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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Sep 13. 2023

실패한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낳은 결과,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정치의 구조와 미래

https://youtu.be/TVyKu6DcXxs?si=9qc08rVQL0mNwMUu

2022년 필리핀 대선에서 마르코스 주니어가 당선되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마르코스 주니어라는 독재자의 아들이 당선됨으로써 두테르테 당시부터 망해가던게 완전히 종언을 고했다며 관짝소년단 밈이 떠오르는 듯한 말들이 나왔었다. 실제로 필리핀 내부에서조차 마르코스 주니어의 당선에 반발하는 여론이 있는 편이며 누가 보면 새로운 독재정권이라도 시작될 것인냥 얘기하고 있는 판국이었다. 거의 그 정도면 한국에서 예전에 18대 대선에서 박근혜가 당선되었을 때 이상으로 격한 반응인데 뭐 마르코스라는 인간이 재임기간 동안 부채가 283억으로 치솟아 GDP의 80%까지 끌어올릴 정도로 무능했던 인간임을 감안하면 못나올 반응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나는 다르게 보는게 마르코스 주니어와 두테르테라는 포퓰리스트 정치인 때문에 정상적으로 작동하던 필리핀의 민주주의가 죽은게 아니라 원래부터, 정확히는 필리핀이 민주화되던 시점부터 그들이 과연 제대로 민주주의 정치를 했는지 의문이며 이때부터 실패가 예정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필리핀은 1986년 마르코스 정권을 몰아내면서 민주화를 이뤘고 2001년에 또 다시 정치적 혼란을 겪기도 하였지만 그래도 주기적인 선거 시스템과 민주적 절차는 유지가 되었었다. 마르코스와 같은 독재 정권은 한 번도 안들어섰으며 이는 두테르테조차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필리핀은 민주화 이후에도 정치경제적 독점이라는 본질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으며 이것이 필리핀이 성공적인 국가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원인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필리핀은 비록 식민지였지만 1907년 최초로 주민 선거를 통해 의회를 구성하고 1935년에는 식민본국인 미국이 대부분의 자치권을 인정해주며 당대 정치제도가 선진적인 곳이었다는 거. 미국의 식민지배 초기에는 지방선거의 경우 선거권 가진 이가 전체의 1~3%였지만 나중에는 20~30%로 확대되는 등 분명 여타 아시아 국가보다는 적어도 민주주의에 대한 경험이 있었던 국가였다. 물론 여러가지 문제점도 있었는데 의회 선거에서 당선되는 사람들은 죄다 특정 가문 출신들이었으며 이들이 의회를 장악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져오는 정치와 경제의 결합의 원인이 된다.

그렇기에 필리핀은 1946년 독립하면서 대통령 선출과 입법부 구성, 양원제 의회제도, 복수정당제 정착 등 타 국가보다 훨씬 나은 민주정치의 구조가 확립되었다. 그러나 의회정치, 선거정치판을 장악한 것은 스페인 식민지 시기부터 거슬러 올라가는 과두지배 엘리트들이었으며 따라서 필리핀의 정치 영역은 사적 지배제도로 전락되어 버렸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르코스가 1965년 부패 척결, 강력한 국가 재건을 모토로 하여 당선되었으며 그는 이때까지 필리핀을 지배해오던 기존의 정치 가문과 자신은 다른 부류임을 호소하였다. 다만 마르코스는 점차 권위주의 통치자로 변해갔는데 그저 필리핀의 지배 계층이 이때까지 정치를 주도해오던 과두지배 계급으로 대표되는 가문들에서 마르코스의 일가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더욱 웃긴 건 필리핀의 민주화의 시발점은 1983년 상원의원 아키노 2세의 암살 사건이었다는 것. 아키노 가문은 필리핀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명문가였기에 실질적으로 필리핀의 개혁이나 민주주의 이런 거하고는 크게 상관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민주화 이후에도 이게 바뀔 가능성은 애초에 없었다는 얘기다. 결국 민주화가 되니 권력을 잡은 것은 돌고 돌아 아키노 가문이었고 1987년 총선은 대부분 구 정치 엘리트들의 의석 차지로 종결, 민주 정권 하의 정치개혁은 비례대표로 진출한 하원 의원들이 특정 단체의 이권과 연계되거나 하는 등 수포로 돌아간 것도 모자라 오히려 과두지배 체제만 강화시켰다.


예컨대 2001~2004년 사이의 12대 하원의 경우 전체 하원의원 214명 중 50%인 107명이 정치가문 출신들이었으며 한참 후인 2019년 중간선거 당시에는 주지사 80.25%, 의원 66.67%, 시장 53.38%가 유력 정치가문을 중심으로 세습되는 비중인 상황일 정도였는데 이는 구과두엘리트 지배 체제가 필리핀에 매우 공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더 충격적인 건 이 정치가문들은 1986년 민주화도, 1946년 독립도 아니고 무려 19세기 말 말로로스 의회 당시부터 100년 넘게 필리핀 사회를 지배해오고 있다는 얘기다. 이걸 보면 필리핀의 민주화 과정에서 열정적으로 투쟁하던 시민들은 진짜로 개혁을 바랬겠지만 결국 필리핀 민주화의 본질은 자신의 밥그릇을 건든 신흥 독재 세력을 전통 엘리트들이 끌어내린 사건에 불과했음을 알 수 있다.

필리핀의 지배계급인 정치 가문들은 스페인 식민지 시절 때부터 해먹던 자들이다. 원주민 상층계급과 중국계 상인들의 후손들이 주축되어 있는데 이들은 토착 엘리트 집단을 형성해 17~18세기 동안 상업, 대금업, 토지업 등을 하며 부를 축적했으며 19세기에 코코넛, 설탕 등 농업 생산물들을 집중적으로 수출하여 식민지 시기에 경제적 지배계급이 되었다. 특히 미국 식민지배 시절에는 상품 판매에서 혜택을 받으며 지방의회, 지방정부, 더 나아가 중앙의회와 마침내 정당 정치까지 장악해버리며 경제적 독점을 넘어 정치적 독점까지 하는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100년 넘게 저럴 수 있었던 것에는 필리핀 구조 자체가 지방주의 관념으로 인해 중앙보다 지방을 중심으로 정치가 돌아가니 토호(土豪)들이 지역 주민들과 카르텔을 형성했기 때문.


마르코스 주니어는 그저 그러한 환경을 잘 타고 나서 이용을 하는데 성공했기에 대통령에 오른 것이었다. 북일로코스라는 아버지 마르코스에게 물려받은 뛰어난 지역 기반을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고 거기에 더해 러닝 메이트인 사라 두테르테의 지지 기반인 남부의 민다나오 및 다바오까지 꽁으로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마카파칼 아로요 전 대통령의 지지로 그녀의 지지 기반인 중부까지 획득한 건 덤이었고. 이것이 마르코스는 족벌 정치의 영향을 받았으면 받았지, 결코 자유롭게나 타파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며 그는 전임자 두테르테보다도 필리핀의 썩은 구조 자체를 바꿀려는 의지가 없었다.


그런 구조적인 한계가 큰 사람임에도 의외로 30대 미만에게 압도적인 지지를 받아서 당선되었다. 선거 무렵 틱톡에 120만, 유튜브에 200만, 페이스북에 530만에 가까운 팔로우를 보유할 정도로 SNS 스타(?)였던 마르코스 주니어는 자신의 아버지 시대의 어두운 면을 잘 모르고 민주화 이후 빈부격차와 일부 가문 독점 현상이 더 심해진 것에 분노하는 청년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접근하여 회유하는 방법을 썼다. 같은 독재자의 자식이지만 어느정도 부모의 과에 대해서 인정을 했었던 박근혜와는 달리 마르코스 주니어는 자신의 아버지 재임기간 중 인권 침해나 부패에 대해 옹호해왔음에도 코로나로 인한 빈곤층의 경제 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강한 국가" 열망이 사회에 있었는지라 유권자 지지를 얻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들이 중첩되어 필리핀에서 민주정치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닌 그저 위에서 군림하는 엘리트층들이 누가 이권을 가져갈지 놓고 싸우는 하나의 장이 되어버리며 본질 자체가 날라가버리게 되었다. 그렇기에 두테르테라는 캐릭터가 바지사장격 정치인에서 그 이상으로 확실하게 불도저로 나아간 사람이라는 필리핀 정치에서 굉장히 이질적인 부류였던 것이고 문제는 지금 필리핀 내부의 구조가 그 두테르도조차도 힘들 만큼 썩어빠져서 문드러지기 직전의 상태라서 아마 저걸 언제쯤 바꿀 수 있을지 의문이긴 하다.


마르코스 주니어는 솔직히 지금까지 행보로 보았을 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태생적인 한계는 분명하고 대놓고 족벌 정치와 지방 가문 정치의 수혜를 받아서 현재 이 자리에 오른 인간이라 별로 기대는 없지만 지금까지는 예상보다는 크게 부정적으로 볼 만한 여지는 많진 않다. 잘한다 싶은 거를 꼽자면 전임자 두테르테 기조 이어받아서 "전기자동차발전법"을 토대로 탄소배출과 유가상승에 대응해 최소 생산 대수, 부품 현지 생산 등의 조건을 만족하는 자동차 모델에 6년 간 270억 페소의 세제 혜택을 지원하는 것과 2023년 확장된 예산에서 교육, 인프라 개발, 보건, 농업, 사회안전망을 최우선 과제로 두는 거 정도?


그러나 벌써부터 쎄한 부분이 보이는데 인프라 개발을 하면서 공적개발원조(ODA) 같은 걸로 부족한 재정을 떼운다는데 진짜 그러다가 외채만 늘어날 거 같긴 하다. 물가상승율은 무려 8%나 기록한 적이 있을 정도였다. 이거 만큼은 아버지 마르코스 행보 따라가는 듯해보이는 지점이 있다. 결국 개발의 이익이 노동자와 소농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서 마르코스가 제대로 해명한 적이 없으며 아버지 재임 기간 동안 식량이 제대로 확보되었다는 둥의 헛소리를 할 때도 있는 걸 보아 약간 불안하다. 지금 마르코스 주니어 정권 내정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전임자의 경제 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나갈 것인지 청사진을 제대로 보여준 적이 없었다.


외교는 아직까진 나쁘진 않다. 전임자 두테르테의 독립외교가 미국으로부터 의존도를 낮추고 자주성을 키웠던 장점도 있었지만 대중 무역적자가 커지는 등의 단점도 분명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을 인지한 것인지 마르코스 주니어는 독립외교를 계승하면서도 국방장관을 부통령 사라 두테르테가 아닌 친미 반중 성향 인사로 임명하고 바이든에게 적극적으로 대화 요청을 하는 등 두테르테와는 사뭇 다른 행보를 보였었다. 실제로 바이든은 대선 직후 가장 먼저 그에게 축전을 보냈었다. 이처럼 일대일로 문제에 재협상을 천명하는 등의 탈중국화도 시도하지만 그러면서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방문하여 미중 외에도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로 외교를 다각화하고 중국에게도 실리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는 아버지 마르코스가 썼던 전통적인 우방 미국에만 의존하던 외교에서 벗어나 강대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어 이익을 도모하던 방식과도 상관이 있다.

동남아시아 개별 국가들을 들여다보면 다소 너무 불안정하고 썩어빠진 부분들이 많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동남아시아가 앞으로 가능성이 없다고는 볼 수 없다. 한국만 하더라도 예전에 동남아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았으며 지금 당장의 모습이 물론 안좋아보일 수는 있겠다만 자원이나 인구 등에 있어서 그들의 성장 잠재력은 충분히 크다. 동남아 입장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아세안 국가들과 교역하는 규모가 미국, 일본을 능가할 수준인데다가 인적 교류도 크게 늘고 있다. 그런 만큼 동남아시아 정세에 대해서도 알아두는 것이 나쁘진 않을 거며 필리핀도 마찬가지로 지금 당장은 부패한 국가고 가문 독점 구조를 바꾸는게 힘들겠지만 아직 잠재력이 있는 개도국인 만큼 앞으로 빠르게 성장한다면 어찌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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