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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04. 2023

일본의 개헌이 현재 상황에서 쉽지만은 않은 이유

마냥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https://youtu.be/dBwwipunJcw?si=EH6I8aWoseAGYN3G

작년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공명 연정은 압승을 거뒀다. 이 선거에서 뽑히는 개선 의원 124석 중 자민당은 63석을 건졌고 공명당은 13석을 얻어서 비개선까지 합칠 경우에는 146석이나 확보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일본 참의원은 248석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이 선거로 자민당과 공명당은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된 것이나 다름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특히 2022년 참의원 선거는 아베 전 총리의 피살 사건이 벌어지는 정국 속에서 치러졌기에 일각에서는 아베의 죽음이 자민당의 압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처럼 이야기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가장 주목받은 것은 그 아베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개헌이 이제 이뤄지는가의 여부였고.


일본의 개헌 방식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일단 당연히 시작은 내각에서 개헌안을 발의하는 것이다. 그 후에 중의원에서 3분의 2, 참의원에서 3분의 2의 찬성표가 있으면 자동으로 가결되어 다음 차례로 국민투표에 넘어가게 된다. 국민투표의 경우에는 투표율이 낮아도 과반의 찬성만 있으면 통과인데 이는 한국 개헌투표가 과반의 투표율과 찬성율을 모두 필요로 하고 있다는 점과는 확연하게 구분이 된다. 만약 개헌이 중의원, 참의원을 넘어 국민투표까지 뚫게 된다면 그 다음은 천황이 직접 개정안 헌법을 발표하게 되있고 그렇게 개헌의 절차가 전부 완료된다. 이렇듯 일본이라는 나라가 양원제, 군주제 국가인 특성상 비록 한국과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의외로 절차가 까다로웠던 탓에 1947년 일본국 헌법 제정 이래 단 한번도 개정이 된 적이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2022년 참의원 선거가 중요한 점이 있다면 자민당이 절차적, 물리적으로 헌법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것이다. 왜냐면 자민당이 단독으로 개선 의석 과반을 확보했고 개헌파인 유신회, 공명당까지 다 합치면 개헌안 발의는 시간 문제인 상황이 되었다. 게다가 개헌 문제를 제외하더라도 향후 3년간은 조기 중의원 해산이 없는 이상 선거가 없기 때문에 기시다 총리 입장에서는 꽤 큰 호재로 작용할 만한 상황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었고 특히 3년간 선거가 없는 상황이 이어진다면 그 틈으로 자민당이 독주 체제할 만한 여건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일각에선 이때 잘만 하면 헌법 개정까지 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 나 역시 2022년 선거 당시를 지켜보며 몇십년 만에 자민당이 헌법 개정에 유리한 판을 조성하는데 성공했다고 판단했었는데...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헌법 개정안 발의는 커녕 구체적인 논의가 아베 때만큼도 못나오고 있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선거가 끝난 직후만 하더라도 기시다 총리가 방송에 출연해서 "가능한 빨리 개헌안을 발의해 국민투표로 연결하겠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왜 저렇게 지지부진하느냐는 의문이 들 것이다. 자민당이 하고 싶은 거 다할 수 있을 만큼의 국정운영 동력이 있는 상황인데도 저러니 말이다. 분명 의석으로만 보면 그럴 것이다. 워낙 압도적이니까. 다만 아직까지 개헌의 "개"자도 제대로 구상안이 나오지 못하는 것은 단순한 통과를 위한 환경을 넘어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아베 피살 사건이 2022년 참의원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가인데 국가적으로 큰 영향과 파장을 줬던 것은 사실이다. 확실히 선거 결과 판세의 극후반부에는 영향을 끼쳤다. 한국 정치 속 노무현의 추모 분위기가 다음해인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하고 이광재, 안희정, 김두관 등 친노 세력의 좌장들이 광역지자체장에 당선되는데 영향을 끼치며 천안함 사건으로 인한 안보 문제를 덮어버렸듯이 말이다. 솔직히 이게 한치만 잘못 나가면 "시체팔이" 프레임이 써먹힐 여지가 생기긴 하겠지만 이때까지 선거 앞두고 유력 정치인이 사망하는 사고는 그가 속한 당에 좋은 쪽으로 영향을 주는 사례가 확실히 더 많았다. 자민당만 하더라도 분당 직전의 상황에서 총리인 오히라 마사요시의 사망 하나만으로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고 그동안 사회당을 중심으로 나오던 정권교체설을 일축해버린 전례가 있었다.


https://english.kyodonews.net/news/2022/07/8ddf624f95af-voting-under-way-in-japans-upper-house-election.html

역대 일본 중의원, 참의원 선거 투표율

그러나 일단 냉정히 보자면 아베의 불미스러운 사망이 참의원 선거의 분위기에 진짜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는 조금 의문인 점이 있다. 이 참의원 선거에서 투표율은 52.05%로 지난 2019년 참의원 선거의 48.8%보다 조금 더 높은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NHK가 아베 피살 사건 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54%의 일본인들이 일본의 경제 및 국방 정책 과제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이번 선거에 투표할 것이라 응답했던 것에 비하면 오히려 선거 당일 실제 투표 현장에 나온 사람은 더 적었던 셈. 애초에 야권은 입헌민주당, 국민민주당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결국 두 민주계 정당 다 졌다. 즉 어차피 자민당이 이길 선거였던 것이고 기껏 해봐야 이 참의원 선거에서 이득을 챙긴 부분이 있다고 할 만한 야당은 간사이 지역정당인 일본 유신회나 무당층 표 끌어모은 원외 극우정당이었던 참정당 정도가 끝.


서론이 너무 길었는데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분명 앞에서 계속 얘기한대로 2022년 참의원 선거는 후보자들이 아베와의 인연을 활용하고 자민당 차원에서 승리 발표에 앞서 아베 전 총리에 대한 묵념을 진행했을 정도로 아베 신조라는 인물이 중심에 있던 선거였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과 별개로 기시다 총리는 헌법 개정에 쉽게 나설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참의원 선거를 통해 3분의 2 의석을 확보하여 필요한 조건을 만드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그럼에도 확실하게 개헌안을 발의하기에는 여전히 힘든 첫번째 이유는 바로 일본 헌법 개정에 앞서 무엇을 개정하고 싶은지에 대해 합의해야 하는데 거기서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단 아베 시기에 논의된 개헌안의 구상부터 보자면 첫번째는 일본 자민당 내 보수방류 세력의 거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의제인 헌법 9조의 개정이다. 기시다 총리도 헌법 9조와 긴급사태조항을 포함한 4개 항목은 차후에 있을 개헌에 무조건 포함할 것이라고 밝힌 바가 있었고 아베의 오랜 꿈이기도 했었다. 자민당 내 보수방류 세력들은 9조로 대표되는 전쟁 금지 조항, 평화헌법 문제에 대해 자위대를 여기에 명시하겠다는 입장을 종종 표명해왔었고 실제로 이미 기시다 내각이 수립된 직후부터 방위비를 1% 이내로 한다는 조항을 포기하면서까지 2% 이상으로 증액하는 정책을 했던 것을 보면 개헌안 발의 과정에서 포함되지 않을 수가 없는 내용이다.


그 외에는 연립여당 공명당의 입장이기도 한 교육을 위한 정부 기금의 확대를 포함하는 것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기점으로 화두가 된 긴급사태조항 문제, 농촌 지역이 일본 선거에서 훨씬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해 도시 유권자에게 해를 끼친다고 결론을 내린 이전 선거 결과에 대한 여러 대법원 판결에 따라 나오게 된 선거인단의 형평성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 개정까지 이것들이 아베 시기에 논의되었던 개헌안의 기초적인 구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현직 총리 기시다 후미오의 입장은 아베에 비해 다소 불불명하고 모호한 입장으로 어디를 개정하고, 어디를 남겨놔야 할 지 구체적으로 표명한 적이 없으며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는 느긋한 페이스이긴 하지만 만약 개헌안 발의에 나선다면 기본적으로 아베 시절에 구상된 틀을 어느정도 따라갈 가능성은 높다.

https://www3.nhk.or.jp/news/special/minnanokenpou/index.html#giron

그러나 문제는 헌법 개정을 추진하는 주도 세력의 합의가 불확실하다는 것에 있다. 호헌파가 입지가 큰 입헌민주당이나 아예 완벽한 호헌 입장인 일본 공산당, 레이와 신센구미는 둘째치고 보더라도 어느정도 개헌파 진영에 포섭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는 공명당, 일본 유신회, 국민민주당이 자민당의 개헌안 원안에 그대로 따라줄 지가 미지수라는 것. 연립여당인 공명당은 헌법 9조에서 만큼은 계속 견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고 긴급사태조항에 대해서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군대 재편에는 반대하는 대신 9조 조항에 자위대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검토해볼 문제라고 하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자민당 만큼의 개헌 성향은 덜한 것이 그도 그럴게 공명당의 뿌리인 창가학회 자체가 불교 계통 종교라 옛 일본 군국주의의 뿌리인 국가신토로부터 억압받은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유신회의 개헌론의 경우 좀 더 복합적인 측면이 크게 보여진다. 한국에서는 유신회가 마냥 극우 정당으로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현실은 조금 다르다. 물론 9조 개정, 긴급 사태 조항 추가, 남계 천황 유지 같은 자민당 내 보수방류와 일치하는 아젠다도 확실하게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눈여겨볼 점은 교육 무상화나 헌법재판소 설치, 통치기구 개혁(총리 직선제, 단원제), 오사카 부 수도화 등 자민당의 개헌안과는 다소 다른 유신회만의 특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자민당이 같은 개헌 세력인 유신회 및 그들의 지지자들과 어떻게 협치하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국민민주당 역시 자민당의 개헌관과는 차이점이 존재한다. 긴급사태조항, 헌법 9조 개정 논의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사안이라고 보면서도 개헌을 자주권 문제보다는 다른 사회적인 범위를 중점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인권 보장 분야에서는 디지털 시대의 도래나 개인의 삶의 변화, 다양화에 대응할 수 없다고 하여 개인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데이터 기본권이나 동성결혼 등을 보장한 조항도 필요하다고 보는게 국민민주당의 입장이다. 근데 자민당 당론이야 LGBTQ 이해증진법 당시에서 알 수 있듯이 소수자 권리를 필요하면 보호하는데 나선다지만 과연 자민당의 지지자들이나 개헌에 가장 적극적인 일본회의 같은 일본 우익 세력들이 동성결혼을 헌법으로 보장하자는 것에 찬성해줄지는 모르겠다.

결정적으로 중의원, 참의원을 통과해도 국민투표에서 부결되면 실패다. 그래서 국민적인 공감대 형성이 필요할텐데 기시다 본인부터 방송을 통해 자신의 내각 정책의 초점이 무엇보다 일본 경제에 있을 것임을 강조해온데다가 일본 대부분의 유권자들도 개헌보다는 경제에 더 관심이 있다는게 몇번 드러난 적이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베 피살 사건으로 인한 추모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던 2022년 참의원 선거 당일 NHK 여론조사에서조차 유권자의 45%가 경제 문제가 정부의 우선 순위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오직 5%만이 헌법 개정이 우선이라 주장한 것이 드러났을 정도였다. 즉 지금으로서는 경제보다 헌법 개정의 우선 순위라는 공감대가 딱히 형성되어 있는 판국이 아니라는 얘기다. 실제로 전세계가 다 마찬가지이겠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이어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까지 터지며 일본 내에서도 식품 및 에너지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가 굉장히 높아진 상황이다.


결국 일본이 헌법을 개정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개헌세력들의 담론을 통합 및 조정하는 것이고 개헌이 왜 국가적인 우선순위인지 일본 국민에게 설득하여 공감대를 미리 형성하여 발의할 만한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지금 개헌 얘기가 생각보다 그리 막 분출되지는 않고 있는 것은 일본인들이 개헌, 특히 안보적인 헌법 9조 개정 문제보다는 당장의 경제 상황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는 만큼 만약 그 상황에서 무리하게 진행한다면 설령 중의원, 참의원 다 가결된다고 한다 해도 국민투표에서 통과된다는 것을 장담할 수 없다는 걸 기시다 본인이 가장 잘 알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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