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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Sep 27. 2023

서울예대 의자라도 앉아 보던가.

대학을 가다

실용음악과에 진학하기 위해서 수능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신박했다. 공부에 신경 쓰지 않고도 대학을 갈 수 있다는 게 말이다. 실용음악과는 실기위주의 시험으로 수능시험점수 대신 개인의 노래 실력을 평가했다. 보컬과로 진학을 원했기 때문에 기타 연주와 노래를 연습하는 것으로 대학수시준비를 했다.


음악선생님께서는 서울에 4년제 대학진학을 위해 신경 써 주셨지만 아들이 원하는 대학은 따로 있었다. 대전에 있는 2년제 대학으로 아는 지인의 소개로 알게 됐다고 했다. 모든 이가 서울에 대학을 가는 것이 좋다고 했지만 우리는 상관없었다. 오히려 차근차근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집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서 음악을 배우면서 그다음을 계획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부산에 한 곳, 대전에 한 곳, 서울에 두 곳을 지원했지만 서울에서 수시날짜가 겹치는 바람에 서울예대만 시험을 보기로 하고 총 3군데에 실기시험을 보기로 했다.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서울예대는 최고의 목표일 것이다. 아들은 이무진의 팬으로 서울예대를 좋아했다. 서울예대 지원은 합격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그곳의 분위기를 보며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는 경험을 하고 싶어서였다.

 

서울예대 실기를 보는 날이었다. 보통 집에서 멀리 있는 곳이라면 전날 올라가서 숙소를 잡고 시험을 봤겠지만 시험시간이 오후 3시였기에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자고 있던 아들을 깨워서 재촉을 하는데 왠지  데려다주고 싶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아들이 못 미더웠을까? 서울까지 기타를 메고 가야 하는 아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쉬는 토요일에 여행 삼아 같이 가고 싶었다. 한사코 거부하는 아들 때문에 같이 가지는 못했지만 잘하고 오라고 인사하며 배웅해 주었다. 그런데 2시쯤 전화가 왔다.

"엄마! 서울예대에 왔는데 아무도 없어요."

"엥"

"시험시간을 잘 못 알았나 봐요"

"뭐라고?"


시험시간을 잘 못 알고 시험을 보러 가는 바람에 서울예대 입구만 들어갔다 나온 꼴이었다. 너무 아쉬웠다. 6시간 넘도록 올라가서 기타도 꺼내지 못하고 서울예대 공기만 마시고 오다니. 나보다 아들이 더 아쉬울 것이었기에 조심해서 내려오라고만 했는데 원서를 잘 살피지 못했던 내가 원망스러웠다.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서울예대입구 사진은 찍어왔냐고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었다. 본인은 얼마나 아쉬울까. 더 이상 물어볼 수가 없어 묻지 않았지만 서울예대에 가서 사진 한 장 찍지 않고 온 아들이 미웠다. 시험은 보지 못했지만 교실 의자라도 앉아보고 오던가. 아니면 야외 벤치라도 앉아서 사진 한 장 찍어오던가. 그곳까지 간 차비가 아까웠다.


수시를 본 두 곳에서 합격을 했지만 대전에서 차석으로 합격하여 장학금을 받고 학교를 정하게 되었다. 학교가 정해지고 내가 너무 좋아하자

"그냥 지방대학에 간 것뿐인데 그렇게 좋아요?"

"그래! 엄마 생각해서 등록금도 줄여줬는데 그것만으로도 고맙지"


수시를 끝내고도 음악학원에서의 연습은 계속되었다. 늦게 시작한 만큼 배워야 할 것이 많았 이어지는 공연으로 준비할 것도 많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음악학원선생님의 공연과 학교졸업 공연으로 김필의 '다시 사랑한다면'과 하현우의 '라젠카'를 준비했다.

특히 음악선생님의 공연은 거제문화예술회관의 소극장에서 하게 되었는데 공연 전에 대기실에 앉아있는 아들을 보게 되었다. 많은 가수들이 공연 전에 쓰는 대기실일 텐데 그곳에서 연습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새로웠다.


'누구 없소'로 시작된 아들의 노래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앵콜곡으로 요청을 받고 있다. 생각해 보면  노래로 많은 경험을 다. 들에게 목표를 주었고 희망을 노크하게 해 준 고마운 곡이라 할 수 있다. 고등학교 공연으로 마무리한 하현우의 '라젠카'까지 1년간 많은 성장이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아들의 발성은 많이 달라졌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꿈이 있는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삶의 희망도 느껴진다.


하지만 아들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그저 자신의 목표를 향해 꾸준하게 가고 있는 것만으로 감사해하자고 다짐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있을 것이고 쓸데없는 욕심도 생기리라. 그런 부담 없이 전진했으면 좋겠다.

이제 시작된 아들의 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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