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했을 때 내가 썼었던 글이다. 당시에 그냥 대충 대충 자료 긁어서 썼던 게 다시 읽어보니 너무 성의 없기도 하고 대안 관점 시리즈(?)인 <실패한 전쟁사>로써 두번째 글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왜 미군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무기와 화력을 가지고도 패망했는지 써보고자 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 전쟁에서의 남베트남 패망이나 국공내전에서의 장제스 패배도 다뤄볼 거고 여차하면 한번 체첸 전쟁에서의 러시아의 고전이나 6.25 전쟁에서의 북한의 패퇴 또한 다뤄볼 예정이다.
적을 잘못파악한 미국
애초에 탈레반은 미국의 지원으로 탄생한 조직이었다. 이 말이 뭔 헛소리냐고 하겠지만 탈레반의 뿌리는 소련의 아프간 침공 당시 소련군에 맞서 싸우던 무자헤딘이 뿌리고 그들은 CIA의 지원을 받았다. 그 중 오사마 빈 라덴은 알카에다를 창립했고 일부는 북부동맹의 근간이 된다. 어쨌든 소련군이 철군하고 나지불라 정권이 붕괴되며 해방된 아프가니스탄에선 군벌화된 무자헤딘 용사들 간의 내전이 벌어졌고 이때 무자헤딘 출신 오마르가 고아들을 모아 탈레반을 결성하고 정권을 잡아 이슬람 극단주의 통치를 실시한다.
탈레반의 통치는 매우 잔혹했고 무능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의 주장과는 달리 테러조직이었나, 하면 의문이 남는다. 탈레반이 정당한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IS나 알카에다 같은 조직과 그들이 동치될 만한가의 문제다. 이는 하마스나 헤즈볼라도 마찬가지인데 IS는 기본적으로 무차별 테러와 공포 조성에 집중한 조직이지만 탈레반은 그에 비해 정치조직적 성격이 강하며 어느정도 필요에 따라 통치의 강도를 조절한다.
알카에다와 비교하자면 알카에다는 네트워크적 성격이 강한 테러단체다. 탈레반은 알카에다와 가까웠지만 알카에다와 같은 네트워크로서의 테러조직이 아니었으며 국가를 통치하는 정치조직 내지는 군벌에 가까웠다. IS와 알카에다와 탈레반은 애초에 동일선상에서 볼 수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라는 점만 똑같고 네트워크냐, 정치조직이냐에서 결론이 달리지기 때문. 결과적으로 알카에다는 테러 자체가 목적이지만 탈레반은 수단으로써 사용하며 그마저도 아프간, 파키스탄 외의 지역에 도발적으로 어그로를 끌면서 한 적은 없다.
탈레반과 IS의 큰 차이는 최소한의 민사작전을 고려하느냐의 차이에서 나타난다. 지난 90년대 시절의 미치광이식 억압 정책으로부터 탈피해 20년 만에 집권하여 선보이는 행보는 의외로 쟤들 치고 온건하다. 방송에서도 여자 앵커를 내보내거나 풍자방송도 어느정도 허가해줬으며 창설자이자 정권 2인자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중심으로 국제사회의 눈치를 보는 기조가 예전보다는 있다. 게다가 집권하자마자 바로 마약 재배를 금지시키고(물론 얘들도 내전 중에는 마약을 재배했다) 중국이나 아랍 국가들에 접촉하는 등 그냥 모든 나라를 다 적으로 만들었던 IS나 반서방 국가들도 쉴드 불가인 짓을 저지른 알카에다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건 확실하다.
이건 테러조직이라는 딱지에 대한 건데, 엄밀히 말해 명확한 기준이 없다. 막말로 일제에게 한국 광복군과 북로군정서도 테러조직이었고 김구는 테러단체의 수장이었다. 북아일랜드의 IRA만 해도 영미권에서는 테러단체지만 다른 견해 또한 상당한 설득력 있게 지지를 받는 편이며 북한, 이란, 시리아 같은 이른바 '불량국가'들을 테러지원국으로 보느냐도 세계에서 의견이 엇갈린다. 이는 하마스나 헤즈볼라 같은 조직도 마찬가지이며 전세계적인 기준에서 서방 세계와 반서방 세계 기준 모두일치했던 테러 조직은 알카에다랑 IS 뿐이다.
미국은 탈레반을 그저 알카에다와 같이 묶어서 보며 한낱 테러조직에 불과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찌보면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래 고노에 후미마로 총리가 발표한 "국민정부(장제스 정권)을 상대하지 않는다"라는 원칙과도 유사한데 이 때문에 일본은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지 않고 비적에 대한 토벌전, 즉 '지나사변'임을 고집했다. 마찬가지로 미국이 벌인 9.11 이후의 테러와의 전쟁도 국가 간의 정규전도, 정치 조직과의 싸움도 아닌 그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으로만 봤고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하기 직전까지 끝내 탈레반이 어떻게 유지되고 그렇게 억압적인 통치를 펼쳤음에도 민중의 동조가 남아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후지원은 장식이냐??
과격한 어투인 제목 그대로다. 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탈레반을 저기 산골지대로 쫓아내버리고 카불을 해방시켰지만 그 이후 관리를 개판쳤다. 게임만 하더라도 출시 초기에 갓겜이어도 사후지원 똑바로 안하면 유저 다 떠나가고 다른 경쟁 게임한테 밀리기 마련인데 미국은 진짜 탈레반만 쫓아내면 모든게 다 끝날 줄 알았는 듯하다. 놀랍게도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이후 도미노 적화를 막기 위해 북위 17도선 밑에 세웠었던 남베트남을 굴리던 방식과도 비슷하다. 남베트남이 응오딘지엠 축출 이래 수많은 쿠데타로 인한 정국의 불안정과 관료들의 부패, 당나라 군대화, 북베트남에 비해 부족한 정통성으로 인해 무슨 꼴이 났는지를 보자.
아프가니스탄 친미 대통령인 하미드 카르자이는 나라를 세계의 아편 공급 기지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탈레반 역시 마약 재배에 책임 있지만 친미 정부를 지지하는 군벌들 또한 상당수의 마약 재배의 책임이 있다. 2004년 기준 아프가니스탄은 세계 아편 수요의 87%를 공급하였으며 2009년 아프가니스탄의 부패 지수는 2위를 차지했다. 2009년에는 아예 세계 5위의 최빈국을 기록했고 1인당 GDP는 426달러를 찍었다. 평균 수명은 43세였으며 여성 문맹률은 86%, 학교에 다니는 여자 학생은 30%도 되지 않았다. 미국은 연간 1,000억 달러의 군사비를 지출했지만 아프간 지역개발에는 고작 20억 달러만 쓰였다.
그리고 과연 탈레반 치하보다 친미정부 아래의 여성 인권이 나았다고 말할 수 있을련지 모르겠다. 친미정부는 아프간 여성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다. 유아사망률과 산모사망률도 매우 높았으며 자칭 자유민주주의 체제라는 친미 정부는 2009년 남녀평등지수 최악 국가 중 무려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미국 역시 탈레반을 토벌하는데만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활동을 집중했으며 이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와 무자헤딘과 싸울 때 펼쳤던 민사작전보다도 퇴보한 것이었다.
애초에 군사적으로도 이길 수가 없었다
미군이 2001년 전쟁 시작과 함께 카불로 밀고 들어갔을 때 아마 그 어느 미군 장성도 19년 동안 이렇게 험난한 싸움을 할 거라고 생각하진 못했을 것이다. 딱 미군이 군사적으로 전성기일 때가 칸다하르 점령했을 때인데 문제는 여기까지였다. 산으로 들어간 탈레반은 소련군과 싸울 때 구축해둔 참호와 진지를 이용해 지구전을 개시했다. 여기로 들어가려면 평지에서는 장갑차나 트럭으로 이송하면 되지만 이 곳은 험준한 산악지역이었고 그렇다면 헬기가 답이었다. 실제로 6.25 전쟁 때도 미 해병대는 북한 지역이나 강원도 산악지대에서 초기 단계였던 헬기를 통한 수송을 일부 진행했었다.
그러나 탈레반은 산악지대 곳곳에 화력을 집중했고 헬기의 접근을 차단할 만한 전술을 사용했다. 의외의 사실은 탈레반은 원거리 교전에서도 미군에 꿇리지 않았다는 것인데 당장 산속이라 은폐한 위치를 파악하기 매우 어려웠다. 기본적으로 탈레반 병사들은 자동화기인 AK 라이플로 무장한데다가 모신나강과 리엔필드 같은 구식 무기나 '알라의 요술봉' RPG-7도 800m급 교전에서 위력을 발휘했으며 1200m급에서도 PKM 경기관총, 두쉬카 중기관총, 블라디미로프 대구경 기관총이 산속에 은폐하여 화력을 쏟아부었다.
물론 미군도 원거리 교전용 무기가 있지만 투입 대원의 대다수인 80%는 5.56mm 탄을 쓰는 AR 소총수였으며 어디서 쏘는지 알기도 힘들었기에 상대하는데 어려움이 컸다. 그래서 미군이 선택한 건 항공 지원이었는데 아마 아프간 전쟁 내내 F-15E나 A-10 공격기가 항공 지원의 선봉장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 포탄을 쏟아붓고 가거나 오히려 아군을 오폭하는 사례도 많았던 것. 오죽하면 4분의 1의 미군과 동맹군 병사들이 오폭 때문에 희생되었다는 얘기도 떠돈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것보다 가장 큰 문제는 민간인들이 미군 항공지원의 오폭 때문에 죽어간다는 것에 있다. 약 4만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미군 오폭으로 죽었으며 이것은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이 호치민 루트를 끊기 위해 캄보디아에 감행했던 대규모 폭격으로 인한 피해가 오히려 크메르루즈의 세를 키웠던 것과 유사하다. 개전 직후에는 너무 분노했던 나머지 그냥 B-52로 2차대전 때 도쿄나 드레스덴 밀었던 것처럼 다 밀어버렸고 그 후로는 조금 순화(?)되었지만 그래봤자 아프간 주민들의 체감상으로는 달라진게 없다.
사람의 생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베트남에서 미국이 실패한 건 단순히 이념 문제 관점에서 전쟁을 해석했기 때문이고 북베트남 지도부, 특히 호치민이라는 인물이 항불 투쟁과 베트민을 통한 항일 투쟁,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 디엔비엔푸에서의 승리를 통해 공산당이 아닌 민족해방주의자로써 베트남인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전쟁에 끼어들었기 때문이다. 호치민에 대한 평가를 떠나 어쨌든 남베트남인들에게도 그는 국부였으며 안 그래도 프랑스 식민지 유산 받아 건국한 남베트남의 대통령 응오딘지엠이 가톨릭을 우대하고 부패를 키워 스스로 정통성을 말아먹고 있을 때 미국은 그냥 공산주의자만 때려잡자 라는 생각이 끝이었다.
아프가니스탄도 마찬가지다. 소련 스페츠나츠가 1979년 아프간 대통령 아민을 살해하며 친소 괴뢰 정권을 세울 때 만사가 풀릴 거라 낙관적인 기대를 한 것처럼. 그러나 아민 축출 이전 타라키가 대통령이 될 때부터 아프간 공산 정권은 민중과는 거리가 있었다. 소련식 공산주의는 유물론적 성향 탓에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아프간 무슬림들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아랍에서 사회주의가 왜 마르크스주의가 아닌 이슬람 사회주의나 나세르, 카다피식 아랍사회주의로 정권 창출에 성공했는지 생각해볼 지점이다.
그리고 미국은 소련의 아프간 정책 실패를 그대로 반복했다. 단지 이번엔 공산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를 가져왔을 뿐이지. 아프간 국민들은 문맹이 많고 또 엄격한 이슬람 생활을 해왔다. 그런 이들이 자유민주주의를 갑자기 그냥 가져다가 던져주면 알아서 잘할까? 전혀 아니다. 미국의 방식은 던져놓고 방치하며 스스로 알아서 깨닫길 기대하는 방식이었고 아프간 지도층은 이를 긍정적으로 이용하기는 커녕 마약을 유통하거나 부패를 저지르기 좋은 환경으로만 사용했다. 이러다 보니 자유민주주의란 평범한 아프간 국민들에게 그저 지도층만 배부르게 먹고 살게 해주는 썩어빠진 체제로 보였을 거다.
아프간 국민들은 서구식 민법 제도보다 이슬람식 샤리아 율법 통치에 훨씬 더 적응이 된 사람들이다. 탈레반의 통치 강도가 유독 높았기에 반발한 거지, 본질적으로 아프가니스탄 무슬림들의 상당수는 신정 체제에 별 거부감이 없다. 자유민주주의가 뭔지도 모르는 건 덤이고. 아랍의 봄을 주도한 무슬림 형제단 같은 자유민주주의와 이슬람 극단주의를 접목시킨 사례도 있지만 애초에 무슬림 형제단은 서구에서 교육받은 엘리트 집단이며 아프가니스탄은 여타 중동 국가와는 문화 환경이 차이가 있다.
안 그래도 민심이 이런데, 미국이 주도하는 아프가니스탄의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주입은 관료의 부패와 마약 유통, 미군의 무자비한 항공지원으로 인한 피해 속출, 나아지지 않는 상황으로 아프간 국민들의 반감을 사는 요소로만 작용했다. 게다가 럼즈펠트 국방장관이 회고했듯이 미국 수뇌부들은 아프가니스탄에 무슨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무작정 전쟁을 시작했기에 어쩌면 베트남 전쟁보다도 전후 체제에 대한 구상이 없다시피 했다고 봐야 한다.
맺음말
결국 이러한 것들이 종합되어 2021년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자 공세를 감행한 탈레반에 의해 친미 정부는 무너졌다. 베트남에서 저질렀던 실수의 교훈을 분석하지 못한 미국은 자신들이 들어간 지역이 또 다른 제국의 무덤으로써 수많은 영국군과 소련군이 묻힌 지역이라는 걸 알지 못했다. 하다 못해 영화 <위 워 솔져스>에서도 할 무어 중령이 이아드랑 전투 직전에 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프랑스군이 어떻게 패배했고 보응우옌지압이 이끄는 베트민(북베트남군)이 어떻게 요새를 함락시키고 전투를 승전을 이끌었는지 공부를 하고 가는데 부시와 럼즈펠트는 애석하게도 그런 게 없었다.
아프간 전쟁은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수많은 교훈을 준다고 본다. 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임하는 전쟁이 얼마나 비참한 파국을 만들어내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