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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엘리온 Jan 23. 2024

찰랑거리는 인생

K: 아이고~~ 술 못 끊습니다.  못 끊어요~~

여기서는 술 끊는다고 말해도 막상 나가면 못 끊어요. 허전하고 외로운데 어떡해요.  집에 혼자 있으면 술 생각이 난다니까요~     


껴안고 있기도 힘들겠다 싶을 만큼 잔뜩 나온 배가 테이블 가까이 오는 것을 저지한 탓인지 K는 의자에 몸을 기댄다.  그리고는 ‘술은 절대 못 끊는다’는 말을 매우 단호하게도 한다.     


K: 며칠 전에 누나가 스님 한 분을 데리고 접견을 왔는데, 내가 나가면 농사지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나: 살 길이 막막한 상태에서 그런 제안이 어째서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고맙기만 한데...

K: 에이~ 나는 기독교 신잔데 스님의 도움을 받을 수가 있나요?  그건 내 신앙적 양심에 걸려서 안되지요~  그냥 교회 목사님한테 찾아가 볼까 싶기도 하고요~     


순간, 속에서 차오르는 욕은 이미 목구멍을 지난 상태였지만 애써 입을 꾹 다문다.  이미 그와 나 사이에 ‘상담자’니 ‘내담자’니.. 하는 그런 치료적 관계는 끝난 것 같지만, 최소한의 도의적 관계는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술과 범죄의 인과관계가 단순하게 직설적이진 않더라도, 폭행 범법자의 52%가 범행 24시간 전에 음주를 했다는 통계가 있을 만큼 술은 범죄 가까이에 있다.  실제로, 수용자들의 사건개요에서 ‘음주 상태’였다는 문구를 발견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런 탓에, 나는 음주 상태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의 출소일이 다가오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다시는 근처에도 가지 않겠노라!’라는 다짐을 수십 번 해도 쉽지 않은 것이 그놈의 술이라는 것인데, 주취 상태에서 사고 치고 구속된 것만 8번째인 K가 또 술을 먹겠다고 했을 때는 분노 비슷한 감정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분개하여 몹시 성을 내는 상태’와는 결이 조금 달랐는데, 그동안 만나면서 미운 정이라도 쌓였던 탓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함께 했다.

한 마디로, 애가 탔다.  앞으로도 평생 이렇게 살 K도 그렇지만, 누가 될지 모를 또 다른 피해자는 어쩌란 말인가!     

K는 나보다 10살 이상 많지만, 이 자리에서 그런 숫자는 무의미하다.  그는 나에게 혼이 난다.

“계속 이렇게 살 거예요?”

“이대로 나가면 여기 또 들어올 확률이 얼마나 높은지 알아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아보고 싶지 않아요?”

“먹고살 걱정 없는 교도소가 좋아서 일부러 죄를 짓는 거예요?”

호통을 쳐보지만 먹힐 것 같지 않자, 급기야 협박까지 하고 나선다.

“여기서 한 번만 더 나를 만나면 가만두지 않을 테니깐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보세요!”

타인의 재물을 손괴하거나 사람을 해치고 들어온 그 건장한 남자를 내가 가만두지 않은들 어쩌겠냐마는... 오히려, 한 대 안 맞으면 다행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나의 협박에 주눅이 든 것처럼 보이는 K다.      


물론, 나도 처음부터 이런 상담(?) 기법으로 접근하지는 않았다.

알코올중독은 타인의 회유와 협박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소한 스스로 끊고 싶은 마음이 생겨야 한다.

우선, 그들이 원하는 삶, 가치 있게 여기는 삶을 탐색한다.  그리고 지금의 생활 패턴으로는 그러한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깨닫도록 해서 이상과 현실 사이의 불일치감을 만들고, 내적 갈등이 유발되도록 이끈다.  한 마디로, 술 먹는 것이 마냥 좋았던 상태에서 불편해지는 상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K와 같이 삶에 대한 애착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부양해야 할 가족도 없고, 집에서 따뜻하게 반겨주는 사람도 없다.  되고 싶은 것도 없고,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는다.  심지어, 간수치가 천 단위로 높아지고, 복수로 인해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기 위해 마시는 술이 교도소로 이끈다고 할지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삶을 깊이 있게, 혹은 멀리 보지 않으니깐.  인생에 대하여 자포자기의 태도를 지니게 된 나름의 사연들은 있겠으나, 어쨌건 지금은 술과 맞바꿀 수 있는 그 무엇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도, 먹고살려면 술을 끊고 일을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는 K의 대답이 여기 있다. 

“우리나라 복지가 잘 되어 있어서, 굳이 일하지 않아도 돼요!”

‘기초적인 생활’을 위해서 국가가 지급하는 수급비가 오히려 K를 죽이고 있는 실정이지만, 여기에는 많은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복지혜택을 중단해야 한다고 단순하게 주장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요!  그런데, K님의 인생은 그렇다 치고, 피해자는 어떡할 건데요?  지금까지 K님이 저지른 사고 중에 술과 상관없는 게 있었어요?!  K님은 이대로 살다가 죽어도 본인 선택이지만, 피해자는 도대체 뭘 잘못해서 그렇게 당해야 하는 건데요?!”라는 나의 꾸지람은 그의 답변에 의해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에이~ 나한테 당하는 사람들도 다 이유가 있어요!  괜히 시비를 걸기도 하고, 내 요구를 바로 안 들어주기도 하고... 그 사람만 가만히 있었어도 내가 여기 또 들어오지는 않았을 건데... 에잇! “

합리화와 부정, 투사의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하는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이 아닌 외부의 많은 요인들이 그들의 삶을 망가뜨렸다고 생각하면서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지 않는다.       

결국, K에게 마지막 카드를 내민다.  

“출소하면, 어차피 갈 곳도 없고, 일을 할 수 있는 건강 상태도 안 되고, 일을 할 생각도 없으니까 정신 병원에 입원해서 알코올 치료받으세요!”

그러고는, K의 귀휴지에서 찾아갈 수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나 중독관리통합지원센터와 같은 곳을 소개한다.     

물론, 그는 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함에도 여기까지 안내하는 것이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내 몫이다.  이후에는, 교도소 밖의 정신건강사업에 바통을 넘긴다.  다음 주자인 지역사회정신건강 사업도 열악하다는 것을 알기에 무거운 마음을 안은 상태로.


정신건강복지센터 직원의 70% 가까운 숫자가 계약·기간제이다.  그마저도 호봉이 많은 경력자들 보다는 20대의 사회 초년생들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여담이지만, 필자가 20대 후반일 때 ‘월급을 그만큼 줄 수 없다’며 거절당한 적이 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여기서 ‘그만큼’의 월급이란 200만 원 전후였을 것이다.  업무량은 어떠할까?  기존 업무에 더해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주먹구구식으로 일더미가 던져지는 탓에 ‘정신건강 다이소’라는 별명을 얻었다.  정신건강과 관련해서 하지 않는 일이 없다는 뜻이다.  23년 10월 발행된 의학신문에 따르면, 100명 이상의 사례관리자를 1명의 요원이 감당하는 지역도 있다고 하는데, 이는 그만큼 놓치는 대상자가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 자발적으로 센터를 찾아갈 리 없는 K와 같은 대상자까지 가정방문 서비스 명단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단순히, 관리 대상의 ‘숫자’가 증가되는 것 때문만이 아니다.  여성 요원과 20대의 비중이 많은 이곳에서 안전장치 하나 없이 출소자를 찾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는가.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 범죄자는 보호관찰 기간이 끝나도 지자체나 경찰에서 계속 관리하도록 하는 법이 있지만, 지자체에서는 제한된 정보만 받고 있으며, 본인의 동의가 없으면 서비스를 제공할 수가 없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게다가, K와 같은 경우는 ‘치료와 관리가 필요한 정신질환 범죄자’의 대상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출소와 동시에 그냥 방치되는 것이다.   

  

음주가 음주로 끝나지 않는 현실에 대한 치료적 개입을 심각하게 고민해봐야 한다.  주취범죄자는 반복된다는 것을 기억하자.  성난 주취자들 모두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할 것이 아니라면, 이들의 출소와 함께 또다시 시민의 안전이 위협받게 되는 실태를 지나쳐서는 안 된다.  ‘구속’만큼이나 ‘출소’에 대한 고심도 깊어야 한다.  ‘처벌’과 ‘교화’를 둘러싼 지난한 논쟁의 궁극적 목적이 ‘사회 안전’이라면, ‘치료’와 ‘회복’에 대한 접근을 간과하는 일은 더더욱 없어야 할 것이다. 

범법자이지만 결국 우리 이웃으로 살게 될 K를 구제하는 것이 우리 사회를 살리는 방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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