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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Oct 26. 2023

이란 정치의 숨겨진 실세: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이란 중동전략의 배후이자 핵심

https://youtu.be/k5BXiI4WiEE?si=t-K4ty5BeDdKvHq6

2019년 4월 15일 미국 국무부는 수정 이민 및 국적법 제219조에 따라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 산하 쿠드스군을 포함하여 이슬람 혁명수비대 전체를 외국 테러 조직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다음해 초에는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이마니 장군이 미군의 드론 기습을 당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해프닝은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의 전세계 유행이 시작되며 조용히 묻힌 채 지나갔지만 그래도 중동에서 위기가 고조되는데 한 몫했고 이 중심에 있던 군사 조직이 바로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였다. 이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다른 국가의 군대와는 구별되는, 또 하나의 정규군으로서 이란이라는 국가의 정치체제라는 복잡한 이중 구조 속에서 출발했다.


이란은 겉으로는 공화제 형식의 체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란의 정치 체제는 세속적인 의미에서의 공화제가 아닌 "신정적 공화제"에 가깝다. 이슬람 율법에 의해 통치되면서도 공화국의 수반인 대통령은 국민 투표로 선출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주목해야 할 직책이 있는데 바로 최고지도자라는 것이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래 이란은 최고지도자라는 일종의 종교지도자 직책을 두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호메이니와 하메이니라고 볼 수 있으며 최고지도자는 민주적 정통성을 갖고 선출된 대통령보다 훨씬 더 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는 위치다. 최고지도자의 권한만 봐도 군대 통수권을 비롯하여 대통령의 인면권, 외교권 등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급의 압도적인 것들로 갖춰져 있는 상태.


그리고 그 최고지도자와 이슬람 법학자들의 밑에 있는 조직이 IRGC, 즉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인 것이다. 이들은 정규군과 구분되는 또 하나의 군대로서 정규군의 쿠데타와 반란을 방지할 목적으로 설립된 조직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란 정규군은 영토 방어라는 임무를 수행하는 반면에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이란의 신정체제를 지키고 시아파 세력의 대외 전략 임무를 수행하는 일을 하고 있다. 과거 나치 독일 치하 하인리히 힘러의 슈츠슈타펠(SS)이나 사담 후세인 시절 이라크의 공화국 수비대처럼 이슬람 혁명수비대 역시 이란 신정체제의 사병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사병 기능을 하면서도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육해공군을 전부 다 가지고 있다. 육해공군 외에도 민병대인 바시즈와 정예부대 겸 중동 전략 임무 담당부대인 쿠드스군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대략 12~13만 수준의 병력 규모를 가지고 있다. 참고로 이란 정규군의 규모는 약 35만 명 규모인데 정규군보다는 체급이 작지만 그래도 사병 집단 치고는 꽤 강력한 수준을 자랑함을 알 수 있다. 사실 처음에 혁명수비대는 규모가 마냥 크진 않았지만 이란-이라크 전쟁 속 성직자들의 지지를 받아 점점 확대되어갔고 200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3년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이란 내 안보 문제가 대두되면서 지금에 이르는 수준까지 커지게 된 것이었다.


혁명수비대는 21세기 이후부터 미사일 개발과 비대칭적 해군전략을 구상하고 쿠드스군을 통해 다른 중동 국가의 준군사조직을 지원하는 등 대외전략을 담당하는 부서로 발전했다. 또 이들은 국내 시위 진압으로도 악명이 자자한데 그래서 이란 반정부 운동가들에게 혁명수비대는 그저 정권의 충견일 뿐으로만 여겨지고 있다. 무엇보다 혁명수비대는 정규군과는 달리 징병이 아닌 오직 자원으로 모집하고 있기에 충성도는 남다른 수준이며 성직자들은 충성하는 대가로 이들의 이권을 다 챙겨주는 구조로 조직을 활용하고 있다. 그 결과 혁명수비대 간부들은 정규군 장교들도 감히 함부로 건드리거나 간섭하지 못할 정도의 크나큰 입지를 보유하게 되었다.


혁명수비대는 이란 국내 정치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데 특히 2000년대 초 하타미 정권 때부터 본격화 되었다. 2003년 지방선거에서 혁명수비대 출신 정치인들이 대거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2004년에는 의회까지도 진출하여 정치력을 키우더니, 2005년에는 아예 혁명수비대 출신인 아흐마디네자드가 집권하며 전성기를 맞이 하게된다. 아흐마디네자드는 내각을 대부분 혁명수비대 장교 출신자들로 구성하였고 의회 내 290석 중 80석이 전직 혁명수비대 대원이었다. 더 나아가 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이나 요직들까지 다 독차지한 것은 덤이었고.

아흐마디네자드 정권 동안 혁명수비대는 미친듯이 활개를 치고 다녔는데 2009년 재선 이후부터는 더 심해졌다. 혁명수비대 간부들은 하타미 전 대통령 같은 개혁파 정치인들을 혐오했던 탓인지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의 유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섰고 반정부 시위 탄압에는 더 앞장섰다. 그러다가 하산 로하니로 정권이 바뀌게 되었고 그 와중에도 혁명수비대의 역할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래도 로하니는 아흐마디네자드와는 달리 취임 이후 혁명수비대를 문민통제 하에 두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내각 내에 IRGC 출신 인물을 급격히 줄이는 등 나름대로 견제에 나섰지만 트럼프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이 이란 핵 협정을 파기하면서부터 혁명수비대 같은 강경파에 힘이 실렸다. 실제로 솔레이마니 사후인 2020년 2월에 치러진 총선에서 이란 보수파 진영이 290석의 의석 중 230석을 얻어 완전히 압승해버렸다. 라이시 현 대통령 역시 그들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이대로라면 하메이니 사후 이란의 군사독재 국가로 변모하는 건 시간 문제라는 지적도 나오는 중.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는 경제 분야에서도 큰 입김을 자랑하는데 어느 정도로 추산되냐면 이란 국내 총생산(GDP)의 6분의 1에서 많게는 3분의 2까지를 차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다. 이란 헌법 제147조를 악용한 사례라고도 볼 수 있는데 이란-이라크 전쟁이 끝난 후 참전한 혁명수비대 대원들의 재건사업 참여와 경제적 기회의 마련 제공을 해주는 것에서 이들의 경제 분야 장악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호메이니 사후 혁명수비대 감독 하에 있던 기업들은 고르바라는 회사로 합병되었으며 이 고르바는 건설, 탄화수소, 통신 등 지금까지 이란 주요 산업을 위한 최고의 공공개발사업 수주회사로 자리매김해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고르바 출신 인사들이 이란 정부 요직들에 기용되는 건 덤이고.


아흐마디네자드 정권 당시에는 국영기업 민영화가 있었는데 이때 혁명수비대가 아예 자체 기업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민영화 과정에서 혁명수비대 관련 기업들은 민영화 대상 기업들을 대거 인수시켰고 이로써 혁명수비대는 자금을 엄청나게 확보하게 된다. 가장 큰 수입원 중 하나는 이란 핵심 산업인 석유와 가스 관련 계약을 통해 250억 달러의 이익을 챙겨갔던 것이었고 그 결과 오늘날 혁명수비대는 에너지에서 건설, 통신, 자동차 제조, 금융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경제 산업들을 다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 되어버렸다. 그 외에도 혁명수비대의 몇몇 인사들은 각종 밀수 사업들로도 사적인 이득을 많이 챙겨갔으며 경제난으로 국방 예산이 감축되는 와중에도 혁명수비대 만큼은 특별 대우를 받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렇게 이란의 실질적인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는 혁명수비대가 자신들이 구상한 이란의 중동전략을 어떻게 실행하는지도 살펴보자. 이란 혁명수비대의 가장 잘 알려진 대외전략 담당 부서는 솔레이마니로 인해 유명해진 쿠드스군이다. 이들은 레바논에 본부를 둔 헤즈볼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인 인민동원군, 시리아 정부에 충성하는 시아파 민병대와 정부군, 예멘의 후티 반군을 포함한 중동의 친이란 세력들에 무기, 돈, 훈련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특히 이라크 내 시아파 민병대가 IS 토벌전을 벌일 때 솔레이마니가 쿠드스군을 직접 데리고 전장에 나가 지휘하기도 했다. IS 토벌 과정과 시리아 내전에서의 아사드 정권 승리에 이란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했는데 그 부분에 혁명수비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을 것이다.


2020년 미 국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하마스를 포함한 팔레스타인 무장 단체에 연간 약 1억 달러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고 2022년 하마스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는 하마스가 그해 이란으로부터 약 7천만 달러를 받았다고 하였다. 즉 적성국인 이스라엘을 직접적으로 견제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에도 이란 혁명수비대는 아주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얘기다. 당장 이란 요원들은 하마스 기술자들에게 설탕과 파이프 같은 일상적인 재료로 단거리 로켓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쳤는데 이게 바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시작을 알린 까삼 로켓의 베이스이기도 하다. 또 이란의 지원을 받는 후티 반군은 순항 미사일, 탄도 미사일로 군함까지 격추할 정도로 단순한 반군 이상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 정도이며 얘네는 이란의 숙적인 사우디를 이란을 대신해 엿먹여주고 있는 실정이다.


수니파 극단주의자인 탈레반에게도 쿠드스군은 이용 가치가 있다는 판단 하에 지원을 멈추지 않는다. 쿠드스군은 2000년대 초반부터 카불이 점령될 때까지 탈레반에 AK 소총, C4를 비롯한 폭발물, ATGM, SA-14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및 기타 형태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는데 그 과정에서 쿠드스군은 무기상이나 아편 판매로 수익을 추구하는 범죄 조직들을 브로커로 삼아 탈레반과 거래했다. 물론 시아파인 이란은 수니파인 탈레반에게 데인 것이 있고 집권을 딱히 바란 것도 아니며 그들을 딱히 신뢰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본인들 멀티나 다름 없는 헤라트 지방의 안전을 보장받고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 영향력 확대 및 대서방 압박 용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기 위해 지향하는 노선이 아예 다른 탈레반과도 동상이몽을 하며 손잡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쿠드스군의 중동전략 최고의 성과는 이들이 아니라 레바논의 헤즈볼라다. 미국이 이라크 전쟁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을 붕괴시켜 이란, 이라크,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시아파 초승달 지대가 완성되자 헤즈볼라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가 본격적으로 크게 늘었고 지금 그들의 무장병력은 2만의 하마스와도 비교가 안되는 5배 수준의 10만이며 전차, 장갑차, 드론, 미사일 등 정규군급 장비들을 다 굴리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심지어 헤즈볼라가 점거 중인 레바논 남부는 사실상 자치정부나 다름없는 수준이고 헤즈볼라의 위치상 이스라엘 북부로 기습 치기 좋은 환경이니 시아파 초승달 지대의 확보와 헤즈볼라의 급속한 성장은 이란에게 있어서 그야말로 유리한 판이 짜여지게 된 상황인 것이다.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혁명수비대라는 조직은 과거 구 소련의 KGB나 동독의 슈타지 이상으로 대외공작에 유능한 행보들을 보여왔으며 이란 중동전략의 배후에서 시아파 세력들을 조종하는 중추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란 이슬람 혁명을 수호한다는 본인들의 명분을 그대로 따른 셈이다. 혁명수비대의 꾸준한 공작의 결과만 봐도 오늘날 중동 상황을 얘기할 때 절대 빼놓고 말할 수 없을 만큼 역할이 컸으며 대표적인 것만 봐도 헤즈볼라의 성장, 시리아 아사드 정권의 생존, 하마스의 성장, 후티 반군의 북예멘 점거, IS 토벌전을 통한 이라크 내 시아파 영향력 확대 등 2010년대 중동정세를 논하는데 있어서 이란 혁명수비대 만큼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친 조직은 찾기 힘들 것이다.


저번 이란 대선에서 온건파나 중도파는 헌법수호위원회의 검증 과정에서 죄다 걸러지는 바람에 이렇다 할 후보를 내지 못했고 결국 혁명수비대의 입맛에 맞는 강경파인 라이시가 대통령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말은 이란은 확실하게 혁명수비대의 동의 없이 나라를 움직일 수가 없으며 만약 고령의 최고지도자 하메이니가 사망한다면 실질적으로 군사독재로 변해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기도 하다. 이미 최고지도자 후계자 문제에 혁명수비대가 관여할 것이라는 추측은 점점 신빙성을 얻어가는 중이니 말이다. 따라서 이란 혁명수비대는 점차 명목상으로나마 유지되던 공화제마저 잡아먹고 이란의 주도권을 꽉 잡게 될 확률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들은 이제 21세기판 예니체리라고 봐도 이상할게 없어진 상황이다.


p.s.


드디어 이란의 중동 전략과 대리전 첨병 소개글 다 썼습니다. 원래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벌어지니까 하마스와 이란의 커넥션을 다뤄보고 싶어서 한 편 예상하고 썼으나 이란과 관련된 재밌는 자료들이 서칭에 많이 걸려서 탈레반, 후티 반군, 헤즈볼라, 그리고 본체인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까지 다 다루게 되었습니다. 이라크의 인민동원군에 대해서도 한번 써보고 싶었으나 시아파 민병대들의 연합체적 성격의 조직이라 내부 분파가 복잡한게 걸리는데다가 본래 중동 정세는 시리아나 아프가니스탄 위주로 공부해왔기에 이라크에 대해서는 좀 무지하고 그쪽 정세가 워낙 유동성이 커서(그보단 일일이 자료조사 하는게 조금 힘들어서) 그냥 넘기기로 했습니다.


자료는 KCI나 디비피아에 등재된 논문들을 일부 참고했고 특히 국내 최고 중동 전문가이신 박현도 교수님이 올리신 자료들이 가장 유용했습니다. 그 외에는 외신 기사들이나 외국의 싱크탱크에서 발간하는 간행물들을 보고 참고한 부분도 있고 사건 타임라인 같은 것은 그냥 국내 언론 뉴스 기사 서칭해서 사건 발생연도나 정확한 일자 사실 확인하는데 썼습니다. 서적은 국내 출판시장 중동정세에 대해 다루는 책이 많지 않다보니 실질적으로 참고 문헌으로 인용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대학 도서관에서도 논문 자료는 좀 뒤져봤지만 서적 측면에서는 고를 책이 딱히 없었습니다.


제가 박사 학위 취득자도 아니고 그냥 시간 짬짬이 내서 일과 마치고 밤에 취미로 글 쓰는 일개 학생인 만큼 뭐 특별히 공신력이 있다고는 못하겠고 또 오류도 일부 있을 수 있지만 재밌게 읽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리즈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https://brunch.co.kr/@a346abd5a67a4ed/585 (하마스 편)

https://brunch.co.kr/@a346abd5a67a4ed/591 (탈레반 편)

https://brunch.co.kr/@a346abd5a67a4ed/595 (후티 반군 편)

https://brunch.co.kr/@a346abd5a67a4ed/596 (헤즈볼라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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