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영화는 예전부터 봐왔다. 초속 5센티미터 때부터 봐왔으니 나는 그의 꽤 오랜 팬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17년을 강타한 대 히트작 <너의 이름은>도 시간가는줄 모르고 정말 재미있게 봤었는데 특히 동일본 대지진과 연결지으며 생각하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에 대해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2019년 날씨의 아이가 개봉했을 때 나는 기대가 컸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이번 작품에서는 무엇을 말할지 더욱 기대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쭉 날씨의 아이를 시청했고 얼마 전에 다시 한번 더 봤다. 보는 내내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작중 주인공 호다카는 시골에서 가출해 도쿄로 상경해온 아이다. 그때 도쿄는 알 수 없는 괴현상으로 매일 비가 쏟아내려지는 이상 기후를 보이고 있었다. 어쨌거나 호다카는 그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지만 돈과 경험이 부족한 그는 노숙자 신세를 벗어나기가 무리였다.
그러던 어느날 맥도날드에서 저녁을 먹던 호다카를 보다 못한 알바생 히나는 그에게 직원들 몰래 빅맥을 건네준다. 이후 든든하게 먹은 호다카는 갈데가 없어지자 도쿄로 오는 와중 자신에게 도움을 주었던 어른 스가 다이스케가 머무는 곳에 와 도움을 청한다.
그로부터 얼마가 지난 후 호다카는 길을 가던 중 히나가 양아치들에게 둘러쌓인 광경을 목격한다. 그녀를 구하기 위해 호다카는 가다 주었던 권총을 들었는데 이 권총은 진짜였기에 실탄이 발사되었다. 얼빠진 호다카를 데리고 어느 건물로 온 히나는 처음엔 화를 냈으나 그가 축 늘어지자 위로하며 같이 옥상으로 올라간다.
옥상에 올라가니 신사 하나가 있었다. 히나는 지금부터 맑아질 것이라고 말하며 손을 모아 기도했다. 그러자 어둡고 비가 내리던 하늘은 순식간에 맑게 개었으며 이로써 호다카는 그녀가 '맑음소녀'라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렇게 호다카는 마침 돈이 필요하던 히나에게 맑음소녀 아르바이트를 제안했고 둘은 협업하게 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감독 작품 중 전작 <너의 이름은>이 워낙 뛰어난 작품성으로 찬사를 받았던지라 이번 작품은 상대적으로 저평가 받고 있다. 실제로 각본상 난잡한 전개 덕분에 이 영화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 의식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알기 어렵다 라는 비판적인 의견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날씨의 아이>가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의 갈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 기성 세대가 만들어낸 오늘날의 사회는 젊은이들에게 희생을 강요한다. 이러한 현실과 기성세대, 즉 작품에서 어른의 역할을 스가 케이스케라는 인물을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그러면서도 <날씨의 아이>는 호다카로 대표되는 젊은이들도 대변해주고 있다. 세상은 원래 미쳐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더 미쳐도 된다는 호다카의 극단적인 외침은 딜레마를 낳는다. 바로 이것으로 호다카는 히나를 지켜냈지만 그로 인해 날씨의 재앙은 더욱 심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가 희생해서 날씨의 재앙을 멈추는게 과연 옳은 일인지도 의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는 자연재해에 맞서 제물을 바쳐 신께 빌었다. 이때부터 사회는 개인의 희생, 특히 젊은이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일 거다. 나는 호다카가 이에 맞서 누군가의 희생을 동반한 날씨의 재앙 종결 대신 히나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작품 속에 내리는 비는 오늘날 일본에 산적해있는 문제들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앞의 해석과 연결지어 보자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히나의 희생(젊은 세대의 희생) 없이 이 비(사회 문제들)가 그치지 않는다면 차라리 영원히 그치지 말아버려라 라는 다소 극단적인 외침으로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너의 이름은>과 비교하며 <날씨의 아이>를 저평가한다. 하지만 나는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 젊은 세대의 희생과 관련된 주제의식을 가진 작품을 잘 보지 못했기에 <날씨의 아이>는 참 신선한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