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탈레반이 카불에 입성했다. 이로써 20년 간의 미국과 북부동맹이 주도했던 아프가니스탄의 승자는 탈레반으로 결정되었다. 탈레반은 과거 1990년대 출범 이후 내전에서 승리해 한번 정권을 잡았다가 2001년 미국의 오사마 빈 라덴 인도 요구에 반발했다가 미국과 싸우게 되었던 것이었다.
이러한 아프가니스탄을 보면서 난 딱 한 가지 국가가 생각났다. 바로 베트남이다. 역사도 비슷한 게 베트남은 프랑스부터 미국, 중국까지 강대국들과 싸워온 역사가 있었고 아프가니스탄 또한 영국부터 소련, 미국까지 강대국들과 싸워온 역사가 있었기에 이러한 점이 비슷하다.
전쟁 양상도 산악과 정글이라는 차이를 빼면 비슷하다. 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즉시 폭격기를 불러 해결하는 방식부터 땅굴을 이용한 게릴라 전, 헬기 중심의 보병 운용 전략, 전차나 장갑차를 움직이기 힘든 환경 등이 비슷하다. 특히 탈레반은 과거 베트콩이 그랬던 것처럼 기습적인 전략을 사용했다.
미국은 전면전에는 강하다. 그래서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과 일본군을 상대로 압살했던 것이며 이라크 전 초기 정규군이었던 이라크군을 궤멸시킬 수 있던 것이다. 그러나 전면전의 양상이 게릴라 전으로 바뀌면 한계를 드러낸다. 미국이 아무리 강한 무기를 가져와도 탈레반이 두더지 잡기 식으로 나서면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다.
즉 쉽게 말해 아프가니스탄 전역에 탈레반이 퍼져있기에 사자가 불개미떼를 상대하는 꼴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다른 강대국도 직면한 문제인데 이 때문에 1979년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자헤딘과 교전한 소련이 이러한 문제 때문에 예산이 막대하고 투입되는 것에 비해 성과가 안나와 철수했다.
두번째로 베트남과 유사한 것은 미국이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미군은 전장에서 적이 출현하면 공중 지원을 요청하는 일이 다반사다. 이 때문에 주변 지역의 민간인 사상자가 나오는 일이 잦다. 또 아프간인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기에 미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고 백날 떠들어 봐야 아무 사용 없다.
세번째는 중앙정부의 무능함과 부패, 정통성 부족이다. 항복 이전 아프간군은 공식적인 수치로 30만명이었는데 정부가 무너지는 날까지 싸우고 있던 것은 5~6만명 뿐이었다. 사실상 예산을 타먹기 위해 병력 수를 조작한 셈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타먹은 예산이 별로 도움되지도 않은게 탈레반과 교전이 벌어질 때면 아프간군은 번번히 패주했다.
남베트남도 그러했다. 남베트남에 대해 미국이 보낸 막대한 군사 원조는 부패한 관료들에 의해 몰래 새어서 북베트남에게 흘러들어갔다. 아프가니스탄도 관료들의 부패가 끔찍한 수준이라 미국제 무기가 탈레반으로 흘러가는 경우도 있으며 이 때문에 군대의 사기도 매우 낮다. 애초에 아프간 정부는 민주주의를 국민들에게 전파할 의지조차 없었으니 군인들이라고 민주주의에 대한 의식이 있었겠나?
정통성 같은 경우에는 먼저 나는 탈레반이라고 해서 정통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탈레반은 1980년대부터 소련과 싸워온 아프간의 영웅 마수드를 죽였다는 점에서 스스로 정통성을 상실했다고 본다. 그러나 그런 탈레반 만큼이나 정통성이 없는게 아프가니스탄 정부였다. 미국이 세운 괴뢰정권이라는 이미지가 너무 강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마치 베트남에서 겪은 일을 21세기에 와서 아프가니스탄에서 또 겪은 셈인거다. 미국은 베트남과 마찬가지로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채 전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그 댓가는 '제국의 무덤'에서 약 2,000명의 청년을 잃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