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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한파 엘리트들의 왜곡된 대한관

무토 마사토시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by 제이슨

무토 마사토시...아마 이 사람을 내가 처음 안 거는 2017년이었을 거다.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라는 아주 도발적이고 어그로 목적이 짙은 제목을 가진 책 덕분이었는데 그래서 그런지 한국 언론에서 무토는 큰 화제였다. 더욱이 그 당시는 문재인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지지율이 80%를 찍을 때라 문재인을 겨냥한 이 책은 당연히 욕을 먹었다. 게다가 무토 마사토시 대사는 동일본 대지진 때 한국에서 모금을 해서 갖다주니까 고맙다고 눈물을 흘렸으며 아예 한국 정부에서 수여한 훈장을 받은 사람이었다.

거의 대부분의 한국 사회에서 이 책이 욕먹었던 것에 비해 우파 진영에서는 무토 대사가 상당히 높게 평가되었다. 그 이유가 문재인을 욕했다, 이거 하나였고. 나하고 친했었던 어느 재일교포 블로거는 아예 무토 대사의 책을 자기 블로그에 번역해서 올렸고 무토 측에도 접근해 한국어판 출간을 요청했지만 그는 한국 사회가 아직 이 책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안되어있다며 거절했다. 그래도 입소문은 탔는지 광화문 교보문고 원서 코너에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내용적인 측면으로 따져보면 한국 비판이라는 관점에서는 틀린 정보가 적힌 것은 없다. 경쟁 사회도 사실이고 취업난, 과도한 교육열, 미비한 복지 체계, 수능제도 비판 등 뭐 들어줄 만한 것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거든. 물론 박근혜 탄핵이 군중심리 때문만이라던가 문재인에 대한 개인적인 경험담은 악의가 느껴지기도 하고 한국 사회에서도 너무 논란이 심하게 될 주제라서 일개 대사였던 사람이 함부로 재단할 부분은 아니라고 본다. 다만 아까 말했듯이 한국 사회의 문제점은 틀린 소리는 아니라고 본다.

의외로 안티페미들이 좋아할 부분은 남성들이 역차별 받고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매우 심한 주제라 내 개인 의견은 안 밝히겠지만 대사라는 사람이 이런 정보를 도대체 어디서 얻었는지는 궁금하긴 하다. 무토가 아무리 한국통이라고 한들 그 당시는 젠더 갈등이 표면화되던 시기는 아니었다. 일본 사회가 활발하게 남성 역차별 문제가 논의되는 사회는 아니기도 하고.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추측이다만 성재기에 감명을 받았나 싶기도 한 게 딱 성재기가 강에 빠져죽던 무렵에 무토 대사의 임기가 끝났으니 말이다.

그래도 내가 하나 드는 의문점은 "그러면 일본은 괜찮고?"라는 질문이다. 무토 대사가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에서 한국 사회를 향해 던졌던 비판은 정확하게 일본 사회에 대한 비판에도 적용된다. 한국의 수능이나 과도한 교육열 못지 않게 일본도 유치원부터 입시가 존재하는 등 비정상적인 시스템이 있는 나라이며 한국의 가혹한 경쟁과 취업난처럼 일본에도 메이와쿠와 다테마에 및 혼네라는 조직주의적 문화와 이에 도태된 사람들이 등교거부자나 히키코모리가 되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한국의 복지체계가 미비하다고 했는데 그게 사실이라 쳐도 일본은 주휴수당 제도 하나 없는 나라이다. 게다가 행정이 아날로그식이라 복지 수당을 받으려면 절차가 복잡해 실제로 이용하는 사람이 적다. 또 저임금도 고착화되서 아베노믹스가 한창이던 2019년에 외노자가 몰렸다가 지금은 다시 탈주러쉬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이 취직은 쉽다는 것은 한국보다는 낫지만 그마저도 저임금 일자리가 많으며 아까 말한 일본 사회 특유의 폐쇄적인 조직 문화 탓에 프리터나 니트족으로 사는 사람들이 아베노믹스의 공격적인 일자리 정책에도 늘었다.

한국 사회가 죽은 사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과연 일본 사회는 생기가 넘치나? 이미 잃어버린 20년을 지나 30년을 향하고 있다. 아베노믹스가 엔고를 잡으며 어느정도 산소호흡기를 붙이긴 했으나 그마저도 일시적인 대책이었으며 아베 사임 이후 일본 경제가 아베 시절 만큼 잘 굴러가지도 못한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굉장히 폐쇄적인 국가였고 아베가 보통국가를 꿈꾸는 우익임에도 외국인 이민을 대거 수용했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라는 나라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문재인에 관해 무토가 쓴 것은 굳이 말하진 않겠다. 내가 문재인을 좋아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라서 딱히 변호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거든. 다만 어쨌든 간 일개 넷우익이나 자민당 의원도 아니고 주한 일본대사였던 사람이었는데 마음에 안든다는 이유로 그 나라 대통령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게 예의에 맞나 싶다. 게다가 한국 정부에게 훈장까지 받은 걸로 아는데 그건 반납 안하나? 미시마 유키오를 장인으로 두고 한일 무역분쟁 때 대사를 했던 도미타 고지도 저러지는 않았다. 문재인이 어떤 사람이고 떠나 자기가 부임했던 나라의 국가원수를 상대로 대놓고 욕하는게 옳은 일인지 한번 묻고 싶다.

이 일로 동일본대지진 때 한국에 고마워한 무토는 순식간에 혐한 인사가 되었는데 엄밀히 말해 혐한은 아니다. 정확히는 넷우익이나 재특회류 혐한 말이다. 그냥 정확히 말하자면 무토는 일본 지한파 엘리트들의 우월의식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기시 노부스케부터 나카소네 야스히로 등 군사정권 시기 일본 우익들이 한국에 사과도 하고 도움도 많이 줬지만 정치적인 목적이 컸고 한국을 아래로 보는 수직적 관계였다. 그 당시는 한국이 일본을 따를 수 밖에 없는 구조로.

무토는 여기서 멈춘 거다. 한국은 여전히 일본의 은혜를 입어야 하는 국가로 말이다. 어찌 보면 동생 국가로 대접하니 혐한은 아닌 건데 문제는 이게 굉장히 상대방 입장에서는 모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행보라는 거다. 아무리 도와준다고 포장해도 니가 아래라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하면 솔직히 누가 좋아하나? 지한파라는 사람들이 한국을 너무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진짜 한국을 말을 잘 듣는 동생으로 두고 싶은 생각이라면 저딴 식으로 모욕적으로 말하면 안되었다.

하나 더 중요한 점은 무토 대사는 일본 외무성 내 코리안 스쿨의 교장이다. 한국어 실력과 정세에 능통하다는 이유인데 뭐 지한파긴 하지만 한국을 기본적으로 아래로 보고 있는 사람이 일본 외무성 한국 부서의 한 축이 조금 씁쓸하다. 그래도 한국 담당은 아니지만 마고사키 우케루는 조금 반미 음모론적인 기질이 있긴 해도 외무성에서 나름대로 타국에 대한 예의를 갖추던 사람이었는데 말이다. 어찌보면 군사정권과 자민당의 유착에서 60년 동안 이어져온 가치관인데 하루아침에 바뀌겠나.

일부러 정치적인 얘기는 빼고 서술했는데 그래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 책이다. 이 사람이 쓴 다른 책인 <문재인이라는 재액>도 읽어봤는데 그다지 본받을 만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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