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시다 시게루 전 총리의 외손자인 세습 정치가. 세습정치가여도 유능한 케이스는 얼마든지 있는데 아소는 너무 무능했다. 고이즈미가 살려놓은 경제가 아베 신조(1차) 때부터 추락하기 시작하더니 아소 때 경제성장률이 완전히 작살났다. 결국 2009년 중의원 선거 때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줬다.
4위 하토야마 유키오
- 재임 기간: 2009~2009
- 소속 정당: 민주당
- 정치적 성향: 사회자유주의, 중도좌파
- 전직 수상 하토야마 이치로의 아들. 자민당 출신으로 1990년대 탈당 사태 때 나와서 사기카게에 합류, 후에 계속 민주당에 있었다. 2009년 선거 때 메니페스토 전략을 잘 짜서 정권교체에 성공했고 상당한 인기 몰이를 했으나 능력이 딱 거기까지였다.
전문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증세없는 복지를 추구하다가 포퓰리즘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결정적인 것은 오키나와 후텐마 주일미군 기지 이전 문제. 여기서 하토야마 총리는 오키나와 현 밖으로 이전하고자 하였지만 반대 여론과 미국에 찍혀서 실패하고 9개월 만에 사퇴했다.
3위 다나카 가쿠에이
- 재임기간: 1972~1972, 1972~1974
- 소속 정당: 자유민주당
- 정치적 성향: 국가자본주의, 우파
- 일본 역사상 가장 부패한 총리. 총리가 되기 전까지는 가난한 중졸 출신에서 유력 정치가로 성장한 인생 승리의 모범 사례, 일본열도 개조론이라는 참신한 정책을 내세운 획기적인 총리였으나 록히드 사건이라는 미국 재계하고까지 연계된 대형 비리에 연루되며 구속되기까지 했다.
그 후로도 자기 파벌을 이용해서 후쿠다 다케오를 총리직에서 밀어낸다거나 자신에 대한 수사를 명령한 미키 타케오 총리에게 보복한다던지 등 지속적으로 정계에 관여하며 '어둠의 쇼군'이라고 불렸다. 오히라 마사요시, 스즈키 젠코 두 총리를 모두 조종하기까지 했지만 측근인 다케시타 노보루의 배신으로 정계에서 퇴출당했다.
2위 고노에 후미마로
- 재임 기간: 1937~1939, 1940~1941
- 소속 정당: 대정익찬회
- 정치적 성향: 천황제 파시즘, 엘리트주의, 극우
- 원래는 자유주의적이라고 불리는 귀족 가문 출신 정치가였다. 2.26 사건 이후 혼란을 겪고 있는 와중에 원로 사이온지 긴모치의 추천을 받아 총리가 되었는데 귀족적 독재자로 변모한다. 이후 노구교 사건이 발생했을 때 겉으로는 수습하는 척을 했지만 군부에게 끌려다녔고 결국 중일전쟁이 벌어지게 된다.
의외로 미국의 대일본 압박 정국 때는 유화파에 속했는데 이 때문에 강경파 육군의 도조 히데키와 대립하기도 했다. 이때 대미개전을 반대한 근거로 전후에 전범 재판을 피하려고 했으나 중일전쟁의 총책임자로 주목받는 바람에 실패했고 결국 자결했다.
1위 도조 히데키
- 재임 기간: 1941~1944
- 소속 정당: 대정익찬회
- 정치적 성향: 천황제 파시즘, 통제파, 극우
- 도조가 처음 뜬 것은 2.26 사건 당시 황도파 반란군을 진압하면서 통제파의 뉴페이스로 주목받은 것이다. 그 후 관동군 참모장으로써 노구교 사건을 중일전쟁으로 확대시킨 최악의 원흉이며 이 공로로 육군 대신에까지 임명된다. 이때 일본군이 동남아시아에 주둔하자 미국이 ABCD 포위망으로 압박했고 도조는 육군 내 여론에 따라 대미강경파 쪽의 편을 들어 고노에 내각을 해임시키고 자기가 총리에 올랐다.
하지만 미국은 일본이 중국 전선에서 철수하지 않는 이상 포위망 철회는 없다는 태도였다. 여기서 미국은 중국 전선은 만주국과 대만을 제외한 본토였으나 일본은 자신들이 이익선으로 여기는 만주까지 미국이 침해한다고 생각했다. 결국 협상은 결렬되었고 일본은 진주만을 공습하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전후에는 진주만 공습을 결단하고 1944년까지 일본의 전쟁 지휘를 감독했다는 혐의로 A급 전범으로 기소, 사형당했다.
그 외 못했던 총리
- 스가 요시히데(자유민주당): 임기 중이라 평가하기 뭣하지만 코로나 대응이나 도쿄올림픽 문제를 보면 아베의 반의 반도 못따라간다.
- 노다 요시히코(민주당): 소비세 인상 문제로 당 내 분열을 조장하다가 결국 자민당에게 정권 빼앗겼다.
- 모리 요시로(자유민주당): 신의 나라 드립치다가 총리에서 쫓겨났다.
- 미야자와 기이치(자유민주당): 총리직에 있을 때 버블경제 붕괴가 일어났고 여기에 대처를 못해 야당 연합에게 정권을 내줬다.
- 가이후 토시키(자유민주당): 부동산 대출 총량 규제로 버블 붕괴 불러옴.
- 무라야마 도미이치(사회당): 보수 진보 합치 내각이라 방향성이 없었고 옴진린교 테러 사건이 있었다. 그래도 무라야마 담화는 긍정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