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책 <여름밤, 비 냄새_김현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처음 가 본 동네였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던 어느 날,
낯선 동네의 아기자기한 책방에서 발견한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꺼내 들었다.
아무 데나 펼쳐 읽어 내려가기 시작하는데, 마치 여름의 흙냄새가 풍겨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라벨론, 때로 어떤 추억은 그와 관련된 단어에 라벨을 붙일 만큼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녀는 여름밤과 비 냄새에 그의 이름이 적힌 라벨을 붙였다.
그에 관한 문장을 '언제부턴가'로 시작하는, 명확한 경계를 찾을 수 없어 달력에 표시한다면
펜이 아닌 물을 듬뿍 머금은 수채화 물감으로 칠해야 한다는 그녀의 조심스럽고도 명확한 표현이 예뻤다.
무더운 계절 장맛비와 함께 시작된 그녀의 소중한 감정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비를 맞으며 어수선한 서울의 밤거리를 함께 거니는 한 쌍의 남녀가 영화의 장면처럼 그려진다.
나는 코끝에 찬바람이 스치기 시작할 때면, 수능 시험을 치르던 해의 가을이 떠오르곤 한다.
이처럼 저마다의 추억에 붙여진 수많은 라벨은, 어쩌면 떼어낼 수 없어 한동안 그 자국에 앓기도 하겠지만
훗날 우리 인생이라는 소설의 지나칠 수 없는 책갈피가 되어있지 않을까.
언젠가 강의에서 들었던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났다.
향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후각 세포가 뇌의 변연계에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특정 냄새를 맡는 순간 관련된 기억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설명하셨다.
첫사랑에게 선물한 향수의 잔향이 지독히 떠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일까.
이 책의 냄새를 정하자면, 제목 그대로 어느 여름날 선선한 밤공기 냄새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덮을 때까지 떠나지 않고 풍겨오는 비에 섞인 흙냄새는
저마다의 계절에 붙여진 라벨을,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2023년 여름 어느날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