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독일을 위한 대안(AfD, 이하 대안당)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작년 말 왕정복고 쿠데타 미수 사건이 발생했을 때 독일 극우 사회 운동인 라이히스뷔르거 운동에 몇몇 대안당 인사가 관여한 것이 확인되었기에 위기에 봉착한 것이었다. 특히나 과거 서독에서는 구 동독과 연관성이 크던 독일 공산당이 강제 해산당하고 더 나아가 오늘날까지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의 후신인 좌파당이 연방 헌법수호청의 사찰 대상인 것이나 나치당의 실질적 계승자이자 좌파 파시즘 정당인 사회주의 국가당을 해산시켰던 경험이 있었다. 이는 독일이 방어적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로써 체제 전복 활동에 연루된다면 정당 해산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그렇기에 2022년 왕정복고 쿠데타에 연루되었다는 혐의가 있는 대안당은 한국에서 통합진보당이 그랬던 것처럼 꽤 커다란 정당 존속의 위기에 오게 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일단 대안당 자체는 쿠데타와 선을 긋긴 했지만 만약 꼬투리 잡힐 게 생긴다면 위험해지기 때문.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대안당은 지지율 21%를 확보했는데 이 수치는 올라프 숄츠 현 총리의 사민당을 앞지르면서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기민련과는 불과 4% 차이로 뒤지는 것이기에 대안당이 여기까지 온 건 나치를 경험했던 독일인들 사이에 일반화돼 있던 극우 혐오 정서가 깨진 걸 함의한다. 아직까진 이들의 집권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독일 총선거가 있는 2025년까지는 시간이 좀 남았기에 어떠한 변수가 될 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국에서 보통 대안당을 보는 시각은 "극우 네오나치 정당"이다. 뭐 물론 그들의 정치적 스탠스가 독일이라는 국가 특성상 상당히 이례적인 특징을 보이고 있는 건 사실이긴 하니. 근데 과연 단순히 이러한 시각으로만 분석이 가능할까? 로버트 팩스턴은 그의 저서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혁명>에서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않고서 파시즘을 정신나간 일부 미치광이들이 주장하는 단순한 사상으로 보는 전통적 시각이 오히려 그들에게 더 힘을 실어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대안당도 마찬가지다. 대안당을 그냥 무시해버리고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한낱 네오나치 쯤으로 취급하는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가 오늘날 대안당의 성장이니 말 다했다. 이 글에서는 대안당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민족민주당과는 달리 집권도 노려볼 만한 위치까지 어떻게 올랐는지를 다뤄볼 것이며 AfD의 성장이 보여주는 독일 사회의 민낯을 얘기해볼 것이다.
먼저 독일 우익 포퓰리즘 현상의 주 원인인 난민 문제부터 살펴보자. 2010년대 이후 독일에는 난민 문제가 부각되었다. 2000년 이후 기껏 10만명 정도 밖에 되지 않았던 망명 신청자 수는 2014년 20만명, 2015년 28만명, 2016년 75만명으로 폭증하며 난민 문제는 순식간에 독일의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물론 독일에서 난민, 이민 이슈야 동유럽 이민자들이 몰려올 때부터 예전부터 있었긴 하지만 예전과는 양상 자체가 달랐다. 우선 난민 신청자들은 기존 최고치였던 1994년의 44만명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두번째는 그때까지 난민들의 상당수는 옛 공산권이었던 동유럽 출신의 이민자들이었지만 2010년대 이후의 난민은 독일 문화와 본질적으로 이질감이 큰 이슬람교도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거기에다가 2015년 파리 테러를 시작으로 퀼른 집단 성폭력까지 반난민 정서를 자극할 만한 이슈가 많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난민 문제는 독일 사회의 주요 이슈로 자리잡았다. 그 결과 2015년 하반기부터 2016년 초까지 이민, 난민 이슈가 가장 중요한 정치이슈라고 답한 사람들은 전체 응답자의 80%까지 차지했다. 이는 메르켈 총리의 난민 무제한 수용 발언의 여파가 미쳤기에 가능했던 수치라 거품이 있지만 그래도 그 이후로도 난민 이슈가 중요한 정치 이슈라는 응답은 50%대 이상을 계속 차지하고 있다. 이때 기민련은 처음에는 난민을 수용한다는 정책을 발표했으나 반발을 깨닫고 곧 이어 제한적으로 받겠다고 하는 둥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였다. 반면 당시까지만 해도 소규모 정당이었던 독일을 위한 대안(AfD)는 난민법과 제네바 난민 협약 부정, 즉각적인 국경 폐쇄, 난민 추방 등을 내세웠다. 또한 기민련은 독일 내 무슬림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다며 다문화주의를 내세웠던 반면 대안당은 독일 내 무슬림의 확산이 국가, 사회 질서의 위협이라고 강하게 대꾸했다.
이렇게 되자 난민 문제에 대해 불만이 많던 유권자들은 지지층을 잃을까봐 적극적으로 못나서던 기성정당 대신 대안당에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4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던 기민련의 지지율은 2018년 말 26%까지 가라앉았고 같은 시기 동안 대안당의 지지율은 5%에서 15%로 급증했다. 이는 난민 위기 정국에서 이슈의 소유권이 기민련에서 대안당으로 이전했음을 잘 보여주는 자료다. 대안당이 난민 이슈의 소유권을 점했다는 것은 지지자들의 뚜렷한 성향으로도 잘 알 수가 있다. 다섯 번의 조사에서 난민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 대안당 지지자가 80% 이상 되는 것에 비해 전체 유권자 내에서 이 비율은 44.8%에 불과하다. 여기서 이민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대안당 지지자들의 비율이 시간이 갈 수록 높아진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는 반이민 정당으로서 대안당의 입지가 확고했다는 것을 뜻한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대안당 지지자들의 강한 반 난민 정서가 기민련 지지자들과의 비교에서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독일의 난민 수용 능력 문제에 대해 대안당 지지자들이 80%나 가까이되는 비율로 부정적으로 의견을 피력한 것에 비해 기민련은 사민당보다도 낮은 33.2%가 나온 것이다. 이렇게 같은 보수정당임에도 양측의 격차가 심하게 나는 것은 난민 이슈의 소유권이 이전됨에 따라 반 난민 성향 기민련 지지자들이 대안당으로 지지를 옮겼다는 것으로 실제로 2016년 주의회 선거에서 대안당 지지자의 4분의 1이 기민련에서 유입되었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다.
두번째는 독일 특유의 "나치즘을 막기 위한 나치즘"이다. 이게 뭔 소리인가 싶을텐데 쉽게 말해 오늘날 독일 정부의 자학적인 역사관과 국민들에게로의 강박적인 반 파시즘 성향 강요 얘기다. 물론 독일이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고 68 이전까지 서독 사회는 사회주의 국가당 같은 네오나치의 제도권 진입을 막으면서 나치 부역자 출신들을 공직자로 기용하는 등 마냥 전체주의를 막기 위해 전체주의를 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68 이후 흐름이 바뀌어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필요 이상의 반성이 요구되었고 여기에 빌리 브란트 총리의 동방정책이 겹쳐 마침내 오늘날 독일 특유의 전체주의적 자유민주주의가 완성되게 이른 것이었다.독일 정치가들은그렇게 해서라도 나치라는 전범국 이미지를 씻고자 하였다.
그런데 지금 결과는 알다시피 대안당의 부상이다. 대안당 자체는 스스로 파시즘 정당이라 하진 않지만 지지층 사이에 네오나치나 라이히스뷔르거 운동 같은 제국으로의 복고파 세력들이 있는 건 상당하기에 기본적으로 외연 확장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 정당이다. 파시즘 정당이 아니더라도 그들과 유착했다는 의혹을 믿는 독일인들은 어쨌든 상당하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런 걸 다 보고서도 대안당에 지지율이 21%까지 나올 정도인데 이 지점에서 과연 일본과는 달리 과거사에서 모범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평가받는 독일이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는지 한번 생각해볼 수가 있다. 진짜 독일의 과거사 청산은 21세기 현재 시점에서 정말 과거와 단절하는데 성공했나?
결론은 전혀 아니었다. 메르켈 정권 들어서면서 연방군의 프로이센 시절 때부터 내려오는 군가들까지 줄줄이 금지당하고 있는데 정작 웃긴 것은 독일 연방군의 창설 당시 근간을 제공한 이들은 만슈타인이나 할더 같이 전직 독일 국방군 장성들이었다는 것. 또 독일 국가 1절은 독일 연방공화국이 들어선 후 "위대한 독일", "마스에서 메멜까지 에치에서 벨트까지"라는 군국주의적인 내용이 있다며 시대적 맥락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금지시켜 버렸다. 그래 여기까진 어떻게든 이해를 한다 쳐도 더 웃긴 건 2절은 여성 차별적이라는 PC주의적인 이유로 사실상 금지당했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독일인의 노래", 즉 독일 국가가 1871년 통일 이전에 만들어졌다는 걸 모를 수가 없을텐데 이런 거 보면 애국가를 가지고 안익태가 친일파고 어쩌고 하며 친일 청산을 위해 바꿔야 한다는 우리나라 일각의 모습과 비슷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 뿐인가? 독일에서는 역사적으로 자랑스러웠던 일들을 말하는게 금기시되는 사회 풍조가 있다. 얼마 전이었나 연정 참여 정당인 녹색당 측 장관아나레나 배어통이독일 통일의 주역이자 천재적인 외교 능력을 발휘한 국부였던 오토 폰 비스마르크 재상의 사진을 독일 외교부에서 공식적으로 철거하였다. 비스마르크는 비록 가부장적 보수주의자이긴 했어도 빌헬름 2세 즉위 후 티르피츠 제독을 중심으로 건함 경쟁과 식민지 확보 쟁탈전 주장들이 나올 때 확고하게 거부하며 영국,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프랑스를 견제하는 전통 방식을 주장했다. 한마디로 어찌보면 군국주의 폭주를 견제하던 인물이었는데도 단지 구시대의 보수주의자였다는 이유로 저렇게 끌어내려진 것이다.
그렇게 해서 현재 독일은 나치 독일은 당연하고 독일 제2제국이나 프로이센, 튜튼 기사단 등에 대해 조금이라도 좋게 말했다가는 네오나치로 몰리기 일쑤인 상태가 되어버렸다. 결국 나치와 연관된 모든 것을 금지하고 무조건 맹목적인 사과만을 강요하는 풍조가 된 것인데 빌리 브란트 당시에야 역사적인 호전성을 제거시켰다며 높게 평가받았지만 이게 도를 지나치면서 역사관에 대해 사회 전반과 인식이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애국심을 그래도 가지려 하는 사람들을 역으로 탄압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걸 반대로 뒤집어서 보면 딱 나치 시절 히틀러가 했던 방식이 보다 민주적이고 부드럽게 변했을 뿐이지, 본질은 개개인의 다양한 사고방식을 깔아뭉개는 "나치즘을 막기 위한 나치즘"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러한 모순된 역사 정책은 알게 모르게 의견이 다른 이들을 공론장에서 쫓아내어 인터넷 네오나치 커뮤니티나 심하게 흑화할 경우 저번 왕정복고 쿠데타와 같은 라이히스뷔르거 운동 테두리 안에 가둬 사회 문제를 더 키우고 있는 셈.
난민, "나치즘을 막기 위한 나치즘"도 중요한 이유지만 아무래도 가장 커다란 이유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의 동독이 받았던 처우 문제라고 볼 수 있다. 통일 이후 몇 년 동안 동독은 유럽에서 가장 산업화된 지역인 독일에서 가장 산업화되지 않은 지역 중 하나일 정도로 처지가 좋지 않았다. 서독이 동독에 아무리 투자를 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지금까지도 여전히 구 동독 지역의 생활 수준은 독일에서 크게 낮은 편에 속하고 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서독과 동독 지역의 지역갈등 양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틈으로 동독 시절 억눌려 있었던 네오나치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헬무트 콜 총리가 오스트마르크와 독일 마르크의 환율을 1:1로 설정한 것은 동독 지역 경제에 커다란 부담이 되었다.
동독 경제를 손보기 위해 메르켈이 노동개혁을 실시했건만 노동강도가 올라가고 비정규직이 양산되면서 역효과만 낳았다. 안 그래도 통일 이후 동독에선 반복되는 위기와 불안이 조성된 상태였는데 결정적으로 2008년 금융 위기에 따른 세계 경기 둔화가 나타나면서 세계화 과정에서 소외된 동독 주민들은 서독과 세계화의 산물인 이민자에게 그렇게 적대감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다. 대안당은 그 상황에서 지역성이 강한 독일이라는 나라의 특성인 "고향"이라는 정서에 호소하며 난민들이 동독 지역이 받아야 할 지원금을 싹 쓸어가고 있는 현 실태를 적극적으로 고발하였고 이게 먹혀들어 "하이마트(고향) 정치"를 본격화하게 되었다.
이전까지는 원래 대안당의 지지층이 평균 소득 이상의 중신층 계층이었다. 실제로 쾰른독일경제연구소가 2016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대안당을 지지한다고 한 응답자 중 34%가 소득 상위 20%인 반면 15%만이 소득 하위 20%였다. 결국 이 말은 자당이 소시민 정당이라는 대안당의 주장을 반박하는 셈인데 대안당보다 훨씬 오른쪽이라 평가 받는 독일 민족민주당이 하위 20%가 30%가 넘어갔던 걸 생각하면 대안당은 좌파당보다 소시민 지지 비율이 낮고 사민당이랑 비벼할 수준이었다는 얘기기도 하다. 그렇지만 뒤집어서 보면 좌파당과 소수정당들을 제외하면 고소득층의 정반대 계층에게서 사민당과 함께 가장 지지를 받는 정당이라는 얘기가 되기도 하고 라이프치히대의 2016년 조사에서는 대안당 지지자 중 월 가계소득이 1,250 유로 이하인 비율이 18.7%로 결국 2016년 들어서 전체 생산직 노동자와 실업자로부터 얻은 득표율이 30% 중반에 육박하는 결과를 얻기도 했다. 요컨대 생산직 노동자, 실업자 같은 집단들이 여전히 대안당에서 주류가 되지는 못하고 있는 건 현실이지만 난민 사태를 기점으로 이들의 지지층 잠식율은 더더욱 높아지고 있는 중이라는 말이다.
하인리히 13세라는 왕정복고 쿠데타를 시도했던 라이히스뷔르거 운동의 수괴는 붙잡혔고 독일인들은 나치의 망령을 불러오는 악당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에 안도의 한숨을 내쉴 것이다. 분명 정의로운 독일의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하였고 이런 반사회적인 자들이 앞으로 또 나온다 할 지라도 대다수의 선량한 시민들이 독일의 자유민주주의를 굳건히 지키고 있기 때문에 무너질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들은 분명 이미 히틀러라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악귀를 겪고 극복하면서 자기네 나라 사람들의 "이성"적 판단을 크게 신뢰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독일은 갈 수록 무너지고 있는 중이며 복지 국가의 모범 사례로 평가 받던 이 나라가 점점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 중이다. 겉으로 보기에 통일 이후 지난 30년 간 독일은 영광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보였지만 발전된 서독에 비해 동독 지역은 전체적으로 독일 신탁청의 대상인 기업의 5%만이 동독 주민에게 판매되었고, 85%는 서독 주민에게 판매되는 등 민영화 과정에서 소외되었다. 메르켈이 난민들을 대거 수용하여 인본주의적이라며 찬양을 받을 동안 고령화가 심한 독일의 시골 지방에는 수많은 이민자들이 들어가 문제를 야금야금 키워왔고 그 결과가 지금의 상황이 되었다.
그 와중에도 사민당과 기민련, 기사련, 녹색당 같은 기성 정당들은 연정을 통해 계속 야합 같은 이합집산을 하며 권력을 유지하기에 급급했고 진짜 해결해야 할 썩어가고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의 근간에 대해서는 어떠한 방안도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을 그저 무시해도 되는 한낱 네오나치 혹은 동독 향수병자 정도로 취급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기성 정치권의 무관심과 방치,안일함 속에 영미 세력과 패권 경쟁을 벌일 정도로 강대하던 제2제국에 대한 향수를 기반으로 하는 라이히스뷔르거 운동 및 대안당, 또 한편으로는 무상 복지 시스템이 잘 되어 있어 최소한 밥은 먹게 해주고 직장도 알아봐주던 동독 공산 정권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기반으로 하는 동독 사회주의 통일당의 후신 좌파당, 바겐크네히트 신당과함께 기민련 및 사민당이 주도하던 정치 질서에 도전장을 내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