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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유 Nov 01. 2022

음미하다

음미하다


1. 시가를 읊조리며 그 맛을 감상하다.

2. 어떤 사물 또는 개념의 속 내용을 새겨서 느끼거나 생각하다.     


코로나로 인해 2년간 막혔던 여행길이 다시 열려 다행스럽게도 큰 딸이 졸업 전에 수학여행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시골 작은 학교라 4, 5, 6학년이 함께 수학여행을 가기에 두 딸이 같이 떠나고 남편과 나는 졸지에 둘만 남겨졌다.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는 뭔가 설레기도하고 또 뭔가 서운하기도 한 애매한 마음으로 우리만의 2박 3일을 맞이했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 잠을 설쳐가며 신나게 짐을 싼 아이들이니 엄마 아빠 생각은 1도 않고 화려한 시간을 보낼 아이들을 굳이 멀리서 그리워하거나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우리도 우리끼리 신나게 보내야겠다.

우선 집을 떠나자.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우리는 어디든 갈 수 있다.

1차는 선술집같은 작은 횟집이다. 소주 한 잔, 맥주 한 모금에 회 한 점씩 꼭꼭 씹어 먹었다. 손님은 우리 뿐이었고, 사장님은 단지 우리를 위해서만 정성껏 칼질을 하고 계셨다. 꼭 오늘을 벼르고 있었던 듯한 비장함이 흐른다. 어쩌면 직접 바다에 나가 거친 파도를 뚫고 고기를 낚아오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단 1초도 허투로 흘려보낼 수 없다. 오늘 각자의 일터에서, 지금까지 각자의 인생에서 잊지못할 그 순간들을 가만히 읊조린다.

쓰다. 간장에 썩인 와사비의 쌉쏘름한 맛이 코 끝에 떠오르며 눈물이 맺힐 것 같다.

하지만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올라와 촉촉한 눈가에 미소가 흐른다.

꿀꺽 꿀꺽 들이키던 술도 오늘은 꼭꼭 씹어서 입 속에, 식도에, 간에 지그시 스며들도록 천천히 음미한다.

2차는 로스팅 카페다. 지인이 오래전부터 칭찬을 아끼지 않던 곳이다. 어떤 맛이 우리를 기다릴까 설레는 마음으로 그곳을 향했다. 꽤 넓은 카페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해서 앉을 자리가 있을까 걱정하며 문을 열었다.

“저 안 쪽에 자리를 비워두었습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장사꾼은 다르구나싶은 마음에 다시 한번 카페를 훑어보니 뭔가 어색하다. 진짜 우리를 기다린 듯이... 홀에 앉아있는 모두가 엑스트라 배우처럼 우물쭈물하고 있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딱 2인자리 하나가 텅 빈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예멘 모카 마타리 1잔, 아메리카노 1잔 주세요.”

또 설렌다. 어떤 맛의 커피가 우리에게 올까?

드디어 커피가 나왔다. 자세히 보니 입구에서 우리를 맞아 준 사람도, 지금 커피를 가져다 준 사람도 지인이 말한 카페 사장님이다.

먼저 커피잔에 코를 가져다 대어본다. 커피향이 내 몸속으로 쑤욱 들어온다. 아, 좋다!

마시는 순간부터 목으로 넘어가기까지 깔끔하고 고소한 아메리카노다. 조금 단순한 면도 있지만 그래서 가볍게 자꾸 자꾸 손이 가는 맛이다. 맥주 몇 잔에 살짝 느슨해진 나의 뇌와 심장이 번쩍 깨어난다. 역시 나는 알코올 보다는 카페인이 더 좋다.

남편이 볶는 커피보다 약하게 볶인 마타리는 스모키함이 부족해 어정쩡한 아쉬운 커피맛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겐 더 완벽한 카페가 되었다. 오늘 완벽한 것은 우리 두 사람으로 충분하니까. 엔틱한 분위기에 약간의 프로방스한 느낌이 가미된 카페에서 우리는 멋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었다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곳으로 돌아가기 전 도시의 쩍이는 네온 싸인과 스칠 듯 지나치는 사람들속에 잠시 나를 맡기고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3차는 우리집이다. 며칠전 마시다 남겨둔 와인이 딱 한 잔씩 돌아간다.

부드럽고 연약하던 맛이 며칠새 가시가 돋아있다. 역시 한번 세상과 만나면 자신의 본연의 모습을 지키기가 힘든가보다. 물론 더 맛이 살아나기도 하지만 이번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와인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시공을 뛰어넘는 여행을 했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깨어있기’에 성공했다. 감동의 순간이다.    


지금까지는 잘 몰랐다.

그저 배고프니까 먹고, 해야하니까 하고, 하지 말아야하니까 하지 않았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참 무미건조한 시간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특별하니까 소중히 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애정을 담아 음미하는 시간을 보내니 모든 순간이 특별해 졌다.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이 미쉘린 스타 레스토랑에서 마시는 한 잔의 와인 만큼 맛있고도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 주었다. 커피 한 잔으로 레드 카펫을 밟아보고, 하우스 와인 한 잔으로 카르 디엠을 실천할 수 있었다.

소중히 대하니까 특별해진 것이다.

그냥 먹지말자! 그냥 하지말자!

꼭꼭 씹어서 제대로 음미해 보자.

말 한마디 행동 하나 하나에 애정을 담아보자!

분명 우리의 인생이 특별해질 것이다.

오늘 나의 하루 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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