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가자지구 외에도 또 다른 전쟁 분위기가 감돌고 있는 지역을 꼽자면 바로 이스라엘 북부~레바논 남부 국경지대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소탕전을 본격적으로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만약 이 북부가 뚫린다면 전쟁의 규모가 전국토로 확산되는 건 시간 문제가 될 것이고 이는 중동전쟁 이래 이스라엘이 가장 피하고 싶어했던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다. 이 아슬아슬한 상황에 중심에 있는 단체가 "헤즈볼라"라는 무장단체인데 이들 또한 하마스, 후티 반군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첨병 노릇을 하는 조직으로써 어찌보면 하마스 이상의 안보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은 존재이기도 하다.그래서 이 김에 헤즈볼라라는 조직은 누구이며, 어떻게 성장하고 있는지, 그리고 명암을 모두 분석해보도록 할 것이다.
본론인 헤즈볼라 이야기에 앞서 레바논이라는 나라에 대한 얘기를 해보자면 레바논은 이슬람교가 다수인 중동 지역에서 상당히 특이한 국가라고 볼 수 있다. 독립 당시 기준 기독교 인구가 54%였고 그 중에서도 동방 가톨릭인 마론파가 28.8%나 차지했다. 그 다음은 수니파 무슬림이 22.4%, 시아파가 19.6%를 차지하며 뒤를 이었다. 이렇듯 다종교 사회인지라 권력은 각 종교 세력에 배분되어 대통령직은 마론파 기독교, 수상직은 수니파, 국회의장직은 시아파에게 배정되고 국회 의석과 정부 요직에서 기독교와 무슬림의 비율은 6:5로 설정하며 독립국으로 출발했다. 그렇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미봉책에 불과했고 나중에 커다란 사건이 하나 터지면 흔들릴 불안 요소가 잠재되어 있었다.
실제로 이 시기 시아파 출신 공직자는 3.2%에 불과했고 마론파의 대통령직과 수니파의 수상직에 비해 시아파의 국회의장직은 너무 권력이 약했었다. 그래도 한동안은 레바논은 잘 성장했지만 1960년대 들어서 인구증가와 도시화라는 급속한 변화 속 상황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한다. 1956~1975년 기간 동안 시아파 인구는 75만명까지 늘어서 전체 인구의 30%까지 성장했지만 그들의 정치적 입지는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고 1970년대 초 시아파 교도들의 소득은 레바논인 평균의 75%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시아파들은 남부 베카 계곡의 농촌지역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규모일 정도로 많았지만 정작 이를 위한 정부 예산은 1%도 되지 않았으며 설상가상으로 레바논 남부가 이스라엘과 PLO의 싸움터로 변하면서 거주자들이 베이루트 남부와 동부로 이주, 자연스레 빈곤지대가 되었다. 가장 인구가 많이 늘어난 종파는 시아파였지만 그에 맞게 정책이 시행되지 않은 것이다.
이 상황에서 등장한 인물이 무사 알 사드르라는 인물이다. 그는 비록 이란 태생이지만 씨족으로 분열되어 있는 남부 지역의 시아파를 특유의 언변으로 한데 끌어모았고 중동전쟁 와중 이스라엘군과 PLO의 충돌로 시아파 마을들이 파괴당하는 일들이 벌어지며 더욱 지지를 받았다. 그 상황에서 요르단 정부의 탄압을 견디다 못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레바논에 와서 해방운동의 거점을 마련하기 시작했고 이들은 기독교계 민병대와 잦은 충돌을 벌였다. 무사 역시 PLO 및 파타의 지원을 받아 시아파 민병대인 아말을 창설했고 적극적으로 나선다. 비록 무사는 리비아에서 행방불명되며 실패했지만 그가 시작한 시아파 정치운동은 오늘날 헤즈볼라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사실 팔레스타인 게릴라들과 레바논 시아파들은 원래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도 그럴게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레바논을 거점으로 삼으면서 이스라엘군이 쳐들어왔고 그 때문에 가만히 있던 본인들까지 피해를 입었으니 말이다. 1978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손쉽게 정리된 것도 아말과 팔레스타인 게릴라 사이의 내분 때문이었으며 시아파와 PLO, 파타 간의 일전이 임박했다는 어느 외신 보도까지 있을 정도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인한 레바논 남부 지역의 건물 파괴와 토지 황폐화가 심각하여 시아파 주민들이 1982년 2차 침공 때 이스라엘군이 들어오자 환영하기도 했다. 이스라엘도 이를 잘 활용하였고.
하지만 이스라엘군은 예상보다 장기주둔하면서 통치가 점차 포악해져갔다. 그 상황에서 1983년 10월 레바논 남부의 나바티예라는 곳에서 아슈라 행사 진행 도중 이스라엘군과 시아파 주민들이 충돌해 3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부상입는 사건이 벌어지게 된다.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진압되니 이스라엘군의 점령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시작되자 레바논 내 시아파 세력은 노선을 두고 분열되기 시작했고 그 와중에 미군이 레바논 정부군을 돕자 반미적 성향이 나타나기 시작했다.한편 비슷한 시기 이슬람 혁명으로 집권한 이란의 호메이니 정권은 1982년 레바논 시아파 인사들을 테헤란으로 불러모아서 반 이스라엘 투쟁을 할 것을 주문했고 1,500명의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원들을 파견해 자금과 훈련을 제공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조직이 바로 '신의 정당'이라는 뜻의 헤즈볼라라는 무장단체인 것이다.
1982년 티이르에 위치한 이스라엘군 본부와 베이루트의 미군 막사에 대한 자살폭탄 테러로 처음 모습을 드러낸 헤즈볼라는 1985년 레바논에서 서방 세력을 추방하고 이스라엘을 파괴하겠다고 선언하며 전면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또 그 해에는 산하 무장단체인 "이슬람저항단체"를 조직했고 각종 인질사건, 게릴라 전으로 적극적인 저항 의지를 표출했다. 1988년 하반기에 헤즈볼라는 이란의 지원 하에 남부 레바논을 공격해 같은 시아파 민병대이지만 보다 친이스라엘적이었던 기존의 무장단체, 즉 무사가 창설했던 아말을 공격했다가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중재로 해결하기도 했었다. 이렇게만 본다면 헤즈볼라는 하마스, 후티 반군과도 별 다를 바 없는 그냥 반군에 가까운 조직일 것이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1989년 타이프 협정을 계기로 어느정도 현실 정치에도 관여를 하고 있는 형국이다. 호메이니 사후 하메이니가 최고 지도자가 된 분위기 속에서 1992년 8명의 의원을 선거에서 당선시키며 의회에 입성했다. 한마디로 합법 정당이 된 것이다. 2000년 선거에서는 아말보다 많은 9석을 획득했고 2005년부터는 내각 직책에도 관여하기 시작했다. 참고로 가장 최근의 2022년 총선에서 헤즈볼라는 128명의 의원으로 구성된 레바논 의회에서 13석을 얻었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2006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을 재침공했었는데 의외로 나름대로 헤즈볼라 애들이 초계함까지 반파시킬 정도로 잘 싸우면서 무승부로 끝냈다. 이것이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입지가 아직까지도 강한 이유 중 하나.
헤즈볼라의 군사력은 정확히 말해 테러리스트 성격의 이슬람 지하디스트 군사조직이 아니다. 정확히는 군벌이나 당군에 가깝다. 무장병력은 2만의 하마스와도 비교가 안 되는 수준인 6만 5천 명이며 전차, 장갑차, 드론, 미사일 등 정규군 수준이어야 굴릴 수 있는 장비들을 다 가지고 있다. 특히 사거리가 200 km에 달하는 젤잘-2 미사일 등 150,000개의 로켓과 미사일 및 원격조종이 가능한 무인항공기를 보유하고 있고 통일된 군복 체계까지 갖추고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군에게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하마스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가 바로 헤즈볼라인 것도 있다. 어느 누군가는 헤즈볼라에 대해 "군대처럼 훈련되고 국가처럼 장비를 갖춘 민병대"라고 지칭했는데 그 표현이 아마 가장 적합한 말일 것이다.
또한 헤즈볼라는 항공기, 헬리콥터, 탄도 및 순항 미사일은 물론 드론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는 러시아제 SA-22와 같은 방어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헤즈볼라의 자산은 제공권 우위에 크게 의존하는 이스라엘 군대에 상당한 위협이며 정찰 임무를 수행하거나 폭발물을 운반할 수 있는 2,000대 이상의 드론을 보유하고 있기에 단일 목표에 대해 여러 개를 발사해 이스라엘 방공 시스템에 커다란 위협을 줄 수 있다. 게다가 시리아 내전에 파병가서 반군과 싸울 정도의 여유도 있는 건 덤이고. 무엇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차의 환상이 깨지고 2006년 레바논 침공 때도 이스라엘군 메르카바가 시가지에 끼어서 헤즈볼라 보병들한테 그대로 난타당한 것을 보면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무조건 친다고 다 해결되는 문제는 아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이스라엘이 국경을 맞대고 있는 국가, 세력 중 가장 큰 안보적 위협 요소로 헤즈볼라를 꼽아도 될 정도다.
재미있는 점은 헤즈볼라가 자신들이 점령 중인 지역에서 내정까지도 다한다는 것이다. 일방적으로 인간방패, 공포정치만을 앞세우는 하마스나 내정이라고 할 것도 없는 무능한 탈레반, 잔혹하기만 하고 비전은 없는 후티 반군과는 달리 헤즈볼라는 거의 유사 자치정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의 사회복지사업은 구호와 자선활동을 넘어서 쓰레기 수거, 경제적 인프라 건설, 교육, 방송, 의료, 보건 등 전 사회에 걸쳐 정부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레바논 중앙정부가 무능하고 부패한 틈새를 노려 헤즈볼라는 전국의 보건소와 방역센터를 활용해 코로나 대응을 대신했고 이게 어느정도 수준이냐면 정부가 아니라 일개 군벌인 헤즈볼라가 15,000명의 자체 의료 서비스 인력을 각 지역에 파견해 의료 지원 및 방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지경이다.
중앙정부의 무능, 부패, 사회경제적 저발전 등 다양한 요소들이 겹치면서 레바논에서 정부에 대한 민심은 악화되었고 이러한 정치적 공백을 헤즈볼라가 빠르게 메워가며 일종의 대안적 역할을 자처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헤즈볼라는 단순 이스라엘군의 점령에 저항하는 게릴라 무장조직으로 출발했지만 대이스라엘 전쟁 속에서 생존에 성공한 것을 기점으로 의회에서 힘을 확대해갔고 그 결과 제도권 정치에서 헤즈볼라는 더 이상 무시 못할 존재가 되었다. 특히 저소득층 레바논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복지 사업은 그들의 정치적 입지를 키워줬으며 레바논 특유의 종파주의적 권력 독점 탓에 중앙으로부터 소외된 주민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받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이처럼 헤즈볼라가 지속적으로 성장해온 것은 무장 투쟁 같은 군사적인 방법 뿐 아니라 내정에도 어느정도 신경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일례로 2021년 베이루트 폭발 사건 때 에너지 문제가 악화되었음에도 레바논 중앙정부가 제대로 대처를 못하는 사이 헤즈볼라는 직접 나서서 이란으로부터 중수를 구해오는 계획을 내놓기도 했다.
"글로벌 비즈니스 리포트"에 따르면 헤즈볼라는 "착한 대부업"이라는 이름으로 저소득층에 대해 무이자 대출 지원, 복지 카드를 통한 가계 지원, 저비용 임대주택 등을 제공해주고 있다고 한다. 덧붙여 디아스포라와의 협력을 통해 해외 진출을 모색 중이다. 이쯤되면 국가 속의 국가, 또는 준국가 행위자라는 분석이 타당성이 있는 셈. 게다가 이 시점에서 레바논 중앙정부가 서민 경제 악화와 부정부패 문제에 대해 별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도 아니라서 헤즈볼라가 그런 정치 공백 속에서 사회경제적 역할이 점점 커지며 청년층, 무슬림 인구에게 지지를 받기 유리한 환경이 점점 조성되는 중이다. 앞으로 정부의 통치 기능이 정상화되지 않는 이상 레바논 국민들은 비효율적인 중앙정부가 아닌 헤즈볼라의 준국가적 기능을 더 선호할 것이고 따라서 헤즈볼라에게 있어서는 더 성장할 발판이 가만히 있어도 제공될 가능성이 높다.
이란, 하마스와 친하다는 점에서 오해받기 쉽지만 헤즈볼라는 의외로 이슬람 근본주의, 극단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이건 사실 시아파인 시리아 아사드 정권도 마찬가지인데 이란의 시아파는 다소 원리주의적이지만 시리아 지역은 알라위파 영향이 있어서 아랍 국가라 할 수 없을 만큼 세속주의적인 국가 체제를 갖추고 있다. 레바논도 앞에서 계속 말했다시피 시아파 외에도 기독교, 수니파도 같이 공존하는 지역인지라 압도적 다수가 아닌 시아파들이 일방적으로 시아파 원리주의를 강조할 환경도 아닌데다가 헤즈볼라의 지지자 중에는 시아파 뿐만 아니라 수니파도 있고 기독교에도 타 무슬림에 비해 매우 유화적인 태도로 접근한다. 심지어 히잡, 부르카 같은 이슬람 국가의 상징인 것들도 강요를 하지 않고 있고 이슬람주의 무장단체이면서도 여성 간부들을 상당수 두고 있는 상태. 이란 혁명의 영향으로 생긴 조직이지만 신정 국가를 꿈꾸는 후티 반군과는 달리 세속적 민족 국가를 추구하는 방향이라는 점이 아이러니할텐데 애초에 레바논이라는 국가 자체가 종파의 영향을 깊게 받아도 그것과 별개로 세속주의 성향 만큼은 꽤 강하기에 가능한 일인 것도 있다.
헤즈볼라는 테러단체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시각이 크게 엇갈리는 주제이다. 내가 이때까지 쓴 내용으로만 본다면 IS, 알카에다 같은 인간 말종들은 물론이고 후티 반군, 탈레반보다도 훨씬 나은 정치단체로 보일텐데 물론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긴 해도 나는 이들이 과연 레바논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대해선 좀 회의적이다. 일단 헤즈볼라는 실질적으로 이란이 생명줄을 쥐고 있는 상태라서 냉정히 말해 이란이 무모하게 이스라엘을 대침공하라 해도 따를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매우 명백하기에 하마스보다도 본연의 의미에서 이란의 대리인에 가까운 존재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헤즈볼라가 무언가를 주체적으로 해나갈 역량은 현재로선 기대하기 힘들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헤즈볼라가 민생 안정에 주력해서 주민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과 별개로 어디까지나 탈레반보다 낫다는 것이지, 준국가인 만큼 내정 자체가 마냥 잘하진 않았다. 이란의 대리전을 해주는 조직이 헤즈볼라인 만큼 그들이 하는 사회복지 사업을 비롯한 내정들은 대부분이 이란의 지원금으로 충당되고 있으며 지금 경제 상태가 연간 약 250%에 인플레이션율을 기록하는 중인 시점에 만약 이란이 이스라엘로 쳐들어가라 한다면 레바논 경제 기반이 다 초토화되서 본인들이 중앙정부보다 낫다고 내세운 내정 업적(?)마저 다 부수게 될 판국이다. 그러니 헤즈볼라에게 상황이 더 악화되는 걸 막을 수단은 있어도 자체적으로 폐허가 된 영토를 복구하여 경기를 활성화하고 이걸 또 성장시킬 동력은 아예 없다..
또 중동 무장단체치고는 민간인 피해를 가장 최소화하는 조직 중 하나가 헤즈볼라이긴 해도 어쨌든 1980년대에 이스라엘과 미국 대사관을 상대로 자살폭탄 테러를 벌인 전적은 분명히 있고 마약 재배 사업에도 약간의 발은 걸치고 있으니 비판받을 거리가 은근히 많다고 볼 수 있다. 민간인은 아니지만 이스라엘 군인들을 상대로 납치를 한 전적도 잘 찾아보면 충분히 몇건 발견할 수 있으며 21세기 이후로도 지하디스트들 마냥 폭주하진 않지만 자살폭탄 테러를 종종 저지른 적이 있었다. 이 때문에 서방 세계에서는 헤즈볼라를 군사조직이 아닌 테러단체로 지정할 때도 있었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헤즈볼라는 합법 정당이자 준국가 행위자라는 양지와 테러단체와 군벌이라는 음지라는 양면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조직이라는 것이다.
2023년 10월 들어서 헤즈볼라에게도 중대한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사건인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현재 진행 중이다. 일단 전문가들의 견해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의 전면전을 바라고 있진 않다는 것인데 왜냐면 그럴 경우 레바논 본토의 피해가 막심한 것은 물론이고 미국의 개입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가 미국 드론에 공습당해 사망했을 때 헤즈볼라는 보복을 운운하며 위협했지만 정작 크게 행동으로 나선 것은 없었다. 미국은 헤즈볼라 개입 가정시 확전 우려가 계속 나오고 있자 지속적으로 경고장을 보내며 선을 넘지 말라고 하고 있는데 이스라엘군 상대하는 것보다 더 큰 문제가 미군이기에 확전이 쉽지는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다.
다만 2021년 베이루트 폭발 사고로 연료 부족에 레바논 정부가 대처를 못하고 헤즈볼라가 대신 나서서 이란으로부터 100만 갤런 이상의 연료를 수입하여 문제를 해결했지만 발단인 폭발 사고에 헤즈볼라가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은 계속 나오는 중이라 그들 입장에서는 지금 국내 상태가 정치적으로 안정된 상황은 아니다. 2022년 총선에서도 무소속 반 헤즈볼라 성향 후보들이 당선된 것도 레바논 민심이 예전만큼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고. 그래서 헤즈볼라 입장에서도 상황을 만회할 무언가가 필요할 거고 자신들의 정체성인 강경한 반시오니즘을 꺼내들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지상작전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고 여기서 민간인 피해가 극심할 거라는 건 워낙 명확하다. 그렇게 가자지구 지상전 시작 시 북부 전선에 상대적으로 공백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중동 국가들의 이스라엘에 대한 여론도 최악이 될테니 기습 때리기 나쁜 환경은 아닌 시점이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헤즈볼라가 본격적으로 참전하면 시아파 초승달 지대의 시리아, 이란도 자연스레 딸려올 거고 최악의 경우 5차 중동전쟁으로 번질 위험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란은 이 전쟁을 두고 역내 영향력 유지와 자국 여론 사이에서 진퇴양난에 빠진 와중에 제한적인 개입으로 방향을 잡았고 사우디는 전쟁 이전까지 이스라엘과 관계 개선을 해오고 있었기에 당장은 국제전으로 번질 가능성은 낮은 편이긴 하다. 물론 이란의 제한적 개입 선언에 미국은 간과 안한다고 하며 강경하게 나오고 있지만 미국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불필요하게 중동 지역까지 난리판으로 만들 이유는 없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는 이란과 이스라엘 주변 시아파 세력이 어디까지 개입하느냐에 따라 확전 여부가 갈린다는 것과 이스라엘군의 지상작전으로 민간인 피해가 커질 경우 아랍 내부에서 얼마나 반 이스라엘 여론이 벌어질 것인가라는 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