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달려 일이십분이면 도착하는 중심가가 있다.또 일이십분이면 한바퀴 휘익 돌 수 있는 작은 면소재지이지만 없는것 빼고 다 있는 알찬 곳이다. 적당히 큰 마트, 적당히 맛있는 식당, 적당히 유명한 카페 그리고 빵집 또 작은 문구점까지...
모든것이 적당히 충분했지만 솔직히 가장 아쉬웠던 장소들까지 몇 년새 다 생겨버렸다. 도서관이 들어서더니 수영장도 생기고 작은 영화관도 생겼다. 자주 이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존재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참 마음이 풍성해지는곳이다.
이번 주 내내 몸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그리고 맞은 주말, 몸의 피곤이 완전히 회복되진 않았지만, 뭔가 채워달라는 마음의 부름을 저버리지 못하고 아이들을 태워 작은 영화관으로 갔다. 예매를 해야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 철저한 계획하에 실천하는 힘이 점점 떨어져가고있는 나에게는 딱이었다. 우리 셋까지 합쳐도 10명 안팎인 작은 영화관. 그 중 이미 아는 사람이 절반이다. 들어가며 꾸벅 인사하고 나오며 손을 흔든다. 스크린이 그리 크지도, 음향이 그리 우렁차지도 않아 오히려 우리집에 스크린을 들인 편안한 느낌이다. (그래도... 우리집에 영화관 있다! 고 말하면 안되겠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에 학교 졸업생을 만났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얼굴에 남아있던 피곤함이 싹 달아났다. 하루종일 아이들에 둘러싸여 온 에너지를 쏟아냈다 싶었는데, 결국 또 아이들을 만나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는 나구나.
일부러 강변쪽으로 차를 몰았더니 옅은 어둠이 내려앉은 경호강길을 따라 벚꽃이 바람에 날리며 아련한 설렘을 안겨준다.
“엄마, 기분 좋아졌지?”
“응, 어떻게 알았어?”
“엄마 입꼬리가 올라가 있잖아. 아까는 엄청 피곤해 보였는데...”
그렇구나, 내가 웃고 있었구나. 몸이 천근만근이라 아이들에게도 분명 티를 팍팍 내고 있었을 터이다. 하루종일 엄마 눈치만 보던 아이들이 이제야 마음이 좀 편해졌나보다.
미안한 마음에 꺼낸 옛 이야기로 우리는 폭풍 수다의 시간을 보냈다.
해질녘, 경호강변에서, 벚꽃비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한껏 올리고서 말이다.
그리고 십여분, 내 앞에서 달리는 차 두어대, 맞은편을 스쳐지나가는 차 서너대를 보내면 집에 도착한다. 더 이상 신호등도 없고, 교차로도 없다. 그저 옛 이야기나 나누며 내 멋대로 달리면 된다. 높은 건물이래야 2,3층 정도라 고개를 쳐들어 올려다 볼 필요도,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린 저 벌집같은 곳에는 도대체 누가 살까 궁금해 할 필요도 없고, 그 사이를 곡예하듯 아슬아슬하게 마음 졸이며 도망나올 필요도 없다. 모내기 전, 잠시 휴식중인 논에는 작은 새들이 내려 앉아 개구쟁이마냥 잠깐 놀다 간다. 드문드문 작은 집들이 눈 앞에 나타났다 조용히 사라지는 시간들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너와 내가 그리 다르지 않다는, 나도 적당히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리라.
우리는 모두 그저 작은 것에 기뻐하고 또 슬퍼하는 한낫 미생(未生)임이 이렇게 편안하고 만족스러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