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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22. 2023

왜 하필 밀레이인가?

아나코 캐피탈리스트 대통령의 탄생?!

https://youtu.be/dFlDRhvM4L0?si=pHwMt2A3ebCIehH5

밀레이가 의외로 만화 "체인소맨" 덕후인지 작중 캐릭터 포치타를 상징물로 선거 기간 동안 활용했다.

얼마 전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하비에르 밀레이 자유전진당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55.6%를 획득하면서 최종 당선자로 확정되었다. 밀레이의 당선은 거의 전세계에서 꽤 커다란 이슈가 되는 중인데 어떤 면에서 보자면 같은 중남미 지역인 브라질의 2018년 대선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라는 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이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크나큰 충격을 가져다 주고 있다. 이로써 트럼프, 두테르테, 보우소나루 등 여타 포퓰리즘 성향의 정치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밀레이 역시 아르헨티나 최초의 아웃사이더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을 얻었으며 각종 언론에서는 제2의 트럼프라느니, 또는 극우 정치인 열풍이라느니 하며 보도하고 있는 중이다.


밀레이의 당선은 여러가지로 의미가 있다. 2020년 이후 남미에서는 페루의 카스티요를 시작으로 콜롬비아의 페트로를 거쳐 마침내 브라질에서 보우소나루를 무너뜨리고 룰라 정권의 재창출을 이뤄내며 남미 좌파 물결인 핑크 타이드의 부활 조짐이 서서히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룰라 같은 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각종 지지에도 불구하고 페론주의 좌파 계열의 세르히오 마사가 아닌 밀레이라는 상당히 과격한 우파 자유지상주의적 포퓰리스트 계열의 후보가 당선되었다는 것은 2020년 2차 핑크 타이드설을 바로 깨버릴 가능성을 높인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밀레이 당선자는 기존의 방침을 뒤집고 브릭스 가입 반대한다고 하는 등 정권을 잡은 후에 남미 좌파 정권들과의 관계가 마냥 좋지 않을 것이라는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밀레이는 과연 극우 정치인인가에 대해서 봐보자면 사실 대부분의 언론들은 극우로 분류하고 있다. 외신만 하더라도 "Milei" 키워드로 검색해보면 "Far right"라는 언급이 종종 나온다. 뭐 근데 외신은 그나마 리버테리언이라는 언급이나 "anarcho capitalist(아나코 캐피탈리스트)"라는 수식어를 같이 붙이긴 하지만. 또 국내 언론에서는 밀레이 당선 소식에 제2의 트럼프라는 표현이 들어간 기사들도 꽤 많이 보이는데 이건 그냥 트럼프 이후로 포퓰리스트 성향이 외국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당선되면 항상 붙이는 수식어이기 때문에 이제와서 특별히 더 놀라울 필요조차 안 보인다. 아무튼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에게 호의적인 주류 언론이 있겠나 싶겠지만 일단 국내 언론에서는 확실하게 밀레이를 보우소나루, 트럼프 등을 운운하며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으로 보는 시각이 많긴 하다.

https://reason.com/2023/08/17/dont-confuse-javier-milei-with-jair-bolsonaro/

다만 밀레이가 일부 공약이 과격한 우익 성향이 드러나는 것과 별개로 진짜 서양 대안우파류의 극우 성향이랑 무조건 맞아 떨어지는지는 조금 의구심도 든다. 일례로 보통 서양 극우들 중에는 가족주의를 강조하며 동성애, 트랜스젠더 등에 대하여 혐오감을 표출하는 이가 많지만 밀레이는 자신의 고전적 자유주의에 대한 신념에 따라 그들의 자유를 굳이 침해할 생각이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아예 거기서 더 나아가서 장기 매매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서 아르헨티나의 대선판을 발칵 뒤집어 놓기도 했는데 이 정도 입장까지 가려면 사회문화적으로 자유주의 성향이 확고해야 가능한 일이다. 특히 마약 매매, 신생아 매매 합법화, 총기 규제 완화에도 찬성한다는 점은 문화적 자유주의를 넘어서 그가 리버테리언에 가까운 성향을 가지고 있음을 잘 보여주는 증거이다.


경제적으로는 오스트리아 학파적인 성격이 아주 잘 드러나는 공약을 제시했다. 그 말은 즉 밀레이의 경제관은 아나코 캐피탈리즘(안캡)의 느낌도 가지고 있다는 얘기이다. 당연히 일반적인 대안우파들과는 달리 자유무역을 확고히 지지하고 있는 것은 기본이고 중앙은행 폐쇄, 페소화 폐기, 복지 지출 삭감, 의료 민영화 등 경제 분야 전반에서 그는 철저한 우파 리버테리언의 면모를 모두 갖추고 있는 상태다. 세금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인 수준이라 국가의 합법적인 약탈로 비유하고 있는데 그래서 아르헨티나를 세금 지옥으로 규정하며 세금 올리는 정치인들이나 세력들이 있으면 국민적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사회보장에 대한 헌법 조항을 삭제하겠다고 한 적도 있는데 경제 분야에서 만큼은 밀레이가 확실한 안캡 느낌의 우파 리버테리언 냄새가 조금 나긴 한다.


그러나 밀레이가 진짜 극우로 평가받게 된 것은 경제관에서의 우파 리버테리언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몇몇 아젠다가 서양 대안우파 내지는 극우들과 비슷한 면이 있던 것과 또 막말을 정치적 기술로 썼기에 그런 것도 크다. 밀레이는 대표적인 낙태 반대 정치인 중 하나인데 그는 원치 않은 임신의 경우에조차도 낙태는 살인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취한다. 또 정치적으로는 좌파의 문화 산업 침투를 주장하기도 하고 노골적인 반 PC 성향을 앞세워서 보건부, 환경부와 함께 여성부도 폐지시킬 것을 대표 공약 중 하나로 걸기도 했다. 서양 대안우파들의 단골 소재인 기후변화 드립 역시 밀레이가 매우 자주 얘기하는 주제 중 하나인데 밀레이가 말하기를 지구온난화는 문화적 마르크주의자들이 서구 사회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 위해 벌이는 수작질이라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밀레이에 대해서 저런 인간을 어떻게 대통령으로 뽑냐는 생각도 들텐데 그만한 이유가 있긴 하다. 현재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은 매우 좋지 못한데 국제통화기금(IMF)의 440억 달러 규모의 삐걱거리는 부채 재조정, 150%에 가까운 인플레이션 등 최악의 위기를 맞이한 형국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으로 악화된 것에는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을 비롯한 페론주의 좌파 성향의 집권당의 책임도 컸다. 아르헨티나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는 경제가 침체되는 상황을 제대로 역전시킨 자가 굉장히 적었는데 이는 우파 성향의 지도자이든, 좌파 성향의 지도자이든 다 마찬가지인 사항이었다. 또 아르헨티나 정치의 상징(?)인 페론주의 성향의 정치인들만 해도 그렇게 경제에서 마냥 유능한 모습을 보이진 못했었다.


게다가 이번 대선의 경우에는 밀레이의 상대 후보가 하필이면 그것도 현 정권인 페르난데스 정권의 경제 장관인 세르히오 마사였다. 마사가 경제 장관으로 재임할 시기가 아르헨티나 경제의 침체 속도가 더욱 빨라졌을 때였고 그의 정책의 대실패로 아르헨티나의 부채 규모는 더는 손 쓸 수 없을 만큼 커져버렸다. 그런 상황 속에서 젊은 층의 지지는 경제난의 주범인 마사가 아닌 밀레이로 향하게 되었고 세 자릿수 인플레이션, 다가오는 경기 침체, 증가하는 빈곤이라는 밀려오는 거대한 악재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비난하는 등의 밀레이의 과격한 발언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선의 사소한 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또한 오늘날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은 마사의 경제 장관 재임 기간 동안 전년 대비 142%로 고통스러운 최고점에 도달했음에도 정작 당사자인 그가 현 정부의 조치가 고통을 완화하는 데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며 합리화를 하는 바람에 생활고에 지친 유권자들을 적으로 돌려버린 것도 밀레이의 선전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


밀레이의 대표 공약이자 이번 대선에서 크게 화제가 된 페소 폐기 후 달러화 정책도 보면 외부에서는 포퓰리즘이라고 많이 비판했지만 아르헨티나인 입장에서는 의외로 나쁘지 않은 정책이 될 여지도 다소 존재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현재 아르헨티나의 극단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달러화 말고는 딱히 대안이 없기 때문. 밀레이의 달러화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은 미국 달러에 페소화를 페그시키는 방안도 얘기하곤 하는데 문제는 페그가 정부나 중앙은행에 의해 바뀔 수도 있는데다가 그거 하나 한다고 저 밑까지 추락한 페소화 가치가 살아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난 스스로 통화량 조절 못하는 수준까지 왔으면 동티모르나 에콰도르처럼 외부의 힘으로 통화량 억제해 인플레이션을 누그러뜨리는 것도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지금 아르헨티나에 중요한 것은 인플레이션부터 해결하는 것이며 그러한 악조건만 어느정도 극복되어 외부에서 투자를 유치받을 환경이 조성된다면 애초에 아르헨티나라는 나라 특성상 인구랑 자원이 꽤 있는 곳이기에 나름 순항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불과 2년 전에 창설된 밀레이의 자유전진당(LLA)은 하원 257석 중 40석 미만, 상원 72석 중 7석을 보유하고 있고 마크리 전 대통령과 동맹을 맺어 그의 정당 의석들을 끌고 온다 해도 밀레이 세력은 여전히 하원의 3분의 1과 상원의 5분의 1 미만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아르헨티나 의회 의석수는 여전히 페론주의 좌파 성향의 정당인 정의주의자당이 제1당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 따라서 세가 미약하고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밀레이 특성상 의회와 앞으로 잦은 충돌이 예상되는데 만약 그리 된다면 법안들이 대부분 좌초당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밀레이의 일부 정책들은 야권 기성 정치인들에게 있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타협이 불가능할 정도로 급진적인 안들이 있는지라 더더욱 그렇다. 상식적으로 장기매매 합법화, 복지 보건 분야 정부부처 폐지 이런 거는 트럼프는 커녕 보우소나루조차도 안했던 것이라 만약 진짜 밀레이가 밀어붙인다면 그건 그거대로 쇼킹할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아르헨티나에서 신자유주의 정책이 페론주의보다도 성공한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다는 것이다. 아니, 애초에 오스트리아 학파가 실전 데뷔한 사례는 시카고 학파와는 달리 거의 없다시피 하며 기껏 해봐야 칠레의 피노체트 정권의 경제 정책에 제한적으로 영향 끼친게 끝이었지만. 아르헨티나 정치사에서 신자유주의가 과연 긍정적으로 작용한 사례가 있었는지도 보자면 솔직히 까고 말해 거기선 좌파 정권들이나 우파 정권들이나 둘 다 또이또이한 수준이었다. 그렇기에 아르헨티나 경제가 지금 이따구가 된 것은 페론주의 좌파만 망친게 아니다. 실제로 인플레이션 정점은 중도우파 성향의 알폰신 때 찍었고 메넴, 마크리는 신자유주의를 충실하게 했음에도 말아먹었다. 심지어 민주화 이전 군사정권 시기인 비델라 정권의 경우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었는데 결과는 국내 산업 기반이 완전히 붕괴되고 외채는 5년 동안 4배, 빈민율은 6배 이상, 실업률은 18%까지 증가했다. 여기에 조금 덧붙이자면 이후의 역대 대통령들이 경제 회생이 실패한 것의 근원을 찾자면 비델라가 망쳐놓은게 아주 심각한 수준이라서 몇 십년이 지나도 저 꼬라지에서 못벗어나는 것도 없진 않다.


그래서 난 밀레이라는 정치인이 잘 나가는 것과 그의 독특한 정치적 스탠스에 대해 흥미있게 관찰하는 입장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르헨티나의 전망을 밝게 만들 지도자라 생각하진 못하겠다. 일단 아르헨티나 정치사에서 과연 신자유주의가 페론주의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에 대해 매우 회의적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아나코 캐피탈리즘 성향의 정책 사례가 워낙 비주류 견해인 탓인지 전례를 찾기 힘들어서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 추측하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아르헨티나 내부가 남미 국가 아니랄까봐 굉장히 부정부패가 심한 수준이고(이것도 사실 비델라가 크게 일조했다) 무엇보다 밀레이 세력이 의회 내에서 다수를 점하지 못하니 막 생각대로 정책을 추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그 상황이다 보니 중도우파 세력의 협조를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2년 후에 있을 중간선거에서 잘 되는게 매우 필요한 일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하는 건 저번에 브라질 정치 관련 글에서도 얘기했듯이 예전부터 남미의 정치 상태가 매우 심각했고 그 결과가 좌파 쪽으로 나타난 게 우고 차베스로 대표되는 핑크 타이드, 우파 쪽으로 나타난 게 보우소나루라고 한 적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르헨티나도 마찬가지로 나라 꼴이 정상적인 방법으로 못쓸 지경이 되니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밀레이가 당선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페론주의 해법은 너무 많이 써서 식상하고 또 결과도 안 좋으니 차라리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밀레이식 안캡 정책을 믿어보자는 것 정도랄까? 남미라는 곳을 살짝 체감하게 해주자면 지구상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불평등한 구조의 20개 국가 중 8개 국가가 이 지역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면 되는데 저런 곳에서 서구식 민주주의 정치의 시스템이 제대로 굴러갈 것이라 생각하고 그 잣대로 평가하는 건 넌센스다. 


나의 한 가지 예상으로는 밀레이는 성공한다면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지도자로 남을 것이고 실패한다면 안 그래도 침체된 나라를 파탄시키다 못해 관짝에 집어넣은 미친 광인으로 평가 받을 것 같다. 그 중간의 절충안 평가는 없을 것 같은게 일단 워낙 급진적인 정치인이라서 모 아니면 도일 수밖에 없는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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