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 세상에 떨어진 수채화 한 방울

영화 <이터널 선샤인> (미셸 공드리)

by 완이


1.

코끝에 찬 기운이 스칠 때면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겨울에 가슴 설레곤 한다. 겨울바람은 혼자 오지 않는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과 수업 빠지고 했던 눈싸움,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호호 불어먹던 붕어빵, 좋아하는 친구와 나누어 쓰던 핫팩, 다가오는 연말에 부푼 마음 캐럴로 달래며 공부해야 했던 학창 시절의 2학기 기말고사 기간. 겨울 냄새 나는 수많은 행복한 기억들이 찬바람에 실려 함께 불어온다.

그리고 그 기억들과 함께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미셸 공드리 감독의 <이터널 선샤인>. 마치 이 세상에 둘밖에 없다는 듯, 남녀 한 쌍이 꽁꽁 언 빙판 위에 평화로이 누워 별을 보는 장면의 영화 포스터가 겨울이 오면 눈앞에 선명히 그려진다. 영화의 시간적 배경도 그렇지만, 영화가 주는 뜨겁지만 처연한 느낌은 유독 겨울의 분위기와 많이 닮아있다.



2.

“지금의 침묵은 기회일까 내 기댈까, 또 그냥 나만의 생각일까.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나 나서볼까, 괜히 또 나서는 건 아닐까.”
혁오, <공드리> 中-

이 영화는 여느 사랑 영화들처럼 ‘만남-열애-권태-이별-새로운 시작’의 전형적 플롯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맹목적으로 사랑의 아름답고 찬란한 순간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두 남녀의 열정적이었던 사랑이 점점 권태로 변해가는 과정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위 가사는 가수 혁오가 영화를 보고 영감 받아 미셸 공드리 감독 헌정곡으로 작곡한 노래 <공드리>의 일부이다. 가사는 마치 이별을 앞둔 권태기의 남녀를 떠올리게 한다. 노래를 감상하다 보면 위태로운 사랑에 관계의 끝을 직감한 듯이 안절부절못하는 연인의 모습이 선명히 그려진다. 노래처럼 사랑에 상처를 겪어 봤던 사람들이 유독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그리는 현실적인 사랑 때문이 아닐까.


3.

두 남녀의 사랑과 권태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요소는 단연 색채이다. 서로에 대한 기억을 삭제한 채 시작하는 영화의 초반 부분에서 조엘은 거의 무채색으로 표현된다. 그는 몬탁으로 가는 열차 안에서 밝은 에너지를 풍기는 클레멘타인을 만나고, 둘이 대화를 나누게 되면서 채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조엘에게 계속해서 파란색이 주입된다. 기억을 읽고 자신의 색깔까지 잃어버렸던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통해 점점 자신의 색을 되찾는다. 마치 물을 잔뜩 머금은 수채화가 종이에 떨어져 사방으로 퍼지듯이, 그녀의 통통 튀는 매력은 흑백이었던 그의 세상을 푸르게 물들여 간다.

색채는 영화 곳곳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영화는 일명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하여 과거와 현재의 시점을 번갈아 가며 보여주는데, 만약 영화를 보는 도중 서술 시간의 시점이 헷갈린다면, 여자주인공의 머리 색깔을 보자.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상은 그녀의 감정 상태와 사랑의 진행 과정을 암시한다. 조엘과 클레멘타인이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기 시작할 때는 클레멘타인의 머리 색은 싱그러운 초록색을 띠고 있다. 마치 봄에 돋아나는 새싹과 같은 희망찬 느낌을 주는 초록색의 머리는 그녀의 사랑도 막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사랑이 절정으로 치솟을 때 클레멘타인은 붉은색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는 두 사람 간 관계의 뜨거움과 정열적인 사랑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두 남녀의 사랑 함수 그래프가 꼭짓점을 지나 하락하기 시작할 때, 그러니까 서로의 사랑에 권태감이 시작되는 시기 클레멘타인은 붉은 열정이 빛바랜 듯한 오렌지 빛깔을 띠고 있다. 머리의 색이 옅어지는 것처럼, 그들의 사랑도 그 형태를 잃고 조금씩 식어간다. 결국 두 사람이 이별하고 서로의 기억마저 삭제한 상황에서 클레멘타인은 푸른색 머리를 하고 있다. 차가운 느낌을 주고 우울감을 형성하는 그녀의 푸른 머리는 그들의 관계가 완전히 끝났다고 해석할 수 있지만, 역설적으로 기억을 모두 잊은 채 다시 조엘에게 새롭게 다가갈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


4.

언젠가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나를 울게 한다.’로 시작하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귀여운 강아지를 사랑해서,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인형을 사랑해서, 머리를 쓰다듬던 아버지의 손길을 사랑해서 그 모든 걸 잃을 때마다 울어야 했다고.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걸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존재가 날 울게 한 날보다 웃게 한 날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 아닐까?

그들은 상처에 무너져 빛났던 사랑의 찰나를 지웠다. 만약 인생에서 가장 아팠던 사랑의 기억을 삭제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것인가? 내 대답은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랑은 반드시 행복과 함께 상처와 아픔을 수반한다. 영화에서 표현된 것처럼 사랑의 기억 중에서 모든 것이 행복의 순간은 아닐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찰나의 순간을 위하여 다시 사랑에 빠지곤 한다. 한 번 스쳐 간 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며 막연히 지나치다 보면 행복의 순간은 어느새 우리의 눈앞에서 자취를 감추고, 그 시간의 흐름 앞에서 우린 무력하게 사라짐을 지켜보아야만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진심이었던 만큼 훗날 더 큰 아픔으로 돌아오는 모순된 사랑일지라도, 우리는 사랑을 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의 빛깔을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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