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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ug 22. 2023

러시아와 중국의 "중앙아 그레이트 게임"

당장은 괜찮지만 잠재적인 갈등 요인은 분명히 존재하는 중앙아시아

https://youtu.be/K2jP-xO8SgQ

러시아와 중국은 겉으로는 전략적 동반자, 더 나아가 동맹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하다. 이는 2010년대 이후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 국가 모두 두면서 더욱 심화되었고 아예 몇몇 언론에서는 러-중 동맹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인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러시아나 중국이나 똑같이 친북 국가이고 우리의 동맹국인 미국 싫어하는 나라나 인식되기에 아예 "북중러"로 묶어 표현하는데 이게 사실 지나치게 국제정세를 단순화하긴 해도 편한 분류법이긴 하다.


그러나 러중관계는 겉으로는 전략적 동반자이면서도 뒤로는 양국 모두 서로가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 지점이 "러중동맹" 혹은 "북중러"라는 인식만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지점이기도 하고. 그리고 러-중 사이의 가장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은 지정학적으로 양국의 사이에 있는 지역인 바로 중앙아시아다. 이 글에서는 러시아와 중국의 중앙아시아 "그레이트 게임"을 분석해보고자 한다.

과거의 적에서 오늘의 동지가 된 러중관계


우선 러중관계의 기본적인 배경지식부터 설명하겠다. 냉전 시대에는 다들 알다시피 중소국경분쟁 같은 일들이 터지며 중소관계가 파탄났었고 양국은 서로가 공산권의 종주국을 자처하며 싸웠었다. 그러면서 소련은 마오주의에 영향을 받은 게릴라 체 게바라가 오지에서 죽을 때도 아무런 지원을 안했고 중국과 대치하는 인도를 향해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반면 중국은 소련을 엿먹이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과 싸우는 무자헤딘에게 무기를 공급했으며 닉슨 미국 대통령이 핑퐁외교를 펼치며 자신들에게 접근하자 소련을 견제하는데 적극 참여했다.


이러한 대립이 끝난 것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였으며 크라스노야르스크 선언으로 중소분쟁은 완전히 종식되었다. 소련 붕괴 이후 나토가 동진해오자 위협을 느낀 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으로 위기를 타개하고자 하였고 중국도 국경문제가 끝나면서 더 이상 러시아와 대립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며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된다. 그리하여 1996년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성립되었고 중국은 미국의 MD 체계에 대항할 목적과 더불어 동북아시아에서의 미군 활동의 억제를 위해 러시아와 기꺼이 손을 잡는다.


한편 냉전 이후 미국은 캅카스와 중앙아시아에 영향력을 확대해왔고 9.11 테러를 통해 아예 유라시아 내륙으로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는 중앙아의 기존의 패권국이었던 러시아와 새롭게 떠오르는 국가 중국 모두에게 위협이었고 양국은 상하이 협력기구(SCO)의 성명을 통해 중앙아 내 미군 철수를 압박한다. 어차피 테러와의 전쟁 대부분이 진행되어 그곳에 굳이 군대를 둘 이유도 없어진 현실적인 여건은 특히 철수 요구의 중요한 명분이 되었고 결정적으로 우즈베키스탄 마저 2005년 안디잔 사태를 기점으로 반미 친러 노선으로 전환, 그해 11월 미군은 우즈베키스탄 공군 기지로부터 철수하면서 러시아와 중국의 1차적인 승리로 끝난다.


양국의 관계는 점점 가까워졌다. 무기거래 규모는 30억 달러를 넘어섰고 주목할 점은 이러한 양국 간의 막대한 양의 무기 교역은 단순한 무기 이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러시아의 중국에 대한 무기 판매는 전략적인 의미를 가진 무기가 주종을 이룬다. 1992년 10억 달러에 26대의 Su-27 전폭기를 중국이 구매한 것을 시작으로 1996년에는 22대를 추가로 구매하였다. 그리고 2000년 12월는 중국이 러시아에게 요청한 최신예전투기 Su-30MK 10대(1999년 18억 달러 규모의 첨단전투기 40대 도입계약의 1차 인도분)가 중국에 인도된 것을 비롯하여, 50대의 수호이 전투기, 30대의 Su-MKK, 10대의 Su-27UBK 등이 인도되었다.


러시아와 중국의 협력을 관찰함에 있어 상당히 중요한 것은 양국의 합동 군사훈련이다. 2005년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양국군은 블라디보스토크와 산둥성 일대에서 했으며 핵무기 탑재 가능한 Tu-22M 전략폭격기부터 전폭기, 핵잠수함, 구축함 등이 동원되었다. 테러리즘에 대항한다는 명목으로 진행된 이 합동군사훈련에는 총 1만명이 참여하였으며 무장세력의 폭동에 대한 대응 훈련 등을 진행했다. 특히 센카쿠 열도 부근 훈련은 미일동맹을 겨냥한게 아니냐는 시선도 있다. 이처럼 러-중 관계는 전략적 동반자로써의 성격이 매우 강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러중관계의 결속력은 약하다


다만 러중관계가 한미관계나 미일관계 만큼 결속력이 강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동맹 수준으로 발전을 하지 못한 것이며 어떤 면에서는 북중관계 이상으로 노골적으로 서로의 이익을 관철시키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애초에 양국이 역사적으로 청나라 시기 네르친스크 조약 때부터 싸워왔던 것이나 중소국경분쟁 당시 핵전쟁까지 각오했었던 해프닝을 보면 100% 이해관계에 따라 손잡았다고 밖에 볼 수 없는데 그래서 양국 국민 정서 사이에는 딱히 친근감 같은게 그리 크지도 않다.


러중 군사협력 관계는 한계점이 큰 게 러시아는 첨단 군사기술 유출 우려로 제공을 꺼려왔고 중국은 그 와중에도 받아온 기술로 국산화를 성공하고 원본 성능을 초월했다. 무단도용 문제도 있는게 1999년 중국은 러시아와 Su-27 전투기 도입 계약을 체결한 뒤 러시아의 기술력으로 J-11B, J-11D, J-15 등 파생 카피 기종을 만들어 기술을 무단으로 사용했다. 2015년 러중 간 Su-35 판매 협상에서는 중국이 무단으로 모방 생산할 경우 거액의 위약금을 무는 조항을 포함하기도 했으나 현 시점에서 우크라이나 문제 덕분에 전략무기 거래 얘기도 나오고 있다.


연해주에 대한 중국의 공격적인 행보도 위험 요소다. 1860년 2차 아편전쟁으로 맺어진 베이징 조약으로 연해주는 청나라에서 러시아로 넘어갔는데 이 덕분에 중국은 동해 쪽으로 나아갈 출구를 잃었다. 이는 곧 동북 3성 발전 저해요인이 되었다. 그리고 극동 러시아 인구는 830만 명인데 동북 3성의 인구는 1억 명에 달한다. 당장 연해주가 중국의 텃밭이 될 확률은 높지 않겠지만 그들이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키워가고 있다. 지난 10년간 중국의 대러시아 투자는 9배가 늘어 2017년 138억 달러에 달했으며 대부분은 천연자원이나 농업에 집중했다. 그리고 이러한 공격적인 투자는 러시아에게 자원 수탈로 받아들여질 여지가 충분하다.


이것이 잠재되어 있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갈등 요인이다. 지금 당장은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러시아에게 중국이 상당히 필요한 존재가 되었기에 이런 협력 관계가 계속 강화되고 있지만 이러한 갈등 요인이 부각되는 상황이 온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러시아의 중앙아시아에서의 패권


지금까지 러-중 관계는 2010년대 이후로 더욱 크게 발전되고 있는 중이다. 양국 교역량은 2018년 전년대비 24.4% 성장하여 1,082억 달러를 기록하였으며 특히 중국의 에너지 계획에서 러시아는 우선적인 협력대상국으로 여겨지고 있다. 러우전 국면에서는 양국이 서로 힘을 합쳐 더더욱 밀착하여 브릭스 단일 화폐 추진처럼 서방 패권에 들이밀 칼날을 갈고 있으며 최근에는 러시아 측에서 군항인 블라디보스토크 지역을 중국 해군에 조차하여 베이징 조약 이후 연해주를 잃었었던 중국이 다시 한번 그곳에 군함을 정박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중앙아시아에서 만큼은 미국이라는 존재가 없기에 러시아와 중국 모두 패권을 두고 다투고 있다. 소련 시절 자국 영토였었던 중앙아시아의 자원을 적극 활용해온 러시아는 다수의 러시아인이 거주한 지역으로서 중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행사해왔다. 현재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러시아로부터 직접투자, 노동이주 및 송금이라는 영향을 받고 있는 등 러시아 경제권에 상당히 밀접해있다. 러시아 기업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자원개발이나 통신 등 중앙아시아의 주요 산업부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여 러시아-중앙아시아의 경제적 협력관계를 이어가게끔 하고 있다.


러시아 기업 중 "베온"(VEON)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지역에서 비라인이라는 브랜드로 사업을 하며 특히 카자흐스탄에서는 전체 중 50%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하였는지라 그 지역에서 디지털 인프라 개선과 디지털 서비스 제공을 담당하는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러시아 국영 가스 회사 가즈프롬은 우즈베키스탄 가스 회사인 우즈벡네프트가즈라는 곳과 협업하여 천연가스 채굴 사업을 하는 한편 같이 석유 화학 제품을 생산해 판매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계은행이 지난 2018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중앙아의 최대 빈국인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국내총생산에서 대외송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35.2%와 30.7%를 차지하였는데 이 수입의 대부분은 러시아에서 유입되는 자금들이었다. 이 말은 무엇이냐면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러시아 경제에 종속되었다시피 했다는 것이고 러시아 경제가 불황일 경우에는 대외송금이 줄어들어 경제가 악화될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나마 사정이 좀 나은 우즈베키스탄만 해도 러시아 경기의 불황으로 일자리가 감소해 다시 국내로 인력들이 돌아오면서 실업 문제가 상당히 어려운 사회 문제로 부상하기도 했었다.


러시아가 중앙아시아에서 패권을 유지하는 방법은 해당 국가들의 정권들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주는 것에 있다. 가령 2010년 키르기스스탄 반정부 소요 당시 사태를 해결한 것은 러시아 정부였으며 과거 우즈베키스탄의 카리모프 정권이 안디잔 학살로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는 상황에서도 생존했던 것은 푸틴의 비호 덕분이었다. 2022년 카자흐스탄 시위 당시 그곳에 투입된 러시아 공수군은 위기에 처한 토카예프 정권을 성공적으로 보호하면서 중앙아 독재 정권 사이에서는 상당한 신뢰를 얻게 되었다. 러시아가 이렇게까지 중앙아시아 패권 유지에 나서는 것은 중앙아 또한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러시아 문화권 안에 애매하지만 포함되는 지역으로써, 무엇보다 그들이 과거 구 소련에서 "강제로" 독립당한 지역이라고 인식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인프라 개발과 경제적 성장을 위해서는 "차이나 머니"를 끌어오는 중국과의 협력이 기존 패권국인 러시아로부터의 지원을 받는 것보다 더 유용한지라 중국에게 접근한 것이다. 정작 러시아는 상하이 협력기구(SCO) 내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바라지 않기에 CIS 권역 내 유라시아경제연합(EAEU)과 집단안보조약기구(CSTO)의 강화시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사실 EAEU는 러시아가 타 국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의결권을 갖고 있는 구조이며 러시아의 동의 없이는 사안들을 진행하기 힘들다. 결국 이를 통해 러시아는 경제적인 구상에서 유라시아 연합을 구상하는 걸 넘어서 아예 정치적으로도 단일화된 유라시아 체제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일대일로(一帶一路)와 중국의 지정학적 목표


21세기 중국의 가장 큰 목표는 "일대일로"다. 비록 중국은 중앙아시아 내부에는 문화적 경쟁력도 없고 군사력으로도 러시아에게 밀린다. 대신 중국이 가진 가장 큰 자산인 "차이나 머니"를 앞세울 수 있다는 건 강점이다. 중국은 과거부터 군부 독재로 서방의 대규모 제재를 받던 국가인 미얀마에 진출해 인프라 개발 사업을 독식하면서 상당히 꿀을 빨았었던 전적이 있었는데 마침 일대일로 사업 속 6대 경제회랑이 중앙아시아와 연관이 있는데다가 지정학적으로 중앙아시아는 유럽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지역 중 하나인 만큼 이곳을 "경유지"로 삼는 전략을 구사하기로 한 것이었다.


카자흐스탄 동쪽에서 카스피해 부근까지 연계된다면 저 동쪽에서 아제르바이잔의 바쿠 지역까지 물류망이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기존의 시베리아 철도를 중심으로 한 체계는 다소 시간이 많이 걸렸기에 중국은 새로운 철도망을 부설하는 걸 제안한다. 카자흐스탄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중국은 연운항에서 중국 대륙을 거쳐 카자흐스탄을 통과하는 물류망을 추진하려 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러한 새로운 물류망의 건설은 육상으로 수송하는데 있어서 시간과 비용을 감축해주는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 주는 계획인지라 카자흐스탄이나 중국 기업들에게도 상당히 유리하게 짜여져 있다. 실제로도 시베리아 철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운송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의 이 같은 계획이 진짜 자기들한테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행보일 수 밖에 없다. 이게 시행된다면 러시아 시베리아 철도를 중심으로 한 물류망이 심하게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게 곧 극동 지역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 러시아 동서부 격차가 매우 극심해지며 러시아 정부가 그동안 공을 들인 유라시아 정책이 모두 중국에게 주도권을 빼앗기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또 장기적으로 러시아가 새로운 블루오션으로서 투자를 해오던 시베리아 극동지역이 유라시아 경제 네트워크에서 소외되고 중앙아시아가 중국 권역으로 이동해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중국은 수백억 달러의 돈을 중앙아시아 지역의 기반시설과 광산업에 투자했고 이 지역의 광물을 수입하는 대신 중국산 제조품들을 판매하는 맞교환도 했다. 게다가 중앙아시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크롬과 코발트, 은과 우라늄, 금과 아연 등등 수많은 지하자원과 희귀 광물들이 지하에 매장되어 있기에 중국은 이 지역에서 안정적인 지하자원 공급망을 구축하는 사업에서 중앙아의 정권들과 타협하였다. 중앙아의 엘리트층 입장에서도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를 줄일 방편으로써 중국과의 경제 협력이라는 선택지가 나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미 중국은 중앙아시아 5개국과 터키 및 이란을 연결하는 경제회랑을 건설했다. 중국의 목적은 중앙아시아 사이에는 투르크메니스탄 천연가스의 공급을 주목적으로 하는 3개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을 서아시아 지역과 연결시켜 막대한 수익을 올리며 일대일로 프로젝트를 더욱 박차를 가하는 것에 있다. 실제로 중앙아 국가들과 중국이 가스관이 이어진 이래 중국으로의 천연가스 수출이 급증하는 상태이며 특히 투르크메니스탄은 완전히 중국에게 의존하게 된 모양새다.


그렇다면 왜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에게 큰 기대를 하는가? 우선 원초적인 대답으로 보자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기 때문이다. 2014년 크림 반도 합병 이후 서방의 대러제재가 시작되고 2022년 이후 강도가 높아지면서 대러의존도가 높던 중앙아 국가들이 러시아와 교역하기가 힘들어지면서 성장 동력이 정체되었는데 이때 마침 중국이 일대일로를 명분으로 진출해 물류망이나 자원 개발 분야에 투자를 확대하였기에 그들 입장에서는 이게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중국이 "차이나 머니"를 앞세워 해주는 것 만큼의 인프라 개발이나 투자를 러시아가 할 능력이 되지 않기 때문에 중국의 도움을 받아 자원의존 탈피를 위한 산업화 정책을 하는게 더 낫다고 본 것이다. 대신 러시아에 의존했던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중국에게 투영하는게 문제인데 앞으로 몇년 간 지켜보면 중앙아와 중국의 협력관계의 장단점이 극명히 드러날 것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갈등 가능성, 단기적으로는 낮지만 그래도 위험하다


위에서 러시아가 추진하는 EAEU를 중심으로 한 유라시아 경제 네트워크와 중국의 일대일로 속 행보를 다뤄봤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중앙아시아에서 러-중의 충돌 가능성은 단기적으로 낮은 편이다. 어차피 중국은 미국과의 무역분쟁으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에 빨려들어가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당장 시급한 과제를 두고 중앙아시아에서 서로 싸움질을 할 여유가 양측 모두 없다. 오히려 양국이 분열하여 싸운다면 미국과 서방 세계에게 빈 틈을 보이게 될 거라는 것을 그들 또한 알고 있다.


그래서 러시아는 미국이라는 공동의 적과의 싸움을 위해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이 경제적으로 잠식해가는 걸 어느정도는 눈감아줄 수 밖에는 없는 상황이다. 거기다가 시베리아 극동 개발 사업에서 중국 기업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꽤나 크기에 이걸 물리면서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과 표면적으로 "그레이트 게임"을 벌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중국 역시 미국과 동북아시아에서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굳이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 이유가 없는게 대양 하나를 두고 멀리 떨어져있는 미국과는 달리 러시아는 아예 국경을 맞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러시아나 중국이나 당장으로선 갈등 요인이 표면에 드러나지 않도록 웬만하면 덮어버리는 전략을 쓸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얘기가 다른게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러시아의 유라시아 프로젝트는 서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경제적 통합을 이뤄낸다는 목표는 같지만 서로의 국익이 걸린 문제가 갈등 요인이기에 당연히 두 프로젝트는 만약 그대로 진행된다면 언젠가 크게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연히 갈등 발생 시에 우위에 선 것은 강력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중국인 건 덤이고. 게다가 중앙아시아 국가들 입장에서는 이미 지는 해인 러시아보다는 중국이라는 신흥 강국, 그것도 "차이나 머니"를 바탕으로 자기들의 경제 성장 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해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할 것이다. 또한 중앙아 정권들 입장에서는 러시아를 맹신하기엔 자국 내 있는 러시아계 주민들이 수틀리면 제2의 우크라이나 혹은 남오세티야 사태를 일으킬지 모르는 노릇이고 이 지역은 과거 제정 러시아의 침략을 받았었기에 역사적 앙금도 없진 않은 편이다.


거기에 더해 중국의 일대일로 자체가 대상국에게 부채함정을 선사하는 부분이 크다. 중국의 방식을 살펴보자면 현지 국가의 부채를 탕감해주는 대신에 각국의 기반시설 임차권이나 광물 채굴권 등을 따내며 이익을 챙기는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거 딱 전형적인 19세기 서양 제국주의자들이 쓰던 방법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실제로 중국은 자국산 물품을 일대일로 대상국의 국내 시장에 풀어서 판매하여 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러면서 현지 국가의 상인들의 처지가 더욱 악화, 중국이 자국의 경제를 식민지처럼 장악하려 한다는 루머까지 돌 정도인 상황이다. 이미 중앙아 빈국들 사이에서는 중국의 경제 잠식 시도로 인한 부작용들이 일부 나타나고 있는지라 이게 중앙아시아 정세의 변수가 되고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 탄압 논란도 중앙아시아인들에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겠다 싶은게 신장 위구르족의 경우 이슬람교도들인지라 똑같은 무슬림이 많은 중앙아시아 지역민들 사이에서 문제시될 수도 있을 거라 본다. 실제로 2021년도 조사에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국민들은 러시아에 가장 큰 호감을 보였으며 중국의 호감도는 고작 미국보다 조금 나은 수준에 불과했다. 당장 중앙아시아는 대부분이 정교회 아니면 이슬람교를 믿는 지역인데다가 정교회 신자들은 러시아 및 CIS에, 이슬람 신자들은 언어, 문화 등에 공통점이 많고 같은 하나피파를 믿는 튀르키예에 더 호감을 느낀다. 즉 애초부터 중앙아시아가 중국에 문화적으로 호감을 느낄 만한 요소는 딱히 별로 없다.


무엇보다 일대일로 계획 추진을 상하이협력기구(SCO)와 같은 유라시아 공동체를 통해서 하는게 아니라 중국이 각 국가들과의 관계를 개별적이고 안보적인 차원으로 확대한다면 러시아는 그때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러시아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때문에 경제적으로 해를 입는 것은 양국 간의 관계를 고려해서라도 참고 넘어가줄 수 있지만 안보적인 측면에서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잠식하려고 시도한다면 그때는 마냥 내버려둘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려 러-중 사이의 새로운 갈등 구조가 벌어질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2016년부터 중국은 국경을 맞대는 중앙아시아 국가인 타지키스탄의 대중국 대외부채가 전체의 40%인 것을 이용해 군대를 주둔시켰는데 이는 이제 중국이 본격적으로 중앙아시아에서 경제 분야를 넘어 군사적인 분야로까지 확대하려 한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맺음말: 체스판 뒤에서의 암투, 그 끝은?


러-중 관계가 보여주는 암투는 상당히 흥미로우면서 꽤 의미가 깊은 사례다. 양국은 서로 미국과의 대치에서는 협력관계면서도 뒤에서, 그것도 서로의 안보와도 직결되는 지리적 특성을 가진 지역에서 꽤나 치열하게 패권을 지키고, 또 패권을 자기가 갖기 위해 서로에게 향후 시행되었을 경우에 어느 한쪽이 불리할 수 있게 되는 행보도 서슴치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와 같은 암투도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 및 정작 러시아가 공수군까지 카자흐스탄에 파견해 지켜준 정권인 토카예프가 러시아 중심의 유라시아 정책에서 이탈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는 등의 일련의 해프닝들로 반대급부로서 중국의 입김이 더욱 심해질 전망이 예측되면서 시계추가 어느 한쪽에게 확실하게 기울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생각이 된다.


그러나 가장 딜레마일 것은 중앙아시아 국가들이다. 단기적으로 중국과의 경제협력이 상당히 크게 도움이 되는 것은 맞기에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보단 중국과 거리가 있는 쪽인 카자흐스탄조차도 "차이나 머니"를 굳이 거부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도 있다. 또 러시아는 전통적인 우방이었던 국가이기도 하고 러시아계 주민이나 문화적 영향도 크다는 문제가 있고. 따라서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가장 이상적인 외교적 방향이란 일방적인 의존을 피하고 러중 사이의 완충지대가 된다는 목표를 가진 채 러시아와 중국 모두와 적절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편으로 이들을 이용해 보다 나은 여건을 마련하면서 주권까지 잃는 선택은 최대한 거부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비스마르크는 말했다. 세계 각국은 모두 예의로 서로 사귄다고 하지만 그것은 표면상의 것으로 내면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깔보는 것이 실정이라고. 또 공법(公法)이라는 것은 열강의 불변을 도라고는 하지만 이것 또한 자국의 이익이 되느냐 안되느냐에 따라서 입장이 바뀐다고 했다. 지금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낀 중앙아시아의 상황이 딱 그러한 상태이다.


참고 문헌:


신범식, <러-중 관계로 본 ‘전략적 동반자관계’: 개념과 현실 그리고 한계>, 한국정치학회, 한국정치학회보 44(2), 2010

신범식, <중국의 부상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대응>,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슬라브 학보 30(2), 2015

예브게니 홍 외, <중국의 중앙아시아 전략과 중국-카자흐스탄의 경제협력: 현황과 전망>, 아시아연구소, 아시아리뷰 4(2), 2015

김상원, <중국의 일대일로와 중앙아시아 경제 변화>, 외국학연구소, 외국학연구 (46), 2018

윤성학 외, <중앙아시아와 일대일로: 중국식 개발모델의 한계>, 한국외국어대학교 러시아연구소, 2019

임반석, <중앙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경쟁과 협력>, 한국동북아학회, 한국동북아논총 제23권 1호, 2018


https://diverseasia.snu.ac.kr/?p=3175

https://csf.kiep.go.kr/issueInfoView.es?article_id=50350&mid=a20200000000&board_id=2

https://firenzedt.com/23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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