한 잔이 있어야 더 완벽하지만 해맑은 눈동자 수십 개로 대신한다)

긴 노동 후에 맛보는 그 맛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고기에 김치를 곁들여 먹던 평소와는 달리, 오늘은 김치에 고기를 곁들여 먹는다.

역시 김장 김치!

어떤 아이는 '강제노동'이라고도 했다. '강제'는 멱살을 잡고 와서 옆에서 방망이 들고 지키며 시키는 것이라고 반발하기도 했다.

솔직히 '강제노동'이면 어떠랴!

땅에서 배추를 뽑고, 며칠간 씻고 다듬어서 갖은양념으로 요리한 후 식탁에까지 오르는 전 과정을 온몸으로 배우는 이 아이들, 정말 특별하지 않은가!


소금물을 뒤집어 쓴 아이들의 온몸에 하얀 안개꽃이 소복이 피었다 지고, 배추에 양념장을 치대며 온 몸도 같이 치대져  또다시 붉은 장미꽃 한 다발 온몸에 피웠다.  

그 향기가 몇 날 며칠 코끝을 간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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