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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Nov 25. 2023

카다피의 그린 리비아 철학에 대한 해설

리비아식 직접민주주의, 사회주의 체제

https://youtu.be/OMACqisirpw?si=-7YvirQopEh1uuI9

카다피의 정치이념은 큰 범주에선 아랍사회주의, 그 중에서도 바트주의보단 나세르주의 계열로 평가받고 있다. 그렇기에 얼핏 보기엔 아랍사회주의의 틀을 쓴 일반적인 권위주의 정권으로 보이겠지만 카다피의 사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다른 국가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철학 구조로 구성된 카다피의 그린 리비아 철학은 한국에서도 출판된 <그린 북>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사실 카다피의 정치이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은 아마 그가 제3세계 지역의 독재자였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제3세계 독재자들을 떠올린다면 이디 아민이나 로버트 무가베 같이 국가를 파탄내고 대량 학살을 자행한 쓰레기들이 거론되니 말이다.


그렇지만 카다피는 이들처럼 국가를 파탄낸 지도자는 아니었으며,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반미 테러국가로 지목되어 국제적으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북아프리카 지역 국가 중에서 나름대로 괜찮은 경제 기반과 산업 인프라, 복지 제도를 유지시키는 등 국가 운영 능력 자체가 미달이었던 지도자는 아니었다. 다만 이 글은 카다피의 정책에 대한 이야기는 자세히 안 다룰 것이고 대신 아랍의 봄으로 인한 비참한 최후 덕분에 독재자라고 강하게 인식이 심어지면서 묻혀지게 된 카다피 대령만의 독자적인 철학을 그의 저서 <그린 북>과 함께 분석해보도록 할 것이다.

1. 카다피의 제3세계 이론


사실 제3세계 이론을 본격적으로 중동 지역에서 주도하기 시작했었던 지도자는 카다피가 아니라 나세르였다. 1952년 이집트에서 군사정변으로 권력을 잡은 나세르는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정치를 펼치면서 한편으로는 평화공존과 적극적 중립, 비동맹 정책을 채택하였는데 이는 훗날 나세르 사후 카다피가 나세르의 정신을 이어받은 지도자가 되는 것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다. 하지만 비록 카다피가 군인 시절 나세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할지라도 카다피가 주창한 제3세계 이론은 나세르주의 단순 카피버전이 아니었으며 카다피식 제3세계 이론은 자기만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세르주의와 별개의 독자적인 사상이었다.


카다피는 이 이론은 "하느님에 의해 계시되고 예언자나 사도 등 중계자를 통해 전달된 범우주적 연결 및 합의 원칙의 총체성과 진정한 믿음, 가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하면서 즉 법과 정의, 도덕적 고용관계 및 국가 존립의 존중 등 일반론적이고 범우주적 사상에 기초하외 정치, 경제, 사회 및 군사부문에서 제기되는 제반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제3세계 이론 속 정치분야의 경우 국민에 의한 권력의 수행으로 요약되고 경제분야는 사회주의를 통해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제국주의와의 무장투쟁으로 궁극적인 평화를 달성코자 규정하고 있다. 외교적인 부분에서는 적극적 중립과 비동맹을 견지하며 평화 공존을 기본 원칙으로 하는데 여기서 준법투쟁을 거부하고 흑인을 비롯한 피억압자의 인종차별 철폐를 위한 모든 투쟁을 정의로 수용하는게 특징이라고 볼 수 있다. 국내 정치에서는 후술하겠지만 의회로 대변되는 기만적인 대의민주주의를 거부하고 대중 권력의 대의에 의거한 진정한 민주주의로의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2. 정치 주권의 문제와 리비아식 직접민주주의의 방식


카다피는 기존의 서구식 민주주의 시스템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국민투표의 경우에는 대개의 국민들이 투표안에 포함되어 있는 이슈의 복잡성을 알기 힘들고 설령 반대하더라도 기껏해야 반대표를 던지는 것 외에 다른 의사 표현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는 국민투표 제도를 대중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여 기회를 박탈하고 권력의 의도를 합리화시키는 수단으로만 인식하였다. 그렇기에 서구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회적 결정의 핵심인 국민투표제는 국민들의 감정과 의견을 표현할 기회를 주지 않으며 국민들에게 찬성이나 반대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해 한마디 말만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역설적으로 잔인하고 독재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대의제에 기반한 의회제도 역시 국민이 정부의 기능을 직접적으로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코 민주적이지 못하다고 보았다. 그것은 개별 선거구민들을 대표한다는 개념에 기초를 둔 간접민주정치의 한 형태로서 대표들은 재선에만 관심 있는 전문적인 정치인들이거나 노련한 정치인들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부자만이 선거에서 입후보하여 당선되고 이들이 정부 권력을 지배하고 독점하는 과정에서 권한은 소수 대표자들에게 집중된다. 그들은 대중을 대신하여 행동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에서는 대중의 권한과 주권을 모두 약탈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바로 카다피의 진단이다.


당연히 카디피는 양당제, 다당제도 국민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정당은 권력을 장악하여 그 사회를 지배하고자 다투며 경쟁과 야합의 정치투쟁은 국민의 바램과는 달리 어떤 사회 개혁도 좌절시킬 수 밖에 없었다. 선거에서 패배한 정당은 야당이 되지만 집권당을 견제할 수단이 부족한데 일단 소수당은 너무 세가 약하고 비효율적이라 반대당을 구성하지도 못할 뿐더러 부정부패 막기에도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은 정치 과정에서 유효한 기능을 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단순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일반 대중을 속이고 있는데 따라서 정당 게임은 이기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의 협잡에 불과했다. 카다피는 더 나아가 집권당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일부만 대변하며 지지층만의 이익을 증진하기 위해 설립되었다고 보았으며 정당체제에 대한 최종 결론을 현대적인 종파조직이라고 내렸다.


그래시 카다피가 제시한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결함에 대한 대책으로 권력을 정당과 계급에서 개인이나 인민들에게 넘기는 것이다. 즉 인민 전체가 권력의 원천이며 중개자나 대표자 없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정부기관이 되는 일종의 대중민주주의인 셈. 대중민주주의에서 온 국민이 의사결정자가 되고 어떤 대표자나 대변자를 두지 않고 국사를 관리하는데 카다피의 구상에 따르면 이렇게 리비아에 정책이 형성되고 집행되는 국가기관에 대한 대중의 참여가 극대화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체제에서 모든 시민은 정치활동에 참여할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이러한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리비아에서 모든 계층과 모든 문제에 대한 정치적 결정 과정에 모든국민의 참여가 보장되게 해야 했다. 그래서 카다피  정권 수립 직후부터 리비아는 민초에서 상층부까지 수평적인 사회 재조직을 만들고 그 원칙에 따라 인민의회와 지방, 지역, 국가적 차원의 인민위원회를 구성하였다.


기초인민회의는 주거지 중심의 지역적아 구성으로 되어 있어 모든 성인이 인민의회의 회원이 된다. 회의는 정기적으로 개최되어 모든 문제에 관하여 토론, 논쟁하고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또 정기회의를 개최하고 안건을 책임지는 한 사람의 서기를 선정하고 모든 지방서기들은 다음 단계의 참여를 하게 된다. 즉 지방자치의회를 구성하고 다시 하나의 서기를 선정하여 지방자치의회를 계속하여 대표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국인민의회는 국가적 차원에서 조직되어 국내외 모든 사회집단을 대표하고 위원은 기초인민의회와 인민위원회의 서기들과 개별 노조, 조합, 그리고 전문직협회 등의 서기들로 구성된다. 이렇듯 카다피는 실제로 모든 기업체나 교육기관에 인민위원회 설립을 통해 그곳의 위원들을 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선출하고 그 분야의 일과 생산을 관리하게 하는 조직체계를 만들어 각 사회집단이 스스로를 지배하는 이상 사회를 꿈꿨다.

3. 카다피의 사회주의 경제


카다피는 현대의 경제문제는 자본주의에서나 공산주의에서나 어떤 형태로든 그 존재가 허용되는 사람에 의한 착취에 있다고 믿었다. 예를 들자면 독점지배력은 대다수의 대중이 그 물질적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게 해놓은 다음 자본주의 아래서는 개인이, 공산주의 아래에서는 국가가 조종해왔던 것이었다. 카다피는 인간의 자유는 어떤 다른 사람이 그의 욕구를 지배할 때 결핍되며 이는 궁핍으로 인한 인간의 노예화를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시민들이 생활의 욕구 충족에 필요한 기본 수요를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경제적 자유가 없이는 정치적, 사회적 자유는 있을 수 없으며, 경제적 의존이 노예화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평등사회를 위해서는 새로운 경제질서가 필요한다는 이야기다.


카다피는 리비아가 자본주의, 공산주의, 제3세계 사회주의를 모두 반대할 것을 선언했다. 자본주의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대중을 착취하여 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소유권을 넘기는 것이며, 공산주의는 인민들이 생산수단을 소유 지배하는 것을 막는 또 다른 형태의 독점 체제이기 때문이었다. 제3세계 사회주의의 경우에는 공공부문과 개인부문으로 소유를 구분하고 있지만 노동자들이 이익의 일부만을 받게 됨으로써 자본주의와 똑같은 소수의 자산계급의 등장을 허용하고 있는 실태다. 그런 의미에서 카다피는 리비아를 소유권이 모든 인민들에게 광범위하게 공유되는 수평적 소유제도를 만들고자 하였으며 공동소유가 경제발전을 위한 건전한 기초라는 인식 아래 경제의 모든 생산부문을 공동소유를 통해 인민이 직접 지배하고 관리하게끔 하였다.


그 이유는 인민이 경제를 책임지고 그 결과 자신들의 소득을 증대시키기 위하여 생산을 가속화하는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대규모 회사 설립을 반대한다. 일반 대중이 동등한 주주권을 갖고 그 기업들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의외인 부분은 카다피식 사회주의가 사적 소유권 폐지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는 본질적으로 착취성이 없는 한 민간부문의 발전을 뒷받침하며 다른 사람을 착취하지 않고 근본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개인이 생산과 서비스를 담당하게 해서 자립할 것을 주장하였다. 사유재산이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수용되어서도 안 되며 착취가 없는 한 국가가 몰수해서도 안 되지만 그러나 개인의 수요충족 수준을 넘는 모든 재산은 인민의 공동소유 재산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의 목표는 부를 인민대중의 손에 넘기는 것이고 개인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기본적인 수요충족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카다피가 추구하는 사회주의 사회의 이상은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는 사라지고 개인적 수요를 넘는 부의 축적이 금지되는 것이다. 카다피의 사회주의는 근로자와 고용주 사이의 착취, 피착취 관계의 종식도 같이 요구하는데 그의 생각에 노동문제는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특히 공산주의 아래에서 국가에게 고용된 근로자들은 자본주의 아래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열악한 조건과 착취에서 시달리는데 물론 노동자 투쟁으로 근로시간 단축 등의 성과는 이뤄냈지만 그들이 생산한 부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았다기보다는 자선적인 성격이 더 크다고 주장하였다. 이 말은 한 발 더 나아가면 임금 노동자는 국가나 개인, 누구에게 고용되었든, 임금이 얼마나 향상되었든지 간에 노예의 한 형태라는 뜻이다.


카다피는 생산 과정에서 노동자가 임금 노동자가 아닌 생산자로서 간주되는 새로운 협력 관계 정립을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 생산자는 임금을 받지 않고 대신 그들의 노력과 능력, 능률에 상응하는 생산 몫을 받게 된다. 이 새로운 체제는 그들의 소득이 생산 노력의 기여 정도에 따라 변동되기 때문에 생산 증가를 위하여 더욱 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동기를 제공할 수 있다. 그는 또 노동자들이 공장과 회사를 접수해 경영층, 생산단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카다피 치하 리비아에서는 노동자들은 국영공사를 담당하는 노동자 계층의 인민위원회를 선택할 수 있었다. 이 인민위원회는 자본주의 국가의 개인이나 공산주의 국가의 국가 복리보다도 노동자의 복지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카다피는 내다보았고 건전한 경제정책을 실시하기 위해 생산단위 인민의회가 설립되어 각 생산단위에 위치하는 인민위원회가 집행해야 할 사항을 결정하는 시스템이 차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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