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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참 잘 살았다.

어느 쓸쓸한 장례식에 다녀오고나서

by Hello

사람이 죽고 나면 장례식장에서 나를 위해 슬퍼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또 그런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이런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겠냐마는


얼마전 다녀온 장례식에서 장례식장에 온 사람들 면면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세월은 남아있구나, 어차피 공수레 공수거라지만

그 사람이 남기고 간 기억들, 추억들은 이런저런 모습으로 장례기간 3일 동안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인은 꽤나 성공한 사업가였다.

젊은 시절,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해서 대학 동기들과 함께 차린 미디어 사업이 꽤나 성공했었다.

같이 동업하던 친구들은 다른 회사를 차리거나, 이 업계를 떠나거나 했지만

고인의 회사는 연매출 대단한 억대를 자랑하는 큰 사업체가 되었다.


고인은 지방 온 가족의 꿈과 희망을 받는 큰 아들이었고,

그 아들을 위해 부모님은 논마지기도 내놓고, 아들이 성공만 할수 있다면.. 자신의 꿈도 같이 실었다.


고인은 성공한 후 장남으로 부모님의 은혜를 보답하고자, 집에 생활비도 보내고, 가장으로써

불운한 여동생까지 챙기며 효자중의 상효자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다.

고인은 자신의 성공가도에 알맞게 순종적인 현모양처와 큰딸, 둘째딸, 셋째딸, 막내아들

이렇게 장성한 네 자녀도 두었다.


거기에 고인은 부동산 잭팟까지 터지며 그 잘나가던 사업보다 더 큰돈을 부동산으로 한순간에 벌어들였다.


세상 부러울것이 없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욕심이 과해서 였을까...

고인은 자신의 성공에 버금가게 자신의 자녀들도 잘 살게 하고 싶어서 였을까.

결혼정보회사의 문을 두드려 첫째딸은 검사사위에게

둘째딸은 둘째딸이 초등학교 동창으로 알고 지내던 치과의사 사위에게


첫째딸부부에게는 결혼전부터 생활비 보탬등의 금전 약속을, 둘쨰딸 부부에게는 열쇠 세개를 해주며

하나하나 더 큰 행복을 위해 질주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불행이 찾아온다.

셋째딸에게 첫째사위의 지인들을 소개시켜주면서부터다.

검사, 판사.. 잘 나가는 사법고시 합격자들이 줄을 섰다. 고인의 재력을 보고 더 그랬으리라.

그런데 셋째딸은 그들과 대화도 잘 되지 않는 경계성 지능이라..,

그들과의 만남이 너무 큰 고통이 되었다. 그의 외로운 단면에 기름을 부었다.

그때부터 셋째딸은 밤이면 클럽에서 알지도 못하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기도 하고, 자살기도를 하기도 하고, 거식증 폭식증에 시달리기도 하고

원래도 마음이 많이 약한 아이가 정신을 놓아버렸다.


막내아들은 어려서부터 공부를 많이 못했다. 아들을 낳으려고 그렇게 먹어댄 약들이 문제였는지

태교가 문제였는지, 어딜가나 2프로 부족하단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그 아들에게는 골프를 가르쳤다. 말레이시아.. 미국.. 여기저기 내노라 하는 골프 코치에게 레슨을 시키고

죽도로 골프 프로가 되려고 노력시키고 또 시켰지만, 골프 연습하며 만난 캐디에게 사기당하고

지인들에게 돈 빌려줬다 못받고 얼마 빌려줬는지 언제 받을지도 잘 모르는.. 그런일들이 허다했다.


고인의 많은 재산도 네 자녀에게 매달 매달 곳간 비우듯 퍼나르기 시작했다.

고인의 사업도 사회가 급변하면서 내리막길 사업이 되었다.

걱정없을것 같던 곳간이 조금씩 비워지는 것이 보였다.


그러다가 고인에게 임파선암이 찾아왔다.

온 몸에 암이 퍼져 돈을 아무리 들여도, 비싼 치료를 받아도 살수가 없었다.


고인은 원래가 남에게 신세지기 싫어하고, 자존심상하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성격이었다..

그렇게 고인도 하늘의 별이 되었다.


고인이 죽던날, 고인의 지인들에게 고인의 변호사가 문자를 보냈다.

고인이 생전에 직접 고른 자신의 사진과 함께..

저는 먼저 갑니다. 그동안 저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 행복하시기 바라고 (중략)...


죽는 사람이 산 사람들에게 보낼 문자를 미리 준비하다니..

그토록 체면과 명예를 중요시 하던 사람인데

고인의 주변에 있던 그 많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장례식장에는 죽마고우 몇명 뿐, 사위들의 손님들만 왔다갔다 할뿐이었다.

장례식장의 쪽방에서는 유산 정리로 서로 고인의 아내와 먼저 이야기 하려는 자식들의 눈치싸움에 숨이 막힐 지경이었고, 자녀들의 얼굴엔 슬픔보다 내 유산이 얼마지.. 이건 어떻게 정리하지..

그런 욕심이 덕지덕지 묻어 나왔다.


참으로 쓸쓸한 죽음이다.

그 조용하고 숨막히는 장례식장에서..

화장장에 들어가는 관을 붙잡는 이 하나 없는 장례식장에서

곡소리 하나 안들리는 조용하고 무거운 장례식에서

나 그동안 그토록 돈만 많으면 행복할거 같다고 생각했던 내 우매함이 갑자기 크게 들이쳤다.


참으로 쓸쓸한 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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