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언론에서 자민당은 어떻게 보도될까? 거의 웬만한 언론들은 기본적으로 극우 정당이라는 식으로 보도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혐한, 파시즘, 군국주의 등 안좋은 딱지들은 다 붙게 된다. 이건 사실 한경오 같은 진보 언론 뿐만 아니라 보수 언론들도 어느정도 강경 우파라는 표현을 쓰면서 자민당 극우정당설에 다소 동조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렇듯 이미 한국에서 일본 자민당이란 과거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욕망으로 가득찬 혐한 극우 파쇼 세력에 불과할 것이다. 즉 쉽게 말해 한국인들이 가장 혐오하는 외국 정당 TOP2에 중국 공산당과 함께 일본 자민당도 들어간다는 얘기.
그런데 사실 이게 굉장히 웃긴 현실이다. 한국 언론이 대부분 반 자민-친 야당 논조로만 보도하는 것이야 워낙 일상적인 일이니 둘째 치더라도 그래서 자민당이 왜 극우 정당이냐 물으면 제대로 된 대답을 내놓은 사람을 찾기란 힘들다. 기껏해봐야 역사에 관해 일상적으로 망언을 내뱉는다느니, 또 개헌을 통해 재무장을 하여 군국주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야심을 갖고 있냐느니 하는게 전부일텐데 이건 뒤에서 다루겠고 그 외 다른 이유 대보라고 하면 대부분은 침묵한다. 그러니까 한국인들의 상당수는 일본 자민당을 극우 정당이라고 인식하고 있지만, 그래서 얘네가 어떤 부분에서 극우적인 정책을 하냐고 되물으면 답을 못한다는 얘기다.
사실 일본 자민당이 극우 정당이 왜 아닌지는 그냥 외국 우파 정당들이랑 비교해보면 답이 나온다. 일본 자민당에서 가장 우익적인 파벌은 세이와 정책연구회이고 한국에서 우경화를 주도했던 극우 총리라 평가받는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미국 공화당과 비교해보면 된다. 그래도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국가개입주의, 케인스주의 경제 정책이 기본이던 일본 내에서 가장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펼친 사람이라고 보여지고 그렇기에 고이즈미의 정치성향, 특히 그 중에서도 경제관 만큼은 미국 네오콘과 비교가 가능할 정도다.
그러나 그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경제관에서 신자유주의자였던 것이지, 나머지 분야에서는 그닥 우파 성향이 강하진 않았다. 일례로 사회문화적인 스탠스가 바로 대표적인데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여계 천황에 찬성하는 사람이다. 일본 우익들, 그 중에서도 일본회의 같이 가부장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는 세력들이 여성의 천황 계승에 죽어라 반대하고 아베조차도 확고히 거부 의사를 표하는 것을 보면 이러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상반되는 스탠스는 한국 내 "극우 정치가 고이즈미" 이미지와는 매우 어긋나는 지점이 존재하고 있다. 정 못믿겠으면 일본회의 홈페이지에 있는 설립목적 페이지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실제로 여계 천황 문제에 대해 밝혀왔던 입장하고 비교해보면 된다.덤으로 고이즈미는 탈원전주의자로 일본 내에서 유명한 인사인데이게 극우적 스탠스인가?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미국 공화당하고 비교해보자면 네오콘 내부의 온건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네오콘들 중에서는 외교 스탠스에서는 매파여도 정작 국내 문제에서는 문화적 자유주의를 수용하는 인사들도 많았다. 그리고 지금 공화당의 주류는 고보수주의로 대표되는 팔레오콘이나 티파티, 대안우파 계열들이고 이로인해 훨씬 더 우경화 되었는데 그 시점에서나 네오콘이 주류일 때나 어디에 고이즈미 준이치로를 갖다가 비교해도 특별히 더 극우적이라고 볼 여지는 없다. 오히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도면 미국 정치에 대입했을 때 네오콘도 아니고 평범한 리버럴한 보수주의자 정도로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특히 오늘날 확실히 더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공화당 스탠스와 비교하면 고이즈미는 완전 리버럴 성향인 것이고.
아베 신조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에서는 아베가 무조건 극우 총리인 것처럼 평가받고 있는데 이건 어디까지나 한국 한정이고 외국 언론에서는 그냥 우익 정치인으로 보도된다. 경제 정책은 전혀 신자유주의적이라 볼 수 없는 확장재정, 국가개입주의 기조를 채택했던게 아베노믹스이고 애초에 아베 시기 동안 일본 최저임금은 역대급으로 인상되었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아베노믹스 하면 규제완화, 법인세 인하만 집중적으로 알려져 있어서 그렇지, 더 자세히 세부적으로 정책 뜯어보면 비정규직 처우 개선, 육아 지원, 사회 보장 강화 같은 정책들도 다수 포함하고 있다. 그냥 다 떠나서 아베노믹스 "세 개의 화살" 자체가 국가개입주의적인 아젠다인 시점에서 미국 공화당류의 시장주의와는 거리가 영 멀다.
물론 사회, 문화 스탠스는 아베가 고이즈미보단 오른쪽이지만 야스쿠니 신사 참배 및 공물 봉납 정도만 빼면 의외로 일본 정부 차원에서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에 대놓고 도전장을 내미는 짓을 하진 않았다. 독도 문제의 경우에는 한국 입장에서는 화날 문제지만 국제적으로는 흔하게 일어나는 영토 분쟁 1에 불과한지라 단순히 이것만으로 극우 딱지 붙이기는 무리다. 또 애당초 일본 정치권에서 독도 문제에 대해 한국 입장을 따른다고 할 만한 정당은 일본 공산당 정도를 제외하면 찾기가 힘든게 현실이고. 자위대를 헌법에 명기하거나 군대로 전환하여 재무장하는 문제 역시 독일은 이미 1950년대 이후부터 연방군을 보유했기 때문에 이제와서 일본만 가지지 말라고 할 명분 자체는 사라진지 오래다.군비 증강이 극우 정책이라는 논리면 국방력 투자를 전임보수 정권보다도 더 올린 문재인은 뭐 화전양면 전술을 구사하는 파쇼 대통령인가?
현재 일본 자민당에서 미국 공화당 강성보수 인사에 비견될 만큼의 강경한 성향의 정치인을 찾기란 매우 힘들다. 극우의 기본 중에서도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반이민 스탠스를 공개적으로 내보이는 일본 자민당 정치인은 딱히 없다. 심지어 한국에서 극우 총리라 평가하는 아베부터가 역대급으로 이민 완화 기조를 세웠으니 말이다. LGBTQ 이해증진법이라는 일본판 차별금지법에 앞장선 것도 다름아닌 자민당이었고 표결 당시에 보수방류 계열에 속하는 강성 보수 성향 인사들도 웬만해선 찬성표를 던졌다. 낙태 문제도 마찬가지로 자민당 내 보수방류 인사들조차 전향적으로 나오고 있는데 이걸 보면 갈 수록 고보수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우경화되는 미국 우익에 비하면 일본 자민당은 우익은 커녕 리버럴 내지는 중도우파, 경우에 따라서는 중도좌파에 가까운 행보도 많이 걸었다.
이렇게 말하면 이나다 토모미나 다카이치 사나에는 어떻게 봐야 하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텐데 일본 역사수정주의 성향의 끝판왕인게 이나다 토모미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양반이 자민당 내에서 가장 LGBT 권리에 호의적으로 나오는 정치인이다. 즉 역사수정주의라는 외부에서 해석한 가치판단 측면에서는 극우라 볼 여지가 있지만 정작 진짜 판단 기준이어야 할 국내 혐오 관련 문제에서는 극우적이라 할 만한 스탠스를 보인 적이 없다는 얘기. 기본적으로 나의 입장은 역사수정주의 같은 외부에서 보는 가치판단 문제를 정치성향의 결정적인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최소한 국내 문제, 특히 소수자에 대해 적대적이거나 멸시적인 스탠스라도 보일 경우가 아니고서는 극우라고 보지 않는데 따라서 이나다 토모미에 대해서도 역사왜곡은 몰라도 극우 딱지를 붙이는 건 좀 회의적이다.
자민당 내에서 가장 우익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다카이치 사나에도 마찬가지다. 그녀가 아베가 속한 세이와 정책연구회 소속이고 과거사 문제에 강경한 스탠스를 보인 것 때문에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 출마 당시 국내 언론에서 극우 정치인으로 소개되었지만 실제로 2017년 중의원 선거 후보자 정보에서 답변한 내용을 보면 대외적인 성향은 대북제재 찬성, 재무장 찬성, 핵무장 검토 찬성 등 매파에 가까워도 대부분의 국내 의제에 대해서는 중도적이거나 답변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왔다.국내 문제에 대한 대부분의 답변이 중립 아니면 조금 찬성/반대가 대부분이니 말이다.
결정적으로 다카이치 사나에는 비록 동성혼 합법화에 대해서는 살짝 부정적인 입장을 내보이긴 했지만 LGBTQ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졌는데 만약 반대로 공화당 정치인이 이랬다면 지지자들이 극우라고 평가하기는 커녕 민주당으로 가라고 욕했을 것이다.또 재미있는 점은 재특회 같은 넷우익들이 좋아하는 반이민 스탠스를 한번도 드러낸 적이 없고 오히려 중립적인 태도를 취했다는 것인데 당장 서양 극우, 대안우파들이 이민 문제에 어떻게 나오는지를 생각해보면 흥미롭다.그것도 자민당에서 가장 보수적인 정치 성향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정치인이자 아베의 후계자 중 하나로 분류되던 인사가 LGBT, 이민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이니 말이다.
그래서 결론은 서양 극우에 필적할 만한 성향을 가진 정치인은 자민당에 없고 가장 우파적인 파벌인 세이와 정책연구회마저도 미국 공화당보다 훨씬 온건한 편이다. 내가 자민당을 옹호하려고 그러는게 아니라 극우의 기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는 반이민, 소수자 차별 및 혐오 중 하나라도 제대로 만족하는 사람이 진짜로 천연기념물 수준으로 없다는 얘기다. 일본회의 문제의 경우 자민당 뿐만 아니라 일본 유신회, 국민민주당, 심지어는 제1야당이자 민주계 정당인 입헌민주당조차도 류 히로후미, 와타나베 슈, 마쓰바라 진 등 몇몇 리버럴 정치인들이 가입해 있는 등 극우 정치결사라기 보단 그냥 여야 정치인들 친목회 수준에 불과한 곳이다. 게다가 아베가 죽고 난 이후로 통일교 게이트가 터져나오면서 일본회의가 전면에 나서는 일이 확 줄어버린 것은 덤이고.
솔직히 이쯤되니 한국에서 일본 정치인들을 극우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기준 자체가 얼마나 한국에 적대적이느냐에 너무 편중되어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 말은 한국에서 일본 정치에 대해 바라볼 때 일본 내부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기 보단 한국인이라는 민족 정서가 앞서 있다는 이야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민당 내에 지수회, 헤이세이 연구회, 기시다 총리가 속한 굉지회 같은 리버럴한 성향이 강한 파벌들이 나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묻히게 되었으며 자민당을 극우로 몰아갈 꼬투리를 찾아대기 바쁜 랜선애국자 인간들이 반대로 뒤집어서 보면 정작 진짜 극우라고 할 수 있는 참정당, 제일당, 국가사회주의 일본 노동자당 같은 세력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게 현실이다. 결국 자민당이 극우 정당이라는 고정관념이 생기니 일본 정치에 대한 저런 몰이해가 생기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한국에서 외국 정당 중 극우 정당을 분류하는 기준 자체가 엉망진창이 된 것도 모자라 굉장히 자의적인 해석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 일본 외 지역을 보자면 르펜이나 멜로니 등 온건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 찍히는 극우 낙인이 대표적인 거고. 그중에서도 특히나 한국에서 극우 낙인이 찍히는 대상인 자민당은 솔직히 민족 감정에 의거한 억까성 평가가 많이 개입되어 저렇게 이미지가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는 정당인 것처럼 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를 보면 한국에서 외국 정치를 보는 방식이 굉장히 감정적이고 단편적임을 알 수 있다.다 떠나서 자민당이 그래도 극우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디 55년 체제 형성 과정이나 1993년 정권교체 이전까지의 파벌 구조를 포함해서 일본 정치사에 대한 기초 지식부터 익히고 논하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