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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Jan 19. 2024

일베의 역사(1): 광우병 사태에서 시작된 나비효과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괴물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 이 시리즈는 일베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의 탄생 배경과 반 사회적인 행동들에도 불구하고 전성기를 맞이 했던 이유, 사이트의 몰락을 포함한 연대기를 건조하게 정리하고자 작성되었으며 미화 혹은 옹호의 의도가 없음을 밝힙니다.


* 일베가 보인 행적은 분명히 반 사회적이고, 선을 넘을 정도로 막장성을 내포하고 있으며, 또 타인에 대한 심각한 인신공격이 크게 두드러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일베가 비록 한때나마 한국 사회에서 급성장하였다는 것은 분명히 사회 문제에 대한 다방면의 고찰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보게 되어 시리즈물을 연재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 다른 사이트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다룰 계획은 없습니다. 디시인사이드는 워낙 역사나 규모가 방대한데다가 각 갤러리마다 특징이 극과 극인 곳이라 하나로 모으기가 쉽지 않고 에펨코리아(펨코), 루리웹 같은 곳은 크게 관심이 없는 커뮤니티입니다. 게다가 디시, 펨코, 아카, 루리웹 이런 곳은 현재까지 잘 나가고 있는 사이트인 만큼 다루기가 조금 조심스럽고요. 그나마 아주 약간이라도 다룰 여지가 있는 곳을 굳이 찾자면 일베와 다른 의미로 악명이 높았던 사이트이자 2010년대 후반 동안 젠더 갈등의 핵심 축이었던 메갈리아, 워마드 정도가 있을텐데 일단 지금 당장은 다룰 생각이 별로 없는지라...


* 있는 그대로의 일베의 행적들과 만들어낸 밈들이 모자이크, 순화 하나 없이 100% 그 자체로 나오니 보는 사람에 따라 혐오감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미리 말씀해두지만, 그런 요소들을 보기만 해도 너무 토악질 나올 것 같아서 도저히 못 보실 것 같은 분들은 조용히 뒤로 가기 누르시길 추천드립니다.


https://youtu.be/Hd4o3jNWdBY?si=PBbObMFnCq2ZqG5v

" 일베의 태동근거는 진보좌파가 오버했던 2008년 촛불시위다. 이 시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일부 진보 좌파의 과욕 또는 가벼움이 진보 좌파의 책임윤리에 대한 의구심 촉발과 더불어 촛불을 소멸케 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

-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 내용 중에서 -


"일베"라고 불리는 일간베스트 저장소는 아마 2010년대 동안 한국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가장 많은 비판을 받았던 문제의 커뮤니티일 것이다. 고인에 대한 비하, 반 사회적인 발언 및 행동, 전직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밈화를 통한 인신공격적 희화화 등을 비롯해 일베의 행보는 한국 사회가 그동안 금기시해왔던 요소들을 말 그대로 엿 먹으라는 듯이 과격하게 부수는 행위였고 이로인해 사이트 폐쇄 조치 목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사회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였다. 특히 일베는 박근혜 정권 시기 동안 국정원과도 유착했다는 의혹까지 나올 만큼 정치적으로 새누리당 및 보수 세력에 대한 극단적인 지지 성향이 강했다.


물론 2024년 오늘날 일베라는 사이트는 처참하게 망한 상태다. 2012년 전성기를 맞이한 이후부터 점점 폐쇄적으로 변해다가 최순실 게이트 및 박근혜 탄핵 사건과 함께 순식간에 정게할배와 짤게충들의 내부 분열로 몰락해버렸다. 그 후 일베의 옛 유저들은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로 흩어졌고 지금까지 일베는 계속 몰락을 걷고 있는 중이다. 그러했던 일베가 잠깐이나마 양지로 나올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에 대한 사회의 인식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에 가까웠으며 일베와 관련된 요소들은 현재도 오프라인에서 철저히 배척받는 주제이다. 즉 우리나라 주류 사회에서의 일베에 대한 인식은 한국 인터넷 역사상 가장 최악의 흑역사이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귀태(鬼胎) 사이트인 셈이다.


사실 일베라는 사이트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도 많다. 40대나 50대 기성 세대들은 원래 민주당 지지 성향이었는데다가 일베하고는 접점이 딱히 없었기에 그냥 막연하게 새누리당의 댓글 알바 노릇하는 나쁜 놈 정도로 인지할 것이고 반대로 지금 10대들은 일베의 유산이라 할 수 있는 MC무현류의 컨텐츠에 영향을 일부 받긴 했으나 애초에 일베가 망했을 때 학창 시절을 보냈던 아직 미성년자인 세대인만큼 일베의 역사와 그것이 끼친 구체적인 영향에 대해서 잘 모를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일베가 흥망성쇠를 누리던 시기를 가장 잘 기억할 세대는 딱 그때인 2010~2016년 사이에 초중고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거나 대학 생활을 하던 20대나 30대 남성들일 것이고 나 역시 그 세대에 해당되는 사람이라 당시 일베의 전성기와 몰락에 대한 기억이 많이 존재한다. 그렇기에 지금은 망해서 관심이 크게 줄은 일베라는 커뮤니티의 역사에 대해 흥미가 있는 것이고 그들이 끼친 영향에 대해서도 심층적으로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 사회적인 일베가 고인 모욕이나 막장스러운 행동에 같은 문제에 크게 민감한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급속도로 성장하여 사회적인 문제로 떠올랐는지에 대해서는 진지하게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이 시리즈를 시작하기로 마음 먹었다. 로버트 팩스턴은 <파시즘: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이라는 책에서 파시즘이라는 용어를 안이하게 남발하여 정치적 낙인찍기용으로만 쓴다면 예방은 커녕 오히려 독성에 무감각해져서 진짜로 출현해도 양치기 소년 증후군에 걸려 막지 못할 것이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처럼 일베는 아무튼 쓰레기이고, 반 사회적이니까 딱히 고려해볼 필요 없이 단순히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낙인찍는 용으로만 쓸려는 그러한 인식은 향후에 제2의 일베 혹은 더한 집단이 나오게 하는 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일베가 왜 탄생하게 되었으며 그들이 무슨 이유로 반 사회적인 행동을 일삼았는지, 그리고 어떻게 양지로 진출했다가 순식간에 몰락했는지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그들의 흥망성쇠와 막장력이 파급력이 있었던 당시의 시대상 속에서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를 고찰해보는 "일베의 역사" 시리즈를 시작하도록 하겠다.

2002년 대선은 인터넷 여론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대선이었다.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사실 원래 한국의 청년층, 인터넷의 분위기는 진보 쪽에 가까웠었다. 과거 1980~1990년대 NL, PD 운동권들은 대부분 당시 20대였던 대학생들이었고 이는 2002년 대선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후보의 돌풍에는 노사모라는 집단이 존재했는데 이들은 당시 빠르게 보급되던 인터넷에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하고 있던 젊은 층들이 많았었다. 이러한 노사모 회원들은 인터넷에서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 여론을 이끌었으며 반대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는 훗날 거짓으로 밝혀졌다지만 아들 병역비리 의혹 문제로 군필 남성들의 역린을 제대로 건드는 바람에 크게 인터넷상에서 지지세를 이끌지 못했다. 그리하여 노무현은 "노풍"에 힘을 얻어 당선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청년층 중심의 인터넷 여론 및 노사모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 등장 이후 한동안 인터넷상의 여론은 민주당, 진보 지지 성향에 가까웠다. 일베의 직계조상 중 하나인 디시인사이드 속 정치 사회 갤러리(이하 정사갤)이 그런 사례였었고 디시 뿐만 아니라 인터넷 전반이 반(反) 한나라당 성향이 강했었다. 오죽하면 정사갤은 자신들이 이길 수 있다고 착각하고 2004년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 중 노무현 공격수로 악명높던 전여옥을 토론회에 데려다가 유저들하고 맞붙게 하였으나 일방적으로 털릴 정도였다. 이 사건은 후에 "여옥 대첩"이라 불리게 되는 해프닝인데 아무튼 이게 당시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인터넷 커뮤니티의 우경화 시초였다. 오늘날 디시인사이드를 생각하면 믿기지 않겠지만 아무튼 2000년대 당시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현재와는 성향이 매우 달랐다.


그러다가 2007년 대선이 찾아왔고 결과는 알다시피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었다. 공교롭게도 20대에서 42.5%로 1위를 득표한 것은 이명박이었는데 이건 청년층이 우경화 되었다기보단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로 대표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한 반감 및 정동영이라는 민주당 후보의 네거티브 전략에 대한 염증 탓이 컸다. 실제로 당시 20대 득표 상황을 보면 2위인 정동영과 거의 비슷한 수준으로 득표를 한 대안 후보들이 존재했다. 대표적인게 15.9%를 얻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와 15.7%를 얻은 무소속 이회창 후보였다. 무엇보다 2007년 대선 당시 20대의 투표 참여율은 고작 46.6% 밖에 안 되었기에 단순히 이명박 후보가 1위한 것을 가지고 당시부터 우경화 조짐이 있었다고 보기는 무리다.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기자회견

그리고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대망의 2008년 광우병 사태가 터진다. 이 광우병 사건이 바로 인터넷 내 청년층들의 우경화의 시초격으로 평가받을 만한 중대한 분기점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MBC <PD 수첩>의 미국산 소고기 수입 논란을 다룬 회차가 방영된 직후, 광우병에 대한 괴담이 사회 전체에 퍼져 곳곳에서 시위가 벌어지게 된 것이었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광우병 사태 당시에 인터넷에 퍼졌던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린다는 등의 광우병 괴담은 대부분 거짓으로 밝혀졌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 광우병 사태는 굉장히 심각한 일로 한국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2008년 5월 24일, 광우병 촛불시위대가 거리 행진을 하면서 시위대는 점점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고 폭력적으로 변해 경찰들을 무차별적으로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위 덕분에 무려 459명이나 되는 경찰들이 시위대에 의해 부상당했다. 더군다나 시위대는 나중에는 아예 인근에서 진행 중이던 6.25 사진전 행사장에서 전시하던 작품들을 파괴하거나, 불 태우며 경찰 뿐만 아니라 무고한 시민들까지도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심지어는 아예 작정하고 염산병을 던지는 짓거리를 하다가 경찰한테 구속되는 전문시위꾼들도 있는 만큼, 광우병 사태는 말이 좋아서 사태지, 실상은 폭동으로 볼 여지도 있는 사건이었다.


이처럼 광우병 사태는 민주당, 진보 세력들의 위선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였으며 아이들을 정치 투쟁에 활용하는 시위 속 맘카페 회원들의 이른바 "유모차 부대" 행진과 전문시위꾼들의 과격한 수준의 폭력 행위는 그때까지만 해도 진보적이었고 또 광우병 괴담 유포의 본산지이던 인터넷에서 본격적으로 우경화의 바람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에 인터넷에 퍼졌던 미국산 소고기를 먹으면 뇌에 구멍이 뚫린다는 등의 광우병 괴담이 얼마 후에 대부분 거짓으로 밝혀지고 그렇게 가열차게 MB 정권 퇴진을 외치던 시민들과 연예인들이 바람이 한번 꺼지자 순식간에 입 싹 닫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착한 소시민인 척하는 모습들은 아마 훗날 일베 회원들의 직계 조상인 당시 정사갤러들에게 좌파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품게 만들었을 것이다.

일베의 정치적 풍자에 대한 인식을 보여주는 짤. 즉 진보 세력들이 이명박을 풍자하는 것은 되면서 노무현은 자살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역으로 여기는 것에 대한 분노가 표출된 것이다.

일베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사이트는 크게 노노데모, 라도코드, 정사갤, 코갤, 야갤 등이라 할 수 있을텐데 이들 사이트의 정치 성향의 큰 줄기가 있다면 바로 진보 세력에 대한 소위 말하는 "죽창질"이었다. 한마디로 진보 세력이 좋아하는 것들은 모조리 안티질하겠다는 것이었다. 첫번째로 대상이 된 것은 민주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전라도였는데 2009년 기아 타이거즈 우승에 따라 야갤(국내야구 갤러리)에서 기아를 전라도하고 싸잡아 비하하기 위해 만든 용어인 "홍어" 드립이 인터넷 전반에 유포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원래 홍어는 전직 대통령 김대중이 좋아하던 음식에서 유래가 된 말로 이게 전라도 지역에 대한 드립으로 번진 것이었다. 홍어 드립은 지금까지도 곳곳에서 쓰이고 있는 상태다.


그 다음은 "운지", "두부외상"을 거쳐 "MC무현"으로 이어지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였다. 그 전까지 인터넷에서 합성 필수 요소로 쓰이던 것은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온갖 음해에 시달렸습니다" 등으로 유명한 이명박 대통령의 어록들이었으나 어느 순간부터, 특히 2009년 노무현 자살 이후로 노무현에 대한 드립이 갑자기 빠르게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한민국 군대들 지금까지 뭐했노 이기야!", "야 기분좋다(또는 하아 언조비카이)", "지옥에 있는 노무현 나와라!" 같은 드립들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나중에 일베저장소가 생겨난 이후로는 "MC무현"이라는 밈 콘텐츠로 발전하게 되며 사실 이는 이명박 같은 보수 대통령들만 풍자하는 것에 반감을 느끼다가 나온 부분도 있다.


그 다음 비하 대상은 5.18이었다. 2000년대 초중반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5.18을 대놓고 비하하는 움직임은 지만원이랑 시스템 클럽만 빼면 없었으나 정사갤의 우경화를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을 비롯한 당시 보수 진영은 김영삼의 직계 세력들이 기반이라 민주화운동을 어느 정도 계승하고 있는지라 조갑제 같은 강경 보수 인사들도 5.18을 확실히 인정했던 것과 비교하면 인터넷의 우경화는 그보다 더 과격했던 셈이다. 그동안 지만원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5.18 당시의 북한군 특수부대원 600명 개입설은 워낙에 터무니없는 헛소리였던 탓에 보수 진영에서도 한승조, 김대령 같은 과격주의자가 아닌 이상 동조 목소리가 별로 없었고 심지어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원희룡이 대놓고 지만원을 저격할 정도였다.

일베 전성기 시절 "전땅크"로 찬양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

그러나 정사갤 이후로 5.18에 대한 비방이 수면 위로 제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이유는 지만원 등의 옛날 사람의 매카시즘적 세계관이라기보단 그냥 민주당이나 진보 세력들에게 성역으로 취급받는게 싫어서 였다. 이후로는 진지하게 5.18 폭동설, 북한군 개입설들이 논의되었으나 사실 시초는 말 그대로 진보 세력에 대한 죽창질이 목적이었다. 일례로 이 시기에 발굴된 밈 중에서는 5.18 진압의 책임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이 실제로 한 말이었던 "광주는 총기를 들고 일어난 하나의 폭동이야"가 있었는데 이것도 엄밀히 말하면 저걸 보여줬을 때 진보 성향의 인터넷 유저들이 화내는 것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한마디로 진보 세력의 정신적인 성역이라 보여지는 5.18을 공개적으로 조롱 거리로 만들어서 진보 세력이 자부하고 있는 명예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였다. 그들 입장에서 보았을 때 광우병 괴담을 퍼트려 이명박 정권에 대한 정치적인 비방을 일삼는 촛불시민과 5.18 당시 시민군은 질서를 해치는 "폭도" 혹은 "내란 세력"으로 동일시 되었으니 말이다.


그 시절 정사갤에서 당시 가장 추앙받았던 국회의원은 바로 한때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강용석 의원이었다. 강용석은 2010년 아나운서 비하 발언으로 한나라당에서 출당된 정치인으로 입담이 매우 거칠었고 그 대상은 민주당, 진보 세력이었기에 정사갤 같은 곳에서 사이다라며 환호했다. 특히 강용석은 박원순 시장 아들 병역비리 논란을 점화시킨 인물 중 하나로 이를 바탕으로 민주당, 야권 쪽에 프레임을 잡아 강경한 공세를 이어갔는데 이 시기에 정사갤이 그런 강용석의 주장을 퍼나르며 야권 비난에 앞장서던 커뮤니티 중 하나였다. 거기에 더해 2010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어느 정도 다시 세가 회복한 것을 시작으로 2011년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장직 캐삭빵을 걸고 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부결되어 사퇴에 이르면서 정사갤은 더욱 극단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일베에서 5.18, 더 나아가 세월호에 대한 비방이 극도로 심한 것에 대해서 그들이 왜 저러는 건지 의문이 있을텐데, 그 이유는 물론 반 사회적인 발언에서 카타르시스와 쾌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천안함 음모론이 그걸 부추킨 면도 있었다. 2010년 천안함 폭침 사건이 터졌을 당시에 민주당 의원들은 국제 합동조사단 발표 이후로도 북한의 소행임을 부정하는 듯한 행보를 이어가며 오히려 보수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장치로만 활용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도 가끔 가다가 최원일 함장 및 생존 장병들에 대한 패잔병이라는 식의 비난을 종종 하고 있다. 그리고 2021년 전준영이라는 생존 장병이 "진보는 외면하고 보수는 이용한다"고 한 말에서 보여지듯이 진보 세력은 아직까지도 천안함 음모론을 유포했던 것에 대한 사과가 전혀 없으며 오히려 은근슬쩍 그 음모론을 옹호하려는 행보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2010년대 이후 연평도 포격, DMZ 목함지뢰 사건 등 북한의 무력도발이 연달아 터짐에 따라 청년층에서는 반북 정서가 강화되었고 이에 정사갤, 일베 같은 극단주의자들에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5.18과 세월호 유족들 같은 반국가 세력들은 유공자로 대접받는데 국가 안보를 위해 싸운 6.25 참전용사, 천안함 생존장병들은 외면받고 있다는 인식이 형성되어 5.18과 세월호를 유독 더 욕하는 것도 있다. 물론 논리에 불과하고 어거지에 떼쓰기에 불과한 행위지만 민주당, 진보 세력들의 천안함에 대한 과도한 비하가 그런 개논리가 나오게 되는 역효과를 불러온 셈이다. 즉 과거 1990년대 검찰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발언이 사회적으로 큰 분노를 불러일으켜 전두환, 노태우 전직 대통령의 실제 처벌로 이어졌던 것처럼 천안함에 대한 부정과 북한의 도발 상황 속 북한에 대한 같은 민족이라는 식의 옹호 스탠스가 반대로 넷상과 2030 군필 남성들 사이에서의 북한에 대한 혐오감을 더욱 키우고 참전용사들이 대우를 못 받을 동안 5.18, 세월호만 대접받는다는 논리가 통용되게 만드는 발단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일베에서의 5.18, 세월호에 대한 비하 모습
말하자면 일베의 정신을 표현하는 구호가 있다면 그것은 "나는 누군가의 정체성을 혐오할 권리가 있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실제로 일베는 성별, 지역, 정치적 지향에 대한 혐오감을 마음껏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문화적 해방구로 기능하고 있다. 마음만 내킨다면 여성을 혐오하면서도 여성과의 교제를 바라는 "뻐킹 김치맨"의 이중성에 대해서 동시에 비난할 수 있다. 요컨대 일베는 그런 곳이다.

- 박가분의 <일베의 사상> 내용 중에서 -


저항 문화, B급 문화에서 말하는 것들은 보통 현실을 반영하는 것들이 많다. 여기에는 일베도 당연히 해당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일베에서 사용하는 "ㅁㅈㅎ" 혹은 "민주화"라는 용어는 안 좋은 일을 당하거나 게시글을 비추천하는 의미로 쓰이는데, 이것은 곧 민주당과 진보 세력들이 자신을 민주화 운동의 후계 세력임을 자칭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혐오감과 경멸감을 가지고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일 것이다. 따라서 정사갤의 우경화로부터 시작된 일베의 탄생은 단순히 청년층의 극우화 문제 이면에 광우병 괴담 선동과 더불어 천안함 음모론, MB 정권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이 지나칠 정도로 나타나는 상황 속에서 진보 세력에 대한 "죽창질", "안티질" 정서에서 태동한 일종의 저항 문화 측면도 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 저항 문화가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일베라는 괴물이 탄생한 것은 당시의 시대상의 역할도 간과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말하면 국정원에서 일베를 직접적으로 양성하였다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양성한 댓글 부대라고 할텐데 국정원이 성장에 어디까지 개입했느냐와는 별개로 일베가 탄생하게 된 경위와 인터넷상에서 퍼지게 된 그 정서는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 맞다고 본다. 애초에 2012년 국정원 여론조작 사건 이전인 광우병 직후부터 노노데모, 정사갤 등의 확산에서 보이는 것처럼 넷상, 특히 보수 커뮤니티에서 반 민주당 정서는 퍼지고 있는 상태였고 본격적으로 일베와 국정원 사이의 유착 관계 논란이 생기는 것은 적어도 2012년 대선 당시부터다. 그리고 단순히 국정원 유착 의혹이 나온 일베로만 꼭 한정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진보 세력에 대한 죽창질, 안티질 정서는 2010년대 동안 디시인사이드 전반에 퍼져갔으며 일베에 비해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막장성은 그 이상으로 평가받는 국내야구 갤러리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일베의 성장에는 밑바닥 정서의 영향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며 국정원 하나만 가지고는 그들의 흥망성쇠 연대기를 전부 설명할 수 없다.


아무튼 2008년 광우병 사태를 기점으로 우경화 되어가던 디시인사이드는 "일간 베스트", 지금은 이슈줌과 초개념을 거쳐 실시간 베스트로 정착한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모아둔 인기 게시글들은 점점 엉망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누가봐도 너무 심각하게 막장스럽고 반 사회적으로 여겨질 만한 글들이 코미디 프로그램 갤러리, 국내야구 갤러리 등을 통해 대거 올라오게 되었고 이에 디시인사이드 운영자들은 올라오는 즉시 바로 삭제를 박아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때 삭제된 일간베스트 게시글들을 백업해둔 사이트가 바로 일간베스트 저장소라는 사이트였고 이게 바로 오늘날까지 그 유명한 "일베"의 시작이다. 일간베스트 저장소의 탄생과 함께 디시에서조차 배척받을 만큼 과격한 유저들은 대안으로 일베에 몰리기 시작했고 이것이 2010년대 시절 가장 악명 높은 커뮤니티로 발전하게 되는 원흉이었다.


p.s. 2편은 일베 전성기의 개막과 2014년 광화문 폭식시위를 기점으로 한 막장화 및 몰락에 대한 고찰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일베의 흥망성쇠가 우리 사회에 주는 의의와 교훈에 대한 3편을 에필로그로 삼아 시리즈는 끝날 듯.


참고 문헌:


- 강준만, <싸가지 없는 진보>, 인물과사상사, 2014

- 박가분, <일베의 사상>, 오월의봄, 2013

https://mediapen.com/news/view/107542

https://m.khan.co.kr/article/201206091227351

https://n.news.naver.com/article/081/0002476853?sid=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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