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터진 이래 중동 분쟁은 점점 커져가고 있는 중이다. 이란은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지상작전을 준비하는 듯한 행보에 나서자 만약 공세에 나설 경우 확전이 불가피하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는 중이고 이미 레바논 국경지대에서는 헤즈볼라와 이스라엘군 사이의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더 나아가 이스라엘군은 시리아 내 친이란 민병대를 향해서도 공격을 최근들어 늘린 것으로 보이는데 결국 이 사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만의 문제를 넘어 중동 지역 전체로 불길이 번져나가게 된 것이다. 그나마 얼마 전에는 카타르가 중재자로 나서는 등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노력이 보이긴 하지만 문제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공세 작전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이란은 물러설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혼란 사태는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를 넘어 이제는 이라크로 번지려는 조짐이 보이는 중이다. 특히 이라크는 IS 토벌 이후 수십 년만의 안정기에 접어들던 중이었기에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때문에 불똥이 제대로 튄 셈인 거다. 이라크 시아파 정당인 바드르 조직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발발하자 대놓고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을 좌시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라 밝혔는데 그들의 모체가 바로 이라크 인민동원군(PMF)라는 친이란 민병대 연합체 조직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인민동원군이 나선 흐름에는 이들의 물주이자 하마스, 헤즈볼라와 함께 시아파 대전략의 첨병으로 그들을 활용하려는 하는 이란의 방침이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에서 인민동원군이라는 조직은 사실 생소할 것이다. 헤즈볼라나 하마스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약간의 인지도는 있었지만 인민동원군은 그에 비해 훨씬 언급되는 빈도가 적었었다. 우리가 이라크를 볼 때 떠오르게 되는 이미지는 보통 사담 후세인이나 IS 정도가 대표적일텐데 이 두 개의 사례가 워낙 압도적이어서 그런지 묻힌 감도 있다. 또 IS 토벌전은 2014~2016년 당시에 국제적으로 핫 이슈였지만 이라크 내부 정치적 사정까지 관심을 가지기엔 쉽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당시에는 당사자인 IS나 이라크 정부군, 미군, 기껏 해봐야 이란까지 정도를 중심으로 보도되는게 일상이었다. 뭐 국내 언론 특성상 이라크 정치적 문제인 인민동원군을 자세하게 보도할 이유는 없었긴 했다만.
그러나 이라크 인민동원군은 국내에서의 낮은 인지도과는 별개로 IS 전쟁 국면에서 꽤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었고 지금도 이라크 내에서 입지가 무시할 수준이 아니다. 인민동원군의 기원을 알아보자면 그들은 IS로 인한 혼돈 속에서 탄생했는데 그 발단은 2014년 6월 10일 모술이 함락된 사건이었다. 이로써 이라크 정부의 군대, 대테러 병력, 경찰, 기타 국가 안보기관들이 지하디스트들을 막기 굉장히 벅찬 지경에 이르었고 수니파 무장단체들이 모술에 있었던 엄청난 물자들을 꽁으로 얻으며 국가 전역에 공포감이 확신되기에 이르었다. 그리고 이때 모술이 함락된 지 3일이 지난 후 이라크 시아파 최고지도자인 알리 알 시스타니가 국민들에게 IS에 맞서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수천명의 각지의 청년들은 명령에 응답해 민병대들을 조직하거나 합류했는데 그들에게 모술을 빼앗길 정도로 무능력한 정규군은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는 존재였기에 차라리 민병대에 간 것이었다. 여기에는 시아파 뿐만 아니라 수니파 주민들이나 기독교인들도 소수나마 합류하였고 이란의 지원 하에 각지의 민병대들은 인민동원군(PMF)라는 이름으로 연합체를 결성하게 되었다. 인민동원군은 물론 사실상 독자적인 군벌과 다를 바 없는 조직이었지만 공식적으로는 국가의 보안 체계 및 법적 틀, 내정부의 현실에 맞춰 이라크 정부의 관리 하에 성향이 다른 여러 민병 집단을 조직하고 지휘하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탄생한 민병대 연합체가 바로 IS 전쟁에서 큰 활약을 하게 되고 훗날 이라크 정치판의 키를 쥐게 될 인민동원군이었다.
인민동원군은 통일된 체계보단 연합체 성격이었기에 다양한 부대들이 속해있었다. 기본은 당연히 이라크이슬람최고위원회의 지지를 받는 시스타니 계열 민병대들이었으니 이건 패스하고친이란 계열의 경우를 보자면 카타이브 헤즈볼라, 아사이브 알 알하크, 카타이브 사이드 알 슈하다 등이 대표적인 조직인데 이 중 아사이브 알 알하크는 마흐디군 파생 조직으로 2020년에 미국 정부에 의해 테러조직에 지정된 바 있다. 카타이브 헤즈볼라는 2020년 1월 솔레이마니 장군 암살 작전에서 같이 희생당한 아부 마흐디 알 무한디스가 이끌었던 조직으로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나 레바논 헤즈볼라로부터 직접적으로 훈련, 무기, 자금을 제공받아 이미 2013년부터 시리아 내전 참여를 통한 실전 경험을 쌓았던 베테랑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카타이브 헤즈볼라와 아사이브 알 알하크는 인민동원군 참여 이전부터 이란의 후원을 받아 세력을 확장해나가며 미군과 이라크 정부군을 대상으로 한 교전 활동을 해나간 전적도 있었으니 시아파 대전략의 첨병 그 자체인 셈이다.
인민동원군의 또 다른 주축은 사드리스트들이었다. 1980년대 이라크 민족주의, 반제국주의 성향을 띄는 사드르 운동으로 출발하여 탄생한 이 세력은 시아파 지도자 중 하나인 모하마드 시디크 알사드르의 아들 무크타다 알사드르가 이끌게 되었다. 이들의 자체 군사조직은 마흐디군이라고 불렸는데 민병대 조직원들은 모두 충성심이 강하고 종교적인 신념이 강하다. 특히 마흐디군의 주요 목표는 2003년 이후 이라크에 눌러앉게 된 미군과 적대적 관계였던 수니파 주민들이었는데 그 중에서도 수니파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테러는 너무 심한 수준이라 결국 여론을 의식해 중간에 활동을 그만두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2014년 IS 전쟁이 발발하면서 사드르는 다시 지지자들을 모아 민병대를 재결성했고 이것이 훗날 인민동원군의 주축 중 하나인 평화 여단이었다.
인민동원군의 탄생은 모술까지 밀려났던 이라크 정부가 다시 반격에 나서서 IS를 몰아붙이는데 크게 일조하였고 전쟁이 소강 상태에 접어들자 이라크의 생존을 책임지는 막강한 군벌로 자리잡게 되었다. 사실상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처럼 인민동원군도 정부를 지탱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그에 따라 지하디스트에 저항하던 원래 임무만으로 명분이 부족한 게 느껴질 때쯤 2016년 11월, 이라크 의회는 이런 취지에서 활동을 합법화하고 지속성을 보장하며 이라크 영토 및 국민에 대한 통제력을 허용하는 법적 틀을 인민동원군을 위해서 만들어준다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키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인민동원군은 총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이라크 내 공식기관으로 자리 잡았고 국가 제도에 속한 준군사조직이므로 형식적인 지휘 체계는 자연스레 정부의 권한을 벗어나게 되었다.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 정치 구조는 종파와 민족 간의 권력 다툼의 혼란을 거쳐 다수인 시아파와 아랍족이 실권을 가지게 되었는데 실권과 정부가 분리되는 이란처럼 인민동원군의 등장 이래 이라크 역시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었다. 시아파의 우세를 바탕으로 한 실권은 쿠르드족도 수니파도 국가적 합의를 기대할 수 있는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반면에 정부는 정세를 변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변방에 불과한 곳에서의 활동으로 제약되게 되었다. 이러한 특성상 인민동원군과 정부 간의 충돌 가능성은 아슬아슬한 상태일 수 밖에 없었는데 결국 2021년 총리 관저가 인민동원군 산하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드론 공격을 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할 정도였다.특히 당시 총리였던 알카지미가 친미, 친서방 성향의 정치인으로써 정권 내 친이란계 단체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시도했었으니 더더욱 위험했다.
인민동원군 계통 단체들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이라크 정당 활동에 참여하는 정치 분파를 형성해온 만큼 중용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우선 의회에서 의석수를 확보하고 정부에 진출해 국가 자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고 정권 내 권력 관계를 관장할 때 조정의 여지를 넓힐 수 있었다. 2018년 이후 치러진 총선에서 민병대와 연관된 정당들이 조직적으로 선두를 차지했다. 예를 들어 2018년 5월 12일 평화여단의 지원을 받는 알사드르 정당이 54석으로 1위를 차지했다. 이어서 바드르 조직, 아사이브 알 알하크, 카타이브 헤즈볼라가 지지하는 친이란계 하디 알아메리의 정당은 48석으로 2위를 차지했다. 이는 즉 인민동원군 출신자들이 지지하는 정당이 이라크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민동원군이 더 무서운 것은 경제력까지 갖춘 마피아 성격의 집단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라크가 수입하는 상품에 불법적으로 세금을 징수해 이익을 얻는 것은 기본인데 오죽하면 2021년 3월 이라크 재무부에서 세관이 정상적으로 납부해야 할 관세의 10~12%만 징수했다는 통계 수치가 발표될 수준이었다. 또 이라크 재건 사업에서 인민동원군 쪽 인사들이 세운 기업들이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번 수익들이 인민동원군의 재정들을 채워주고 있는 실정이고. 석유 밀수도 얘네가 잘하는 돈벌이 수단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실제로 2022년 7월 15일 이라크 정부기관이 지난 몇 달간 100만 리터 이상의 밀수 석유를 압수했다고 밝힌 적이 있었다. 두 달 전, 이라크 국영석유제품회사는 밀수 석유가 1일 700만 리터에 달하는 것으로 자체 추산했는데 이 정도면 국가 전체 1일 생산량의 절반에 달한다. 그러니까 인민동원군이 최고로 막강한 권력을 가졌던 2017~2019년 동안 이라크는 밀수로 20억 달러 규모의 석유가 도둑 맞게 되었던 것이다.
결국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바드르 여단이나 카타이브 헤즈볼라, 아사이브 알 알하크 같은 인민동원군 내 준군사조직들은 IS 전쟁 과정에서 무능했던 이라크군을 대체하여 승리에 크게 기여하였음에도 레바논 헤즈볼라 정도의 권위에조차 도전하기에는 행정 능력이 너무 없어서 세속적 정치화에 실패하였다. 이로인해 인민동원군은 내부적 파편화 뿐만 아니라 자체적 능력의 결손이라는 장애도 못넘은 채 지하디스트에 맞선 국가 방위라는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 변질되고 퇴보하였다. 무엇보다 그들은 군사적 날개를 갖춘 종교단체들이 전쟁범죄 같은 만행을 저지르면서 지역 내 안전을 제공하는 사회 문화 운동으로서 획득할 수 있던 대중적 지지를 저버리게 되었다. 마침내 시간이 흐르면서 인민동원군은 뿌리를 내리고 영향력을 확대해갔고 이 조직은 사회적 기반, 무장세력, 정치적 대표자와 재정적 수단을 부릴 수 있기에 이 정계 밖으로 몰아내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게 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이라크 내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는 주기적으로 이라크 주둔 미군과 바그다드에 있는 미 대사관을 표적으로 삼아 공격했다. 최근에는 이라크가 상대적으로 평화가 찾아오면서 다소 수그러들기도 했지만 문제는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을 기점으로 이란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의심되는 민병대들이 최근 며칠 동안 로켓과 드론을 이용해 이라크와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 기지들을 공격하는 일들이 벌어지기도 했다는 것. 물론 현재 이라크에는 친미 성향의 알 수다니 총리가 집권 중이긴 하지만 실상은 인민동원군 일부 지도자들이 정부 요직과 경제권을 차지하고 있기에 식물 정권에 불과하다. 그래서 인민동원군의 실세들은 수다니 총리가 으름장을 놓든 말든 듣지도 않고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 행위에 나서기 위한 간이나 보고 있는 상황이니 말 그대로 개판 오분 전.
인민동원군과 연관된 이라크의 민병대들은 이스라엘군이 빨리 공세를 감행해서 가자지구 지상전이 격화되길 기다리며 미국 대사관을 비롯해 미국인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해야 이라크의 강경파들은 이란의 지원 하에 주도권을 완전히 잡아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 있을테니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