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은 E.H 카의 대표 저작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특히 이 책은 서울대학교의 필독 도서 중 하나이고 개인적으로는 한 때 좋아했었던 지식인인 유시민이 추천해서 읽어봤었다. 그 당시는 아직 중학생 나이였는데 사실 중학생이 읽기엔 이 책은 좀 추상적이고 어려운 면이 크다. 그래서 당시에는 그렇게 인상 깊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최근 이 책을 다시 읽게 된 것은 아마 대학 수업 때문일 것이다. 사학과는 전공 필수 과목으로 역사학개론이라는 수업이 있는데 여기서 오늘날 역사학계의 방침에 큰 영향을 끼친 E.H 카의 이론을 배운다. 서양 현대사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는 사람이 듣기엔 조금 어려운 수업이라고 생각하나 나는 서양사를 좋아하기에 크게 어렵진 않았다.
그렇다면 역사의 의미란 무엇인가? 역사의 어원은 Historia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헤로도토스라는 인물이 처음 썼다. 헤로도토스가 사용한 역사의 의미란 인간계의 시간적 사건에 대한 탐구 및 조사, 발견한 사실에 관한 상호관련적 서술이라고 한다. Historia인 이유는 자신 이전 서술가들과의 차이점 극복이다.
역사의 개념 분류는 크게 과거 그 자체로의 역사, 과거의 기록으로서의 역사, 과거에 대한 연구로서의 역사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과거로서의 역사와 기록으로서의 역사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자면 과거로서의 역사는 과거에 일어난 사실 자체와 사실과 관련된 문제이며 기록으로서의 역사는 단순 사실 가운데 기록한 사람이 선택해 남아있는 자료를 뜻한다.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보기에 합리적인 전후관계가 아닌 것을 배제하고 인과관계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 설정이라고 봤다. 카는 역사가는 '왜'에서 '어디로'로 나아가야 한다고 봤으며 역사가들이 찾은 답을 통해 당시 사회가 얻은 답을 들을 수 있다고 봤다. 미래의 경우에는 과거와 현재의 인과관계에서 서떠한 미래를 제시할 수 있고 어떠한 미래를 추구할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카의 이러한 관점은 과학성에 집착한다. 이는 마르크스 철학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며 역사가는 언어로 역사를 서술하고 복잡한 현상을 일반화 하여 축적된 지식에 기초해 미래를 예측한다고 봤다. 이걸 간단히 요약하자면 역사와 사회과학이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변하는 것일 거다.
그렇다면 카가 강변한 이유는 뭘까?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것은 프랑크푸르트 학파 이후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이 학계에 영향을 끼치면서부터 일 것이다. 포스트 모던 시대에서는 역사의 문학성이 중요하다.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에 따른 역사 서술은 역사도 문화 텍스트로 본다. 하지만 카에게는 과학성이 더 중요하다.
그래서 카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마르크스 철학에 기초해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카는 역사의 진보성과 과학성을 믿는 자였기에 당연히 마르크스 철학과 잘 맞을 수 밖에 없었고 경제가 사회를 작동시키고 사회가 정치를 작동시킨다는 원리를 믿었기에 카는 반자유주의자에 전체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았던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포스트 모더니즘적 역사 서술에 있어서 역사의 과학성은 흘러간 옛 말에 불과할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 역사학계의 주 흐름은 포스트 모더니즘이기에 역사에 대한 사회과학적 접근은 매력을 잃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카가 비판을 감수하고도 사회과학적으로 접근한 것에는 카가 국제정치학자이자 외교관이었기에 특수성에 보편성을 본지도 모르겠다.
공부하며 읽은 내용을 정리해봤는데 지금도 좀 헷갈린다. 사학도이거나 사학 전공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이 책은 반드시 필독서 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