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슨 Nov 10. 2023

러시아는 과연 돈바스 전쟁을 "계획"했을까?

2014년 8월 이후에야 러시아는 왜 본격적으로 개입했을까?

https://youtu.be/K6waRcASLwo?si=3yRc7QQBhNhmyJK5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2014년도에 벌어졌던 돈바스 전쟁을 러시아가 미리 계획하고 조장한 플랜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돈바스 전쟁 과정에서 러시아가 굉장히 많이 관여한 것은 사실로 밝혀졌고 특히 분리주의 반군이 우크라이나군에 크게 열세에 몰리는 상황이 되자 일부 부대를 동원해 투입시켜 도왔었다. 그런 점에서 돈바스 전쟁이 확대된 것과 반군이 세가 커지며 도네츠크, 루한스크라는 미승인국으로나마 독립할 수 있게 되었던 것에는 러시아의 역할이 작지 않았으며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동남부 전역으로 전환된 것은 2014년 돈바스 전쟁의 연장선이라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이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은데 러시아는 분명 돈바스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2014년 당시에는 크림반도를 넘어 돈바스까지 합병할 생각은 없었다는 얘기다.  유로마이단 사태 시점에서 러시아의 진짜 목표는 크림반도였다는 얘기이며 돈바스는 그에 비해 그다지 중요성이 크진 않았다는 말이다. 러시아에게 크림반도는 국익 차원에서나 지정학적으로 가치가 있는 땅이지만 반면 돈바스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지라도 굳이 서방 세계를 필요 이상으로 자극하면서까지 빼앗을 가치가 높진 않았다. 왜냐면 돈바스는 규모가 커다란 공업지대이긴 하지만 구 소련 시절에 비하면 크게 쇠락한 상태이고 무엇보다 같은 동남부 지역임에도 크림반도와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에 굳이 서방 세계와 극한의 충돌까지 각오하면서 나설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한 것은 2014년 2월 20일인데 이 시기에 우크라이나에서는 유로마이단 정국이 이어짐에 따라 혼란스러웠고 소치 올림픽도 끝나서 행동에 나서기도 좋은 타이밍이었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합병으로 비난을 받게 되자 원래 흑해기지 사용협정에 따라서 25,000명의 병력을 주둔시킬 수 있는데 원래 12,500명이 있으니 추가로 보낸 것이라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곧 이어 크림반도 주민의 독립 의사를 묻는 투표가 진행되었다. 이 투표에는 83%의 주민이 참여해 96.7%의 찬성으로 독립 안건이 가결되었고 그 직후 러시아의 국가두마(하원)은 크림의 러시아로의 귀속을 승인했다. 이로써 크림은 러시아 연방의 22번째 공화국이 되었으며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이어 3번째 연방시가 되었다.

부대 마크, 군번, 명찰이 없는 신원 미상의 군인들, 크림반도 합병 당시의 "리틀 그린맨"

이러한 크림반도 합병 사태는 돈바스 지역의 러시아계 주민들을 고무시켜 분리 독립 시위를 부추키게 되었고 이 때문에 러시아가 노보로시야(Novorossiya)의 재건을 꿈꾸며 돈바스 지역 전체를 독립시킬려는 계획을 실행한다는 얘기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렇다면 노보로시야란 무엇인가? 노보로시야는 1764년 이래 약 150년 동안 제정 러시아에 소속된 역사적 지명으로 트란스니스트리아에서 돈바스 지역까지를 잇는 일종의 흑해 연안 지역을 일컫는 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유라시아주의 이념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알렉산드르 두긴이 돈바스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가들과 손잡고 활동에 나섰던 것은 러시아 정부가 크림반도에 이어 돈바스 일대까지 확전하여 노보로시야 영유권을 확보하려는게 목표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일단 다 떠나서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여기서 돈바스는 도네츠크, 루한스크)는 확연히 구분되는 환경을 가지고 있다. 먼저 이 지역 내 러시아어 사용자는 70% 안팎에 이르기에 상당히 많다고 할 수 있지만 정작 돈바스 지역의 인구 350만명(2022년 기준) 중에서 우크라이나계가 57% 내외인 상황이다. 반면 러시아계는 38% 정도에 불과한 상황이고. 분명 러시아어 사용자의 비율이 굉장히 높고 또 구 소련 붕괴 이후 신생 우크라이나 체제 하에서 돈바스 지역의 공업지대가 크게 쇠퇴하는 바람에 소련 시절에 대한 향수가 높은 것은 사실이긴 하나 그럼에도 러시아계, 타타르계 주민의 다수이고 우크라이나계는 16.0% 밖에 되지 않는 크림반도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무리라 생각한다. 또한 러시아어 사용자라고 해서 무조건 분리 독립주의자라고 보긴 힘든게 당장 젤렌스키만 해도 러시아어 구사자다.


따라서 도네츠크, 루한스크에서 75%의 주민이 참여 및 96%가 찬성을 하여 독립투표가 가결되었음에도 크림반도와 돈바스 지역을 대하는 러시아의 태도는 상당히 차이가 컸다. 당장 푸틴 대통령만 해도 투표 전에 돈바스 주민 투표를 연기할 것을 촉구했으며 OSCE가 파견한 국제감시단이 분리주의 반군에게 납치되자 규탄하며 석방에 힘을 썼었다. 그래서인지 두긴을 비롯한 러시아 민족주의자들 및 유라시아주의자들, 국내 언론들은 열심히 노보로시야 재건을 계속 설파했던 것과 대비되게 러시아 정부의 이 당시 태도는 놀랍게도 제한적인 반군 지지만 표명하며 노보로시야 재건에는 선을 긋는 등 상당히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실제로 의회의 무력 사용을 승인받았음에도 푸틴은 2014년 8월 전까지는 국경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배치하는 선에서 그쳤는데 이는 크림반도는 필요성이 크니까 즉각 합병하면서도 상대적으로 가치가 뒤떨어지는 돈바스 지역은 내버려뒀다는 걸 의미.

러시아군의 2014년 2~3월 크림반도 점령 상황도와 같은 시기 러시아군의 국경 부대 증강 현황

의외라 생각할 만한 또 다른 푸틴 정권의 특징은 적어도 2014년까지는 구 소련의 정치적 복원을 대표로 한 제국의 부활보다는 경제적 통합에 중점을 뒀었다는 것이다. 푸틴 본인 스스로도 구 소련의 붕괴 원인을 과도한 제국 유지 비용이었다고 줄곧 지적해오기도 했던 데다가 만약 진짜 우크라이나 전체를 괴뢰화시킬 작정이 있었다면 야누코비치 대통령이 유로마이단 사태 속에서 러시아로 탈출하여 시위대 분쇄를 요구했을 때 2022년 침공 당시처럼 "특별군사작전"을 하는 방안도 있었을 것이다. 저 당시 우크라이나의 혼란 상태를 감안하면 최소한 2022년 침공 당시보다는 순조로웠을 가능성도 있었고. 한 가지 재미난 점은 푸틴은 레닌 이래 러시아 역사상 가장 많이 영토분쟁에서 양보했던 지도자라는 것인데 중국의 우수리 강 영유권을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노르웨이에게도 자원이 매장된 해양 권역을 넘겨줬고 심지어는 반러 국가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의 협상에서 프스코프 지역 일부를 양도해주기도 했었다.


그래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사태 당시에 진짜 원하던 것은 동부 우크라이나를 분리시킴으로써 얻는 영토가 아니라 크림반도를 취하는 수준의 지정학적 이익이었을 확률이 높다. 동부 우크라이나 전체가 분리되어 러시아 쪽에 붙는다면 서부 우크라이나는 자연스레 나토에 가입할테니 말이다. 또 돈바스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합병할 경우에는 서방이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게 될 것이 너무 뻔했기 때문에 영토 욕심에 사로잡혀 무리수를 두다가 정면충돌하는 것보다는 돈바스를 우크라이나 체제 내부의 교란요인으로 내재화시키는 것이 더 이득이었을 것이다. 러시아가 도네츠크, 루한스크를 자국으로 합병한 것은 돈바스 분리 독립으로부터 한참 뒤인 2022년 침공 이후였으며 그때에 가서는 더 이상 서방의 눈치를 볼 것도 없고 합병하는 게 냅두는 것보다 더 이득이라 판단이 되어서 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알렉산드르 두긴을 비롯한 유라시아주의 세력들이 돈바스 분리 독립과 노보로시야 해방을 선전하며 시위대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자면 저건 "일단은"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라기 보다는 유라시아당을 포함한 민간 차원의 행동에 가깝다. 두긴이 푸틴의 책사라고 불리는 인물이긴 하지만 그는 푸틴 외에도 러시아 야당인 자유민주당, 연방 공산당 소속 정치인 지리놉스키, 겐나디 셀레즈뇨프와도 연관이 되어 있는 사람이고 푸틴 전략의 배후라는 말도 정확하게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확실하게 밝혀진 부분이 없어서 조금 말하기 조심스럽다. 분명 RT를 비롯한 러시아 국영방송에 자주 출연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2014년 모스크바 대학 교수 당시 우크라이나인에 대한 인종적인 혐오를 드러냈다가 짤린 적이 있으니. 내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푸틴의 대외전략의 밑바탕에 두긴이 관여했었던 것은 확실하다 보지만 두긴은 어디까지나 철학자이고 푸틴은 현실 정치가이기에 이론은 몰라도 실제 상황에서의 정치적 판단은 다를 수 밖에 없다고 본다.

도네츠크 반군 사진

그런 점들에서 종합해보자면 러시아는 유로마이단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내 혼란과 과도정부의 나토 가입 시도 등 친서구화에 대응할 목적에서 크림반도 합병 사태를 계획했고 그 이후에 후폭풍으로 벌어진 돈바스의 분리주의 시도들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는 적어도 초기에는 개입을 자제하려고 했던 쪽에 더 가까웠다. 그렇기에 크림반도를 합병하는 것으로 선수를 쳐서 우크라이나 국내의 서방 군사기지 건설 시도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흑해함대 기지를 유지시키는 선에서 그치려고 했던 것이었고 그에 비해 돈바스 반란에 합류한 러시아 쪽 단체들은 대부분 민간 계열 자원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러시아 정부 입장은 단순한 시위 지지 및 우크라이나 정부의 대응을 방해하는 선에서 멈췄다. 최소한 직접적인 개입이라고 볼 여지가 생긴 건 2014년 8월 이후였고.


그러다가 1차 도네츠크 공항 전투을 기점으로 2014년 여름 분쟁이 최고조를 기록하자 분리주의 반군 내 러시아인 자원군이 전체 전투원의 최소 15%에서 최대 80%까지 차지한다는 분석이 나오기 시작했다. 6월부터는 분리주의 시위 지지 표명이나 국경지대의 군부대 증강 정도로만 나서던 러시아가 군수품을 비롯해 각종 물자를 반군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2014년 7월 말, 우크라이나군은 도네츠크를 포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국경의 통제권을 되찾는 걸 넘어서 도네츠크와 루한스크 간의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국경을 방향으로 대규모 공세를 펼쳐 분리주의 반군을 존립 위기 상태로 몰아넣는 것에 성공했다. 그러나 7월 중순부터 국경 지대에서의 포격전이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8월 말에 이르어서는 마침내 러시아군 부대들이 노보아우부스크를 점령하며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로써 돈바스 전쟁에서 러시아의 직접적인 개입이 시작된 것이다.


여기서 돈바스 분리주의 문제에는 크림반도보다 소극적으로 일관하던 러시아가 왜 갑자기 방향성을 틀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것인데 표면적인 이유는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이 당시 섬멸 위기였기 때문이다. 우크라이나군은 개입 직전인 7월 말 사부르모힐라의 중요한 전략적 고지대와 중요 철도 중심지인 데발체베를 탈환하였고 도네츠크, 루한스크의 분리주의 반군은 거듭해서 패퇴를 이어나갔다. 이는 4월부터 독립 주민투표 직후까지는 분리주의 반군이 돈바스 일대의 각종 시설들을 다 점거하여 우크라이나 정부의 통제권을 상실케 하였다고 하지만 정작 그 이후에 정부군이 요충지를 지키고 반격하기 시작하면서 저렇게 순식간에 수세에 몰리게 된 것이었다. 즉 러시아의 도움 없이는 분리주의 반군이 더 이상 존립하기가 힘들어진 것.


그런데 정작 러시아에게 돈바스는 지정학적으로 그리 이득이 큰 지역은 아니다. 계속 말했지만 당시 러시아는 크림반도를 즉각 합병하면서도 돈바스 지역은 내버려뒀고 분리주의 반군이 선언한 독립 선언도 승인하지 않다가 2022년 우크라이나 전역을 러시아군이 침공한 이후에야 주권 국가로 인정해줬다. 푸틴은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대국민 담화에서 2014년에 독립 직후 도네츠크, 루한스크를 승인하지 않은 걸 후회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뜻은 2022년과는 달리 2014년까지 러시아에게 돈바스는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어쨌든 독립국 승인, 자국 영토로의 합병은 2022년도 이후의 일이니 둘째 치더라도 그 전까지는 제대로 개입을 안하다가 2014년 8월 이후에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소극적인 개입으로 드디어 전환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14년 6월부터 8월까지 돈바스 전쟁 전황

바로 러시아 국내 여론 때문이었다. 유로마이단 정국 이후부터 혼란이 벌어지는 와중에 러시아 언론은 의외로 크림반도 합병보다 돈바스 분리주의 운동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크림반도 기사는 176건인데 돈바스에 대한 기사는 258건에 달했으니 말이다. 그 이유는 크림반도 합병은 비교적 신속하게 끝난 반면 돈바스 분리주의 사태는 내전이라는 복잡한 양상을 보이면서 계속 진흙탕 싸움으로 끌고 가고 있었으니 더더욱 관심을 끌 수 있었기 때문. 이 시기 언론 보도들이 중점으로 둔 기조를 보면 크게 네 가지가 보이는데 안보위협, 지정학적 우려, 러시아계 주민 보호, 그리고 러-우 양국의 역사적 공통점 강조 등이 대표적인 것으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안보위협, 지정학적 우려는 다들 예상했던대로 소련 해체 트라우마와 나토의 동진 문제에 대한 것이니 더 짚고 넘어갈 것은 없다 판단하여 패스하고 러시아계 주민들에 대한 보호 문제를 보자면 사실 이게 러시아 국내에서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에 대한 동정 여론이 급속하게 커지는 이유였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시 러시아 국내 여론이 크림반도 문제에 대해서는 지정학적, 안보적 관점에서 접근을 하거나 200년 넘게 러시아 영토였는데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시절은 50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등의 역사적 관점 일부를 채택하고 있는 것과 반대로 돈바스 지역에 대해서 역사적, 안보적, 지정학적 개념의 문제가 아닌 같은 러시아계 동포라는 관점을 취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 언론들의 돈바스 보도는 대부분 분리주의 운동 사태 당시 우크라이나로 멋대로 국경을 넘어가서 참여한 소위 "자원자"들로부터 소스가 나왔었다. 자원자들은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계 주민들은 정부에 억압받고 있으며 러시아어 사용 언론인들을 탄압하는 것도 모자라 거리의 표지판들을 우크라이나어로 바꾸는 등 우크라이나 국내의 현 정국이 폭압적이라고 호소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 또 그들은 돈바스 지역에서 21세기판 게르니카 학살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크라이나군이 민간인 거주지와 병원을 공격하여 노약자들이 죽어가나고 있으며 이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러시아 국내외 인도적 단체들이 구호활동을 벌였지만 정작 우크라이나군이 국경을 봉쇄해 구호품 제공과 피난민 탈출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그들이 내리는 결론은 돈바스 분리주의 반군이 벌이는 싸움은 20년 간의 우크라이나 점령 통치를 종식시키는 "러시아의 봄"이라는 것이며 이것이 러시아 국내 여론이 정부가 돈바스 독립을 도와야 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180도 전환시키는 숨겨진 계기였다.

전쟁 전과 개전 이후 비교

그런 배경에서 2014년 8월 이후부터 러시아군의 제한적인 개입이 2022년 2월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제한적인 개입으로 전환했음에도 러시아는 본격적인 침공 이전까지 돈바스 지역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았다. 크림반도야 흑해함대가 주둔한 전략적 요충지이고 역사적인 정당성이 존재하지만 돈바스는 합병할 경우에 얻게 되는 영토적 이익보다 안보 손실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을 부추키던 러시아 국내 여론이 안보위협, 역사적 정당성이 아닌 지역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주민들의 처우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고. 또 러시아 정부가 동정 여론이 확산된 후에야 돈바스 전쟁에 대한 개입을 지시했다는 것으로 보아 대외정책 속 민족주의 강도가 크림과 돈바스라는 분리된 의제에 각각 다르게 결정된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말은 돈바스 사태 당시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이나와의 국경을 넘어가 모험(?)에 도전한 자원자 집단이 마냥 서로 끈끈하게 결탁해있진 않았을 것이라는 걸 뜻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봐도 2022년 전쟁 이후가 아닌 2014~2015년 시즌에 돈바스를 떠안는 것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상당한 비용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합병보다는 고도의 자치를 보장하는 민스크 협정 등을 통해 국제적인 협상 대상지로 만들어 2022년 전까지 유지해온 것이었고. 두긴이나 로지나 등 재야 민족주의 세력과 푸틴의 판단이 항상 일치하라는 법은 없는데다가 돈바스 전쟁에 개입한 이후의 러시아 정부의 태도 또한 노보로시야 구상보다는 현실적이고 소극적인 접근법에 가까웠다. 냉정히 말해 흑해함대 기항지가 있는 크림반도의 경우 지정학적, 경제적으로 사활을 걸 가치가 있는 곳이지만 돈바스 지역은 쇠락한 중공업 지역인데다가 여기까지 먹어버리면 서방의 제재 강화는 물론이고 크림 재건 및 지원에 이어 돈바스를 위한 재정 지출 부담까지 커지게 되었을 것이 당시에는 너무 뻔히 보였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2022년 이후로 도네츠크, 루한스크는 사실상 러시아의 영토가 되어버렸기에 이제는 무의미한 부분도 큰 것도 부정하긴 힘들다. 다만 그래도 지금 러시아가 더 이상 눈치볼 것도 없고 상황이 바뀐 김에 돈바스 일대를 합병하고 직접 전면에 나선 것과는 별개로 최소한 2014년 당시의 러시아가 돈바스에 대해서는 소극적인 태도였다는 건 분명하다고 본다. 만약 진짜 돈바스 전쟁을 크림반도 합병과 함께 러시아 정부와 두긴을 비롯한 유라시아주의 세력이 손잡고 처음부터 기획하여 일으켰다면 이미 한번 깨지고 난 다음인 2014년 8월에야 정규군이 개입하진 않았을 것이고 도네츠크, 루한스크를 독립 직후에 국가로 승인하든 자국에 편입하든 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중앙아시아의 북한, 투르크메니스탄의 전체주의 체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