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아이돌물하면 떠오르는 것은 미소녀 동물원이라는 이미지일 것이다. 사실이 맞다. 앙상블 스타즈 같은 여성향 아이돌물을 제외하면 러브라이브, 아이돌마스터, 뱅드림 모두 미소녀들이 화기애애하게 일상을 보내는게 주요 포인트다. 그래서 난 아이돌물을 볼 바에 차라리 일상물이나 럽코물을 보는게 훨씬 낫다고 생각했었다. 어차피 대부분의 애니는 미소녀 히로인이 등장하기에 스토리를 볼 거면 다른 애니를 볼 거라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본 아이돌 애니 치고 그래도 현실 아이돌의 고충을 나쁘지 않게 다룬 작품이 있었다. 뭐 그렇다고 일반인 애니(?) 이런 건 아니다만. 신데마스라고 불리는 아이돌마스터 신데렐라 걸즈가 대표 주자다. 초반부 미숙한 프로듀서의 대응이 뉴 제너의 해체 위기를 만들고 반성을 통해 화합하는 장면은 잘 뽑혔다. 물론 미오가 탈주한 것을 두고 아직도 단순히 삔또 상해서 도망간 거 아니냐는 의견들도 있다.
후반부에 묘사가 특히 잘 되었던 게 이 파트에서는 미시로 상무가 귀국하여 대다수의 부서들을 통폐합하여 상업성을 중심으로 한 아이돌을 키울려고 하는 것에 대해 프로듀서가 신데렐라 프로젝트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게 핵심이다. 미시로 상무는 능력주의 및 현실주의, 프로듀서는 이상주의와 개인을 존중하는 마음이 포인트였기에 여기서 갈등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작중에서 미시로 상무가 꼭 나쁘게만 그려지지 않는다. 그녀가 만든 프로젝트 크로네에 시부야 린과 아나스타샤가 참여해 정신적으로 성장했기 때문이었다.
특히 뉴 제너의 삼인방 중 시마무라 우즈키가 멘탈이 흔들려 무너지는 모습은 현실 아이돌 업계에서도 볼 수 있다. 시부야 린이 프로젝트 크로네에 참가하고 혼다 미오가 솔로 활동을 하며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는 동안 우즈키는 혼자 아무런 가능성도 찾지 못해 열등감에 시달렸다. 린이나 미오에 비해 자신이 특출난 재능이 없다고 느낀 것이다. 양성소로 돌아간 우즈키는 여기서 끝까지 추락하는 듯 했지만 이내 극복하고 무대에 다시 선다.
신데마스는 그런 점에서 아이돌 업계에서의 현실주의 문제와 개인의 성장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 그것이 신데마스가 기존 아이마스 시리즈와는 조금 차별화되었던 부분이고. 미시로 상무와 프로듀서의 갈등도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방식의 차이였고 필요할 때는 서로가 도왔다. 이것도 아이돌 산업에 있어서 다양한 방법들이 있을 수 있고 관계자들은 서로 경쟁하면서도 필요할 때는 손을 내미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는 거다.또 관객 수에 따는 희비라던가 공연을 앞두고 벌어진 갑작스러운 컨디션 악화 등 다양한 문제를 다각도에서 다뤘다.
두 번째는 최근에 방영하고 있는 최애의 아이라는 작품이다. 1화부터 아쿠아와 루비가 보는 앞에서 호시노 아이가 칼에 찔려죽고 아쿠아는 그대로 복수귀가 되어 엄마를 죽인 사람, 즉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기 위해 연예계에 들어간다. 호시노 아이라는 인물부터가 혼전, 미성년자 임신에 비밀로 쌓여있던 인물이라 연예계가 거짓으로 가득찬 곳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이치고 사장은 아이를 보며 그녀를 최고의 거짓말쟁이라고 칭했다.
아쿠아가 고등학생이 되고 연기자로써 연예계에 들어가며 연예계의 어둠이 잘 나온다. 리얼 러브라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아카네는 노력파였지만 주목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의 매니저가 기획사 사장에게 쌍욕을 듣는 것을 보고 자신이 방송에서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이 들어 유키로부터 노부를 빼앗는 악녀 포지션이라도 취해본다. 그러나 그마저도 제대로 안되었고 유키가 남자를 데려가자 쫓아가서 실랑이를 벌이던 중 실수로 네일 아트를 한 손톱으로 패션 모델로써 내일 잡지 촬영이 있는 유키의 얼굴을 그어버렸다.
물론 유키는 화내지 않고 초조했었냐면서 이해한다고 했고 그렇게 이 해프닝은 별 일 없이 끝났다. 하지만 카부라기 프로듀서는 유키의 얼굴을 긋는 장면에서 컷을 하고 방송에 내보냈고 아카네는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미움을 받는 처지로 전락한다. 악플들은 수도 없이 트위터를 점령했고 성실한데다가 노력파였단 아카네는 악플도 의견이라며 그걸 굳이 하나하나 확인하고 상처받는다. 그리고 먹을 것을 사오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가 태풍에 휩쓸려 봉지째 날아가고 삶의 의욕 자체를 잃은 아카네는 육교에서 뛰어내리려다가 뒤늦게 발견한 아쿠아에 의해 저지당한다.
또오늘달콤이라는 웹드라마 촬영 중에 제작진이 돈에 미쳐 작품성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것이라던가 히메카와의 막장인 연예인 부모 관련 가정사, 아리마 카나의 파파라치에 의한 위기 등 연예계의 어두운 면을 최애의 아이는 과감하게 묘사한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 아카네에 대한 악플은 우리 연예계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악마의 편집으로 인해 사실과는 다른 왜곡된 정보를 듣고 정의의 키보드 워리어가 되어 그 연예인을 매장한다. 물론 그 연예인을 싫어하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다만 그걸 밖으로 꺼내는 건 옳은지 고찰해볼 지점이다.
일본은 다테마에와 혼네라는 문화가 있는 나라다. 그래서 친절함이 몸에 베어있지만 그것은 가식적이고 표면적으로 보이기 위함이다. 그래서 혼네라는 본심이 있는 것이고. 그런데 인터넷이 등장하고 익명성이라는 개념이 나타났다. 그렇게 현실에서 친절한 웃음을 짓던 일본인들은 익명성 뒤에 숨어 트위터나 5ch 등지에서 과격한 모습을 보인다. 그것 중 하나가 혐한과 성우, 걸그룹 멤버들을 향한 비난이었던 것이다. 뭐 우리나라라고 특별히 더 나을 것은 없지만 저런 게 만화에서도 중점으로 다뤄질 만큼 악플 문제는 심하다.
그래서 아이돌물을 뇌 빼고 보는 용도라고 생각하던 나지만 신데마스와 최애의 아이 두 개 만큼은 매우 높게 평가한다. 특히 최애의 아이를 더 높게 치는데 어둡고 자극적인 스토리도 마음에 들었지만 작가의 전작인 카구야보다 더욱 직설적으로 현실적인 문제를 묘사한다는 것에 있다. 아마 이번 최애의 아이는 아이돌물이 어떻게 방향성을 잡아야 할 지 잘 보여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