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에 내려앉은 연대의 빛

밝은 밤, 최은영, 문학동네, 2021

by 완이

해가 진 밤이 어떻게 밝을 수 있을까. 밝은 밤, 언뜻 보면 모순되어 보이는 이 단어는 사실 이 소설을 가장 잘 표현한 말이다. 억압이 가득한 어둠의 현실 속 서로의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환한 연대가 자리 잡고 있으니. 절망 속에서 희망을 틔우려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밝은 밤』에서 시작된다.



시간모순을 통한 과거 이야기의 시작

소설은 두 가지 이야기를 액자식 구성으로 연결한다. 외화는 주인공 지연과 그의 엄마 미선, 그리고 할머니 영옥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소설의 첫 부분은 주인공 지연이 남편의 외도로 이혼하고 미선과 싸운 후 희령으로 도피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지연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엄마를 피해 그녀가 싫어하는 공간 희령을 찾는다. 희령은 영옥이 젊은 시절부터 지내던 동네이자 어린 시절 지연이 영옥과 함께한 추억이 깃들어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희령에서 이십여 년 만에 마주한 영옥과 지연은 서투르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며 오랜 시간 닿지 못했던 둘 사이의 간극을 메워 간다. 그 과정 속 영옥이 지연에게 들려주는 과거 이야기, 내화가 반복적으로 삽입된다.

내화는 고조모와 증조모, 영옥 그리고 새비네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다. 외화와 마찬가지로 내화에서도 각 인물은 누구의 할머니, 어머니로 불리기보다는 각자의 이름으로 소개된다. 백정의 딸로 태어난 증조모 정선은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군을 피해 개성으로 가 희수와 결혼하였다. 고향의 지명을 따 삼천이라 불리던 그녀는 천한 신분이었다는 이유로 이웃과 친척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남편마저 외면하여 홀로 외롭게 지내던 삼천은 훗날 새비네 가족을 만나고, 새비와 평생토록 의지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삼천과 새비의 우정은 그녀의 자식들 영옥과 희자에게까지 이어진다. 새비네 딸 희자는 어릴 적부터 영옥을 잘 따랐다. 두 가족은 6.25 전쟁 시기 피난을 가서도 함께 지내며 역경을 이겨낸다. 여러 역사를 걸쳐 그들이 전하는 끈끈한 이야기는 독자들이 이야기에 더욱 빠져들게 하고, 어느새 응원하는 마음마저 들게 한다. 소설을 읽어 내려가던 독자들은 삼천이 되었다가, 영옥이 되기도 하고, 새비 아주머니나 희자가 되기도 한다. 이야기에 몰입해 각각의 인물들이 되어가던 독자는 인물의 힘에 끌려가면서 그들에게 공감하고 위로받는다. 더불어 영옥과의 오랜만의 재회를 통해 과거의 이야기를 듣게 된 지연은 점차 엄마 미선을 이해하고, 자신 내면의 상처를 치유해 간다.

이처럼 『밝은 밤』에서의 사건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정상적 연쇄로 나타나지 않고, 과거와 현재의 사건이 번갈아 서술된다. 즉, 시간적 순서의 불일치를 나타내어 시간이 모순되게 전개된다. 이는 이야기 전반에 걸쳐 지속된 소급 제시의 방법을 이용하며, 영옥이라는 인물의 회상을 통해 실현된다. 결국 영옥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은 시대를 넘어 4대 여성들이 지닌 공통의 상처를 치유함으로써 그녀들의 성장을 이끈다. 더불어 액자 바깥에서 액자 속 사건으로 넘어갈 때 지연에서 영옥에게로 넘어가는 초점의 변주는 책을 읽는 독자와 소설 속 인물 영옥의 심리적 거리를 줄여준다. 이로써 독자는 그녀의 입장에 함께 서서 과거의 여러 사건을 이해할 수 있다. 이처럼 소설의 주요 기법인 시간 모순적 장치들은 이야기의 입체적 전달을 가능하게 하며, 동시에 사건 전달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소설 속 이야기에 더욱 깊이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여성 서사에서 국가적 서사로

영옥의 입을 통해 전해지는 내화의 공간은 당시 근대의 과정 속 존재하는 ‘식민 조선’의 시대부터 ‘6.25 전쟁 속 고통받던 피난민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제시한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은 아픈 역사는 사실 우리 민족 모두가 함께 겪은 상처이기도 하다. 증조모와 증조부의 첫 만남이 이루어졌던 정선의 고향 삼천에서부터 결혼 생활을 보내며 새비 아주머니네를 만났던 개성, 한국전쟁 당시 피난을 떠났던 대구, 이후 희령으로 내려오기까지 공간은 계속해서 변화하며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한다. 그리고 그 과정 안에서 새로운 만남과 이별이 반복된다. 일제강점기 새비 아저씨는 일본에서 돈을 벌기 위해 개성을 떠나야 했으며, 훗날 전쟁이 발발했을 당시에는 새비가 피난을 가기 위해 개성을 영영 떠나야 했다. 이처럼 개성은 인물들에게 이별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반대로 영옥과 희자의 재회가 이루어지며 동시에 명숙 할머니를 만나게 되었던 대구와 훗날 영옥과 지연이 만나게 되는 희령은 만남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이렇듯 만남과 이별이 반복되었던 우리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담아낸 액자 속 이야기의 공간 설정은 영옥이 들려주는 사건의 실제성과 구체성을 형성한다. 더욱이 이야기 속 인물들의 성격과 행동의 진실성을 높여줌으로써 독자들은 내화의 이야기에 더욱 효과적으로 몰입하게 된다.

사실 정선, 영옥, 미선, 지연이라는 네 여성 등장인물의 이름은 각 세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흔한 이름이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인물들에게 흔한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아픈 역사가 실제로 우리 민족 전체가 흔히 겪었던 고통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즉, 작가는 여성 인물들이 겪은 불합리한 사건들을 앞세워 이를 일제강점기부터 한국전쟁까지 이어지는 우리 민족 전체의 역사적 비극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소설의 등장인물은 우리 민족 전체를 반영하는 파르마코스적 특징을 지닌다. 소설은 표면적으로는 남성들에게 사과받지 못한 여성상을 제시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러한 여성들의 서사는 단순히 한 가정의 이야기를 넘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국가적 서사로까지 확대되는 것이다. 어쩌면 백정이라는 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삼천이부터 냉담한 사회 속 기대를 잃은 지연까지 이르는 인물들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이처럼 여성 인물의 입을 통해 재현되는 최은영의 여성 서사는 성별과 세대를 막론하고 모든 존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지향한다.


과거와 현재의 연결, 화해의 역사

어머니를 버리고 증조부와 함께 개성으로 도망친 삼천이부터 영옥과 소식을 끊고 살았던 미선, 미선을 피해 희령으로 내려온 지연으로 이어진 그들의 이야기는 사실상 단절된 관계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희령에서 영옥과 지연의 재회로부터 그들의 화해의 역사는 다시 시작된다. 죽어있던 과거의 이야기가 영옥의 입을 통해 생생히 되살아나고, 이는 그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려는 지연을 통해 꽃을 피운다. 작가는 고립된 부분과 부분의 연결을 통해 각 세대의 연대를 지향하고, 다시 이어진 관계 속 나타나는 사랑과 치유의 과정을 모색한다.

최은영 작가는 한국 현대 시에서 주로 쓰이는 어둠과 빛의 전통적 알레고리를 이용하여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우리 민족의 어두운 역사적 현실을 표현함과 동시에 그것을 밝게 비추는 희망의 관점을 내비치고 있다. 여기에서 암울한 밤을 밝게 비추는 것은 연대라는 빛이며, 이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과 소통을 통해 실현된다. 결국 작가는 여성 서사의 확장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화해시키고 나아가 우리 민족과 국가적 아픔의 치유 가능성을 제시한다.

“내 어깨에 기댄 여자는 편안한 얼굴로 잠을 자고 있었다. 청명한 오후였다.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감이 좋았다. 나는 내게 어깨를 빌려준 이름 모를 여자들을 떠올렸다. ...(중략)... 조금이라도 편하게 자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마음. 별것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자락 내려오듯이 내게도 다시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299쪽)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나던 지연은 문득 자신에게 어깨를 내어주었던 이름 모를 이들을 떠올리고, 서로를 향한 수많은 위로의 마음이 교차하는 순간을 경험한다. 작가는 어쩌면 아픈 역사를 딛고 성장한 여성 인물들의 서사를 그려냄으로써 우리 민족 전체의 치유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증조모에서 할머니와 엄마를 넘어 나에게까지 전해진 위로가 또다시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어두운 밤 밝은 빛이 내려앉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