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디즈니의 인어공주 실사판이 화제다. PC 진영 측에서는 흑인 배우를 기용했다는 이유로 너드 레드넥 대안우파들이 인종차별적으로 작품을 비하한다고 비판하지만 자세히 보면 인어공주가 비판받는 건 흑인이어서 뿐만이 아니다. 베일리가 원작 인어공주의 이미지에 맞지 않으며 덴마크 동화인 인어공주의 시대적 배경에서 흑인이 등장하는 것이 원작파괴에 가까운 설정인 게 더 크다.
인어공주를 옹호하는 측에서 PC를 절대악으로 취급하는 걸 불편해하는데 그들의 말마따나 PC 색채가 있는 작품들은 무조건 까이기만 할까? 페미니즘을 다르게 해석한 매드맥스은 매우 큰 호평을 받았으며 마블도 논란이 있었지만 작품성을 해칠 정도로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게임으로 보더라도 스타크래프트 2나 레인보우 식스 모두 PC적인 요소로 욕을 먹었을지언정 여전히 잘 나간다.
그리고 인어공주와 확실하게 대비되게 PC를 불편하지 않게 녹여댄 작품이 있는데 그게 바로 기동전사 건담 수성의 마녀다. 샤아 아즈나블이라는 쿠데타 수괴스러운 캐릭터와 나치스러운 지온 공국 때문에 건담이 극우 작품으로 오해되는 케이스도 종종 있는데 애당초 토미노 요시유키는 극좌적 아나키스트에 가까운 인물로써 건담은 그동안 반전, 환경, 평화 등을 주제로 서사를 그려왔다.
샤아 아즈나블은 건담 역사상 가장 팬이 많은 캐릭터다.
수성의 마녀는 기존 건담과는 다르게 해석했지만 그래도 기본틀은 같다. 대신 국가 간의 분쟁이 아닌 기업과의 분쟁과 어시언과 스페시언의 갈등을 중점으로 내세웠다. 어시언이었던 니카 나나우라는 폴드의 새벽의 스파이로써 스페시언을 적대하는 위치에 있음에도 슬레타와 만나며 그녀를 돕고 최종적으로 지구와 우주 사이의 갈등을 부추키는 샤디크에 저항하다 체포된다.
니카는 자신이 지구와 우주 사이를 잇는 가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건담 제작진들이 내세우는 소통의 중요성이다. 어시언 테러리스트의 침략에 휘말려 아버지를 잃은 구엘은 지구에 포로로 잡혀간 뒤 스페시언에게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원망을 받지만 공습으로 그들이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구하기 위해 모빌슈트를 조종해 싸운다. 이것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다.
슬레타와 미오리네의 관계 역시 소통의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 미오리네는 자신의 아버지 델링이 구엘과 강제로 결혼시키려는 음모에 저항해오며 아버지를 혐오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독단적으로 슬레타를 더욱 괴롭게 만든다. 물론 미오리네는 슬레타가 어머니 프로스페라의 가스라이팅으로부터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 본심을 숨기고 악역을 자처한 거지만 그녀의 방식은 너무나도 독단적이었다.
슬레타는 미오리네와 프로스페라를 제외하면 의지할 대상이 없다. 그렇기에 미오리네가 독한 마음으로 악역을 자처하고 멀어지면 의도와는 달리 더욱 더 어머니에 의존하게 될 거다. 이게 충격 요법의 한계다. 미오리네라는 인물은 아버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려 했으나 슬레타가 어머니의 세뇌에 잠식된 것처럼 미오리네도 아버지의 사상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슬레타를 세뇌시켜 복수의 대상으로 이용하려는 프로스페라를 향해 미오리네는 항의하지만 프로스페라는 이렇게 답한다. "슬레타의 아버지를 죽인 것은 너네 아버지 델링이다"라고. 그러자 미오리네는 "부모 세대의 문제는 부모 세대가 해결해라"라고 주장한다. 날씨의 아이에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젊은 세대에게 희생을 강요하지 말라고 한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써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기성 세대가 신세대들을 가스라이팅하는 것을 비판하는 거다.
미오리네와 슬레타, 기존 건담 주인공들과 이질적이다. 바로 백합 커플(레즈 커플)인 것인데 지금까지 나열한 모든 것보다 더 PC적인 부분이다. 그런데 이걸 굉장히 불편하지 않게 잘 녹여냈다. 엘란과의 삼각관계도 그렇고 단순히 서비스씬을 위함도 아닌 순수한 여자들끼리의 우정과 사랑을 그려냈다. 게다가 미오리네의 복장은 짧은 바지에 스타킹인데 이것 역시 성적대상화를 방지하기 위함인데 놀랍게도 아무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할리우드에도 LGBT 묘사가 있다. 대표적인 게 닥터 스트레인지의 레즈비언 캐릭터인데 건담의 슬레타-미오리네 커플과는 달리 대부분이 뜬금 없다고 비판했다. 왜냐면 서양 영화의 LGBT는 자연스럽지가 못하고 갑자기? 라는 생각이 절로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건담은 작위적이지 않고 작품 전개에도 악영향이 안가게 잘 조절해서 백합 커플 문화와 성적 대상화 방지 장치를 사용했다. 특히 건담은 일본 애니 중 가장 신좌파 성향이 짙은 작품임에도.
건담의 성공 사례는 매드맥스의 페미니즘과 같이 상당히 눈여겨볼 만하다. 오늘날 PC와 반PC의 갈등이 극에 달해 상대 진영을 낙인 찍는 게 유행인 시대에서 자기 정치색을 드러내면서도 반대쪽도 불편하지 않게 하는 것은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어공주는 실패작인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