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하다 든 생각

- 이 글은 <철수 사용 설명서_전석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by 완이


“남들 다 하는 걸”이라고 생각했던 아버지의 말을 듣고 보니, 이 세상에는 묵묵히 식빵을 굽고 있는 냉장고나 빨래를 하고 있는 청소기 같은 게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냉장고는 폐기 처분될 때까지도 자신이 토스터인 줄 알 것이다. 심지어 토스터로 만족스러운 생을 살았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껏 애매모호한 기준을 붙잡고 달려온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최악이었던 제품이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제품이 될 수 있다. 고장은, 그러니까 사용했던 사람들이 말했던 고장은, 사실 철수의 잘못만은 아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 절반쯤은 사용 설명서도 읽지 않고 철수를 사용했던 사람의 잘못일 수도 있다.



사용설명서는 완성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앞으로 계속 고쳐나갈 뿐이다. 그러니 철수를 사용하려는 사람은 항상 최신판 철수 사용 설명서를 보아야 한다. 그것이 고장을 줄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정확한 사용 설명서는 사용되는 제품에게도, 사용하는 사람에게도 모두 상처를 주지 않는 유일한 방법이다.



-전석순의 [철수사용설명서]


(민음사,2011)







나는 과연 잘 살아온 것이 맞을까? 앞으로 내가 걷게 될 길은 나에게 맞는 길일까? 그냥 요즘 꿈이 없어 방황하는 나에게 또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글.



어쩌면 사람들은 다리미에게 오디오 기능을 강요하고, 라디오에게 세탁 기능을 바라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우리는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준에 의해 사용가치가 규정되고는 한다. 사회가 당연시 여기는 기준은 점점 높아져만 간다. 처음에는 다리미에서 스팀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스팀 다리미가 등장하자 이것을 다리미의 기본 기능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서부터 학창 시절, 취업 그리고 직장에서까지 거르고 걸러지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들을 똑같은 기준으로 거르는 것은 결코 올바르지 못하다. 누군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그 사람의 ‘사용 설명서’를 먼저 정독하는 것이 현명한 자세이지 않을까



(새벽에 과제하다보면 글쓰는게 더 재미있어서 밤을 샌다....ㅎ)


-2021년 봄 어느날 쓴 글.

작가의 이전글인공지능 소설가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