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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Oct 30. 2022

쉰내 나는 성장을 꿈꾸다

중학교 아이들은 단 며칠만에도 키가 훌쩍 자란다. 엄마 보고싶다고 징징대던 아기같던 1학년들이 어느새 3학년이 되면 어른과 별반 다르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다. 귀엽기만 하던 옛 시절을 잊지못해 나도 모르게 어깨동무를 하려고 손을 올렸다가 까치발까지 해 보지만 엉거주춤한 꼴이 영 어색해서 쓰윽 손을 내린적이 몇 번이던가. 졸업하고 2, 3년 뒤에 만난 아이는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 어느새 우크라이나 전쟁 이야기를 하며 지구 평화를 논하고, 꼰대 카페 사장을 욕하며 노동의 힘겨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게 아이들은 성장해 가고 있었다.

그 틈에 나는 시대의 흐름을 자유롭게 타는 유연한 사람이고 싶어 심플 라이프를 실천하느라 틈틈이 집안의 물건들을 정리하여 버리고 나누고 재배치한다. 안방, 아이들 방, 거실, 주방,,, 그러다 구석 구석에서 옛 추억이 하나씩 떠오를 때 마다 그 시절을 다녀오느라 정리는 몇 날 며칠이고 계속된다. 책장 맨 아랫칸, 높이가 가장 높아 커다란 책이나 앨범을 꽂아두는 곳,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뽀얀 먼지를 털어내고 만난 사진 속 아이는 기저귀를 차고 온 집안을 기어 다닌다. 수박을 온 얼굴로 먹고서 파래진 얼굴로 환하게 웃는 아기, 뒤뚱뒤뚱 몇 번을 넘어지고서야 도착한 엄마 다리 사이에서 안도하는 아이, 처음 책가방을 메고 학교 가던 날의 설렘. 그 조그맣던 내 품 속의 여린 아기는 이제 왜 버섯이 싫은지, 왜 지금 새 옷을 사야 하는지 조곤 조곤 엄마 아빠를 설득할 줄 아는, 혼자 있는 시간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춘기 소녀로 성장했다.

이 얼마나 기특한 일인가.

마음이 따뜻하고, 언제나 당당한, 밝고, 지혜로운 아이로 성장했으면 한다. 아직 그런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튼 누가봐도 키가 훌쩍 자랐고, 말도 잘하고, 아는 것도 제법 많아져 오히려 내가 딸에게 물어보고 확인하는 것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 참 많이 성장했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딸이 기특하고, 그 기특함에 작은 밥알 하나라도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 웬지 나도 뿌듯하다.

동시에 부러움 비슷한 어떤 정체모를 감정이 가만히 올라온다.

그리 크지도 않은 나의 키는 더 이상의 성장을 멈춘 지 오래이고, 하고 싶은 일이 간혹 생기기도 하지만 정통한 어느 학교에 진학하여 차근 차근 배워가기에는 방해물이 너무 많아져 버렸다. (어느 학교에서 차근 차근 배워가고 있는 나의 이쁜 아이들 또한 애석하게도 이럴 때는 나의 뒤늦은 꿈을 접게 만드는 존재일 뿐이다.) 솔직히 이제는 두어시간 외출을 다녀오면 서너시간은 쉬어 주어야 체력이 회복되니 섣불리 나설 수도 없다.

아니, 어쩌면 모두 다 핑계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에는 두려움이 너무 커져 버린 나이여서 일지도 모른다.

쉰내 나서 쉰이 아닐까 싶었던 그 ‘나이’가 경기 어느 물류센터에서 출발했다더니 결국 곧 도착한다는 문자를 받고야 말았다. 이 나이 즈음에는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의 성장도 저렇게 누가 봐도 인정할 만한 것일 수 있을까?

엉거주춤 걷기만 해도, 스스로 밥만 먹어도, abcd만 외워도 칭찬과 감탄을 넘치도록 받고, 더 높은 단계의 학교로 진학한다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의 소식에서조차 그들의 성장이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런 칭찬과 감탄 속에서라면 나도 더 열심히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남친 생겼다며 자랑하면 축하의 마음보다 질투심이 먼저 올라올 것 같은 나의 분신같은 귀한 자식들까지 장애물로 만들지 않고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하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날마다 자기반성을 통해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용쓰는 평범한 나의 인생길은 그저 혼자 묵묵히 가야 하는 길이지 결코 누구에게 드러내 보일 수는 없다. 드러내는 순간 바로 자제력 없는, 말 많은 아줌마가 되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티도 낼 수 없는 혼자만의 외로운 길에서 조금 앞으로 나아갔다 싶다가도 금새 제자리로 돌아오고 마는 내 모습이 스스로 짠하다.

 이미 아주 오래전이 되어버린 어느날, 내가 사는 마을에 생협 매장이 생겼다. 주로 유기농 제품을 취급하며 조합원제로 운영한단다. 딱 봐도 고급스러워 보여 돈 많은 사모님들만 다닐 것 같아 애써 모른 척 외면하며 지냈다. 그리고 임신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되고, 묻고 따지고 비교하는 부지런함을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생협을 전적으로 믿고 맡기는 애용자가 되었다. 그 덕에 웬지 나 자신이 유기농 인간이 된 듯이 어깨에 뽕 좀 들어간 상태로 도시 생활을 하다 그럼에도 충족되지 않는 그 무언가를 찾아 시골행을 택했다. 넓은 마당에서 한껏 햇살을 받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것은 집에서의 나의 아이들과 대안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이 그리 다르지 않다. 모두 나의 아이들이고, 우리의 아이들이다. 이런 행복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에 참 감사하다.

 ‘그래 이 정도면 나도 꽤 괜찮은 사람이야. 나이가 차니 몸은 여기저기 쑤시지만, 그 뼈를 고아 우려낸 성숙미가 있지. 그렇지.’

어느 정도의 단계에는 올랐다고 자부하며 살짝 긴장의 끈을 놓고 편안하게 발을 뻗어보려는 찰나, 어김없이 찾아드는 누군가가 있다. ‘틀림’이 아니라 ‘다름’으로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는 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또 익숙해진 어느 환경에서만 가능한 능력이었다. 조금만 바람의 방향이 바뀌고 태양의 높이가 달라져 파도가 바뀌면 그것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그라운드다. 지금까지 힘겹게 하나 하나 쌓아올린 나만의 지덕체는 말 그대로 모래알이 되어 스르르 무너져 내린다. 때마침 시원한 파도가 몰려와 무너져 내린 모래알을 깨끗이 쓸어 가 버린다.

아, 허무하다!

하지만 나는 오늘 또 다시 시작한다.

용을 써서 앞으로 쭈욱 달려 가 보아도 어느새 다시 용수철처럼 튕겨 제자리로 돌아가고 마는 깜빡이 중년의 삶이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는다.

삶이 나에게만 호락호락 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 분명 세월은 용수철에게도 처음 모습 그대로 두지는 않을 것이다. 점점 녹이 슬기도, 늘어나기도 할테니 제자리로 돌아가더라도 결코 같은 자리가 아닐 것이라 믿는다.

단 한 순간도 우리를 결코 내버려 두지 않는 세월 속의 비와 바람, 햇살 그리고 너와 나 사이의 그 은밀한 썸타기가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또 다른 차원의 세상을 만나게 해 줄 것이다.

쉰내가 진동하여 그것이 결국 어떤 새로 창조된 향이 될지도 모를 그날까지 나는 나의 성장을 여전히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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