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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15. 2023

과거 군사정권, 오늘날 21세기의 한일관계와 시사점

한일관계의 변화 속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

https://youtu.be/VVyEtnPiadE

군사정권 시기 한일관계를 은근 21세기의 한일관계에서의 하나의 모델로 써먹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지들이 많이 보인다. 긍정적인 요소, 부정적인 요소를 모두 검토하는 의미로써의 모델이라면 뭐 난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외교 정책은 양면성이 있을 수 밖에 없기도 하고 당대에 무조건 훌륭한 외교하다고 평 받은 외교도 후일에 비판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전통주의 사관에서는 철저히 실패한 사례였던 체임벌린의 "우리 시대의 평화"로 대표되는 부정적 평가에 대해 이후에 수정주의 쪽 학계에서 재평가가 이뤄지고 또 그걸 다른 이들이 반박하는 등의 여러차례 검증이 이뤄지며 아직까지도 평가가 나뉘는 중이다.


그래서 군사정권 시기의 한일관계가 당대로써 옳았는지는 여전히 정치 성향별로 의견이 갈릴 것이다. 이 글에서도 군사정권 시기 한일관계에 대한 내 개인적인 자세한 평가는 하지 않겠으며 굳이 내 입장을 밝힌다면 당시에 자존심이 상할 문제가 다소 있었고 이 부분은 비판측이 화낼 만도 하다 생각하지만 시대적 한계 속에서 우리의 국력상 불가피한 측면도 없진 않았다고 생각한다. 뭐 그렇지만 여기서 분석하는 내용은 군사정권 한일관계에 대한 찬반론 얘기가 아니다. 바로 군사정권 시기의 한일관계의 모델을 분석하고 그에 따라는 양면성, 시사점을 얘기해보고자 한다.

일단 군사정권 시기 한일관계에서 일본이 21세기 이후보다 한국에게 우호적으로 대한 건 사실이다. 한일기본조약도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청구권 포기와 과거사에 대한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이끌어내지 못해 아쉬울 뿐이지 일본 입장에선 있어서는 나름대로 호의를 베풀었던 측면도 없다고는 못한다. 일본은 무상 3억+유상 5억을 받은 한국 외에도 동남아 국가들에게도 돈을 줬지만 준 이 중 이걸 가장 효과적으로 잘 사용한 건 한국이었고 이거를 주면서 제공해준 기술이 경제성장에 큰 발판이 되었다. 한일기본조약이 한국 입장에서는 과거사 청구권을 포기한 굴욕으로 받아들여지겠고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결과론적으로 일본이 저때 줬던게 나름 도움이 되었다는 부분도 있었다.


어쨌든 본론으로 돌아와 이게 가능했던 것은 냉전기 동안 일본 친미보수파는, 한국도 일본과 같은 미국 측의 자본주의 국가(서방 진영)의 국가로 존재하므로 북한보다 한국을 한반도 유일의 국가로 지지하는 친한 스탠스를 취했던 것에 있다. 그 그룹에선 한일수교에 큰 역할을 했던 기시 노부스케와 후쿠다 다케오 같은 자민당 정치가들이 가장 존재감이 크고 정계 내부 뿐만 아니라 일본 정계와 한국 군사정권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에는 독립축하금이나 기업에 의한 기술 이전 및 거액의 정부 간 경제 협력(ODA, 차관) 등도 행해졌다.


박정희-기시 관계로 시작된 군사정권과 일본 자민당의 관계는 일본에서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가 집권하고 한국에서 전두환이 정권을 잡으며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나카소네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로 한국에서 인식이 좋지는 않다. 그도 그럴게 나카소네의 참배는 일본 전후 총리 중에 최초였으며 그는 태평양전쟁의 참전자였다. 당연히 최근까지 한일관계에서도 문제가 되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 문제도 이때가 본격화의 기점이다. 나카소네는 불침항모론, 대소련 3해협 봉쇄론 등 요시다 노선에서 벗어나 강력하게 국제국가화 및 자유진영에서 미국의 확고한 지지자로써의 재무장화를 주장했는데 이것이 21세기 이후 일본 사회 우경화의 발판이 된다.


전두환 본인도 회고록에다가 썼던 내용이지만 1983년에 전두환이 레이건을 이용해 일본 정부에게 방위분담금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을 때에 40억 달러나 되는 차관을 나카소네가 줬다. 그 전까지 김대중 구속 문제로 신군부와 전임자 스즈키 젠코 총리 사이에 긴장감이 나돌던 것을 생각하면 이때 나카소네 총리는 쇼와 천황과 함께 과거사에 대한 사죄도 하고 직접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그랬기에 1980년대 동안에 한미일 관계와 전두환-레이건-나카소네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전두환과 나카소네 시절 한일관계는 김대중-오부치 시절 이전까지 가장 사이가 좋았던 시기였다.

한마디로 얘기해 군사정권 시기 한일관계가 좋았던 것은 냉전의 이념 대립 속에서 일본은 미국과 함께 한국을 경제적으로 성장시켜 한국을 방파제로 삼고자 하는 의도에서 일본 친미보수파가 수혜를 베푼 측면도 있다. 그들의 의도대로 결과적으로는 한국이 자유진영적 색채를 띄는 국가가 되어 중국과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양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도 철저한 반공주의로 자본주의의 방파제 역할을 수행했다. 그에 따라 일본은 한국과 좋은 관계를 과시하며 과거의 침략국이었다는 이미지를 세탁하고 또 더군다나 한국이 수출주도성장은 원자재를 수입하여 완성품을 판매하는 것인데, 일본은 한국에 원자재를 팔아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릴 수 있었던 덤으로 이득을 더 챙겼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한 때 일본의 공산화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던 한국은 어느덧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성장했고 일본의 전후 처리를 문제 삼을 만큼의 발언력도 생겨나게 된다. 일본 우익들이 그동안 과거 귀축이라 여겼던 미국을 자신들의 부활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해 이용한 전력이 있었듯이 한국을 국익을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활용하며 친한적 행보를 보여왔던게 더 이상 안 먹힐 시기가 찾아온 것이었다. 게다가 1980년대 나카소네 이후로 역사수정주의 문제가 지속된 것과 맞물리며 한국인들은 일본에 이제 할 말을 해야 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21세기가 시작되고 바로 한일관계가 나빠진 것은 아니었다. 세기말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이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도 불구하고 계승되어 김대중 정부 동안은 한일 월드컵을 개최하는 등 관계가 여전히 좋은 편이었고 보수 방류이던 고이즈미조차도 햇볕정책 분위기에 편승해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추진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김대중보다 민족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는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과거사 문제로 양국 간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일본 우익들은 새로운 카드를 꺼내든다. 바로 반한이라는 일본 내 내셔널리즘 요소를 자극할 만한 카드였다. 이처럼 반공 역시 냉전이 끝난 시점에서 더는 먹히지 않게 되면서 개헌, 반한이라는 새로운 정책 지향점을 찾아간 것이었다.


일본 우익들이 한일관계에서 한국에 온정을 베풀었던 건 자국의 국익적 차원의 문제와 더불어 당시 관계는 수직구조였기에 가능했었던 냉전 시대의 일이었다. 현 시점에서 한일관계는 일본이 무조건적으로 100% 우위에만 설 수 없기에 보다 양자관계로 바뀌었고 일본 입장에서는 그동안 말을 잘 듣던 아우가 잘 살게 되니까 등 뒤에 칼 꽂으려 하는 상황으로 인식된 것이다. 일본이 여러 사안들을 선도하면 그 뒤를 한국이 따라야 하는데 이제는 그 위치가 수직적 구조에서 상대적이지만 엇 비슷해졌기에 관계에 있어서 자꾸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것이고 이는 일본 우익들이 냉전이 끝난 상황에서 더 이상 안 먹히는 반공이라는 소재를 버리고 반중, 한국 견제로 갈아타게 되는 배경이다. 즉 과거 냉전 시기 한국에게 수혜를 베풀던 일본 우익들의 세계관은 다소 아래로 내다보는 듯한 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는 셈.

일본에게 가장 큰 안보위협은 한국보단 북한과 중국이다.

다만 일본 우익들이 한국을 최대 안보 위협으로 인식하는 건 아니다. 해상초계기 사건, 한일 무역분쟁이 연달아 터지면서 한일 안보갈등 논란이 생겼긴 하지만 일본에게 가장 중요한 안보 문제는 동맹국의 우방국인 한국도 아니고 맨날 동해로 미사일 쏘는 북한도 아닌 바로 중국이다. 한국은 그래도 2023년 기준 GDP 3위와 12위라는 격차가 있긴 하지만 중국은 무려 2위이고 군사력도 막강하기 때문에 진짜로 가장 가상적국에 가까운 국가일 것이다. 그에 비해 지금으로썬 한일관계가 좋은 편인데다가 한국 정부가 미국 진영에서 이탈해 중국에게 붙어 일본을 위협하는 일을 벌일 가능성이 없다시피한 정세인지라 일본 우익의 반한 스탠스가 곧 한국을 가상적국으로 인식하는 논조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 우익 세력, 정확히는 자민당 중심으로 본다면 그들의 반한 스탠스는 한국에 견제구를 날리고 국내 지지율을 규합하는 용도로써 활용될 것이며 크게 안보 위기로까지 번질 것이란 우려는 기우다.


이 글의 결론은 군사정권의 한일관계 모델은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에 딱 그대로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군사정권 당시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쭉 이용하고자 하는 일본이 무조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는게 외교의 본질이란 상대방을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우리도 이걸 배울 필요가 있다. 나는 이 글을 통해 단순히 친일, 반일 중 무엇이 옳다고 주장하진 않을 거고 한일관계에 대한 내 입장은 간단히 말해 회색분자에 가깝다. 다만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무조건적으로 일본이 옳다는 친일과 일본과 무조건 적대해야 한다는 반일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유연하게 사고하며 과거의 한일관계에서 어떠한 교훈과 문제점을 인지 및 국익을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심해볼 수 있었으면 한다.


p.s. 광복절이라 상당히 민감한 주제일 수도 있지만 과거사를 비롯한 한일관계 현안들이 현재 굉장히 큰 이슈이기에 다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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