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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의 풍경

후두둑 떨어지는 비의 콘체르토

by abecekonyv
67. 나는 이러한 유사성을 "가족 유사성"이란 말에 의해서 말고는 더 잘 특징지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몸집, 용모, 눈 색깔, 걸음걸이, 기질 등등 한 가족의 구성원 사이에 존재하는 다양한 유사성들은 그렇게 겹치고 교차하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 <철학적탐구> 이영철 역
"서기 시대 사람들은 대부분 남자를 알아보지 못해요. 그래도 선생님은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선생님을 쳐다보는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죠. 남자들은 고전적인 미인에 끌리니까요. ...(중략)...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저는 여자예요! 흥, 그 시대 남자들이 뭐가 좋아요? 억세고 무식하고 지저분하기나 했지. 진화가 덜 된 종족처럼. 선생님도 이 아름다운 시대에 곧 익숙해질 거에요. -<삼체3권 사신의 영생> 류츠신
"스따브로긴, 자네는 미남이야!" 뾰뜨르 스쪠빠노비치는 환희에 넘쳐 소리쳤다. "자네가 미남이라는 것을 알고 있나? 자네에게서 무엇보다 훌륭한 것은 자네가 가끔은 이사실을 모른다는 것이네! 오, 자네를 연구했네! 나는 자주 옆에서, 혹은 구석에서 자네를 지켜보고 있었다네! ...(중략)...과연 허무주의자는 아름다움을 사랑하지 않을까? 그들은 단지 우상을 사랑하지 않을 뿐이지만, 나는 우상을 사랑하네! -<악령> 중권 도스토옙스키 박혜경 역
이상의 사례에서 우리는 인간이 동종주술적으로 식물의 생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념을 확인 할 수 있다. 즉, 인간은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자기아 비슷하거나 혹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그런 속성이나 현상을 수목이나 식물에 전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황금가지>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 박규태 역
마르크스의 유령들, 왜 복수인가? 하나 이상의 유령이 있는 것인가? 하나 이상/하나 아님plus d'un. 이것은 대중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군중이나 무리 또는 모임을 의미 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사람들peuple이 있거나 없는 유령 주민, 우두머리가 있거나 없는 공동체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순수하고 단순한 분산을 가리키는 하나 이하le moins d'un를 의미할 수도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자크 데리다 진태원 역
"설마 진짜로 비를 두려워 하는 건 아니겠지?" "당신과 함꼐 있을 때는 두렵지 않아요." "왜 비를 두려워 거지?" "모르겠어요" "말해 봐" "강요하지 마요." "말해 보라니까." "싫어요" "말해 보래도" "좋아요. 내가 비를 두려워하는 건, 가끔씩 빗속에서 내가 죽어 있는 모습을 보기 때문이에요." -<무기여 잘 있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김욱동 역
올림포스 산에서 신들이 여전히 세상을 통치하고 살롱전에서 영웅들이 칼을 들고 싸우는 동안, 고상한 주제와 거대한 캔버스에서 등을 돌린 인상주의 화가들은 일상의 사건, 한가한 때, 자유로운 시간 같은 평범한 주제로 시선을 돌렸다. 이들은 사소한 순간에 애착이 있었고 그것의 아름다움과 감정을 표현하려고 애썼다. 멀리 이어진 길, 놀고 있는 아이, 한줄기 햇살, 바느질 하는 여자, 시골을 달리는 기차, 돌풍 등 이 모든 '특별하지 않은 사건들'은 주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 <Impressionism> 베로니크 부뤼에 오베르토 하지은 역
앞 장에서 간략하게 논의했던 생존 투쟁은 변이에 대해 어떻게 작용 할 것인가? 인간의 수중에서는 너무나도 강력하게 작용했던 선택의 원리가 자연계에서도 과연 적용될까? 나는 이원리가 매우 효율적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우리가 곧 알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종의 기원> 찰스 다윈 장대익 역
그런데 어떤 것들은 추론인데 반하여, 다른 것들은 실제로 추론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것은 다른 경우들에서도 어떤 유사성으로 말미암아 이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논의들에서도 그 사정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소피스트적 논박에 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김재홍 역
그런데 전 우주 혹은 더 광범위하게 말해서 모든 존재가 그저 유클리드 기하학에 따라 창조되었다는 걸 의심하면서 감히, 유클리드에 따르면 어떤 일이 있어도 이 땅에서는 만날 수 없는 두개의 평행선이 무한대 어딘가에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몽상에 젖은 기하학자들과 철학자들이 있었고 심지어 지금도 있단 말이야, 그것도 가장 탁월한 자들 중에서도 말이야. 얘야, 그래서 나는 심지어 이것조차도 이해할 수 없다면 도대체 어떻게 신에 대해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결론을 내려버렸지. 나에게는 이런 문제르 풀 능력이 전혀 없음을, 나의 머리는 유클리드적인 것이요 지상의 것임을, 그렇게 때문에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재간이 전혀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거야.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권> 도스토옙스키 김연경 역

우리에게는 평면의 기하학만이 용인되는지도 모르겠다. 아인슈타인이 중력에 대한 이해를 위해 시공간의 곡률을 설명할 때 비유클리드 기하학과 리만의 이론을 가져다 썼지만, 인류의 뇌로는 이젠 곡선을 이해하기는 힘들어졌다. 이산적이고 평면적인 존재만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유령은 휘지 않는다. 적어도 우리의 관념에 의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일상에 우리는 중력을 느끼지 못한다. 타인의 중력조차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은 갭이 없어졌고, 결국은 비슷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위상수학적인 물방울인지도 모른다. 그 위에는 구체성이 없을 수도 있다. 즉 연산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연결성만이 중시될 뿐, 우리에게는 구체적인 내적과 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개념적으로만 이어지게 된다. 동종의 불편함은 타인과 나의 구별이 없어질 때 생긴다.


현시대는 축축하고 비에 젖어있다.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라 우리를 그린 회화는 분명 비오는 날의 카페같은 모호함이다. 피어오르는 연기, 걸을 때 터져 나오는 흙의 비릿함, 우산에 떨어지는 물방울들, 빛의 번짐과 분산, 시야의 흐림 등등.


어렸을 때 부터 동물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개에 대해 이야기하자. 왜 개는 전부 똑같이 생겼을까? 이런 의문을 누구든 한번쯤은 가져보지 않았나? 사실 개는 다르다. 우리는 개를 개념적으로 인식하여 두루두루 처리한다. 뇌에서 아마 분명히 개를 두루뭉실하게 처리하는게 분명하다. 주름의 개수, 개의 용모, 귀의 생김새 등 개 또한 같은 종일 지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용모가 다르다. 우리는 개를 두루뭉실한 개념으로 파악했기에 우리의 인식이 거기에서 멈춘것이다.


우리는 다른 종들에 비교적 관심이 없다는걸 알 수 있다. 우리는 잘생긴 원숭이는 기억하지 못할 뿐더러 애초에 인식을 거기까지 도달하고 싶지 않아한다. 서유기의 잘생긴 미남자 원숭이 오공은 말그대로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이야기이다.


아가씨들을 자세히 보니 아주 짧은 티셔츠 차림에 바지는 모두 아슬아슬하게 골반에 걸쳐져 배꼽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그는 거기에 완전히 홀려 버렸다. 홀려 버린 데다 혼란스럽기까지 해서, 아가씨들이 남자를 유혹하는 힘이 이제 허벅지도 엉덩이도 가슴이 아닌, 몸 한가운데의 둥글고 작은 구멍에 총집중돼 있단 말인가 싶었다. -<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데라 방미경 역


미니멀리즘의 시대. 젊은 여자들은 더 이상 하이힐을 신지 않는다. 스니커즈의 시대, 운동복의 시대이다, 기능이 더 중요해졌고, 장식성과 화려함은 배제되는 시대이다. 우리는 바로크적인 풍만함과 정식성을 띤 곡선, 고전주의적인 절대적 형식미, 낭만주의적인 열정의 아름다움을 모두 소실한건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그런것을 배제하는 건지도 모른다. 20세기의 세계대전의 참혹성을 이야기하면서 우리는 아직도 타인에 대해 동종적인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대인이라는 이름으로 처형했던 그 시대의 아픔을 우리는 아직도 느끼지 못하는게 아닐까? 일본인에게 우리는 조선인일 뿐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우리는 구체적인 이름이 아니라 조선인이다.


드비시의 음악이 가장 어울리는 시대. 비의 시대이다. 흐릿함의 시대. 모호함의 시대. 따라서 모든 모순을 야기하는 시대이기도 하다. 비오는 정원의 풍경이 자아내는 음울함을 우리는 일상에서 느낀다. 현대적인 우울은 개인의 살상에서 나온다. 관리의 대상이자 동시에 스스로가 타인을 감시하는 감옥수이다. 모두가 비슷하기에 우리는 비교를 많이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이 시대는 능력의 시대가 아니다.


우리는 묶어서 판단한다. 개인의 인지능력의 형태이기도 하지만, 그것의 극단이 이 현대이다. 우리는 모든걸 묶어서 생각하고 개별의 세심함에 주의를 기울이기 힘들어한다. 우리는 모호하게 판단한다. 김훈의 산문 어딘가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나이가 들면 모호해진다. 개념적으로 모호하게 판단한다. 노인의 흐리멍텅함을 바라며 젊은시절의 분별이 사라져감을 이야기한적이 있다. 어디서 봤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노인의 시선을 교육을 통해 비교적 빠르게 체득한것이다.


우리는 곡선을 혐오한다. 직선과 점의 시대. 과거의 장식성은 과한 비대칭이다. 기둥의 곡선. 가우디의 건축은 이미 예전에 끝나버렸다.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의 직선은 우리를 격동시키지 않는다. 편안함과 안정만이 이시대의 덕목이다. 바로크는 요란하다. 트릴과 꾸밈음의 시대는 촌스러운 옛날이 되었다. 귀걸이와 목걸이는 아름답지 않다. 대칭과 비율의 시대. 구체성은 망각된 유율의 시대. 개념적인 아름다움이 중요해졌다. 칸딘스키의 추상화가 가지는 개념적인 선들. 그것들이 우리의 선이다. 인간의 외형에서 비율이 중요해졌다. 이목구비의 흐림과 대칭적인 비율이 중요해졌다. 우리는 모호하게 바라본다. 모호한 선의 비율을 바라본다. 아름다움은 구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우리는 선의 아름다움만을 본다. 더나아가 우리는 이산적인 점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게 될지도.


구별짓지 말지어다. 우리는 미시적인 사회주의를 경험한다. 천재들의 모든 산을 깎아버리자는 악령의 베르호벤스키의 선언처럼. 우리는 능력의 하향평준화를 원하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이다. 인간 보다 고차원적인 존재가 우리를 바라볼 때, 신이 우리를 바라볼 때, 우리가 원숭이를 보는 것 처럼 거기서 거기일 지도 모른다. 우리는 원숭이를 주의깊게 보려하지 않는다. 동물원의 모든 동물들은 우리의 뇌속에 개념적으로만 저장된다. 아뢰야식의 세상에서 구체성은 망각된다. 우리의 뇌속 모든 의식은 개념적으로 작용한다. 우리는 뇌의 용량의 한계인지 처리방식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우리의 최고효율은 개념의 처리방식에서 나온다. 구체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뇌가 터져버릴 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 암송은 비효율적이다. 책의 모든 내용을 기억하는게 이 시대에 얼마나 무의미 한 것인지 우리는 직감적으로 느낀다.


우리는 개념의 바다에서 사라간다. 디랙의 바다에서 양공을 보듯이. 우리는 흐릿하면서도 그 속에서 모순을 느낀다. 비슷한것은 모호하다. 중립은 모호하다. 우리는 흐름으로서만 존재하지, 개별자로서 존재하지 않는다. 바다가 넘실대는 것은 물 분자 하나하나의 움직임이지만, 우리는 파도가 그려내는 선과 색감만을 본다. 우리는 캐비어의 한알 한알을 의식하며 먹진 않는다. 캐비어가 주는 개념적인 맛만을 느낄 뿐이다.


우리의 사회는 사랑을 깎아내린다. 자본주의는 사랑의 사지를 도려낸다. 우리에게는 정해진 양식의 연애만이 허용된다. 사랑 자체가 포괄적인 의미이지만, 우리 시대의 사랑은 기관 없는 신체이다.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해진 데이트 코스, 드라마적인 만남, 연극을 통해서 이뤄진다. 사랑은 구체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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