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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불릿에 대해 꼴리는 대로 쓰는 철학적 고찰

연재 중단 10주년 다가오는 김에 쓰는 글

by 제이슨

https://youtu.be/5rKArAGGMwM?si=6nJPoeo-cNfd-w-9

나는 블랙 불릿은 원작 소설로도, 애니로도 모두 읽어봤었다. 현재 2023년 시점에서 연재가 이유도 알려지지 않은 채 작가의 개인 사정으로 중단된 지 10년이 다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제와서 블랙 불릿을 논하는 게 조금 뜬금 없을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상당히 인상깊게 봤었던 작품인 것은 변함이 없다. 또 얼핏 보기에는 소위 로리 미소녀 요소의 냄새가 나는 듯 해보이는 작품이지만 실상은 굉장히 그로테스크적인 요소가 많이 포함되어 있으며 인간의 흉측한 이중적인 이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즉 가스트레아라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세계가 박살난 상황이라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것에서 보여지듯이 생각 이상으로 잔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작중에서 메인 주제로 다뤄지고 있는 것은 "저주받은 아이들"이라 불리는 소녀들이다. 보통 가스트레아 바이러스는 주입당하면 바로 괴물이 되어버리지만 드물게 임산부의 입을 통해 가스트레아 바이러스가 들어간 경우 태아에게 축적당해 태어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전원이 여성인 저주받은 아이들이다. 이 소녀들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가스트레아 바이러스 인자로 인해 특별한 능력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민경이라 불리는 무장한 해결사들의 이니시에이터로 들어가 조수 역할을 하게 된다. 그렇기에 가스트레아 바이러스의 인자가 주입당해 빨간 눈을 가진 채 태어난 어린 소녀들은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도쿄 에어리어를 침범하려는 가스트레아에 맞서 싸우고 있는 실정이며 작품의 스토리는 민경인 사토미 렌타로와 이니시에이터 아이하라 엔쥬를 중심으로 한 사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쿄 에어리어를 비롯해 많은 일본인들은 저주받은 아이들과 이니시에이터들을 혐오의 대상으로 바라본다. "저주받은 아이들"이라는 이름도 사실은 가스트레아 바이러스를 가졌다는 이유로 붙여진 멸칭에 가까우며 당연히 심각한 수준의 차별을 받고 있다. 심지어는 가스트레아에게 피해를 받은 사람들의 분풀이 수단으로 이용되어 무고하게 희생되는 경우도 많으며 무의식적인 영역에서는 공포의 대상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그 소녀들은 자신들이 가진 특별한 능력으로 가스트레아를 죽일 수 있는 힘을 가졌고 따라서 다른 이들이 보이기엔 인간이 아니라 인간과 괴물 사이에 있는 존재들로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결코 이성으로만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냉정히 보면 이니시에이터인 소녀들을 포함해 저주받은 아이들은 보통 인간에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절대 아니었지만 문제는 그럼에도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정에 더 쉽게 휘둘릴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블랙 불릿 세계관에서 도쿄 에어리어의 주민들이 저주받은 아이들로 구성된 이니시에이터들을 대하는 태도들은 구해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에 가까우며 이건 이성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안된다. 마치 이건 그냥 약탈, 보복식 학살이나 일반적인 제노사이드도 아닌 행정력, 예산, 시간 모두 낭비될 뿐이었지만 전황에서 밀리는 상황에도 한 인종을 끝까지 절멸시키려 했었던 홀로코스트를 이성적, 합리적 관점에서 판단 이유를 분석하는 것과 다름 없다.


합리주의는 이성으로 모든 게 다 해결되는 상황이라면 솔직히 완벽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건 인류가 생겨난 이래 계속 증명되어 왔으며 실제 역사에서 이성의 실패 사례는 의외로 많다. 국제연맹의 사례가 그러한 대표적인 예시이며 결국 국제연맹은 E.H 카 같은 현실주의 시조 학자들이 지적한대로 2차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만들어내며 실패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인질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스너프 필름을 직접 인터넷에 유포하거나 초등학교 및 병원 같은 시설들에서 무차별 살상을 일삼았던 체첸 반군, 열세인 상황에서도 같은 동지들을 사상 검증을 명목으로 살해하고 암매장한 일본 연합적군 등 일부 테러 조직들의 행동도 아마 이성의 영역에서 이해가 절대 불가능할 것이다. 테리리즘을 직접적으로 대놓고 남들에게 과시하듯이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하필 어린이나 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단순히 인간성, 인본주의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보더라도 그렇게 함으로써 얻는 정치적 이득보다 정당성이나 명분에 대한 지지를 잃어버리는 등의 리스크가 훨씬 커보이는 짓이니 말이다.


그렇기에 작중에서의 다른 일반인들도 저주받은 아이들을 이성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저 감정과 무의식에 이끌려 괴물과 인간의 경계선에 놓인 애들로 지칭하며 혐오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자신이 현실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에 대한 무기력함의 보상심리와 가스트레아라는 존재를 직면했던 트라우마로 인한 공포감으로 자기보다 더 약한 약자를 박해하는 것이다. 이러한 행보에서 소설 메트로 2033의 검은 존재라는 신인류가 연상되기도 하는데 그들은 인류를 선의를 가지고 도와주려 접근하려 했고 저항도 안했지만 모스크바 메트로 세계의 사람들은 다른 돌연변이들처럼 몰살시키는 방법을 채택했었다. 물론 검은 존재의 텔레파시가 의도야 어떻든 인간의 정신을 괴롭게 하는 느낌이긴 했기도 하고 또 그들의 진의를 이해한 건 아르티옴, 헌터가 전부였기에 저주받은 아이들하고 직접적으로 비교하긴 뭣하지만 블랙 불릿 속 일반인들이나 메트로 2033의 주민들이나 멸망 직전이라는 극한 상황에 몰린 포스트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자신들과 이질적인 존재에 무조건적으로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는 점이 비슷하다. 거기다가 두 세계관 모두 살아남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진짜 배후는 따로 있었는데도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린 것은 덤이었고.


이러한 저주받은 아이들에 포함되는 자신의 이니시에이터 엔쥬까지도 정체가 밝혀져 차별당하게 되는 상황에 주인공이자 민경인 사토미 렌타로는 지키는 쪽이 오히려 차별받는 모습에 환멸을 느끼며 고뇌한다. 그리고 끝내 후반부에 가서는 도쿄 에어리어가 가스트레아의 대침공으로 붕괴 위기에 몰리자 사람들의 화풀이는 가스트레아의 세포가 섞였을 뿐인 저주받은 아이들로 향했고 이 과정에서 누군가의 짓으로 폭탄 테러가 발생해 렌타로 일행이 돕던 저주받은 아이들 여러명이 사망하기까지 한다. 이때 렌타로는 도대체 우리는 누구를 위해 싸우냐고 동료인 키사라에게 회의감을 강하게 내보이는데 이처럼 저주받은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가 자신들을 버린 것도 모자라 가스트레아라는 거대한 위기로 인해 정신이 몰린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 대상이 되는 등 블랙 불릿의 세계관 속 도쿄 에어리어의 모습은 진짜 위험한 위기일 때 이성보단 무의식이나 감정의 지배를 받는 인간상의 모습을 과감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흐름에 대해 반기를 들며 나온 인물이 바로 초반부의 빌런이었던 히루코 카게타네다. 히루코는 렌타로에게 저주받는 아이들이 저주받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느끼지 않냐는 질문을 하며 자신과 함께 할 것을 제안한다. 히루코의 말의 의미를 정확히 분석하자면 저주받은 아이들이야말로 인류 생존 위기 속에서 나온 진정한 신인류이며 힘 있는 사람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더 낫지 않냐고 지적한다. 히루코는 주인공 렌타로의 사상적 대치 관계에 있는 등장인물인데 그는 도쿄 에어리어의 존재 방식이 잘못되어 있다며 렌타로는 선택받은 자임에도 혼자 밝은 세상이라 믿는 곳에서 뻔뻔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인류가 대절멸 한다면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는 호모 사피엔스를 넘어선 저주받은 아이들과 신체 개조 수술을 받은 렌타로, 자신이라며 설득하는데 바로 해당 회차에서 저주받은 아이들이 경찰에 의해 무고하게 끔살당하는 장면이 나오는지라 히루코 카게타네의 말이 위선적인 늬앙스를 풍기는 렌타로보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게 들리는 경향도 있다.

히루코 카게타네의 말을 보면 선택받은 강자만이 절멸 이후의 승자가 될 것이라는게 간단한 요약일텐데 전반적인 늬앙스는 다르지만 약간 19, 20세기 시절 철학 쪽의 초인, 정신적 귀족론과도 맞닿아 있는 면이 있다. 특히 초인론을 계승한 20세기 이탈리아의 영웅주의, 전통주의 철학자 율리우스 에볼라의 경우에는 오직 강인한 영적 힘을 지닌 소수의 개인들만이 사회가 강요하는 저급한 가치에 세뇌당하지 않기에 이런 자들이 정신적 귀족 계급으로서 지도자가 되어 부패한 세상의 관습을 깨뜨리고 사회를 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다. 에볼라가 현재 인류의 상황이 물질적 욕망이 분출되는 암흑시대인 "칼리 유가"라고 보았듯이 히루코에게도 대충 가스트레아 이후 세계, 특히 도쿄 에어리어가 그렇게 인지되는 부분이 있다.


에볼라가 오히려 전통주의자였기에 기존 서구 사회의 근대성에 도전하여 급진주의자가 되며 한 극단이 반대편 극단으로 이행되는 "앞으로의 도주"를 하게 된 것처럼 히루코 역시 기존 질서를 고수할 아무런 필요성도, 가능성도 없다고 보고 대신 차세대 인류라는 또 다른 위버멘쉬인 "보존할 가치가 있는 것을 창출"하고자 하는 쪽으로 간 것이다. 좋게 말하면 색다른 접근법을 취한 것이고 나쁘게 보자면 관념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셈. 이렇듯 에볼라나 몇몇 전간기의 보수혁명론자들이 정신적 귀족주의, 영웅주의적인 사고를 가지고 퇴보의 단계에서 새로운 시작을 바라본 것처럼 히루코 역시 차세대 인류의 존재들이 대절멸 이후 살아남게 될 일종의 "초인"으로서 미래를 이끌어나갈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나 렌타로는 히루코의 사상을 부정한다. 그의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에 히루코는 언젠가 찾아 올 렌타로의 파멸을 이야기하며 반드시 그가 자신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비웃었다. 문제는 작품이 10년 다 되가도록 연재 중단 상태라 이제는 결말은 커녕 후속권조차 기대할 수 없어서 렌타로가 부조한 현실에 어떻게 저항하며 바꿔갈 지 예상할 만한 내용은 사실상 없다. 그나마 추측하건데 티나를 받아들이는 태도나 저주받은 아이들을 하나의 인간으로 보는 관점으로 보아 만약 연재가 계속 되었다면 상당히 고난을 겪을 듯한 내용이 많이 나오긴 했을 것이다. 게다가 블랙 불릿 세계관은 많은 도쿄 에어리어의 주민들이 저주받은 아이들을 인간으로도 인지하지 않고 있고 무엇보다 지도부가 순혈주의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만큼 그러한 인식을 바꾼다는 건 매우 어려운 길일테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연재된 내용까지의 흐름을 보면 렌타로의 사고도 히루코의 급진적이고 파괴적인 사상에 반대하지만 결국은 허황된 이상론에 갇혀있다고 작중에서 종종 언급되고 있다. 저주받은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자유를 쟁취한다는건 유치한 공상일 뿐이라고 엔쥬 담당 주치의 무로토 스미레는 렌타로에게 지적하는데 그 말마따나 도쿄 에어리어에서 저주받은 아이들은 인간이 아닌 가축에 불과하며 렌타로처럼 생각하는 일반인은 극소수에 가깝다. 스미레는 이어서 이런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정치가가 되지 그랬었냐고 비꼬는데 이는 렌타로가 허황된 이상론에 빠져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잘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 점이 아마 히루코가 렌타로는 한번 제대로 파멸을 맛본다면 자신과 같은 길을 걸으며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 근거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렌타로는 그 이상론을 밀고 가겠다고 말하며 스미레에게 답한다. 세상을 바꿀 방법은 한 가지가 아니며 엔쥬와 티나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싶다고 말이다. 스미레는 이 말을 듣고 이에 불교에서는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연꽃이라 하는데 그게 바로 영혼이 아름다운 렌타로 너와 비슷하다는 말을 남긴다. 동시에 그런 부분에서 너는 나와는 다른 것 같다는 얘기를 한 건 덤. 그 말에서 나는 스미레가 렌타로의 허황된 이상론을 까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름대로 흥미 혹은 기대를 가지고 있는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 역시 렌타로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꿈이 현실에 어떻게 조화시켜 앞으로 다가올 비참하고 암울한 미래에 대응할 지 기대감이 있었지만 문제는 작품이 7권 이래 아무런 소식도 없이 잠정 중단된 게 올해로 9년째라는 것이니 영원히 그 결말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아무튼 블랙 불릿은 하필 더 잘될 기회가 있었던 타이밍에 공지 하나 없이 끝나버린 작품이라 개인적인 안타까움이 컸었다. 특히 다른 일본 라노벨이랑은 비교가 안될 정도의 10살짜리 저주받은 아이들도 가차없이 죽어나가는 잔혹한 세계관인 것과 작품이 가지고 있는 담론적 가치관이 참 매력이었기에 너무 아쉽지만 이제 곧 10년째니 일말의 기대조차 사라졌다. 그래도 더 잊기 전에 마지막으로 내가 블랙 불릿에서 느꼈던 것들을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잊혀져버린 퇴물 애니지만 글을 썼다.


p.s. 사실 애니메이션을 철학적으로 해석하려는게 좀 많이 "음침한 변태"스럽게 보일텐데 부정은 못하겠다... 작품을 본 지 못해도 5, 6년 이상은 되었고 이 글도 갑자기 생각나서 떠오르는 대로 막 썼는데 오류가 있을 가능성은 감안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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