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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을 위한 희생

절대 미학의 도시 교토

by abecekonyv
"꽤 멀군그래. 원래 어디서 오르는거지?" 한 사람이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멈춰 선다. "어디서부턴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어디서 오르든 마찬가지겠지. 산이 저기 보이니 말이야." 얼굴이나 체격이 네모나게 각진 남자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흰 중절모의 갈색 차양 아래로 짙은 눈썹을 움직이며 올려다보는 머리 위로는, 속까지 쪽빛을 드러낸 희미한 봄 하늘이 불면 날아갈 듯 부드럽게 펼쳐져 있고, 마치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듯이 히에이잔(比叡山)이 우뚝 솟아 있다. "지독하게 완고한 산이군 그래." 남자는 네모나게 각진 가슴을 내밀며 잠시 벚나무 지팡이에 몸을 기댄다. "저렇게 보이는 걸 보면 별거 아니겠지." 이번에는 히에이잔 산을 경멸하듯이 말한다. - <우미인초> 나츠메 소세키 송태욱 역譯
옛 도읍 교토를 더욱더 적막하게 하는 보슬비가, 붉은 배를 보이며 하늘을 찌르 듯이 날아가는 제비의 등에 자극을 줄 정도로 세차졌을 때 교토 전체는 조용히 비에 젖어 동쪽에 있는 산들의 녹음 아래로 스며들고, 소리는 유젠의 잇꽃을 적시며 유채꽃으로 흘러드는 물소리뿐이다. "그대는 강 위, 나는 강 아래......"라고 노래하며 미나리를 씻는 문간에서 눈썹을 가린 무거운 수건을 벗으면 대(大)라는 큰 글자가 보인다. 고토바 상황을 섬기던 궁녀 '마쓰부시(松虫)', 스즈무시(鈴虫)'의 무덤도 여러 해의 봄을 지나며 이끼가 낀 채 휘파람새가 울법한 덤불 속에 남아 있다. 귀신이 나오는 라쇼몬(羅生門)에 더 이상 귀신이 나오지 않게 되자 어느 시대엔가 문도 망가졌다. 쓰나가 뽑아버린 팔의 행방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옛날 그대로의 봄비가 내린다. 데라마치(寺町)에서는 절에 내리고, 산조(三條) 거리에서는 다리에 내리고 기온(祇園)에서는 벚꽃에 내리고, 긴가쿠지(金閣寺)에서는 소나무에 내린다. - <우미인초> 나츠메 소세키 송태욱 역譯
교토의 길거리를 거닐며


간사이에 와서 교토를 지나칠 수 있을까. 일본의 옛 도읍을 간사이에 와서 계획하지 않는 건 나에게 용납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문화재도 문화재지만 가장 일본의 색(色)이 담긴 곳이 아닌가. 고풍스런 지붕을 가진 집들이 즐비하고 벚꽃이 피던날의 청수사(淸水寺)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청수사는 예정에 없던 길 잃음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계획에는 없었지만 4월 초 청수사가 야간 개장을 하는 날이었다. 이런 요행을 신이 진노하기라도 한 듯이 내게 길을 잃게 만들었고, 오사카로가는 교토 지하철에서 찌그러져 아쉬움을 느꼈지만 여행의 피로가 그것을 멎게하였다. 아무렴 어떤가. 계획에는 없었지만 요행을 바라다 그렇게 되었으니 내 욕심임을 인정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야간 개장을 무시하고 낮에 갔었다면 길을 잃었을지라도 찾아 갔으리라. 아침일찍 교토에 도착했으니 그럴 여유는 있었을 것이다. 나는 언젠가를 기약하며 도베리노 묘지 뒤 청수사를 바라보며 작별을 고할수밖에 없었다. 언젠가는 오겠지. 이별은 슬픈법이지만 재회의 가능성도 있는 법이다. 청수사를 보지 못한 아쉬움이 밤을 매웠지만, 그럼에도 이 곳의 이국적인 정취만은 잊을 수가 없으리라.


인생은 단조로운 법이다. 대부분의 나날이 평화롭고 모노톤한 일상을 보내야한다. 미국의 시골은 단조로움에 익숙하다고 한다. 사막과 끝없는 평지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평선을 보고있지면 그런 생각이 들만도하다. 그런 대자연의 경관을 보지않더라도 일본의 시골은 그런 평화를 문명에서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교토는 옛 정취를 한껏 머금고 평화로움을 앞으로도 천년 이상 간직할 기세였다. 하늘이 비가 올 듯한 위용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의 일을 예감이라도 하듯이 아침부터 어두워졌다. 교토의 보슬비란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벚꽃 위에 떨어지는 비 몇 알이 나에게 튕겨져 올 때 나는 작게 길이 나있는 주변의 강으로 시선이 쏠렸다. 일본의 고풍스런 가옥들이 즐비한 곳 마다 실개천이 흘렀다. 벚꽃이 어떤 곳은 실개천을 따라 만개하여 그곳으로 나를 유혹하듯이 내 곁의 바람을 빨아들였다. 몸이 흠칫대며 넘어질 뻔 했으나 금세 정신차리고 사진을 찍고 갈길을 갔다. 내게는 오늘 해야할일이 많기 때문이다.


아침 6시 전날 도톤보리의 숙취를 뒤로하고 근육 진통제를 섭취했다. 이렇게나 일찍 일어난 이유는 오늘의 일정이 빡빡해서이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고 호텔을 박차고 나와 마츠야에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사카역으로 향했다. 교토를 가는 길은 간단했다.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교토행을 타고 계속가면 나온다 했다. 나는 신도림역의 승강장처럼 일렬로 펼쳐진 승강장에서 교토행 표지판을 보고 계단을 올라갔다. 아침 7시 반경 일본의 직장인들이 출근을 위해 줄을 서있다. 간사이의 열차 진입 알림은 약간은 요란하기도 하지만 중독성이 있다. 4개월이 지난 아직도 그 멜로디를 기억한다. 열차내의 붉은 바닥과 천장에 노란 형광등이 반사되어 간사이의 아침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맥주 광고가 일본은 열차마다 걸려있다. 한국 지하철에서 맥주 광고를 본적이 있었나 떠올려봤다. 본 적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렇게 자주 본 기억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승객이 엄청 붐비지만 우리나라 지하철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교토에 가기전 역에서 대부분 내렸다.


교토에 가지 않고 잠시 어느역에 정차했다. 이 열차의 종점역인 듯 하다. 내리고 다른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가만히 줄을 서서 오사카와 교토사이 시골 풍경을 바라보았다. 우리나라와 사뭇 다른 듯하면서도 비슷하다. 세계에서 비교하자면 비슷한 역사를 공유했으리라. 이웃 나라에서 우리나라의 시골 풍경을 발견했다. 옛 백제의 풍경이 지금 내 앞에 펼쳐진 느낌도 들었다. 열차가 느릿느릿 걸어들어온다. 다시 교토로 향하는 열차가 출발하자 창가에 보슬비가 투둑 투둑 내렸다. 아, 우산을 챙겼었나.


교토 타워가 보인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나 영화에서 교토가 나오면 이 타워가 항상 보였다. 내가 지금 그것을 목도하니 사뭇 진지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여행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을까. 방금 전 역안에서 끊은 교토패스를 손에 쥐고 역기준 서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마 시치조역 방향일 것이다.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헤이안 신궁을 경유해서 남선사로. 남선사의 위로 히에이잔의옆구리를 따라가는 철학의 길을 따라 올라가 은각사(지쇼지)에 가고. 은각사를 구경하고 금각사로 버스를 타기 위함이었다. 어제 밤 자기 전 청수사의 야간 개장 소식을 알게 되었다. 말하진 않았으나 동생과 함께 이번 여행을 왔었다. 지금까지의 일들은 동생과 함께 했던 일들이다. 동생에게 청수사는 밤에 가자고 말했다. 동생도 그게 좋겠다는 생각에 내 말에 동의하였다. 따라서 청수사는 금각사를 본 후 마지막의 일정이 된다.


헤이안 신궁의 거대함을 바라보았으나 너무 이른 아침이라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그것이 일본 옛 도읍의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걸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모래판을 거닐며 신발을 끌고 근처 자판기가 있는 화장실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뽑아 먹으며 근처 축제를 바라보았다. 축제 준비가 헤이안 신궁 앞에서 한창이었다. 낮을 위한 축제인지 언제를 위한 축제인지 알 방도가 없었으나, 무언가가 분주하게 돌아가는 것은 분명했다. 아침 아홉시를 넘어 열시경. 여행객을 모시는 거대한 버스무리가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처럼 도보여행이 아니라 버스를 택한것이다. 어제밤 과음과 숙취로 고생했던 우리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부러워해보았자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일어서며 남선사로 향했다.

남선사, 금각사 아래 카페, 금각사. 화장실이 급해 방문한 이 카페의 온화함이 마음에 들었다. 주인장 아주머니의 따스하고 친절한 미소가 아직도 생각난다.

남선사를 가기 위해 샛길로 들어서자 실개천이 도로를 따라 움푹 파여있었다. 어찌보면 도랑같이 파여있어 빠지면 위험할 정도였다. 교토의 미학은 이런 위험에 있다고 여행 내내 생각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상상도 못할것이다. 안전에 대한 불감증인지, 아름다움을 해치고싶지 않다는 일본인들의 완고한 미학인지 분간 할 수는 없지만, 난간이 너무 낮았다. 그것이 특별히 우리를 보호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일본인들의 평균키가 조금 작다고 쳐도 이정도 사이즈는 말이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숙고해보면, 난간의 높이가 미관을 해치기 때문이라는걸 바로 알았다. 난간이 조금 더 높았다면 아기자기한 분재와 같은 느낌의 인위적이고도 자연스러운 교토의 풍경은 불가능해 보였다. 설령 개천에 빠질지라도 아름다움은 구제하고 싶다는 일본인의 자긍심인 걸까. 무심히 생각하면서도 무서웠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추구하던 전통 일본미학이라는게 이 정도로 무서운 엄격함에 호소하는지 나는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더럽혀진 순수는 애초에 순수하지 않는거라던 미시마의 문장이 떠올랐다. 절대적인 미라는게 내게 무엇인지 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타협하지 않는 미학이다. 아름다움을 위해 한치의 것도 용인하지 않겠다는 고집이기도하다.


남선사의 거대한 문들을 볼 때마다 프롬소프트의 게임 세키로가 생각났다. 세키로의 성문이 대게 이런식으로 생겼기 때문이다. 그것들의 웅대함은 사진에 담기지 않는다. 동생도 이 말에 공감했다. 직접 눈으로 본 숭고함을 잊을 수 없다. 도다이지 대불전의 숭고함보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일본 건축의 정수가 내 눈앞에 있는 듯 했다. 자연의 거대함 앞에 숭고함을 느낀다는 칸트의 말이 떠오른다. 자연까지 가지 않더라도 문명앞에서 이런것을 느낄 수도 있다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문명이란 거대한것이다. 나는 사찰 문의 거대함에 무릎꿇을 수 밖에 없었다. 녹읍과 벚꽃이 섞인 남선사의 풍경은 벚꽃만이 만발한 풍경보다 더 생경한 느낌을 주었다. 평화로운 교토의 일상 속에 이런 자연의 변화가 섞여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4월초에 우연히 여행하여 볼 수 있다는 행운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남선사 위쪽에 나있는 철학의 길을 걸어간다. 은각사로 향하는 이곳은 위에서도 말했듯 개천과 도보 구역의 난간이 매우 낮다. 떨어지면 죽을 것 같은 깊이의 개천이 파여져 있지만, 일본인들은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이 곳 근처에서 점심으로 국수를 먹었다. 유부 우동에 후추를 뿌린 간단한 것으로 동생과 요기를 하였다. 일본 전통의상을 입은 서양인 커플들이 철학의 길을 지나간다. 이 길을 자주 거닐었다던 일본 철학자는 서양인들이 이곳을 이렇게나 많이 걸을줄 상상이나 했을까. 먼 곳 동양까지 와서 벚꽃이 예쁘다는 듯이 사진을 찍어대는 백인 여자아이를 본다. 체구가 서양인이라 청소년인것 같아보여도 꽤나 컷다. 그보다 더 큰 엄마의 품 곁에서 아양을 떨며 철학의 길 곳곳마다 펼쳐져 있는 벚꽃을 바라본다. 일본의상을 입은 남편이 길을 이끌어간다. 내가 국수먹으면서 본 풍경이란 대게 이런것이었다. 철학의 길은 꽤나 길다. 걸으면서 교토의 풍경을 보았다. 저 멀리 끝까지 산이 보이면서도 넓게 펼쳐져 있었다. 이렇게나 넓은 곳을 나는 모르고 있었다는게 나를 위축하게 했다. 조선통신사들이 이 곳을 거닐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분명 일본 시골에 불과한 이곳조차 조선 땅보다 넓은 것 같다는 직관을 가졌으리라. 전쟁이후 반토막난 남한의 청년이 이곳을 바라보니 선조의 감각보다 더하지 않겠는가.


지쇼지를 보고 금각사를 가기위해 걸어간다. 저 멀리 교토패스를 쓸 수 있는 버스정류장이 있다. 그곳까지 걸어가면서 교토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극히 고요하고 적막하다. 차가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소음과 바람소리만이 내 귀에 허락되었다. 도쿄도 조용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강원도 시골에 온 것 같은 무소음이 내귀를 자극했다. 아침부터 걷다보니 다리의 통증이 올라왔다. 정류장이 보이자 한숨돌리며 동생이랑 같이 쉬었다. '일본은 정류장 대기판도 아날로그구나' 생각했다. 전자가 아닌 기계식으로 어느 역인지 자동 표지판으로 표시하는 정류장 대기판을 보면서 지독한 미학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완전히 분리해 낼 수는 없었다. 마인크래프트라는 게임이 있다. 그곳에서 나는 멀티플레이 서버를 초등학생 시절 운영한적이 있었다. 그 시절 나의 엄격함은 어린나이의 완벽주의였다.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하는지 어떻게 생활해야하는지 모든 생활 규범을 정해놓고 서버원들에게 따르게 했다. 그 시절의 나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아직도 나의 한 켠에는 그런 완벽주의가 튀어나오려한다. 현실은 그런것과 어느정도 타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있다. 그러나 교토를 보니 나를 위로하면서도 반성하게 한다. 이런 절대 미학을 고수하는 곳도 있다는 것을 내게 환기 시킨다. 그러나 현생을 살아가는 나에게 반성의 기분이 더 넘실대고 있었다.


금각을 따라 올라가는 언덕길에 동생이 화장실이 급하다며 카페를 찾자고 말한다. 나 역시 조금은 쉬고 싶고 동반자가 힘들면 여행도 못하기에 카페를 찾기 시작한다. 구글 맵스로 금각사를 가다보면 개인 카페가 하나 있는 듯 했다. 거기서 일본어로 '주문을 할테니 화장실을 먼저 써도 될까요'라고 주인장 아주머니께 양해를 구했다. 동생을 화장실로 보내고 나는 앉아서 주문을 했다. 딸기 케이크는 품절이라는 아주머니의 말에 새삼 아쉬움을 느꼈다. 당근 케익은 별로고, 다른 하나는 뭔지 모르는 케익이다. 앞으로 일정이 남아서 배가 탈이나면 안되기에 속이 편한 것을 찾았다. 그냥 커피 두잔만 시켰다. 여행객 입장에서 배려를 해주신 아주머니께 돈을좀 쓰고 싶었으나, 어쩔수 없었다. 동생은 배가 아픈지 내게 커피를 조금 마시곤 주었다. 나는 동생 커피까지 게걸스레 비워냈다.


금각을 바라보자 일본의 미학이란 무엇인지 확신했다. 이들은 절대미학을 추구한다.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미학을 추구한다. 내가 위에서 말한것은 4개월간의 숙성이 있기 때문이지 당시에는 확고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각을 내 눈으로 목도하자 결점없는 미학이란 무엇인지 내게 강의를 하는 듯 했다. 미조구치는 이걸 바라보며 얼마나 심한 경외를 느꼈을까. 소설 속 인물이지만, 그의 동경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금각을 에워싼 소나무 숲은 매미 소리로 가득했다. 셀 수 없이 많은 보이지 않은 중들이 소재주(消災呪. 재앙을 없애는 주문)를 외고 있는 것처럼. "갸갸. 갸기. 갸키. 운눈. 시후라 시후라. 하라시후라 하라시후라." 나는 이 아름다운 것이 머지않아 재가 되리라고 생각했다. 그에 따라 심상의 금각과 현실의 금각은 생견(生絹)을 대고 덧그린 그림을 원래의 그림 위에 겹쳐놓듯이, 지붕은 지붕에, 연못으로 돌출한 수청은 수청에, 조음동의 난간은 난간에, 구경정의 화두창은 화두창에 서서히 그 세부가 서로 겹쳐져갔다. 금각은 이미 부동의 건축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위 현상계의 덧없는 상징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현실의 금각은 심상의 금각과 다를 바 없이 아름답게 보였다. - <금각사> 미시마 유키오 허호 역譯


길마다 나있는 관목 소나무들을 따라 올라가면 금각의 다양한 측면을 볼 수 있다. 교토의 장관을 뒤로 품은 금각의 모습, 히에이잔이 감싸는 금각을 바라보며 일본의 미학을 다시 느꼈다. 음식도 바라보는 맛으로 먹는 일본인들이 이런 구조를 괜시리 만들어 낸것은 아닐 것이다. 금각에서 나는 차를 샀다. 다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무언가 사야하는 충동을 느꼈다. 차 마시는 즐거움이라는게 무엇인지 알고싶다는 약간의 동경이었을까.


금각을 내려와 역근처 맥도날드에서 청수사를 계획했다. 사철을 타고 다시 시치조 근처로 가야한다. 아울렛같은 곳 밑으로 내려가자 역이 나왔다. 우리는 그것을 타고 청수사로 가기위해 근처 역에서 내렸다.


해는 점점 지고있었다. 교토의 직장인 무리가 내 옆을 지나간다. 이 곳은 약간 도시 풍이 났다. 이곳은 교토 직장인들이 모이는 곳일까. 이곳저곳 식당이 존재했고 차량이 다소 많았다. 나는 버스를 타면 된다는 동생의 말을 듣고 기다렸다. 하지만 우리의 비극은 여기서 시작됐다. 내가 잘못알아서 버스를 잘못타서 청수사 뒤쪽의 산 중턱에 내려버린 것이다. 해는 점점 기울고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산 중턱이라 두려움이 밀려왔다. 여기서 길을 따라가면 청수사야 분명 나올테지만 밑으로 내려오는 차량들만 지나갈 뿐 도보가 중간에 끊겨있었다. 큰일났구나. 속으로 생각했다. 동생도 두려움을 느꼈는지 하산하자는 말을 했다. 내려가니 도베리노 묘지가 철장 뒤로 쫙 펼쳐졌다. 저 멀리 산 능선이 해를 품고 붉은 기운을 발산해 내고 있을 때 우리는 무덤가 뒤로 청수사를 보내주어야했다. 무덤을 지나칠 때마다 소름이 돋았다. 일본에서 실종된다는 외국인들이 이런 식이었을까 둘이서 호들갑도 떨어봤다. 사실 두려움이야 있었지만, 고속도로를 따라가면 길이 나왔기에 나는 그렇게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안심 할 수는 없었는게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옆에는 고속도로라서 차량만이 지나다니고 도움을 구할 일본인조차도 이곳에는 없었다. 산을 내려와서 고가와 큰길이 보이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저기서 서양인 무리가 거니는걸 바라봤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 이 근처에 호텔이 있나보구나 생각했다. 나는 시치조로 가기위해서 사철을 탔다.


시치조에 내려서 검은 택시를 잡았다. "교토 역까지 부탁드려도 될까요?" 기사님은 빠르게 나갔다. 일본 택시는 무섭게 금액이 불어났다. 나는 택시 미터기를 계속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저녁 7시경 교토의 풍경을 바라보며 오늘의 피로감을 상상으로 대체했다. 이 곳을 벌써 떠난다니 아쉬움도 들었고, 오사카 호텔에 가서 쉬고 싶었다.


교토 역에서 운좋게 쾌속열차를 탔다. 노란 형광등이 나의 노곤함을 위로하는 듯 했다. 그 순간 만큼은 집으로 가는 기분이었다. 아직 여행일정이 많이 남아있었지만 미래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호텔에서 맥주나 탄산음료를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JR오사카역에 내리고 백화점과 사철이 엮여서 혼잡스러운 곳에서 몇 번 헤매였다. 인산인해 속에 땀 범벅이라 짜증이 났지만 오사카역이 내 집같았다. 지상으로 내려가려하니 나를 놀리는 듯 지하로 내려갔다.


오사카역을 등 뒤로 나는 앞으로 가야했다. 동생과 터벅터벅 걸었다. 역 앞에 버스킹을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서 사진을 찍고 노래를 듣고 있었다. 무언가 따듯함이 몰려왔다. 교토의 평화로움에 대비되는 오사카의 화려함을 보면서 적막이란 무서운 것이구나 생각했다. 간사이에서 그렇게 시골도 아닐텐데. 그 곳의 절대 미학은 인간을 압도하는 힘이 있다. 천년 고도란 쉽지 않는 곳이구나 생각하며 우리는 터벅 터벅 길을 나섰다. 저 위로 어둡게 깔린 밤하늘을 비추는 가로등을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강을 지나는 가교위에서 등을 뒤돌아보니 나는 화려한 도시 속에 있었다. 엄격하기 그지 없던 교토는 어디로 간것일까. 이미 그곳은 내 주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자기 위해 호텔로 가야한다. 차들이 즐비한 도심에서 나는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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