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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Jul 10. 2023

중딩들의 필리핀살이

필리핀 세달살이 8

2023년 7월 5일


“저 비행기표 좀 끊어주세요. 한국 갈래요.”

“그래... 오늘은 안될테고 내일 비행기로?”

“음... 흐흐흑흐흐흑...”

눈이 발개지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벌써 세 번째다. 오늘은 또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수영도 못하는데 바다에서 밀면 어떻하냐, 살짝 건드렸는데 그렇게 매몰차게 내치냐, 왜 그렇게 잘난척을 하냐, 왜 나한테만 그러냐... 이유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화가 날만도 하다. 그런데 아무리 쏟아내도 화가 풀리지 않는다.

어른들은 중학생을 3개월간 필리핀에 보내면서 그곳의 치안을, 태양을, 벌레를 걱정한다.

물론 이곳에 도착한 첫날 아이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어떻게 이 더위에 이 수많은 개미와 도마뱀과 게다가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살 수 있을까하는 막막함에 눈물이 맺혔다. 덕분에 도착한지 만 하루가 되기도 전에 엄마 아빠가 무진장 그리워지며 가족에대한 사랑만 샘솟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첫만남은 어색하고 서툴었지만 이튿날 바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웃 사람들과 태양과 벌레와 밝게 인사를 나누고는 씩씩하게 일상을 살아갔다.

아이들이 가장 힘든 것은... 이곳에서도 여전하다.

아이나 어른이나 우리를 가장 시험에들게 하는건 역시 ‘관계’다. 새삼 이곳에서 처음 만난 관계도 아니다. 이미 2년을 함께 기숙하며 볼것 못 볼것 다 보고 살았는데 새삼스럽게 또 그것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이곳에서 3개월을 살아냈다. 8명의 아이들이 같은 건물에서 자고, 먹고, 공부한다는건 그냥 ‘가족’이 된다는 것이다. 가족끼리는 너무 많은 과거와 현재를 공유하고 있기에 서로를 무진장 사랑하면서도 또 훨씬 더 치열한 관계가 되기도 하지 않나. 휘몰아치는 파도를 넘으며 함께 웃기도 하고, 작은 말 한마디가 상처가 되어 울기도 했다. 멋진 돌고래 한 쌍, 커다랗고 신비로운 고래상어, 아름다운 산호초, 에메랄드빛 바다를 함께 보고 함께 가슴 설레하기도 했다. 엄지 손가락만한 나방떼(?)를 뚫고 청소를 하며 손바닥만한 두꺼비를 치우며 함께 멘붕이 되었다. 빡빡한 일정에 같이 빡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함께 공유해가며 훨씬 더 깊이 서로를 알아갔다.


“엄마가 너무 보고싶은데, 그 말을 못하겠어요. 제가 그 말을 꺼내면 너도 나도 다같이 너무 그립고 힘들어 질까봐 겁나요 선생님”

아직 자기 감정을 컨트롤하기는 힘들지만 나의 감정이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충분히 아는 아이들, 얼마나 기특한가.

중딩들이 이렇게 예뻐도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이들과의 이곳 생활은 참으로 행복했다. 이런 마음이 나만은 아닌듯하다. 패트릭샘이 그려준 아이들의 캐리커쳐로 반티를 만들었는데 Kalikasan의 온 직원들이 그 캐리커쳐로 단체 티를 만들어 자꾸 우리 아이들을 등에 업고 다니신다. 얼마나 예쁘고 기특하면 그럴 수 있을까.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분들과 함께 해서 우리 아이들이 더 빛나지 않았나 싶다.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새벽에 자꾸 눈이 떠진다며 체스도하고 새벽 농구를 한 후 샤워까지 마친 후 아침을 먹는 Ollie는 해만 떨어지면 줌바 추러 가자고 보챈다.

Ollie와 같이 농구를 하고 싶었지만 써야할 글이 있어 꾹 참고 컴퓨터를 켰다는 Komin은 결국  웃옷을 벗어던지고 수영도하고 운동도 한다.

지나치는 필리피노들에게 일일이 인사하고 말을 주고받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기억했다가 질문하는 Flash는 오늘도 여전히 스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웃음을 선사하고 있다.

친구들의 짓궂은 장난에도 느긋한 미소를 보내고, 먼저 다가와 ‘제가 이걸 안하면 선생님이 곤란해 지시는거 맞죠? 씨익~’ 장난을 건네는 Laurence의 자리는 이제 무대 센터가 되었다.

블루지프니에서 늘 꿀잠을 자는 Dave는 썬글라스만 써도, 살짝 몸만 흔들어도 너무 귀여워 절로 카메라를 들이밀게 했다.

좀더 말을 예쁘게 해야할것 같아요, 제가 너무 기분파죠, 몇 번이고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고 이제는 정말 잘 하고 싶다고, 잘 할 수 있을것같다고 함박웃음을 짓는 Bella다.

서로 맘 상하지 않을까하는 조바심에 뜨거운 태양 아래를 몇 번이고 거침없이 왔다갔다하며 친구들에게 사랑을 전하던 Boona결국 스스로 까만 필리피노가 되어 행복한 미소를 흩뿌렸다.

자꾸만 떠오르는 기억에 가슴이 답답하지만 결국 그 캄캄한 어둠속에서 스스로 문을 찾아 당당하게 박차고 나온 Joy는 오늘도 저 아름다운 바다처럼 유유히 흐르고 있다.


간디에 오랜 시간 있으면서 이제야 10대의 매력을 온 몸으로 느낀다. 마치 내가 10대가 된 듯이 말이다. 이것이 내가 이곳에 머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에서 이렇게 이쁜 아이들과의 오붓한 시간이 끝난다는 것이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물론 한국에서도 우리의 사랑은 계속 이어지겠지만 그것이 먼 타국에서 우리끼리만 느낄 수 있는 이 동지애만 하겠는가.

17기 아이들과 함께 필리핀에 온 것은 분명 행운이었다!

이제 단 3일 남았다.

잠시도 허투루 보내지 말고 그 모든 것에 애정을 담자. 너희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 귀담아 듣고, 행동 하나 하나 눈여겨 보리라.

그래서 더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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