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따르는 자유진영 국가들 사이의 군사 협력체계에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있다. 이런 말하면 미국병에 걸려 서든어택마냥 블루팀 레드팀 구분하기 좋아하는 미뽕 중증 환자들은 빨갱이가 헛소리한다고 생각할텐데 엄연히 사실이다. 물론 무지성 반미주의를 외치는 NL 쪽 사람들이 하도 대한민국이 친일파가 세운 정통성이 없는 나라이며 미국 식민지라고 주장해대는게 대중들 사이에서 반감이 큰 건 사실이고 또 그렇게나 주권을 부르짖는 주사파들이 정작 자주국방을 통해 한국군의 군사력이 강화되는 것은 앞장서서 반대하고 있으니 솔직히 반미하는 쪽도 미국 사대주의자들 만큼이나 문제가 심각하다. 그래서 미리 오해할까봐 밝히자면 이 글의 목적도 미국하고 동맹 파기하고 북한과 "우리민족끼리" 잘 살아보자는 식의 철 지난 운동권 담론을 주장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만 내가 미국 주도의 자유진영 질서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은 그 부분이다. 북한이나 이란 등이 중국의 묵인 아래 핵개발에 성공할 동안 미국은 과연 뭘했는가라고 말이다. 생각해보면 중국이 핵개발에 성공한 이래 오늘날 북핵 문제에 이르기까지 미국은 적대국가의 핵확산에 대해서는 묵인하는 방침이었다. 북한이 적화통일 하려고 무력으로 남침하는 것이나 미군 상대로 위협 가하는 거 외에는 걔네가 뭔 짓을 하건 냅뒀다. 또 동맹국에 대해 미국인들은 그 나라의 사정이나 가치관, 역사, 문화 등에 관심을 가지거나 최소한 기본적인 것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가 미군정 시대의 남로당의 급성장으로 나타났다.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미사일을 포함해 전략무기들은 미국의 허가 없이는 개발이 불가했다.
1946년, 미국은 '바루크 플랜'을 내놓았다. 이 플랜은 미국이 보유한 핵을 국제 관리 하에 두는 대신 더 이상의 핵보유국이 나오지 않도록 국제 감시와 사찰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22년 뒤의 핵확산금지조약과 맥락 상 차이가 없었던 이 제안에 소련은 어이 없다며 '그로미코 계획'으로 응수했다. 그것은 기존의 미국 핵무기를 전량 폐기하되 사찰은 실시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고 이에 미국은 원자력법을 제정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원자력 기술을 해외로 이전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못박았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핵무기를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한 국가이며 그것도 민간도시에다가 써먹은 전력이 있었지만 정작 핵무기를 자신들만이 독점하려는 일종의 강박이 바루크 플랜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왔을 때부터 있었던 셈.
이는 냉전 시대에 들어 적대 국가도 아닌 동맹국에게로 비핵화 레짐에 대한 강박이 나타나는 계기가 되었다. 핵무장 때문은 아니지만 이란, 칠레, 남베트남, 과테말라 등 미국의 우방국에서 대마자주외교를 시도했었던 지도자들은 CIA의 사주를 받아 "대리전"에 나선 군부 세력에 의해 축출당했다. 미국은 흑인들을 노예로 부려먹기 위해서 전쟁을 불사했던 적도 있었고 또 스페인으로부터 쿠바와 필리핀을 강탈하여 전진 기지로 사용하기 위해 메인호 사건을 조작해 전쟁 명분까지 만들었던 적이 있는 나라인 만큼 깊은 인종주의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렇기에 미국에게 있어서 동아시아의 동맹국들이란 대등한 협력 관계의 주권국이라기 보다는 적국을 견제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는게 불편한 진실이다.
따라서 미국은 적국인 중국이나 북한이 가만히 있는 상황에서도 본인들이 먼저 앞장 서서 동맹국들의 핵무장을 막았다. 일본의 외교관 마고사키 우케루는 <미국은 동아시아를 어떻게 지배했나>라는 책에서 전후 70년간 일본은 자신들이 만주국을 다뤘던 것과 비슷한 취급을 미국에게 받았다고 하는데 과연 한국은 여기서 자유로울까? 미국은 기본적으로 오리엔탈리즘과 인종주의를 기반으로 외교를 하는 나라인데? 결국 미국이 일본을 거세시키고 한국과 대만의 핵무장 및 미사일 개발을 제한해버린 것은 북한이나 중국 입장에서 본다면 손 안대고 코 푼 격으로 팀킬 때문에 어부지리로 한마디로 "개이득"보게 된 거나 다름이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와 맺은 원자력 협정을 보면 베트남은 조약상으로 보면 불리해보이나 우라늄 농축 금지나 사용 후 핵 재처리 금지 조항은 없어 사실상 기술만 있으면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이 얼마든지 가능한 상황이다 캐나다와 맺은 협정에서는 허용한다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합의의사록에 미국과 캐나다 양국은 재이전, 재처리, 농축 등에 사전 동의권을 행사하지 않는다고 협약을 맺었다. 또 스위스와의 협정에서도 본문에서는 표준협정을 원용하여 허용 관련해서는 언급이 되어 있지 않지만 합의의사록에서 재처리를 가능케 하는 조항을 포함시켰다. 심지어 이집트와의 협정에서도 재처리 관련하여 양 당사자가 합의할 경우 합의시설에서 재처리를 가능케 하는 유연한 조항을 포함시켰고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등의 국가들도 농축시설을 가졌지만 미국은 이를 묵인했다.아예 최근에는 오커스(AUKUS) 일원인 호주에 대해서는 핵잠수함을 조기에 공급해주고 있다.
반면 한국은 2021년까지 한미 미사일 거리지침에 묶여서 미사일 개발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우주 산업 개발에도 악영향이 갈 정도였고 박정희의 핵개발 시도와 오늘날까지의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시도를 철저하게 봉쇄한 것은 북한도 중국도 소련도 하물며 일본도 아닌 미국 정부였다. 자주적인 핵 개발 시도를 막은 것으로도 모자랐는지 일방적으로 NPT 가입을 시켰고 이는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벗어나 독자 외교를 하겠다는 것을 원천봉쇄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된다. 북한이 중국의 묵인 하에 사정거리 제한 없이 마구 미사일을 날리고 핵 개발에 간섭을 받지 않게 된 상황과 대조되게미국은 한국, 일본, 대만 같은 주변국들에게 자꾸 비핵화를 강조하며 여전히 NPT 레짐에 대해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원래 적국의 핵무장에 대한 대책은 맞대응이 답이다. 미국의 핵개발에 소련이, 중국의 핵개발에 인도가, 인도의 핵개발에 파키스탄이 핵개발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그렇게 해야 핵균형이 맞춰진다. 미국은 광기에 가깝게 동맹국의 비핵화에 집착하는데 이건 핵 미보유국이면서 좀 거슬리는 국가는 이라크나 파나마, 시리아, 유고슬라비아 같이 마음대로 침략하기 편하게 위함이다. 일본이 시게미쓰 마모루를 비롯해 자주외교를 주장한 외교관들이 GHQ의 사주를 받은 요시다 시게루에 의해 추방당한 것이나 기시 노부스케 총리가 미일 안보조약을 개정했음에도 그 이상의 합의 진전을 보지 못한 채 사퇴해야 했던 것이나 플라자 합의 당시 누가봐도 일본에 불리한데 받아들여야 했던 것도 결국 미국이 동맹국을 대상으로 핵우산과 안전보장이라는 핵심 축을 꽉 잡고 있기 때문에 굴복할 수 밖에 없던 부분도 있다.
최근의 워싱턴 선언은 실체조차 없다. 미래에 필요할 가능성이 생길지도 모르는 한국의 자체 핵무장의 여지조차 다 증발시켜버린 것도 모자라서 전술핵 재배치, 나토식 핵공유 그 어느 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저 NPT 레짐에 대한 재확인만 했을 뿐이지, 오히려 미국이 핵 확장억제 강화를 명문화해서 우리나라가 상황에 따라 고를 수 있는 계획들의 선택지만 스스로 좁혀지게 만들었다. 우리나라의 핵무장 여지를 없앨거면 그에 맞는 명확한 보장이라도 얻어왔으면 그래도 납득이 가능할텐데 결국은 아무것도 챙긴게 없었다.
솔직하게 핵무장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기도 하고 나 역시 즉각 핵개발이 아닌 현 상황에서는 신중하게 골라야 할 카드로 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점점 상황이 바뀌고 있고 또 어떻게 변할 지 모르기에 필요한 때가 올 경우를 대비해 준비를 해야 한다고 본다. 대북제재? 더 이상 안 먹히고 일전의 글에서 내가 주장한 한반도 국가연합론의 경우 일단 우리가 스스로 핵인질 상태로부터 안전보장을 할 수단을 확보한 후에 대등한 위치에서 북한의 주변국으로부터의 체제 보장 약속 및 완충지대화를 논의한다는 것이지, 결코 북한한테 밑도 끝도 없이 퍼주거나 아무 효과도 없는 대북제재만 반복하는 짓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결국 우리의 생존이 확보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통일이든 국가연합이든 시기상조인 것을 얘기해봐야 그림의 떡일 뿐이다.
우리는 어쨌든 상대방이 위협하는 와중에도 NPT를 끝까지 준수한 국가인데 국제사회와 국제법은 그런 한국을 북한이라는 위험한 행동도 서슴치 않는 곳으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으니 이에 다르게 생각해보면 한국 역시 탈퇴 권한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어디까지나 핵무장은 가장 마지막 순위가 되어야 하며 대신 우라늄 농축 같은 기초는 다질 필요가 있다. 참고로 원자력협정 개정으로 농축을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미국과 협의가 전제가 되고 있으며 미국은 협의를 질질 끌면서 방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니 이번 워싱턴 선언에서 미국으로부터 우라늄 농축에 대한 약속이라도 받았어야 했는데 받기는 커녕 핵무장 여지를 공개적으로 포기 선언하면서 가지고 있던 카드까지 다 내려놔버렸다. 아니 그것도 못하겠으면 핵잠수함이라도 인정받으라니까? 맨날 전임 정권 강조하면서 그 문재인조차도 최소한 한미 미사일 거리 지침을폐기한건 안보일려나?
물론 핵무장이 이제와서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할려면 진작에 했어야 한데 미국의 NPT 레짐에 대한 집착으로 실패했고 그 결과가 국가 전체가 북한의 핵인질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이어지게 되었다. 진짜 워싱턴 선언을 자랑이랍시고 얘기하는 거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는데 조금이라도 한국이 주권 국가로 취급받고 싶으면 그 잘난워싱턴인지 뭔지 영구 비핵화 합의문부터 찢어버려야 한다. 지금 집권 여당의 조상 격인 과거 이승만이나 박정희도 미국에게 거의 반미주의자라 욕먹어도 할 말 없을 수준으로 죽어라 들이받으면서 국익을 얻어냈고 그렇게 얻은게 보수 진영이 자신들이 최고의 업적이라 주장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이었고 박정희의 경우 카터의 주한미군 철수 드립에 핵무장을 교섭 도구 카드로 사용해 맞받아쳐서 추가로 군사원조를 받아내 한국군 현대화 및 자주국방의 기초를 마련했다. 전직 대통령, 그것도 보수의 원조 정치인들이 그런 자세를 보였었는데 좀 그걸 본받아서 국익을 위해 때로는 들이받는 모습 보이면 어디 덧나나?
" 내 후임으로 올 대장대신은 나와 같은 태도를 취해야 헤. 그러면 또 추방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2, 3년 계속하다 보면 GHQ도 약간은 반성을 하겠지." 이시바시 단잔이라는 정치가가 미국의 압력을 받은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 의해 전범으로 몰려 공직에서 추방당한 후에 했던 말이다. 정작 이시바시 단잔은 만주사변부터 태평양 전쟁까지 군국주의 폭주에 일관되게 반대해오다가 군부에 탄압받았던 사람이었지만. 이 말에 의해 알 수 있는 건 오늘날 우리보다 더 대미종속적이었던 GHQ 시대 일본에서도 저렇게 압력에 저항하던 정치가가 존재했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그래도 전작권이나 핵무장, 원자력 협정 등을 제외하곤 나름 점차 주권 요소들을 찾아가고 있는 상황이니 저들보다는 나을텐데 우리라고 압력에 저항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올해는 한미동맹 70주년이다. 한미관계는 냉전 속에서 반공 자유민주주의의 가치 이름 아래 출발했고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런 만큼 70주년을 맞아 한미관계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생각하며 어떻게 한미관계를 21세기에 맞게 발전시키면서도 동시에 자주적으로 해나갈 방편에 대해 찾아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