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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21. 2023

바그너 그룹 쿠데타, 진짜로 위험한 사실

단순한 쿠데타 사건이었을까?

https://youtu.be/477jdFG4cOU

바그너 그룹 쿠데타 사건, 우리에게도 워낙 잘 알려진 사건이다. 아르툐모프스크 전투를 계기로 쇼이구-게라시모프 라인의 기존 실로비키와 바그너 그룹이라는 용병 기업의 대표인 프리고진 사이의 갈등이 격화된 끝에 프리고진이 칼을 빼들고 러시아 정부에 반기를 든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은근 나토나 친우 오신트 쪽에서는 큰 기대를 했는지 러시아 내부 분열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는 식으로 얘기하며 설레발을 치기도 했었다.


이 사태의 결론은 바그너 그룹의 쿠데타 시도(?)가 좌절되며 끝났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그런데 이 쿠데타는 뭔가 처음부터 이상했다. 그렇게 잔인하게 정적을 짓밟던 푸틴이 예외적으로 프리고진은 크게 조지진 않았으며 러시아 본토에 남은 바그너 그룹 대원들도 면책을 받고서 벨라루스로 이동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쿠데타 와중에도 모스크바 진입을 위한 계획적인 행동이 아무것도 없었다. 단순히 정권 탈취를 목적으로 하는 쿠데타라고 보기엔 상당히 애매한 지점이 많은 이 사건, 정확한 성격은 무엇이고 또 러시아는 어떻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사태를 바라보았는가?

일단 서방은 바그너 쿠데타에서 프리고진에게 놀아났다. 서방 세계는 바그너 쿠데타가 러시아의 정치 대격변을 불러오고 이것으로 바그너 그룹을 자신들의 의도대로 써먹을 수 있을 것이라 보았지만 결국 서방은 프리고진에게 놀아났다. 비록 바그너 그룹은 대부분 벨라루스로 이동하였기에 당장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빠졌지만 그들은 여전히 살아있으며 니제르 쿠데타를 통해 다시 제3세계를 중심으로 서방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다는 걸 드러냈다.


시아는 의외로 어떤 면에서는 서방보다 치밀하고 장기적으로 판을 짜는 능력이 있다. 대표적인게 2015년 시리아 내전 개입과 북서부 반군 근거지를 향한 대규모 폭격으로 유럽행 난민 발생을 가속화시킨 것이었으며 스코틀랜드 독립 사태 국면에서는 의료 보험과 축구팀 상실을 근거로 선전하였다. 2016년 브렉시트 사태에서는 RT가 탈퇴 설득 켐페인을 벌이고 419개의 트위터 계정을 활용해 브렉시트에 관한 논의의 장의 3분의 1을 장악, 결과적으로 탈퇴 성공을 이끌어냈다. 또 동시에 프랑스의 야당 정치가 르펜으로부터 크림반도 합병을 인정받는 동시에 대신 정치자금을 지원했고 러시아가 유럽 우익 포퓰리스트와 손잡고 진행한 반 난민 정서 확산은 러시아가 유럽 정치 내부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발판을 제공한 것이 되었다.


바그너 그룹의 벨라루스행, 뭐 어찌보면 러시아와 바그너 사이의 갈등으로 벌어진 실책이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무조건적으로 나쁘게 볼 이유는 없다. 체스판으로 비유하자면 장기말 하나가 적의 배후로 들어간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핵무기도 배치되어 있기에 바그너라는 군사조직이 들어간 것은 사실상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양쪽의 위협으로 작용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뭐 당장은 전선에서 바그너가 빠졌는지라 반격을 해도 어느정도 먹히겠지만 반대로 보자면 우크라이나의 후방은 이전보다도 더 위험해진 상황인 것이다.

벨라루스군을 훈련시키는 바그너 그룹

물론 이게 바그너 그룹이 벨라루스와 손잡고 우크라이나의 후방을 침공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고 보기엔 지나친 비약이라고 본다. 일단 러시아 입장에서는 바그너가 벨라루스로 이동한게 써먹을 수 있는 지점도 분명 있지만은 프리고진과 쇼이구-게라시모프 라인과의 갈등은 사실인데다가 지금 당장 우크라이나군의 후방으로 치고 들어갈 이유도, 명분도 크진 않다. 일단 쇼-게 라인과의 갈등이 해결되거나 푸틴이 러시아 군부 실로비키 집단을 누르면서까지 바그너 그룹에게 독자적인 권한을 주지 않는 이상 프리고진이 바로 오늘이나 내일에 우크라이나 전선에 복귀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뭣보다 벨라루스 방면에서 키예프를 협공한다는 것은 오히려 불필요하게 확전하여 명분도 없고 실리도 못챙기는 행위일게 자명하다.


하지만 프리고진의 벨라루스행은 결과적으로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는 우크라이나와 서방 세계에 해가 될 확률이 높다. 당장이야 전선의 바그너 그룹 대원들이 다 빠져서 반격을 해볼 만 하겠지만 말이다. 바그너의 존재로 나토는 벨라루스에 도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이는 우크라이나를 포위함과 동시에 서방의 행동에도 제약을 거는 수단이 되었다. 또 프리고진은 비록 러시아에서는 퇴출되었지만 벨라루스라는 새 거점을 확보하였기에 니제르 쿠데타, 남수단 내전, 중앙아프리카에서의 활동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반서방 세계의 범위를 넓히고 푸틴과의 "손절"을 통해 블랙옵스로서의 성격을 강화 및 국제사회에서의 도덕성 측면에서 러시아에게 책임을 덜어주는 전략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렇게 벨라루스로 거점을 옮겨가며 바그너 그룹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들이 일으켰던 쿠데타가 "진짜" 정권 전복 자체를 의도하고 일으킨 쿠데타는 아니었기에 가능할 것이다. 우선 사태 당시에 바그너랑 러시아군이 전투가 있었다는 증거부터가 모호한데다가 확실하지 않으며 그나마 증거로 나온 전투 결과들도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애초에 진짜 쿠데타였다면 프리고진은 수도 모스크바에서 정변을 일으켰을 것이고 당일에 바그너 그룹이 진격한 곳은 모스크바가 아닌 쇼이구와 게라시모프가 있었던 로스토프였다. 따라서 나토의 왜곡과는 달리 프리고진의 "정의의 행진"은 쿠데타나 반란이라기 보단 무력시위로써의 성격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쿠데타(?) 사태 당시 바그너 그룹 병사들

사실 쿠데타 성공의 가장 커다란 조건이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바그너의 쿠데타가 진짜 정권을 뒤엎기 위한 쿠데타라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된다. 왜냐하면 사태 당시나 지금 러시아나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는 아니기 때문. 또 쿠데타는 비밀스럽게 움직여서 장악하고 제거해야 하는데 바그너 쿠데타는 대놓고 무력시위 한다고 광고하면서 움직였다. 결정적으로 진짜 쿠데타를 하려면 최소한 한두달 전부터 전방에 있는 병력들을 수천명씩 끌어모으고 관공서 점령 계획도 세부적으로 세워서 사전 준비해야 하는데 실제로 그들이 보였던 쿠데타라고 불리는 행보는 정권 장악을 염두에 두고 했다기엔 너무 어설펐다.


무엇보다도 설령 정권 장악을 목적으로 쿠데타를 했다 한들 바그너에게는 푸틴을 대체할 위상을 가진 인물이 없었다. 프리고진은 핫도그 장사하던 전과자에서 용병 기업의 CEO까지 오른 사람이라 말 그대로 정석대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도, 나폴레옹과 같은 영웅주의자와도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는 인생을 막 살았던, 소위 말하는 "양아치 사업가"였다. 대의명분이라는 차원에서도 바그너가 쿠데타를 할 만한,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는게 일개 용병 회사가 정권 전복을 시도했을 때 러시아 연방 내 어떤 공화국이 지지를 하겠는가 싶다. 사실상 바그너 그룹은 쿠데타로 정권 전복을 시도할 명분도, 여건도 안되는 상황이었다. 다 떠나서 애초에 계약 대상의 신뢰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용병 기업이 진짜로 어느 한 나라를 전복하려 시도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안되는 건 서로마의 게르만 용병 대장 오도아케르의 최후가 잘 보여줬다.


결정적으로 푸틴은 프리고진이 처벌 안받고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벨라루스로 이동하는 걸 묵인했다. 진짜 정권을 전복하려는 급의 쿠데타였다면 넴초프를 골로 보내고 나발니를 감옥에 보낸 전적이 있는 푸틴이 곱게 보내주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러시아 정부 측이 바그너 지휘관의 교체를 시도하거나 프리고진과 일반 대원들 사이를 갈라치기 하는 행보를 보이지만 푸틴이 정적을 대하는 방식을 알면 프리고진은 상당히 관대하게 넘어갔음을 알고 있다. 아마 쿠데타 행진 종료 후 러시아 정부와 바그너 사이에 협상이 있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위에서 언급한 벨라루스행이나 "블랙옵스" 임무 수행, 즉 니제르 쿠데타 시도나 아프리카에서의 군사 작전 같은 임무를 묵인해주기로 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예상한다. 프리고진을 살려주는 대가로 러시아 정부도 뭔가 패를 쥐어야 하니 말이다.

아프리카의 바그너 그룹

어찌 되었건 벨라루스에 바그너 그룹이 배치된 것의 큰 의의는 일부 친러 오신트가 말한 돈바스와 키예프 양쪽으로의 협공 때문이 아니다. 가장 중요한 의의는 바로 만약의 상황에 나토군이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최악의 경우의 가능성 자체를 예방적으로 틀어막았다는 것에 있다. 아직까진 가능성이 낮다만 만약 벨라루스 방면에서도 충돌이 시작된다면 특별군사작전이 전면전으로 바뀌는 순간이 될 거고. 따라서 지금 상황으로서는 음모론에 가까운 얘기지만 이러한 일련의 상황 속 러시아는 이 전쟁을 단순히 탈나치화를 위한 특별군사작전이 아닌 자유주의, 계몽주의라는 근대성에 기반을 둔 서방 세계 자체에 저항하는 전면전을 구상하고 있는게 아닌가 라는 의구심도 살짝이지만 있다.


실제로 러시아의 유라시아주의 철학자 알렉산드르 두긴은 '특별군사작전의 6단계'라는 글에서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면 그때부터는 교착 상태에 접어들어 양측은 결정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게 되는데 여기서 특별군사작전은 전쟁으로 전환되어 사실상 정규전에 뛰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이 전쟁의 본질을 서방 세계와의 싸움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는 피하는게 불가능한 숙명이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확언할 수는 없지만 러시아는 이번 바그너 쿠데타 사건와 러시아의 일련의 행보는 푸틴의 더욱 자국 우선주의 행보를 강화하는 것의 기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반대파들로 분류되는 이들이라고 해서 서방 세계에 따를 생각이 없다는 걸 보여주는 해프닝이었다.

러시아 국방부에서 만든 SMO(특별군사작전) 홍보용 사진

이번 전쟁을 지지하는 러시아 지식인들은 우크라이나 자체를 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침공한 상황에서 뭔 소리냐고 하겠는데 정확히 말해 우크라이나는 그저 도구일 뿐이고 더 큰 배후에 서방 세계와 자유주의 문명이 존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정확히 말해 서방 세계는 우크라이나의 반러 전사들을 키워서 싸움을 붙이는 대리전을 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러시아는 단순히 반러 정책을 펼치는 우크라이나 하나를 굴복시키고 노보로시야를 획득하는 것은 애초부터 목표의 깜냥도 안되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진짜 이루기 싶은 것이란 "루소포비아"로 가득찬 서방 중심 국제질서를 와해시키고 카를 슈미트가 얘기한 베스트팔렌 체제에 기반한 새로운 다극적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것에 있다. 그런 목표를 인지한채 유럽 난민 사태와 브렉시트부터 돈바스 전쟁, 시리아 내전, 우크라이나 침공, 바그너 쿠데타, 니제르 쿠데타까지 러시아를 둘러싼 일련의 사건들을 바라보면 이해가 쉬울 거다.


오늘날 러우전쟁은 1차세계대전식 방어전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기에 무의미한 소모전이 지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여기서 변수가 하나 있다면 바로 어느 쪽이 확전을 하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변수 중 러시아 진영 쪽에는 바그너 그룹과 벨라루스가 중심에 위치한다. 나는 당장 벨라루스 방면에서 바그너 그룹이랑 벨라루스군이 진격하여 배후의 키예프를 칠 거라고 보진 않지만 벨라루스 내의 바그너 그룹의 존재, 그리고 그곳에 배치된 러시아의 핵무기는 나토군이 직접 우크라이나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하는 것과 더불어 후방 침공에 대한 공포를 조장 및 위협하는 것 정도의 전략으로서는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


이 글에서 바그너 그룹의 벨라루스행이 큰 그림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비약일 가능성도 물론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러시아가 보였던 행보를 생각하면 사실 놀라울 것은 없는게 역사적으로 러시아를 주도해왔던 것은 군대와 정보기관이었다. 항상 정보기관들이 전략 목표와 세부적인 작전들을 지시한다면 군대는 직접 싸우는 역할이었다. 지금 러시아의 대통령 푸틴부터가 악명 높은 KGB 출신이며 연방군 소속 GRU 출신들도 정부의 상당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알렉산드르 보르트니코프 FSB 국장도 과거 FBI 국장이었던 존 에드거 후버 못지 않게 강력한 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위치이다.

브렉시트와 푸틴

따라서 확대 해석일 가능성이 있는 것과 별개로 이러한 예측을 할 수 있는 건 러시아라는 나라의 특성을 조금만이라도 아는 사람인 이상 쉽게 할 수 있다. 냉전 당시에 KGB는 망명자 유리 베즈메노프의 증언처럼 서방 세계에 상당 부분 첩보망을 뿌리 내리는데 성공했으며 소련 붕괴 이후로 푸틴은 2015~2016년 브렉시트 국면에서는 국민 투표 과정에서 반 EU 세력에게 자금을 뿌리거나 트위터, 페이스북 계정들을 활용해 철저히 공작질을 감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또 르펜을 아군으로 만들고 오르반을 이용해 유럽연합을 분열시키며 이탈리아를 반 EU 국가로 변모시킨 것도 러시아가 2010년대 안에 전부 개입하였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는 대외공작들이다. 뭐 이건 CIA도 마찬가지인 행보다만. 어쨌든 이러한 의혹들을 가진 행보를 보여왔기에 러시아라는 국가가 바그너를 둘러싼 사태에서 아무런 대책이 없이 무대뽀로 나왔을 확률은 낮다고 볼 수 있다.


국제관계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세계 최강국 천조국과 그들에 저항하는 반서방 국가들의 구도로만은 볼 수 없다. 러시아와 중국 또한 하나의 객체임과 동시에 국제정치라는 게임에 참가하는 또 다른 플레이어라는 관점으로 인식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런 국제관계에서 정의를 찾으며 우리는 옳고 저들은 악이라며 선악을 나누는 방식으로만 인식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오로지 국제관계를 지배하는 것은 "힘" 뿐이며 이는 반서방 세계 뿐 아니라 자유주의와 인권 외교를 지향한다는 서방 세계 역시 해당되는 문제다. 오늘날 시대의 격변 속에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선악이 아닌 하나의 체스판 게임에서 가지고 있는 장기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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