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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Jan 11. 2024

중학생 아들을 통해 다시 '몰입'하다

"와~~~~~~~땡땡팀 파이팅~~~!!"

등 뒤로 내려쬐는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위해 들고 있는 우산들 속에서 기쁨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 함성의 높이만큼 반대 진영에서는 깊은 한숨이 일몰과 함께 축구장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경기를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따갑게 내려쬐던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면서 부모들의 마음을 대변이라도 하듯이 골문을 허락한 팀에만 그늘이 지고 있었다.  


경기 종료를 5분 앞두고 무승부를 만들어낸 그 골은 내게 낙담을 넘어서 눈앞이 캄캄해지도록 만들었다.

반드시 승부를 내야만 하는 경기였고, 지는 팀은 그대로 짐을 싸서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추가 시간 몇 분을 얻더라도 드라마틱한 골을 기대할 수 있는 확률이 높지 않다는 것은 이전의 경험들을 통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차라리 축구장으로 난입해 경기를 엎어버리고 싶게 만들었다.

나는... 골키퍼 엄마였기 때문이다...


골키퍼 엄마의 눈엔 키커의 실력이나 실수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내 아들이 '골을 못 막아내면 어떡하나'라는 염려와 간절함만이 마음을 가득 매울 뿐이다.

아들이 느낄 중압감과 부담감이 무겁게 다가오지만 그 짐을 함께 매어줄 수도, 대신 들어줄 수도 없는 상황에서 '엄마'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먼발치에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것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을 놓지 못한 상태로 지켜본 경기는 역시나 추가골 없이 무승부로 끝이 났고, 선수들은 승부차기를 위한 태세에 들어갔다.


아들이 4-5살 즈음, 같이 놀던 형에게 맞은 후 내 품에 달려와 울던 날이 있었다.

아들을 꼭 안고 토닥이면서 '그래도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었다.

아픈 날, 힘든 날,  무작정 달려와서 울 수 있는 곳이 있고, 나는 그런 아이의 등을 쓰다듬어 줄 수 있음에 감사했다.  하지만, 아이는 점점 엄마 품을 벗어날 것이었다.  

삶이 아무리 버거워도 말하지 못하는 사정이 생길 것이고, 엄마는 아이에게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날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이는 오로지 혼자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될 터였다.


승부차기를 위해 골대 앞에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4-5살이었던 그 꼬마가 생각났었던 건,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 중 하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는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혼자 감당해야만 한다.

이런 아들을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하나님 이 순간 아들과 함께 해주세요."


키커와 골키퍼가 약 10미터의 거리를 두고 마주 선다.

긴장감이 흐르고 모두 숨죽여 보는 가운데 공이 솟아오르는가 싶더니 키퍼의 손에 잡힌다.

'휴... 다행이다.  아들이 일단 첫 골을 막아냈다.'


이제, 상대팀 골키퍼가 골대 앞에 선다.

'제발... 제발... 놓쳐라... 제발'

"퍽"

날아간 공이 이번에도 골문을 통과하지 못한다.


다시, 아들이 골문을 지켜야 하는 상황.

이제 기도의 내용이 좀 더 노골적이 된다.

"하나님, 제발... 이번 경기만 이기게 해 주시면, 앞으로 진짜 착하게 살게요.

골을 못 막아내면 짐 싸야 되는 상황인 거 하나님도 아시잖아요.  그럼 우리 아들 마음이 어떻겠어요?!!

이제 진짜 착하게 살 테니깐 제발요~!!"


숨 막히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지고, 울상이 되어버린 나는 딸에게 제발 기도 좀 하라고 종용한다.

그런 나를 보는 딸의 눈빛은 신기한 무언가를 발견한 듯 어이없고 황당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의 간절함은 계속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몇 분이나 흘렀을까.

이제 어지럽기까지 하다.


손에 얼굴을 묻고 골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깨를 짓누르는 저 압박감을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정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까?

깊은 무기력감이 나를 에워싼다.

승부차기에도 쉽게 결판나지 않는 경기를 보며, 부모들의 응원 소리도 점점 잦아든다.

절실함이라는 게 사람을 얼마나 소진시키는 것인지 몸소 느끼는 중이다. 

어쩌면 경기를 뛰는 선수보다 지켜보는 마음이 더 힘에 부치는지도 모르겠다.


부담감 때문일까?

양 팀 모두 골을 막아내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승부가 가려지지 않는다.

다시 아들이 골문의 수비수가 되었다.

"슈슈슉~쉬이익!!"

헐~!!

아들이 골을 막아냈다.

하지만, 안도하기에는 이르다.  상대가 '반드시' 못 막아야만 한다.

이제는 신이 아닌, 상대팀 골키퍼에게 간절한 마음을 전한다.

'상대팀 골키퍼야~ 미안하지만, 이번에는 골을 잡지 말아 줘~!!!

이제, 경기 끝내면 안 될까?  이렇게 그냥 경기를 끝내줘~ 그리고 다른 게임에서 이기렴~'


"툭"

키커의 발끝에 차인 공이...

골문을 통과했다.

상대팀 골키퍼가 못 막아낸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이겼다!!!

짐 싸지 않고 다음 경기를 준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 아들이 발 뻗고 잠자리에 들 수 있게 된 것이란 말이다!!!


아!  이 순간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간절함이 가득했던 몸과 마음이 풀어지면서 나는 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주변 엄마들의 염려하는 소리에 졸였던 마음을 활짝 펴듯이 나는 웃으면서 화답한다.

"진짜, 미치는지 알았어요"

승부차기만큼은 골키퍼가 두드러졌던 것인지 선수 모두가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엄마들이 나에게 위로와 축하의 말을 전한다.

"너무 애썼어요.  우리 골키퍼 너무 멋있어요"


이 날의 경기를 잊을 수가 없다.

승부차기가 몇 분간 진행되었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그 순간 나는 온전히 그곳에 있었다.

이런 걸 두고 '몰입'이라고 하는 것인가?


'몰입'이라는 것에 대한 갈급함이 있었다.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한참 찾아 헤매던 시절, '현재'를 사는 것이 그것에 대한 답이라고 결론을 내렸음에도 나는 그 찰나를 살아내지 못했었다.  그럴 수 있을 만큼 내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없었고, 어떤 것에 집중해 있기에는 세상의 고민과 처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내가 하고 있는 일과 상관없이, 내가 있는 장소와 무관하게 마음이나 생각은 늘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이 날은 달랐다.

내 몸이 있었던 경기장에 내 생각과 마음이 함께 있었고, 그 외에는 어떠한 것도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머물렀던 이 경험이 놀라웠고, 아직도 내가 무엇인가에 몰두할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진하고 강렬했던 감동여기에서 멈추않았다. 

내 삶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고, '글쓰기'라는 것을 발견하는 데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결국은, 아들을 통해서가 아닌 나 스스로 몰입할 수 있는 그 무엇을 찾는 것에 시발점이 되어준 것이다. 

독자의 신분에서 저자의 신분으로 변화를 꾀하며 찾아간 서점에서는 충만히 차오르는 행복감을 느꼈고, '신난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나는 책을 보고 글을 쓰는 그 시간과 장소에 온전히 머물렀다.


몰입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준 녀석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 마음을 전할 수가 없다.

'고마워', '사랑해'와 같은 말들을 중학생 아들이 끔찍이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 뜻을 존중해 지금은 이 말을 기록으로만 남겨두려고 한다.


"너에게 이 감격을 전하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는 응원으로 대신할게.  

고마워~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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