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일본 정계개편의 새로운 방식이 논의되고 있는데 바로 기존의 자민-공명 연정을 자민-공명-국민 3당으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이 새로운 지점이라면 55년 체제 붕괴 이후다시 정권 탈환에 성공한 일본 자민당은 오늘날 기시다 내각에 이르기까지 연정 파트너로 공명당을 주로 선호해왔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국민민주당은 민주계 야권 정당인 만큼 더더욱. 사실 원래 연정 가능성 면에서 논의되던 대상은 일본 유신회였고 실제로 바바 노부유키 의원이 이를 긍정하는 발언을 하기도 하여 가능성이 조금이나마 생겼었지만 지지층의 거센 반발에 요시무라 히로후미 대표가 합당 계획 없다고 선을 그으며 물거품이 되었다.
지금 기시다 내각의 상황은 매우 좋지 못한 상태이다. 얼마 전에 보궐선거가 있었는데 나가사키 4구에서는 다행히도 자민당 후보 가네코 유조가 6% 차이로 가까스로 승리했지만 정작 고치-도쿠시마 선거구에서 25% 차이로 야권 단일후보인 히로타 하지메에게 패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이기고자 기시다가 선거 직전 감세 카드를 꺼내들었음에도 저 꼴이 난 것이기에 선거 전후로 중의원 해산 떡밥까지 나돌 정도로 정부여당인 자민당의 상황이 몇년 사이에 크게 안좋아진 것이다. 물론 입헌민주당이라고 해서 야권 후보가 이겼음에도 마냥 좋은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만 이번 보궐선거로 확인된 민심이 기시다 내각의 정책에 대한 반감을 크게 드러내는 만큼 더 안좋은 성적표를 받은 건 자민당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로부터 약 1달 전 국민민주당에서는 당 대표 선거가 있었다.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와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대행의 대결이었는데 이 당 대표 선거는 국민민주당에게 있어서 향후 노선을 정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만한 선거였다. 다마키 대표는 국민민주당 내 대표적인 친보수 인사인데 그는 대표로 재임하면서 마이넘버법, 2022년 신년도 예산안 표결 동의 당론, LGBTQ 이해증진법 등 여러 사안들에 있어서 자민당의 입장에 최대한 협치를 해오던 사람이었다. 반면 한 때 다마키가 있었던 파벌인 료운카이의 수장인 마에하라 세이지는 일본 유신회, 입헌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의 협력을 더 중시하는 입장을 내세우며 다마키에 맞서 대항마로 출마했다.
결과는 다마키 유이치로의 대승이었다. 애초에 다마키는 자동차, 전력 등 노동조합 출신 의원의 지지를 굳히고 있었는데다가 결과적으로 신바 가즈야 같은 당 집행부 인사들도 사실상 그쪽으로 기울어졌기 때문이었다. 다마키의 당선 직후 자민당 측은 즉각 환영 의사를 표했고 자민당의 모테기 간사장은 국민민주당과 자민당은 정책적으로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고 호평하였지만 다마키 본인은 일단은 협치와는 별개로 연립정권 참여는 아직은 할 때가 아니라는 입장으로 선을 그었다. 또 국민민주당 내부에서도 자민당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목적에 대해 야권 분열을 노린다고 의구심을 표하는 분위기가 생각보다는 강한 상태이기도 하고.
그러던 중 올해 9월 13일, 기시다 2차 내각 개각에 국민민주당 전 부대표였던 야타 와카코가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으로 입성하는 이례적인 일이 벌어졌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 신문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은 자민-공명-국민 3당의 연립 구상의 실현 가능성이 표면화 되었다고 일제히 보도하는 중이다. 당연히 일본 최대 노조이자 국민민주당 쪽도 어느정도 지분을 가지고 있는 단체인 렌고 내에서는 보좌관 기용이 연정 참여로 이어져서는 안된다며 우려의 메세지가 나오고 있는 중이지만 다마키 대표의 현재 노선은 점차 야당과의 협력보다는 친자민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 걸 바꾸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 다마키 체제 하에서 국민민주당과 입헌민주당의 관계 개선 문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입헌민주당이 다음 중의원 선거를 두고 일본 공산당이랑 대화를 이어가자 이에 반발한 국민민주당의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와의 임시 국회를 압두고 하는 인사차 만남까지 거부하는 입장을 밝히게 되었다. 국민민주당은 희망의당 시절 때 비 자민-비 공산 노선의 야당을 표방하며 나온 만큼 일본 민주계 야권 정당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보수적인 정치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과거 55년 체제 시절의 우파 사회당 및 민사당을 떠올리게 하는 곳이다. 따라서 당연히 입헌민주당이 혁신계 정당인 일본 공산당과 가까이하고 있는 것은 내비둘 수 없을 것이고 이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기에 이르었다.
야타 와카코가 기시다 총리의 보좌관으로 기용된 이후에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일본 유신회의 바바 노부유키와 함께 함께 총리대신에게 직접 정책을 제언하는 야당 당수가 되었다. 얼마 전인 10월 23일자 마이니치 신문 보도에 따르면 다마키 대표는 바바 대표와 함께 기시다 후미오 총리를 면담하여 정부의 종합 경제 대책에 대한 정책 제언서를 전달하였다. 여기서 국민민주당과 일본 유신회 양당은 소득세, 소비세 5% 감세와 유류세 인하를 골자로 하는 제안을 했는데 일단 총리실에서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고 하는 듯하긴 하다. 어쨌거나 받아들여지든 말든 국민민주당은 과거 55년 체제 당시의 민사당보다도 자민당과 가까워진 것은 확실하게 맞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민주당의 자민-공명 연정 참여설은 점점 힘이 실리고 있다. 게다가 지금 기시다 내각의 지지율이 20%대 중후반으로 바닥을 치고 본인 정책 기조를 뒤집고 내놓은 고물가 대책인 소득세 감세 또한 지지율 반전에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등 자민당의 상황이 영 안좋으니 난국을 타개할 방안이 필요할 것이다. 즉 55년 체제 붕괴 이후로 과반을 잃은 자민당이 공명당을 연정 파트너로 포섭한 것처럼 국민민주당도 그러한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있긴 하다는 것. 그래서 자민당 입장에서도 정권 유지의 방편 중 하나로 국민민주당의 연정 참여가 메리트가 있는 것이고현실적으로 실현된 가능성도 일본 유신회보다는 조금 높은 편이다.
"자공국 연정"에 대한 여론조사도 한번 살펴보자. 산케이 신문 여론조사로는 우선 자민당 지지층의 52.1% 가량이 찬성 의사를 밝혔고 국민민주당 지지층도 60% 정도가 찬성으로 응답했다. 그러나 정작 연정의 기존 파트너인 공명당 지지층의 반응은 상당히 냉담한 편인데 고작 28.6%만 찬성이라 응답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공명당 지지층의 자공국 연정 반대 여론은 40%대를 넘어가고 있으며 다른 야당의 경우에는 입헌민주당의 지지층 중 60%가 반대하고 있다고 나오기도 했다. 일본 유신회 지지층에서는 찬성 24.4%, 반대 60.9%로 반대가 크게 웃돌았는데 아마 자공국 연정이 실현된다면 다른 야당과의 관계 전망은 매우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을 거 같다.
현재 일본의 정치적 상황은 변동의 가능성이 꽤 있는 편이다. 중의원 해산 여부에 따라 그 변동의 가능성이 갈릴텐데 아직까지는 과연 기시다 내각이 해산할지 조금 의구심이 드는 지점이 있긴 하지만. 그러나 지지율이 30%대 미만까지도 나오는 관측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심각한 일인데 왜냐면 보통 일본 역대 내각들이 사퇴하던 분기점 중에는 지지율이 20~30%대로 내려간 상태에서 국정 선거에서 패하던 시점도 있기 때문이다. 당장 기시다의 전임자였던 스가 요시히데만 하더라도 코로나 대응 실패로 지지율이 급락하던 중에 자기 지역구인 요코하마에서 열린 시장 선거에서 지는 바람에 차기 당 총재 선거에 불출마를 선언해야 했었다. 기시다 또한 지금 이대로라면 그러한 전철을 안 밟을 것이란 장담은 못할 거다.
그렇기에 국민민주당을 연정으로 끌어들이는 계획은 자민당 입장에서도 일단 당장은 정권을 안정화시킬 방법으로서는 괜찮은 것이긴 하다. 국민민주당의 이미지가 일본 야당 중에서 유신회와 함께 상당히 괜찮은 편에 속하는데다가 지지층도 일부 겹치며, 또 청년층에게도 대안 정당으로 평가받고 있기에 솔직히 자민당 입장에서 입헌민주당을 견제하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는 이미지도 같이 챙기기엔 지금 현재 저 카드가 차선으로 보인다. 또한 일본 최대 노조인 렌고의 몇몇 민간 산별노조가 국민민주당을 비판적 지지하고 있는 상황인지라 잘만 하면 노동계와의 타협도 해낼 발판을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가 있는데 첫번째는 국민민주당 내 자민당에 대한 협치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존재이다. 당대표 선거에서 다마키 유이치로와 경쟁했던 마에하라 세이지가 대표적인 예시인데 실제로 다마키와 마에하라 사이에 갈등이 있다는 얘기는 작년에 유신회와 국민민주당이 교토와 시즈오카 선거구에서 맺었던 상호 추천 합의가 백지화된 사건부터 있어 왔다. 마에하라 세이지가 저번 당대표 선거에서 나자빠졌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다마키와 함께 당을 이끄는 한 축임은 부정할 수 없을 거고 만약 다마키 대표 주도로 자공국 연정이 실현되면 최악의 경우 입헌민주당, 일본 유신회와의 가교 역할을 자처해온 마에하라가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는 못한다.
두번째는 공명당의 반발이다. 공명당은 자민당의 전통적인 연정 파트너로 제2여당이라는 자리를 누려왔었다. 그렇기에 갑자기 국민민주당이 새로운 연정 파트너로 들어온다면 2당 연정 체제에서 3당 연정 체제로 바뀌는 과정에서 공명당의 지분이 일부 축소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다. 따라서 공명당 입장에서는 국민민주당이 꼽사리끼는게 마냥 달갑지만은 않을테고 그런 맥락에서 지지층 중 30%도 안되는 비율만이 찬성 의견을 보인게 아닐까 싶다. 무엇보다 아무리 자민당이 다급해서 국민민주당을 꼭 참여시켜야 한다 생각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연정 파트너이자 개헌선까지의 공백을 메꿔주는 공명당이 반대하면 쉽게 될 일은 아니다.
뭐, 가장 중요한 것은 아직까지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 본인이든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이든 직접적으로 자공국 연정에 대한 떡밥을 투척한 국민민주당, 자민당 지도부 인사는 없기에 이런 구상은 한국으로 치자자면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인 정개개편 논의에 불과하다. 다만 이런 가능성이 눈에 계속 밟히는 점은 국민민주당의 전직 부대표이자 전직 참의원이던 야타 와카코를 굳이 기시다 총리가 기용한 것인데 공명당도, 하물며 유신회도 아닌 국민민주당이라는 점에서 조금 기분이 묘하다. 아무튼 이게 자민-공명-국민 삼당의 연대가 제대로 표면적으로 나온 사례인 만큼 흥미를 가지고 앞으로의 행보를 관찰해보기 좋은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