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바이든의 외교 정책은 가히 대참사라 볼 수 있을 지경이다. 오바마는 커녕 심지어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을 동시에 조지다가 말아먹은 조지 부시보다도 바이든의 외교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좋지 못한 편이다. 지금에 와서 21세기 최악의 미 대통령이라 평 받는 조지 부시조차도 이라크 전쟁을 개전할 때 어찌되었던 간에 일극 체제 아래에서 상당한 지지를 받았었지만 오늘날 바이든의 외교 정책은 그야말로 대참사에 가까웠다. 솔직히 말해 베트남에 대한 개입을 확대한 린든 존슨 이래 가장 총체적 난국이라 할 수준이었다.
한국에서 바이든 정권이 들어설 때 그는 꽤 높은 옹호 여론을 받았었다. 왜냐하면 전임 정권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에 강하게 적대적인 태도를 취하며 한미 FTA 재협상, 방위비 분담 압박 등을 거세게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트럼프가 임기 말에 국회의사당 폭동을 선동했던 것이나 방역 정책의 대실패 등을 한 것에는 여전히 비판적이고 임기 중 정책도 몇가지 마음에 안드는 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단언코 말할 수 있는 것은 바이든은 이를 뛰어넘는 수준의 역대급 대참사로 미국을 위기에 몰아넣고 있는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을 동시에 때려잡는다, 이상적으로 본다면 맞는 말이다. 두 국가 모두 각각 동유럽과 동아시아에서 미국 패권에 위협을 행사하니 말이다. 근데 말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는 <미국 외교의 거대한 환상>이라는 책에서 세계국가란 불가능한 허상일 뿐이라고 지적했는데 이는 즉 각 국에는 내셔널리즘이라는 고유한 정서가 있기에 세계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보편적인 문화로 통일되는 것이 말이 안되는 소리라는 걸 보여주는 소리다. 미국 외교 정책의 기반은 루돌프 럼멜이라는 학자인데 그가 주장한 '민주평화론' 이론은 전세계가 민주국가라는 가정 하에는 같은 가치를 공유하기에 전쟁이 일어날 수 없다는 내용이 있는데 바이든도 이에 충실한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러시아, 중국을 동시에 조지는 선택지란 실현 가능성이 없는 선택지다. 일단 전세계에서 볼 때 러시아는 저가 에너지 시장을 꽉 잡고 있는 국가이고 바이든이 대러제재의 일환으로 시행한 석유가격상한제는 역으로 푸틴이 수출 중단 협박을 진행, 결국 가격을 400 달러까지 높였다. 무엇보다 이미 에너지 공급망에서 러시아의 가스에 의존하던 서유럽은 10차 대러제재가 시행된 이후인 지금까지도 원유를 들여오고 있다. 물론 G7 정상회담 이후로 제재 수위가 높아졌지만 반대급부로 유럽의 민생 상태가 파탄에 이르고 이게 지금 프랑스 반정부 시위에 더 기름을 부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유럽 부채도 120%에 달하는 등 역대 최악의 위기지만 미국도 그렇다고 마냥 안전하지 않다. 일단 작년에 OPEC에서 사우디를 비롯한 중동 국가들이 러우전으로 석유의 수요가 급격히 상승한 상황에서도 오히려 감산하는 결정을 내렸고 사우디 왕세자 빈 살만과 미국 정부와의 갈등이 심각한 것은 다 알 것이다. 그러면 미국은 셰일 가스 생산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르는데 일단 환경 문제도 있는지라 바이든이 소속된 미국 민주당의 정치적 스탠스(수압파쇄법 규제 등)을 생각하면 마냥 쉽게 추진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제재에도 러시아 경제는 성장세를 기록했지만 유럽은...
대부분의 서방 기업들은 대러제재를 무시한다.
물론 결국 바이든도 석유 수요가 급증한 정세 속 셰일 가스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채굴하여 유럽에 수출하고는 있지만 우선 셰일의 채굴 방식 특성상 일반 시추보다 더 비용이 많이 들고 환경 파괴도 심한 것은 물론이고 그렇다고 인건비를 줄일 노동력을 구하기 위해 외노자를 대거 고용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거기다가 바이든의 적극적인 구애에도 사우디가 끝내 석유 감산을 결정하면서 미국 국내 물량을 채우는게 급선무라서 자국 인플레이션, 유가 상승 문제까지는 어떻게 해볼 수 있어도 유럽의 고유가 고물가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셰일 문제를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미국 내 셰일 가스 생산량은 소비량을 못따라간다. 올해 미국 원유 생산량은 일평균 1,240만 배럴인데 내년 국제 원유 소비량은 일평균 170만 배럴로 예상된다. 그런 와중에 미국 최대 채굴 지역인 노스다코타는 생산량이 작년에 기존의 120만에서 100만 배럴로 생산량이 감소했다. 여기가 개발하기 가장 용이한 지역임을 생각하면 큰 타격인 것이다. 셰일혁명 초에는 하루에 1,500만 배럴을 찍었던 양이 이제는 1,000만 배럴로 하락하고 뚫을 곳이 더 이상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구심도 지속적으로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셰일 시추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바로 노동력이다. 위에서 설명했다시피 셰일은 일반 원유보다 개발 비용이 더 비싸다. 밸브 조절이나 굴착에는 숙련공이 필요한데 문제는 전반적으로 이 업계에서 인력은 2만명이나 부족하다. 무엇보다 인건비 문제는 2022~23년 동안 시추 비용이 12%나 증가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따라서 과거 100피트 당 7만 5천 달러였던 비용이 현재는 10만 달러까지 급증했으며 이는 곧 투자자들의 회수로 이어지고 있다. 그런 상황인 만큼 과거처럼 고유가를 무조건 셰일로만 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애초에 단순히 제재만으로 무너뜨린다는 생각은 러시아라는 나라가 자원 국가라는 지위를 무시한 것에 기인한 단면적인 발상이다)
지금 안 그래도 러시아 가스에 유럽이 묶여사는 상황에서 더 큰 문제가 터졌는데 바로 니제르 쿠데타다. 니제르는 세계 7위 가량 우라늄 생산국이고 특히 유럽에서는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일례로 프랑스 원전의 30%는 니제르산 우라늄을 사용하고 있다. 니제르 쿠데타로 인해 서방 국가들이 주도하는 나이지리아와 알제리를 연결하는 가스관 사업은 파토났고 게다가 니제르에 대한 우라늄 수출금지 제재가 논의되면서 러시아 가스 수급이 힘들어져서 공백이 생긴 에너지 안보를 원전을 통해 메꾸려던 유럽의 희망은 산산조각 나버린 상황이다.
중국에 대한 정책도문제점이 아주 많다. 단순히 친중이냐 반중이냐 이걸 가지고 비판하는게 아니다. 분명 바이든의 반도체법을 비롯한 반중 정책들이 중국 내 제조업 시장을 박살나는데는 공헌할 수 있다. 특히 지금까지 자유무역 체제 하에서 반도체 공급망은 중국, 대만, 한국, 일본 등이 미국과 협업해왔다. 그리고 그 중국에 반도체 공장으로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많은데 대표적인게 삼성전자와 SK고. 미국은 아시아 반도체 공급망에서 설계와 장비만을 담당하고 있었고 즉 쉽게 말해 국제분업 체제였다. 이는 트럼프조차도 크게 바꾸지 못했었던 부분이다.
그런데 바이든 정부 이후 상황이 바뀌며 오늘날 미국은 반도체 생산에서 중국을 점차 배제하고 대만이나 한반도에서 발생할 비상 사태에도 미국 국내 시장에서의 공급이 차질 없도록 정책 방향성을 전환했다. 실제로 순차적으로 아시아의 친서방 국가들은 미국으로 공장을 옮겨가고 있으며 심지어 삼성전자까지도 미 본토에 투자를 늘리겠다는 입장인 상황이다. 이걸 두고 미국 시장에서 한국 기업의 입지를 늘리고 대중 의존도를 줄일 수 있을 거라고 보는 시각들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은근 존재하는데 그렇게 단순하게 볼 만한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이는 미국이 앞으로 아시아 동맹국들과의 무역에서 수혜를 주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과 다를 바 없는 조치이기 때문.
정규재라는 사람을 무조건적으로 고평가하진 않지만 그의 통찰력 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쉽게 말하자면 한국 기업이 미국에 진출하면 미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게 된다. 그러면서 노하우와 기술력, 생산시설 접근권, 영업 기밀 등을 점차 확보한 뒤 그걸 바탕으로 미국의 생산력을 증대시키겠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돈을 벌어도 이익 환수가 가능해지고 자사주로 매입했다가는 소각해야 하니 전세계 주주들에게 배당으로 이익 배분을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는데 이 말은 쉽게 풀면 이렇다. "미국은 더 이상 그동안 자유주의 질서의 핵심국으로써 자신들이 희생하더라도 그걸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써왔지만 이젠 자국 이익 먼저 챙기며 같은 가치를 공유하더라도 상호 간 전략적 가치가 없는 국가에겐 혜택을 주진 않겠다"고.
그러한 미국의 러시아, 중국 견제 정책의 행보는 자유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정의로운 행위라는 명분으로 포장하면서 실상은 동맹국을 조금이라도 더 피를 빨아 자국의 이익을 챙기는 각자도생적 정책이라는 이중성이 공존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미국은 고물가 고유가로 고통받는 상황에서도 제조업 이전 정책과 셰일 가스를 활용해 유럽 만큼의 민생 파탄을 면하면서 그걸 또 무기로 삼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한국 역시 안 그래도 어려운 국내외적 위기였는데 여기에 더해 미국이 러시아, 중국 견제란 탈을 쓴 자국 우선주의 행보를 보이면서 수출은 줄어들고 무역 적자만 180억 달러에 달하게 불어나는게 가속화되었다. 우리와 서방 국가들은 미국의 의도대로 반도체, 제조업 산업들을 미국 내로 옮기지만 우리들 주도로 미국 시장을 공략하거나, 미국 정부로부터 한국 기업에 호의적인 혜택을 타내는게 불가능해졌다.
그러나 위기 속에서 오히려 같은 동맹국을 죽여가며 국익을 챙겨서 러시아, 중국을 이중봉쇄한 것은 역효과만 불러왔다. 다 떠나서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건재하기 때문이며 미국이 자국의 국력을 키우기 위해 시도한 동맹국 피 빨아먹기 및 대러, 대중제재 강요 정책이 서방 세계 전체의 민생, 경제 위기를 불러왔다. 저가 에너지 공급망과 저가 제조업 시장을 잡고 있는 러중 양국을 제재시킨 바람에 동맹국 경제만 초토화, 러시아는 이걸 기회로 가스를 제재망을 피해 우회적으로 수출해 경제적 이득을 챙기는 한편 중국은 '전랑 외교'라는 명목으로 바이든이 노골적인 적대를 하여 사이가 틀어진 중동 세계로의 진출을 하며 새 활로를 오히려 찾는 중이다.
나는 오늘날 바이든이 취한 정책이 빌 클린턴의 이중봉쇄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이중봉쇄 정책은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으며 이른바 '불량국가'들에 대한 동시 봉쇄가 핵심이다. 클린턴 당시에는 이란과 이라크라는 두 국가를 상대로 행해졌는데 이는 그동안의 어느 한쪽을 지원해 다른 한쪽을 견제한다는 기조와는 차이가 컸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서 이는 철저히 실패했으며 사담 후세인이 무너진 이라크는 시아파 세력이 집권하고 이란은 여전히 제재 속에서도 반미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이어지며 효과는 0%였다.
이러한 바이든의 대러, 대중 봉쇄정책은 과거 소련을 무너뜨렸던 냉전 시절의 미국 대통령들처럼 자기도 한번 해보려고 저러는 거 같은데 이미 "메이드 인 차이나"와 러시아의 저가 에너지 없이는 유지가 불가능한 세계 경제 구조 특성상 이 짓거리는 다른 국가들의 살인적인 물가 및 유가 상승으로 이어져 부의 양극화를 극대화시키는 참사를 만들 뿐이다. 더 나아가 저렇게 세계 경제를 수렁에 빠뜨린 대가로 너무나 세계화 시장에 익숙해졌고 이걸 주도하기까지 했었던 미국 경제까지도 급진적 파괴로 다같이 폭사 엔딩으로 갈 뿐인 의미 없는 행위다.
바이든의 외교 대참사로 미국은 더더욱 국제정세에서 어지러운 행보를 보이며 러시아가 다극 체제 구축에 성공하느냐와는 별도로 중국과 함께 추진한다는 브릭스 통화라는게 달러의 위치에 위협을 가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 미국 국내에서도 트럼프 전 대통령을 기소하여 국회의사당 폭동 당시에서 별반 나아진 것도 없는 수준, 아니 더 악화된 지경이 될 정도로 미국 내 사회 갈등이 극에 달한 상황이다. 트럼프 뿐만 아니라 드산티스라는 존재도 2024년 대선에서 바이든의 행보의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미국의 우방국 프랑스도 친중적 행보를 보이며 다소 엇박자를 내는 등 바이든의 일방통행에 대한 반발도 서방 세계에서 아예 안나오진 않는다.
다음 미국 대통령은 아마 역대 대통령 중에서도 상당히 힘든 자리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을 종전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일 것이며 점점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성장 중인 중국을 향해 아무런 방어책도 없이 무작정 아시아 국가들을 편갈이시켜 오히려 대중 포위망을 약화 및 이탈 현상을 심화시키는 행위를 중단한 채 이중봉쇄라는 헛된 망상에서 벗어야 한다. 이게 선결되지 않는다면 미국이라는 나라는 고립주의로 가든 팽창주의로 가든 최소한의 패권조차도 위협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