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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Sep 07. 2023

역사에 가해자 대 피해자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진정으로 일제강점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해자 대 피해자의 이분법으로 역사를 바라보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아마 일제강점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기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에게서의 내셔널리즘이 형성되었고 이에 따라 해방 이후에 민족 국가가 탄생했다. 이런 한국의 사례는 에르네스트 르낭의 "승리의 역사보단 패배와 억압의 기억을 공유할 때 민족성이 생겨난다"라는 말이 20세기 이후 역사에서 가장 잘 실천된 사례가 아닐까 한다. 어찌보면 이 지점이 한국인들이 근대적인 "국민"으로 각성함과 동시에 이면에서는 일종의 피해의식적 사고를 가지게 된 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그 억압과 고통의 기억인 일제시대의 역사에서 우리 민족에게 가장 치욕스러웠던 일을 꼽자면 위안부였다. 흉포한 식민지 남성성이 가장 적나라하게 잘 드러난 사례이면서 우리 민족의 여성들의 외국의 남자 군인들에게 성 노예로 전락해버렸으니 말이다. 그걸 굳이 분노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는 한국인은 별로 없을 것이고 그 이영훈조차도 <대한민국 이야기> 당시까지는 일본군의 전쟁범죄로 분명히 규정했다. 심지어 <제국의 위안부>를 써서 램지어 교수한테 의도치 않게 레퍼런스를 제공한 박유하 교수도 이 책에서 일본의 책임이 크다고 지적하고 넘어가고 있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 부분은 그거다. 우리가 억압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고 해서 과연 역사에서 가해자 대 피해자의 이분법이 옳은가, 라고. 일본에게 과거사 문제를 요구하는 잣대로 보자면 "환향녀"로 대표되는 조선 반도의 여성들을 병자호란 내내 전국에서 끌고 간 청나라의 만주족들에게도 사죄와 배상이 요구가 가능하다. 막말로 몽골의 원나라는 공녀라는 이름으로 고려의 여자들을 끌고 갔으며 비교적 최근 일만 보더라도 6.25 당시 서울에 들어온 중공군과 북한군은 많은 문화재들을 약탈해갔다. 역사적으로 우리가 억압 받았었던 기억은 일제시대 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훨씬 많았었다.

한국에서 상당히 논란이 된 책 <요코 이야기>

한국인이 선량한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우리나라 특유의 국뽕식 사관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킨다. 가령 <요코 이야기>라는 책이 한국인들에게서 논란이 되었던 것만 봐도 말이다. 이 책은 요코라는 일제 말 조선에 살던 일본인 소녀가 일제 패망 이후 일본으로 귀국하기 전까지 소련군의 위협과 조선인들의 적대감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면서 일부 조선인들이 일본인들을 강간하거나 약탈하는 걸 지켜보는 과정이 나온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전범국의 국민인 일본인을 피해자로 묘사했다며 크게 난리를 쳤고 결국 미국 교과서에 실렸다가 퇴출당했다. <요코 이야기>는 일본의 제국주의를 미화하기 위함도, 한국인이 가해자고 일본인이 피해자라는 논리를 세우기 위함도 아니고 단지 자신의 어린 시절의 기억을 좀 과장해서 소설로 쓴 것에 불과했지만 한국 대중들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의식에 기반하여 마녀사냥을 했다. 이러한 <요코 이야기> 사태는 한국인들이 자신이 피해자임을 부정당하는 식의 문제제기를 당했을 경우 참지 못한다는 걸 알 수 있다.


실제로도 한국인들은 마냥 피해자가 아니다. 사실관계 논란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을 당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나 라이따이한 등의 의혹이 많은 편이었고 역사적으로도 세종대왕의 "고토 수복"을 명분으로 한 4군 6진 개척, 고려 윤관의 여진족 침략과 동북 9성 등 우리가 평화를 사랑하는 나약한 민족이라는 식의 역사 서술을 부정하는 근거는 매우 많다. 대우라는 한국 기업은 아예 마다가스카르 독재 정권하고 유착해서 대대적으로 과거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식민지배한 것처럼 플랜테이션 사업을 벌이다가 민중 혁명까지 일어나게 만들어버렸는데 이는 한국도 힘만 되었다면 얼마든지 제국주의적인 행보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당대를 기준으로 보자면 일제가 36년 간 유지가 될 수 있었던 부분에는 잊고 싶은 사실이지만 조선인들의 협조가 분명 있었다. 흔히 제국주의의 지배는 물리적인 힘으로 이뤄진다고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는 하는데, 이런 생각과는 달리 단순히 힘으로만 지배하려고 한 것은 예전 신대륙 개척 시기 유럽인들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많은 국가들의 역사를 살펴봐도 대체로 식민지 영토 내에서 열강의 제국주의자들은 식민지 주민들에 비해 굉장히 수가 적었다. 비록 가지고 있는 무기는 주민들보다 훨씬 뛰어났지만 너무 강압적으로 통치한다면 낯선 땅에서 적대적인 주민들의 다수가 들고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데, 그걸 막을 만큼의 병력을 동원하는 것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열강들이 꽤 오랜 기간 동안에 식민지 통치가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협력자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 이상 협력자들을 양성할 수 없거나, 아니면 협력자들이 배반하게 되면 식민지 통치는 커다란 위기에 빠지고, 상황이 심각해지게 되면은 붕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구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뒤늦게 열강의 틈에 끼어든 일본도 마찬가지로 일제시대 동안에 조선 반도에 거주한 일본인들은 많아봤자 전체 인구의 2~3% 정도 밖에 안되는데 일제시대 동안에 조선총독부의 통치는 지방까지 통제할 만큼으로 잘 작동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자발적인 협력자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며 그 주축은 다름 아닌 중인 계층들이었다. 그러니까 쉽게 말해 일제시대 역사 속에서 가해자 일본인 대 피해자 한국인 구도만으로는 전체의 역사를 파악하기란 너무 이분법적이라는 얘기.

세계사에서 피해자로 취급받는 다른 나라들도 그들이 당한 피해가 안타까운 일인 것과 별개로 무조건적으로 선량한 민족은 아니었다. 영국에게 오랜 시간 대기근을 비롯해 각종 악행에 시달려온 아일랜드인들은 신대륙으로 집단 이민간 후 그곳에서 원주민들과 흑인들을 상대로 인종차별을 일삼았다. 프랑스, 중국, 미국에게 침략당했던 베트남도 캄보디아를 침공하여 괴뢰국을 세우며 상당히 제국주의적 행보를 보였고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와 연방을 할 시기에 러시아 모스크바 근처까지 헤집고 들어가거나 근대 이후로도 제2공화국 시기 베레자 카르투스카 수용소에 분리를 요구하며 독립투쟁을 벌이던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수용, 이것이 2차세계대전 당시 스테판 반데라와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폴란드인들을 10만이나 학살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물론 위에서 서술한 한국 역사 속 우리가 저지른 침략적 행위들을 마냥 비난하기란 어렵다. 왜냐하면 이로인해 참상이 벌어지긴 해도 현실주의에 입각한 정치라는 구조가 형성되어 있는 이상 냉정히 보자면 정당성이 없다고 볼 수도 없기 때문. 도덕, 이상, 윤리, 정의 등등 이런 것들은 좋아보이고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보이겠고 필요성이 없는 건 아니나 지금 당장 먹고 사는 문제와 자신을 지키는 문제 앞에서는 소년만화에서나 볼 수 있는 허상일 뿐이다. 일제 또한 근본이 썩고 본질 자체가 절대악인 곳이라서 천인공노할 악행을 벌인 것이 아니며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일으키고 이라크를 침략한 것도 마찬가지이며, 반대로 러시아가 최근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것도 그렇다. 마찬가지로 대우가 마다가스카르에서 그런 쓰레기짓을 한 것도 그들의 근본이 제국주의자여서가 아니라 다 지들 나름에는 먹고 살려고 한 거다. 따라서 역사나 국제정치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도덕적 잣대로 보는 건 무리다.


이런 말하면 누구는 오늘날에는 전근대와는 달리 국제기구와 국제법에 의해 지배되는 질서라는 걸 근거로 위에서 나열한 얘기들을 반박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독일의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는 1873년 3월 자신을 방문한 일본의 이와쿠라 사절단과의 만남에서 "세계 각국은 모두 친목, 예의로 서로 사귄다고 하지만 완전히 표면상의 것으로 내면은 강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것이 실정이며 공법이란것은 열강의 권리를 보전하는 불변의 도라고는 하지만 대국이 이익을 다툴 경우 자국에 이익이 되면 공법을 고집하지만 불리해지면 태도를 바꿔 군사력을 동원한다"라고 조언을 하며 정확하게 국제질서에 중요한 요소를 법이 아닌 군사력으로 꼽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일으킨 전쟁의 피해 속에서 약 450만명이 되는 인명 살상이 벌어졌다.

그렇기에 국제기구와 국제법에 의해 가해자를 심판하는 걸 원하면 방법이 있는데 바로 커티스 르메이부터 로버트 게이츠, 로널드 레이건, 조지 부시, 리처드 닉슨, 헨리 키신저, 도널드 럼즈펠트까지 다 싸그리 전범재판대에 세워서 사형 집행하면 된다. 또 빅토리아 여왕의 원죄가 있는 영국 왕실도 심판대에 세우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해 대영제국 시기 식민지였던 국가들에게 분배하면 된다. 이왕 할 거면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국부도 베트남과 알제리에게 배상금으로 넘기면 좋겠다. 법 운운하면서 패자를 조지는 건 역사적으로 매우 흔한 일이었기에 놀랍지도 않으며 도쿄전범재판이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도 일본이랑 독일이 저지른 짓이 너무 과했기에 넘어간거지, 1차세계대전 당시 동맹국 수준 정도였다면 엄연히 주권침해라며 국제적으로 꼬투리 잡혀 욕먹을 짓이었다.


우리가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는 주된 근거는 오늘날 일본국이라는 나라가 일본 제국을 계승한 나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런 배경에서 독일도 나치 시절에 대해 사죄하는 것이기도 하고. 그런데 문뜩 생각이 드는 지점이 한 국가가 이미 소멸된 과거의 나라에 대해 연속성을 가진다는 논리대로라면 한국도 마찬가지로 나라가 멸망하고 일제에 병합되는 걸 막지 못해 조선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린 책임은 일제 외에도 조선 조정과 들고 일어나서 막지 못했던 조선 백성들에게도 있다는 식의 논리로도 사용될 수가 있다. 사실 무지성으로 연속성을 따진다면 우리는 과거 전근대 당시 청나라 시기를 비롯해 역대 중국 왕조들이 한반도에 대해 침탈하여 다 털어먹고 간 것에 대해 오늘날 중국 공산당 정권에게도 책임을 얼마든지 제기할 수 있는 노릇이기도 하고.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식민지배 이러한 일들을 겪었던 그 시절의 분들을 가장 위하는 일은 증오를 재생산하며 혼자 씩씩 거리는게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일을 다시는 겪지 않도록 냉정하게 국제 정치를 보는 것이다. 조선 조정은 그러지 못한 채 세상의 발전에 무지한 상태로 있었는지라 일제의 침탈에 무너져서 백성들이 식민지배를 당하게 만들었으며 그러고 난 뒤에도 무책임하게 백성들이 일제에 의해 고통받게 말든 놔둬버리며 결국 백성들은 협력하든, 독립운동을 하든 각자의 길로 갔다. 일제에 만행에 분개하는 심정,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다면 단순히 분노만 표출할 것이 아니라 차갑게 보이질라도 현실정치에 관심을 가지고, 또 우리가 어떻게 나라를 잃었고 되찾게 되었는지를 자세히 공부를 해야 한다. 그것이 일제시대 36년을 다시 겪지 않게 하기 위한 진정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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