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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엄 Oct 04. 2023

대학생이 된 아들의  퍼펙트!

앵콜곡은 꼭 준비해 줘!

대학에서 1학기를 지내고 온 아들이 설거지를 해준다. 세상에! 감동이다. 무슨 생각으로 설거지를 하게 됐는지는 묻지 않았다. 물어보면 머쓱해져서 안 해 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고무장갑을 끼는 소리가 나도 달려와서

"내가 할게요." 한다. 그러면 못 이기는 척 바쁜 척 다른 일을 하며 속으론 감동의 눈물을 흘린다.

"짜식! 대학물 먹더니 달라졌네. 학교에서 설거지하라고 교수님이 과제를 내주셨나"


대학공연을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면 두 개의 공연을 소화해야 했다. 음악선생님의 자선공연과 청소년수련관에서 주최하는 청춘버스킹공연이었다. 대학에서 공연을 마치고 한 달 정도 준비할 수 있었지만 쉼 없이 연습해야 하는 아들이 안쓰럽기도 하면서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기도 했다.


풋풋한 대학생답게 친구들과 여행을 가기도 하고 저녁 늦게 들어오는 날도 있었지만 타고난 집돌이 기질의 아이였기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음악학원 연습실과 친구들의 약속 외에는 집에서 컴퓨터 앞에 있는 시간이 전부였기에 심심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 했지만 원하는 시간대가 없었고 공연에 집중하고 연습을 더 하게 하고 싶었다. 어떤 게 아이에게 더 나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앞에 놓여있는 공연준비가 먼저였다.


음악선생님의 공연은 옥포수변공원에서 시작되었다. 공연 2시간 전에 출발하는데 아들은 공연에 부를 노래를 출발하는 차에서 알려주었다. 이무진이 커버한 곡인 '퍼펙트'였다. 잔잔한 팝송의 기타 연주가 매력적인 곡으로 비가 많이 왔던 공연날과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여전히 이무진을 좋아하는구나. 그래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무대에 서는 아들을 볼 때마다 이무진 씨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나도 팬이 되었지만 이무진 씨가 부른 곡을 따라 하다가 자신의 길을 찾게 된 아들을 보는 입장에선 고맙다고 몇 번을 인사하고 싶은지 모른다. 정말 감사하다. 그래서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의 발자취는 중요한가 보다.


비가 엄청 오는데도 공연을 한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비바람은 그치지 않았다. 공연을 준비하고 진행하시는 음악선생님의 수고스러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는 아들에게 오후시간은 졸음과 싸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공연의 긴장감보다 잠이 먼저였기에 피곤하다고 했었다. 배가 고프다길래 빵을 주었더니 노래할 때 트림이 나올 수도 있어 안된다고 물만 먹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많이 먹일 텐데 이런 준비도 필요하구나를 느끼며 다음을 생각했다.


아들의 차례가 되었고 7개월 만에 무대에 선 아들의 노래를 듣게 되었다. 엠프연결이 되지 않아 마이크 2개로 공연을 했고 많은 비가 박수같이 쏟아지다가 아들의 공연이 시작되니 신기하게 잦아들었다. 아들의 발성은 달라졌다. 분위기 있는 팝송을 불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단단해진 발성과 중간의 바이브레이션이 어우러진 기타 연주는 너무 감동적이었다. 그곳의 모인 분들의 호응이 좋았고 앵콜요청도 들어왔다.

아들은 앵콜곡을 연습하지 않고 한곡만 연습한 듯했다. 멈칫하자 음악선생님께서는 '누구 없소'를 불러달라 요청하셨고 아들은 피크를 잡아들고 무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내가 건네준 피크가 데크 사이의 바닷물에 빠지는 바람에 더 당황하긴 했지만 무대에서 연주는 가능했다. 여분의 피크로 '누구 없소'를 부르는데 연습 없이 7개월 만에 해 보는 연주는 매끄럽지 않았다. 아쉬운 점이었다. 아들은 인정하지 않지만 지역에서 아들 수준으로 노래를 불러준다면 앵콜은 기본으로 나온다. 그 앵콜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음악선생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소년수련관의 청춘버스킹도 옥포수변공원에서 열렸다. 비가 와서 연기되는 바람에 7월의 마지막 아주 더운 날 공연이 진행되었는데 이날은 미리 편의점에서 빵과 먹거리들을 잔뜩 사갔다. 배고프면 안 되니까.

중고등학생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청춘버스킹공연은 밴드부와 개인전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우리는 개인전이 열리는 곳에 자리를 잡고 공연을 기다리고 있는데 공연관계자분께서 아들을 알아보시고 인사해 주셨다. 서로 연락처를 나누었고 다음 버스킹공연에도 참여해 달라고 부탁받은 뒤 아들의 리허설을 기다렸다. 이번 공연은 별도의 예선 없이 참가자 전부를 공연에 세웠기에 아이들의 수준을 모른다고 하셨다. 요번 공연은 그야말로 학생들의 청춘버스킹이었다. 끼 있는 중고등학생들의 공연을 보면서 그들만의 풋풋함과 발랄함을 느낄 수 있었다. 날씨가 아주 더웠기 때문에 아들의 선곡이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한 달 동안 연습한 곡을 날씨 때문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햇빛 쨍쨍한 날 '퍼펙트'는 신나지 않았다. 여름이라면 여름답게 선곡을 하는 것도 경험이리라.


아들의 공연은 좋았고 주변의 학생들의 환호 덕분에 살짝 흔들렸다고 했지만 반응은 좋았다. 최초로 앵콜이 나왔지만 아들은 마이크를 들고 무대아래로 내려왔다. 아들은 공연시간이 각자 5분이기 때문에 그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앵콜을 받았으면 5분이 지나도 괜찮지 않겠는가. 내심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른 관계자분께서도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와 반갑게 인사해 주셨다.

"찬현아! 반갑다. 노래 잘하네. 그런데 왜 앵콜곡 안 했어?"


아쉬워해주셨고 우리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내가

"다음 공연에도 꼭 불러주세요." 했고 우리는 눈인사를 하며 헤어졌다. 그런데 관계자분께 했던 말이 내 머릿속에 맴돌면서 '너무 나댔나?'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아들의 모습을 계속 보고 싶어서 호기롭게 튀어나온 말이었는데 지나고 보니 죄송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대처할 수 있는 나만의 처세술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큰아들이 말했다.

"엄마! 공연에 불러달라고 말하지 마세요. 실력이 있으면 불러주시는 거지 요청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나도 안다. 인마!'

그 일이 계속 생각나는데 아들의 쓴소리까지 더해지니 너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아들이 대견하기도 했다.

'속도 깊어라! 그런 생각까지 하다니. 네 말이 맞다. 엄마가 조심할게'


겉으론 "알겠어."를 외쳤지만 속으론 뿌듯했다.

쉽게 일희일비하지 않는 아들이 좋다. 잘한다고 말해줄수록 더 차분해지니 내가 더 배울 점이다. 그런 아들이 나는 믿음직스럽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지한 적 없는 나였는데 아들들에게만은 가능했다. 그런 게 가능해지면서 내 마음도 많이 편해지고 있다. 내가 살아온 과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아들은 내가 이야기해 주는 것들을 잘 받아주고 알아준다. 내가 낳은 아들에게 정신적으로 의지가 된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지만 의지하는 상대가 아들들이어서 감사하다. 아들! 너는 내게 참으로 퍼펙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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