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폴란드의 대통령 안제이 두다와 법과 정의의 행보가 거침 없다. 한국에서는 지금 폴란드 정부가 방산업체 계약 등으로 맺어진 우호적 관계에만 관심이 있기에 사실 안제이 두다와 법과 정의가 누구이며, 또 어떠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지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은 편이다. 뭐 그거 뿐만 아니라 애초부터 한국에서 동유럽에 대한 관심은 극히 저조한 편이기도 하고. 애초에 폴란드라는 나라와 우리가 엮일 일이 생각보다 별로 없었고 수교가 맺어진지 약 30년 정도 밖에 안되었기에 방산수출 계약 등으로 인한 모습이 그들이 비춰지는 모습의 최대한도였을 거다.
그렇지만 유럽연합에서 폴란드가 보이고 있는 모습들은 지금 유럽 사회에서 커다란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우선 법과 정의라는 정당을 모를 사람들을 위해 자세히 설명하자면 카친스키 형제라는 사람들이 만든 정당이었다. 폴란드에서 공산 정권이 무너진 이후 자유노조 운동을 이끌었던 레흐 바웬사를 중심으로 한 이들이 시민연단을 결성하자 같이 민주화운동을 만들었던 카친스키 형제도 정당을 창당하는데, 그게 오늘날 법과 정의로 자유주의 성향의 바웬사와는 달리 그들은 확고한 우파 성향을 보였다.
법과 정의는 우익 포퓰리즘 성향의 정당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유럽의 다른 우익 포퓰리즘 정당들과는 상당히 다른 차이점이 있다면 확고하게 친서방-반러 성향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 마린 르펜, 빅토르 오르반, 알렉산다르 부치치, 마테오 살비니 등 유럽의 우익 포퓰리스트 정치가들은 보통 강하게 친러 성향을 보이며 러시아와 국제 문제에서 보조를 맞출려고 하는데 법과 정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법과 정의는 오늘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국면에 있어서 가장 적극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의사를 표명하는 세력이다.
물론 우크라이나인 나치 부역자 스테판 반데라가 2차대전 시기 폴란드인들을 학살한 전례가 있었기에 법과 정의가 마냥 우크라이나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과거의 적인 우크라이나인들보다 지금 위협이 되는 러시아였다. 러시아인들은 삼국분할부터 동유럽 공산정권기까지 폴란드인들의 증오 대상이 되어왔으며 실제로 우크라이나 침공이 일어난 이상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 타깃은 누가될 지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상황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하여 법과 정의는 유럽의 우익 포퓰리즘 정당이면서도 오르반이나 르펜과는 달리 확고한 반러 성향을 표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법과 정의당도 우익 포퓰리즘 세력의 근본으로써 폴란드의 유럽연합 탈퇴, 즉 폴렉시트(Polexit)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면모를 보이며 유럽 각국들과 적극적으로 충돌을 빚기도 하였다. 법과 정의가 2015년 집권한 이래 유럽연합과 폴란드는 지속적으로 부딪혀왔었다. 왜냐면 안제이 두다 대통령이 강경한 가톨릭 보수주의자답게 LGBT 문제를 겨냥해 폴란드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 사상인 공산주의보다도 나쁘다고 하거나 동성 커플의 결혼이나 자녀 입양을 금지하고 학교에서 LGBT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공약 및 낙태금지법 추진 등유럽연합의 가치와는 안 맞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기 때문.
이 때문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폴란드 지자체장들에게 차별금지를 EU의 핵심 가치로 보장할 의무를 상기시키는 내용의 서한을 보내기도 할 정도였다. 이에 두다는 공공 기관에서 LGBT 이데올로기 전파를 금지하는 듯한 정책을 꺼내들며 맞대응을 하였는데 여기에는 동성애자에 대한 관용을 요구하는 바르샤바 시장이자 시민연단 소속 라파우 트르자스코브스키와의 선거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함도 있다. 폴란드는 민족주의적 색채가 매우 강한 국가이며 독실한 가톨릭 신자 또한 굉장히 많은 국가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폴란드는 러시아 못지 않게 LGBT에 대한 혐오 감정이 극심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 상황에서 두다 대통령과 법과 정의는 독재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기에 더더욱 논란거리가 생기고 있다. 삼권분리 원칙을 깨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사법 개혁을 추진하며 언론과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시도도 하는 중이다. 실제로 총선거를 앞두고 공영방송에서 동성애자가 폴란드 사회를 잠식하려 한다는 다큐멘터리를 내보내는 일도 있었으며 정권 반대 언론에게 비판 보도에 대해 벌금을 청구하기도 하였다. 덕분에 유럽연합에서는 앞으로 만약 폴란드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반대 세력들을 향해 조직적으로 탄압하는 행보를 보일 시 지원금 지급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다만 두다는 의외로 내치에서는 그렇게까지 나쁘게 평가받지는 않는데 바로 경제에 있어서는 나름 유능함을 보이기 때문인 것도 없진 않다. 2020년 폴란드의 GDP는 "단지" 3.5% 감소했는데 이는 동시기 OECD 평균인 5.5%보다 훨씬 낮은 수치이며 코로나에 대한 대응도 경제적 부담도 덜주면서 유럽연합보다도 바이러스 전파 억제에 더 효율적이었다고 평가 받았다. 무엇보다 폴란드는 고용과 생산 모두에서 제조업의 비중이 증가하고 있었던 유일한 유럽연합 국가였기에 마침 코로나로 인해 서비스 부문이 축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만 경제의 더 많은 활력을 유지할 수 있었기도 했고. 두다가 독재적 행보를 보이긴 하고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폴렉시트로 욕을 처먹긴 하지만 이러한 밑바탕이 있어서 유지가 되는 것도 있다.
어쨌든 유럽연합과 사법개혁 문제로 강한 충돌을 빚고 있었던 두다 대통령과 법과 정의가 승부수로 던진다고 논란이 되던 화두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폴렉시트"였다. 2016년 브렉시트가 완전히 결정되어 영국이 유럽연합을 나간 시점에서 논의가 나오던 폴렉시트는 2021년 마테우스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유럽연합 법률에 대한 폴란드 헌법의 우선권에 관한 신청서를 내며 본격화된다. 이어서 폴란드 헌법재판소도 헌법이 유럽연합 법률보다 우선한다는 판결을 내렸으며 유럽연합은 이에 경기회복 자금 420억달러의 지급을 보류해버렸다.
물론 당장은 폴란드 정부가 폴렉시트와는 선을 그은 모양새이긴 하다. 찬성 비율은 고작 16.2% 밖에 안되는 반면, 반대는 무려 64.4%나 되기 때문. 게다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상황에서 서유럽 국가들 죄다 군수체계와 무기생산 역량이 뒤떨어지는 꼴인데 그 중 병참기지 역할을 제대로 할 만한 국가로서의 폴란드의 입지가 꽤 커진 형국이니 지금 당장 나갈 이유도 없긴 하다. 현재 폴란드는 우크라이나에 T-72 전차의 상당수를 매각해버린지라 독일제 레오파르트로 한동안 공백을 메꿔야 할 상황이기에 현 시점에서 유럽연합을 나가고 서유럽과 관계가 악화되면 좋을 것은 없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또 드는 생각이 있다면 이번에 한국과 방산수출 계약을 한 것도 폴렉시트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유럽 중심의 정책에서 탈피하려는 목적도 크지 않을까라는 지점이다. 기존의 무기 도입에서의 협력국인 독일이나 미국이 아닌 왜 하필 저 멀리 있는 한국이 그 계약의 대상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결국 유럽연합, 그 중에서도 핵심국이자 역사적으로는 러시아 못지 않게 악연이 매우 심각한 독일을 더는 믿을 수 없다고 본 것도 요소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한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각종 장비를 구입해야 할 상황이긴 해도 아무래도 관계가 나쁘고 지속적으로 인권 문제로 간섭하는 독일한테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난 상황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받기가 힘들테고.
무엇보다 문제는 현재 독일 연방군의 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것도 크다. 한동안 군축이 진행되면서 독일 연방군은 U-35마저 기동 불능에 빠져서 가동 가능한 잠수함이 없어졌던 해프닝까지 벌어졌었고 레오파르트 2 전차 240대 중 90여대도 가동 불능 상태에 G36 소총은 결함 논란까지 터졌었다. 거기다 독일 언론 슈피겔의 보도에 따르면 유로파이터 파이툰 128대 중 4대만 실전에 투입이 가능하다는 말까지 나왔었다. IFV인 마르더 14대 중 3대만 정상 운용할 수 있었던 적도 있으며, 독일 육군 헬기 조종사 10명 중 1명이 비행시간을 채우지 못해 비행자격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 이유는 당장 이륙이 가능한 헬기가 적어 비행 훈련을 할 수 없었기 때문. 지금이야 다시 국방비를 늘리며 정상화를 시도하지만 비교적 신식인 레오파르트 2A4나 2A5는 정기적으로 관리해주지 못해 당장 사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폴란드 제2공화국의 독재자 유제프 피우수트스키
이러한 폴란드의 안제이 두다와 법과 정의를 보며 생각나는 역사 속 세력이 두 가지 떠오른다. 하나는 피우수트스키의 사나차 정권이고 두번째는 로만 드모프스키와 민족민주당이라는 세력이다. 먼저 사나차를 떠올린 이유는 전간기 피우수트스키 정권도 대놓고 의회를 박살내는 등의 통제적인 조치를 하진 않았지만 "정권 협력을 위한 초당파적 연합"(BBWR)이라는 어용기구를 통해 총선 조작으로 실권을 장악하고 민족민주당, 사회당 옛 동료들을 지하로 몰어넣었으며 베레자 카르투스카에 3천명을 수용하는 정치범 수용소를 설치하는, 히틀러나 스탈린보다는 약하지만 나름 독재적인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피우수트스키를 무조건 오늘날 폴란드의 두다 대통령과 법과 정의에게 비유하기에는 마냥 맞아들어가지가 않는다. 왜냐면 피우수트스키는 민족주의자라기 보다는 폴란드-리투아니아주의자로써 다문화주의적 색채가 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폴란드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두다 및 법과 정의에 조금 더 맞아들어가는 세력은 로만 드모프스키와 민족민주당이지 않을까 한다. 민족민주당은 제2공화국 수립 이전까지 폴란드 사회당, 농민당과 함께 삼대 축이었으며 그 중에서도 우파 포지션을 담당하던 세력이었다. 그들은 폴란드어를 구사하는 모든 로마 카톨릭 신자를 폴란드인 범주로 설정하며 문화적 통합을 역설하는 세력이었는데 이게 딱 오늘날 법과 정의의 민족주의관과도 맞아떨어진다.
아무튼 지금 폴란드는 사는 사람 입장은 모르겠고 보는 입장에서는 꽤 재밌게(?)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두다 정권은 최근에 러시아 영향 공직자 퇴출법이라는 법안을 추진하며 친러 성향의 인사가 10년 동안 공직에 나서는 걸 금지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게 논란이 되는 건 최대 정적인 도널드 투스크 전 총리의 선거 출마를 막으려고 하는게 아닌가라는 의구심이 나돌기 때문이다. 덕분에 유럽연합을 넘어 미 국무부가 폴란드 정부를 비판하는 형국에 이르었고 공산 정권 붕괴 당시 항쟁 이래 역대 최대 규모의 시위가 벌어지며 심지어 전직 대통령이자 폴란드 민주화의 상징 레흐 바웬사가 참석할 정도였다.
두다 정권의 전반적인 행보에 대한 민심은 총선 발표가 10월 15일로 난 이상 조금 더 지켜봐야 알 거고 지금으로써는 법과 정의가 시민연단보다 살짝 더 우세한 상황이라고 보면 될 거 같다. 여당 쪽에서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 덕분에 국제적 위상이 극적으로 향상되었음을 광고할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고 반면 야당에서는 제2의 사나차 정권을 꿈꾸는 독재자가 되려는 이에 맞서 유럽의 가치와 국가의 법치를 회복하고 더 나아가 정권을 되찾아올 기회로 삼을 수 있을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