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둔주의-자
(혼자인 게 좋지만 버림받는 건 두려웠습니다)
김도영 지음
꿈공장플러스 펴냄
"마주 보며 내달리는 차 안에서 둘 중 하나가 핸들을 돌리지 않으면 충돌해 결국 모두가 파멸에 이르는 치킨게임을 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제 신체를 해방했던 그 '자유로움'이 부메랑이 되어 저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단단하게 꼬인 매듭으로 돌아와 정신과 행동을 속박했습니다."
"하루와 하루가 이어져 반복되는 시간에 갇힌 채 다시 아침이 찾아왔습니다."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문득, 작가가 사용한 표현의 출처가 궁금해졌습니다.
'이런 표현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해 내는 것이지?'
잘 다듬어진 집필 과정의 산물인지, 자연스럽게 떠오를 수밖에 없는 작가의 삶 자체였는지...
이내 저의 어리석은 물음에 스스로 피식 웃고 맙니다. 작가의 삶이 윤문을 통해 탄생한 문장이겠지요.
나름의 답변을 깨닫고 나니, 이런 기분으로 살아왔을 작가에 대하여 안쓰러운 마음이 듭니다.
좀 더 솔직해지자면, 이 문장들이 온전히 이해되지는 않습니다. 그저 조금 짐작할 뿐입니다.
그러함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보면, 그의 삶의 막막함이 꽤 컸나 봅니다.
"피와 살로 만들어진 사람이라는 저를, 이 널브러져 있는 쓰레기들과 구분하고 싶었습니다... 한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이 당장 쓰레기 치우는 것 말고는 없었으니까요."
이 장면에서, 저는 저에게 상담받고 있는 한 수용자가 떠올랐습니다.
살인을 하고 구속된 그는, 몸에 새겨진 말인양 '저는 쓰레기입니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을 비난하는 한편, 정리되지 않는 방을 견디지 못하는 듯 늘 청소를 하기 때문입니다.
앗! 작가님을 감히 살인자에 비유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쓰레기'와 '청소'에서 연상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그 내담자에게 '죄와 자신을 분리하라'라고 요구했습니다.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구겨진 돈에 대한 비유(돈이 아무리 구겨지고 더러워져도 그 돈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죠.)를 하면서, 죄와 별개로 너의 존재 자체는 귀하다고 했었죠.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의 말이 얼마나 공허하고 얄팍한 위로였는지 깨닫습니다. 습관적인 자해를 하던 그의 심정을 교과서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죠.
'입학을 축하합니다.'
드디어 깊고 깊은 심연 속에서 빠져나오는 기분을 느끼는 것은 비단 저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가 이 대목에서 만큼은 저자 자신이 되고, 그의 가족이 되었을 것입니다.
뭉클한 무언가가 눈가를 적시는 순간입니다.
'자퇴생, 가출청소년, 사회부적응자'
지긋지긋하게 저자를 괴롭히던 꼬리표!
그는 더 이상 이 수식어를 달고 살지 않습니다.
저자에게 글쓰기 도움을 받고 있는 저는, 그와 연락할 때마다 '대단하다, 부럽다. 멋지다' 등의 말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이 감탄사들은 단 한 번도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은둔생활은 무기력하고, 자신의 표현처럼 무망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도 눈치채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의 열정은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아는 모습으로 발현될 때까지 한껏 움츠린 채 도약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김도영'이라는 사람은 결코 서른 이후에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은둔의 삶으로 다져진, 한 곳에 머무르는 힘이 공부할 때 요긴하게 사용된 것처럼요.
이 책은 굳이 은둔주의자들이 아니어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며, 뒤쳐진 나를 불안해하니깐요.
'나는 내 페이스대로~!!"
주문처럼 외우고 있는 이 말을 책을 덮는 순간, 다시 한번 되뇌어 봅니다.
p.s. 책의 여운이 아직 남아 있어서일까요? 리뷰를 쓰는 저의 문체도 작가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