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탈레반, 시아파 종주국과 수니파 근본주의 집단이라는 두 세력의 특성상 조화하기란 쉽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이란이 탈레반과 악연이 없었던 것은 아니기도 했고 탈레반 집권 시기인 1998년에는 아프간 북부에서 이란 외교관 11명이 피살되는 사건도 발생했으니 말이다. 또 2023년 올해에는 국경지대에서 두 집단이 서로 무력 충돌하며 위기가 고조되기도 했었다. 결과적으로 확전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중동 정세를 바라보는 관점이 대충 수니파vs시아파로만 보여지는 경우가 많아서 가려지는 사실이지만 시아파인 이란이 수니파 탈레반을 상대로 모종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맺어왔고 그걸 끊기란 쉽지 않다는 것은 분명한 근거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에 대한 의혹은 미군 장성들부터 계속 얘기해왔다.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이중적으로 행동하며 미군을 엿먹이고 있다고 주장한 적이 있었으며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 또한 2009년 8월 보고서에서 이란이 탈레반에 원조를 제공하는 동시에 무기 반입을 허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란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모호한 역할"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 "모호한 역할" 탓에 이란이 전략의 진짜 의도에 대한 혼란이 벌어지는 부분도 있으며 아프간 정부, 탈레반 양측 모두에 양다리 걸치는 방침은 시아파 종주국으로서의 이란의 전략 구상이 이라크, 시리아를 넘어 아프가니스탄까지 포괄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현대사에서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의 관계는 소련군의 아프간 철수 이후부터 본격화된다. 1992년 당시 아프간의 대통령은 라바니였는데 그는 수니파인 타지크족의 일원이었다. 그리하여 시아파 정치 세력인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통일당을 다른 부족과 이간질 시키는 방식으로 탄압했는데 놀랍게도 이때 이란 지도부는 라바니의 편을 들었다. 그러나 지역 안정을 추구하던 이란의 바램과는 달리 결과적으로 최종 승자는 라바니도, 이슬람 통일당도 아닌 탈레반이었고 이들은 이란에 적대적으로 나왔다. 탈레반은 수백 명의 시아파 무슬림을 살해한 것 외에도 시내 이란 영사관을 습격해 이란 외교관 8명과 이란 언론인 1명을 살해하고 이란 국민 50명을 납치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고 이에 분노한 이란이 무력 개입을 시사하는 등 커다란 위기로 번질 뻔한 해프닝도 있었다.
따라서 이란은 2001년 9.11 테러로 인해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벌일 때 알카에다와 협력관계인 탈레반을 조지는 것을 방조 내지는 협력했다. 물론 여기에는 당시 이란의 대통령이 보수파 성향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아닌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였기에 가능했던 부분도 있었다. 당시 이란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개입 국면에서 중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는 등 1979년 이란 혁명 당시의 미 대사관 인질극 사태로 인해 숙적이 되었던 미국에게 협력할 정도로 수니파 근본주의 세력을 조지는 것에 나름 크게 동의하고 있었다. 적어도 테러와의 전쟁 초기에는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수준의 협력은 시간이 갈 수록 점점 소멸되어 갔다.
이란 정부는 아프간 과도정부가 무너질 때까지 그들과 괜찮은 관계를 맺고 있었고 경제 프로젝트들에 협력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뒤에서 탈레반과도 관계를 구축해갔다. 바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 소속 정예부대 쿠드스군이 탈레반에 AK 소총, C4를 비롯한 폭발물, ATGM 및 기타 형태의 지원을 제공했다는 증거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일례로 헬만드 주에서 이란의 무기 지원을 차단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영국군은 러시아제 SA-14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맨패즈)를 발견했는데 이는 실제로 이란군이 현역으로 운용하고 있는 장비였기에 더더욱 논란이 되었다. 결정적으로 탈레반의 은신처를 찾던 미군이 "82mm he lot 02 slash 87"과 같은 표시가 있는 이란제 RPG 15개를 발견하게 된다.
추측을 하나 하자면 이란-아프가니스탄 국경을 넘어 탈레반으로 밀수된 무기의 대부분은 주로 무기상이나 아편 판매로 수익을 추구하는 범죄 조직들을 브로커로 삼아 이루어졌을 확률이 높다. 이란이 아무리 국제사회에서 왕따인 처지라 한들 탈레반을 노골적으로 대놓고는 도울 수 없으니 중간에 중계해줄 대상을 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어느 영국의 관료는 탈레반에 무기를 팔아 아프가니스탄으로 밀반입하는 이란 사업가들이 존재하고 이란 정부 기관 내에 무기를 '기증' 형식으로 넘긴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있다고 보았는데 다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그것이 이란 중앙정부의 지시인지, 아니면 이란 혁명수비대가 주도한 것인지는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어쨌든 확실한 건 탈레반 내에서 이란제 무기의 수요가 높았다는 것.
AK-47, C4폭발물, 박격포 외에도 이란이 탈레반에 넘겨주는 가장 큰 자산 중 하나는 바로 이라크 내전에서 시아파 민병대가 사용한 성형폭약인 EFP로 알려진 첨단 장갑 관통 폭발물이었다. 이란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EFP 20 대는 사방으로 폭발해 충격을 약화시키는 게 아니라 폭발력이 지정된 목표물 방향으로 집중되도록 형상을 갖췄기 때문에 더더욱 위험한 물건이었다. 특히 군용 차량에 경미한 피해를 줄 수 있는 일반 지뢰와 달리 이란제 EFP는 이를 완전히 파괴할 수 있기에 실제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공격을 감행할 때 아주 잘 활용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양측의 커넥션은 계속 나왔다. 2009년 3월,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은 파라 지방의 바흐샤바드 댐 근처에서 이란산 폭발물의 은닉처를 발견했다. 2009년 9월, 아프가니스탄 경찰은 바그람-카불 고속도로를 지나가던 탈레반 병사들을 수색하던 중 이란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폭발물이 담긴 칸을 발견하기도 했다. 결국 이는 미군과 아프가니스탄 정부군이 이란에서 탈레반으로 향하는 대전차 지뢰와 박격포 화물을 차단하는 업무까지 떠맡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고 2009년 5월 마르자 마을에서는 탈레반 부대를 제거하기 위한 작전을 펼치던 연합군이 이란제 폭발물 44개와 이란제 박격포 수십 개를 발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탈레반의 무기 구입 자금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일단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최대의 아편 생산국이고헬만드는 이 나라의 양귀비 작물의 대부분이 재배되는 곳이라는 걸만 알면 바로 정답을 알 수 있다. 탈레반은 마약 거래로 얻은 수익금으로 무기 및 폭발물 구입을 적극적으로 진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 위에서 언급한 미군의 스탠리 매크리스털 장군은 단기적으로 이란의 지원은 전세에 큰 영향을 끼치진 못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이 무자헤딘을 지원한게 부메랑으로 돌아왔듯이 해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공교롭게도 이란 역시 탈레반이 본인들의 예상보다 더 커버려 집권하는 바람에 일이 좀 꼬인 건 함정이지만.
이란이 탈레반을 도왔었던 이유는 여러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헤라트 지방 문제가 크다. 이란의 주요 지정학적 목표 중 하나는 페르시아만, 중앙아시아 및 극동 지역을 연결하는 상품 및 서비스의 운송 및 선적을 위한 강력한 전략적 중심지가 되는 궁극적인 목표와 더불어 아프가니스탄에 경제적 영향권을 창출하는 부가적 목표이다. 실제로 이란은 헤라트 지방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해오고 있으며 이 규모는 인프라 프로젝트, 도로 및 교량 건설, 교육, 농업, 발전 및 통신 구축 등 여러가지로 신경쓰이는 티가 많이 나는 구석이 많다. 또 하나 재밌는 사실은 이 헤라트 지방이라는 곳이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영국에게 강탈당한 곳이라는 거.
덕분에 오늘날 헤라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안정되고 번영하는 지역 중 하나이다. 아프가니스탄 국경에서 고속도로가 완성된 후 이란은 헤라트와 아프가니스탄 북부 외딴 지역을 연결하는 확장 공사에 자금을 지원했고 2009년에는 헤라트 주변에 이란이 건설한 수많은 학교, 보건소, 비즈니스 센터가 8천만 달러 규모의 철도 프로젝트로 인해 이란 내륙과 연결되었다. 그런 만큼 이란에 있어서 헤라트 지방은 사실상 자기 멀티나 다름 없는 곳으로 이곳을 위협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탈레반을 어느정도 달랠 필요가 있었던 부분도 있다.무엇보다 제재 때문에 서방으로 원유를 수출할 수 없는 이란이 인접국인 이라크, 아프간 등 인접국에 휘발유를 수출하고 있는 상황이고 또 헬만드 강이 이란 남부 지역 수자원을 공급하는 대상이니 더욱.
또 하나의 이유는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지원하여 미군 주도로 안정되지 못하게 막음으로써 핵 개발 문제나 이라크, 레바논에서의 시아파 민병대 지원 공작에 대해 서방 세계의 압박이 들어오면 탈레반 지원 카드를 통해 맞불 작전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란 정부는 궁극적으로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원하긴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 당장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는 거다. 이러한 목표 아래 아프가니스탄 내부에서 영향력 확대와 대서방 압박 용도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목적으로 이란은 뒤에서 비공식적으로 탈레반에 무기를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함부로 꺼내기 민감해서 미국도 직접적으로 건들기 보단 이란과의 협상용 카드로 쓰는 중.
그러나 그렇다고 이란이 진짜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의 패권 세력이 되길 원하는가 했냐면 그 부분은 조금 갸우뚱하다. 내전을 피해 이란으로 피난간 난민만 300만명에 달할 것이란 추정치도 있을 정도이고 난민 외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넘어온 마약 문제는 이란 입장에서도 골칫거리이다. 오죽하면 유엔마약범죄국 피셜 2019년 기준 전 세계 아편의 90%, 모르핀 72%, 헤로인 20%가 이란 당국에 의해 적발됐는데 대부분은 아프간이 원산지였을 정도다. 게다가 만약 탈레반이 예전에 집권했을 때처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에 피난처를 제공하는 정책을 펼치면 접경국인 이란의 안보에 악영향이 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예상대로 탈레반이 집권하자 아프가니스탄과 이란은 수자원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고 2023년 5월 27일에는 탈레반의 도발로 이란군과 산발적인 교전이 벌어지다가 이내 협상으로 휴전을 합의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그런가 하면서도 탈레반 집권 후의 아프가니스탄과 이란과의 협력을 기대하는 의견도 있는 편이다. 사에드 라이라즈(Saeed Laylaz)라는 이란의 경제 전문가는 탈레반 정권 수립으로 이란이 아프가니스탄을 통해 미국의 경제제재를 우회해 외화를 수급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란을 제외한 이웃 국가와 연결되는 아프가니스탄의 교통 인프라가 매우 열악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란이 미국의 경제제재를 피해 원유를 비롯한 상품을 수출할 수 있는 시장으로서 아프가니스탄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고 제재 해제의 경우에도 이란의 항구는 아프가니스탄에 공급되는 물자의 통로 역할을 해 아프가니스탄의 재건과 산업화에 기여할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결국 관건은 앞으로의 이란에 행보에 달렸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보자면 탈레반을 키운 주축 중 하나인 건 이란인 셈인데 그 이란이 본인이 키운 도끼에 스스로 발등을 찍힐 것인지, 아니면 적절히 활용하여 헤즈볼라나 하마스처럼 수족으로 길들일 것인지가 이란의 중동 대외전략 구상의 진행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p.s. 이 글은 테러방지센터(Combating Terrorism Center)의 "Iran’s Ambiguous Role in Afghanistan(https://ctc.westpoint.edu/irans-ambiguous-role-in-afghanistan/)"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