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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30. 2023

목표가 있는 아들과의 대화는 즐겁다.

아들과 소통한다.

아들의 공연을 보는 바라보는 내 모습은 떨리면서설레며 감사하다. 우리 아들에게 저런 모습이 있었던가? 기타 치면서 노래까지 하다니. 혼자 감탄하며 어린아이마냥 좋아한다. 그리고 다짐하게 된다. 아들이 무대에서 노래하고 관객들이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하자고 말이다.


사실 싱어송라이터라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그 모습만으로도 좋다. 쉽지는 않겠지만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는 삶 자체가 멋지지 않은가. 늘 응원하며 지지한다. 그리고 엄마로서 무엇을 노력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늘 생각하고 있다. 아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자 실질적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어서이다.     


큰아들이 대학교 1학기를 마치고 기숙사에 짐을 가지러 올라갔던 날이 생각난다.

전날 일하고 늦게 잠을 잤지만 아들을 데리러 간다는 설렘에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난 어디를 가나 새벽에 일어나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고 여유로운 도로의 운전을 좋아한다. 오전 11시 출발보다 새벽 5시 30분 출발을 선택한다.


거제에서 대전까지는 3시간이 걸리지만 휴게소도 거치지 않고 달리다 보니 일찍 도착하게 되었다. 기숙사에 도착하기 전 대전의 유명한 빵집인 성심당에 도착하여 집에서 먹을 빵과 지인들 선물할 빵을 구입했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대전에 유명한 빵집을 이렇게 자주 방문하게 될 줄을 생각지도 못했다. 성심당에서 빵을 샀다는 이유만으로 좋아해 주시니 얼마나 좋은가. 대전에서 유명한 빵이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직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아들에게 전화했다. 실눈을 뜨고 슬리퍼에 반바지차림으로 나오더니 잠을 못 잤다고 했다. 집에 간다고 생각하니 쉽게 잠이 오지 않더라는 것이다.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나와 달리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인 아들은 짐도 대충 쑤셔 넣는다. 정리는 남 보기 좋을 뿐이고 본인만 좋으면 널브러진 상태도 아무렇지 않아 하는 녀석인데 노래는 제대로인걸 보면 본인의 길이 맞는구나 싶다. 이불도 기숙사침대에서 그대로 들고 나와 뒷 자석에 넣는데 뒷 백미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 내 손을 거쳐야지 하며 나름 대충 정리하고 출발했다.


도로에 차가 늘어나는 토요일 아침 분위기에 들떠 그동안 못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하게 되었다. 1학기 마지막 공연에서 입었던 의상과 카우보이 모자를 보여주며 그간 힘들었던 공연준비과정을 말해주었다. 혼자서 하는 공연이 아니라 선후배가 협력하여 무대를 준비하다 보니 곡선정에 있어 자유롭지 못했나 보다. 다음 공연에서는 곡선정에 자신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힘든 공연준비를 하며 포기하고 싶던 순간 무대에 오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설레면서 기분이 좋아지더라는데 무대를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이 내심 신기했다. 1, 2학년 전체 3등을 했지만 다음에는 1등 하고 싶다는 아들의 얼굴에선 결의가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하기 싫은 건 절대 하지 않던 녀석이 참고 해내며 좋은 성과로 마무리한 것을 보며 좋은 경험을 했구나 싶었다.


그러면서 나의 작사이야기도 하게 되었다.      

지인과 대화하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이야기했고 글을 써보라는 말에 작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아들이 싱어송라이터가 목표라 했을 때부터 작사에 대한 관심이 있었고 생각나는 글들을 노트에 몇 개씩 적기는 했었다. 나만의 생각과 한이 서린 과한 글들이 부끄러워 그냥 묵혀 두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지인의 말을 들으니 아들의 노래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좋은 가사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지면서 제대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우선 책을 많이 읽는 중이고 가수나 유명작사가분들이 나오는 예능프로를 찾아보며 그분들의 말씀을 듣고 있다. 김이나 작사가의 ‘김이나 작사법’이란 책을 읽으며 작사가의 생각들을 알 수 있었는데 그 글에서 흘러나오는 세련미가 너무 부러웠다.


작사는 가수의 입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라는 작사가 김이나 씨의 말을 들으며 구체적인 나만의 가사들을 적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노래하는 아들에게 잘 어울리는 작사를 하고 싶었다. 가수는 입으로 전하는 공감의 말을 음과 함께 가사로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배우이기도 하다는 것과 가사는 듣고 부르는 글이라는 말에서 깊은 이해를 하게 되었다.       


아들이 좋아하는 음악에 찰떡같은 글을 붙여 대중의 공감을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글들을 써내고 싶었다. 너무 막연하지만 하나씩 하다 보면 되는 날이 있을 것이다. 우선은 하나씩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아들과의 지난 대화에서 생각나는 상황들을 꺼내어 글로 써내려 가는데 외외로 잘 써지는 거다. 내가 쓰는 방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음이 있다면 가사는 다듬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무작정 써 내려갔다.


그렇게 한곡의 가사가 A4 두장을 채우는데 많이 써서 놀랬고 이렇게 긴 가사는 가수가 부담스럽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한 편의 시를 썼고 글 속의 어린 아들과 그 시간을 다시 만나 추억할 수 있어 기뻤다. 그때 그 상황 속 아들의 마음을 바라보며 느껴지는 글을 써 내려갔고 3편의 가사글감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렇게 작사에 대한 서로의 생각과 내가 완성한 3곡의 작사에 대한 너의 평가를 듣고 싶다고 했다. 대학 가기 전에 쓴 글을 보여줬을 때는 엄마의 글이 너무 어렵다고 했었다. 그때는 작사에 대한 이해도가 없었고 어떤 주제에 대한 나의 성찰에 불과했으니 그럴 수 있었겠다 싶다. 그랬기 때문에 최대한 아이의 입장에서 쉽게 쓰려고 노력했고 작은 부분도 소중히 여기는 감성을 내 안에서 끄집어내며 살아가고 있었다. 내가 이제껏 경험했던 사회에서의 냉정함과는 다른 작은 감성들이 낯설었다.


엄마가 소녀감성이 되어가면서 정신연령도 높아지고 있다고 이야기하며 우리는 같이 웃었다.      

“엄마는 전쟁터에만 살아서 큰 것들만 경험한 장군 같아요. 그래서 하찮은 것을 모르는 사람 같아요”


들의 말에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었는데 콕 집어서 말해주다니.

 "그래 엄마는 내가 가진 손보다 더 커 보이려고 막대기 하나를 더 집어서 다섯 번째 손가락 옆에 붙이며 온갖 힘을 다 주며 살았어. 그래야 했고 그렇게 살아왔어. 그런데 자꾸 힘을 빼라는 거야.”


 “어떻게?”

 

“이렇게?”

 

“아니 더 빼래.” 


“그래서 다섯 번째 손가락 옆에 붙은 막대기를 버리고 내 나름대로 손을 오므리며 힘을 뺐지.” 


“그런데 말이야. 남들 눈엔 끝에 손가락에 힘만  약간 오므린 정도만 보인다는 거야. 난 최선을 다해 힘을 뺐는데도”


라며 아들에게 말해주는데 순간적으로 내뱉은 말이었지만 내 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내가 인생에서 쓸데없는 힘을 주며 에너지를 소비하고 살았구나. 더 내려놔도 되고, 더 힘을 빼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누구와의 대화에서도 이런 성찰은 쉽지 않은데 유독 아들과의 대화에서는 이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다른 사람은 쉽게 믿지 못하고 의지하지 않지만 아들들은 많이 의지하나 보다. 그만큼 내가 살아온 과정을 잘 아는 아들이 나에게 맞춤형 말을 건네기 때문이리라. 영혼이 잘 통하는 관계가 남이 아니라 아들이어서 너무 신기하다.     

그런 아들에게

“네가 생각하기에 넌 어떤 사람인 것 같니?”


라고 물었다. 글을 쓰려면 우리 아들의 생각은 알고 있어야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엄마! 내가 생각하는 나는 거친 상남자인데 그렇게 생각 안 하나 봐요” 


엥? 네가 상남자라고?”

학교 축제 때 거친 상남자를 표현하려고 는데 선배들에게 먹히지 않은 거였다.     

내가 종종 아들에게 말해 주는 것이 있다.


”아들아! 네 안에는 다이아몬드 거인이 있어! 남들이 어려워하는 엄마에게 거침없이 바른말을 해주고 의지가 되게 하며, 힘이 되어주니까. 분명 네 일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다 “


힘든 순간 힘이 되어 준 아들에게 고마워하며 말해준 적이 몇 번 있었다. 어떻게 내가 아들의 말에 수긍하며 변화될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의 상황에서 저 말은 내가 느낀 진심이었다. 너무 신기하지만 내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의 언어였다.


무대에 오른 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큰 무대에서 떠는 티도 내지 않고 재미있어하는 아들이니 그 속에 어마어마한 거인이 들지 않고서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본인도 떨린다고 한다. 그런데 떠는 수준이


"다리까지만 떨리고 배 위로는 오지 않아 괜찮았어요."

라는 말에 틀림없는 무대체질이며 강심장이라 느꼈었다.     

아들의 상남자 발언에 내가 웃으면서 말해주었다.


 아들아! 너의 범대중적인 이미지는 모범생이란다. 예전 학교선생님도 그러셨잖아.”

“어? 너 뭐냐? 이렇게 생겨가지고 성적이 왜 이래” 


그렇다. 우리 큰아들은 보기에 반듯하고 공부 잘하는 모범생으로 보이지만 성적은 밑바닥에서 노는 아이였다. 학교 시험 때도 자신 있게 책을 보지 않았으며 게임으로 시험을 준비하던 녀석이었다. 그런 녀석을 공부로 채찍질하지 않았던 것은 공부에 흥미가 없었으며, 내가 공부를 가르치다가는 부모자식 간에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할 것 같던 예감 때문이었다. 공부도 잘하면 좋겠지만 직업적 성공에 있어 학교공부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생각과 공부에 투자하지 않았던 나의 현실에 욕심을 버렸던 것 같다.


직업적으로도 자기가 원하는 일이 생기면 공부는 저절로 할 것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불안했지만 밀어붙인다고 되는 일이 아닌지라 ‘늘 직업적 성공을 성취하게 해 주세요’라는 기도로 내 마음을 안정시켰다.


자기 안에 에너지를 본인도 느끼는 건지 아들의 상남자라는 발언은 너무 신선했고 그에 대한 주제로 몇 개의 가사글감을 쓸 수 있었다.     


대전에서 거제로 내려오는 3시간 동안 아들은 자지도 않고 나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중에 내가 요즘에 듣고 있는 노래인 주호의 ‘잘 가요’와 ‘내가 아니라도’를 같이 들으며 이 곡에 대해 말해 주었다. 이 노래들을 듣고 있으면 헤어진 상대가 나에게 해주는 위로의 말 같다고 했다. 그랬더니

“아빠는 이런 지적인 면이 없어요. 어디 이 노래에. 아니에요”


맞는 말이지만 상대와 무관하게 내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냐고 항변하며 나의 낭만에 식초 뿌리지 말라했다.


이 노래는 1년이 넘었는데도 질리지가 않는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 보 내가 나에게 들려주는 위로의 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에게 듣고 싶었던 말인 ‘고마웠다’라는 것.


개인적으로 두 곡에서 느낀 분위기는 서로에게 좋았던 추억을 말해 주며 아름답게 이별한 남자의 이야기란 생각이 든다. 서로 아름답게 사랑했으며 좋게 마무리한 이별곡 느낌이다. 이렇게까지 아름답지는 않았고 좋게 마무리했다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지만 고마움이라는 단어에서 나의 고단했던 지난날들을 위로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상대가 말해주지 않으니 내가 이 노래로 나에게 위로를 해준다는 말이다.

상대는 옆에 없으니 상관없다. 내가 나에게 이 노래를 통해서 위로를 해주며 고마워해준다는데 무슨 상관이랴. 하지만 아들의 중립적인 말에서도 나는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사실이니까.

아들이 고맙다.     


집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아들에게 나만의 가사집을 보여주었다.

그때 그 상황들이 생각나고 그 마음이 이 마음이었다고 이야기해 주니 나에게 엄지를 내밀어 주었다.

“엄마는 시인이에요”


아들에게 인정받았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더 잘 쓰겠노라고 다짐하며 아들이 내려온 한 달 동안 많은 곡의 가사글감을 써낼 수 있었다.     


대전으로 올라갈 때는 빨리 가고 싶은 마음이었고 아들과 내려오는 길에선 2차선에 100킬로 속도를 유지하며 왔는데도 1시간이 걸린 느낌이었다. 아들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엄마! 집에 오는데 3시간 걸린 게 맞지요? 1시간 만에 도착한 것 같아요”


우리는 역시 잘 통하나 보다. 난 그날 시간의 마술과 소통의 매직을 경험했다. 참으로 감사하다.

나는 앞으로도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아들의 모습들을 많이 볼 것이다. 볼 때마다 조마조마하며 잘 해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냉정해지기를 바라겠지만 주변의 반응도 살피게 된다.


그 반응도에 따라 나의 기쁨의 크기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중이 좋아해야 가수로서도 오래 사랑받으며 활동할 수 있다. 아들이 선택한 길이 존중받고 사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엄마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들을 하살 것이다.

아들이 공부를 하면 나도 내 분야에서 공부하며 노력할 것이고 보이지 않는 정성들로 좋은 운을 끌어모아 줄 것이다. 우린 서로에게 좋은 멘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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