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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진 Feb 06. 2023

부르주아; 있는 걸 셈하고 없는 걸 샘 하는

『2020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김애란 「홈 파티」 분석


  ‘언젠가 연극 관련 단편을 쓰고 싶었다. (…) 관극 또는 공연 연습이 끝난 뒤에는 늘 일종의 뒤풀이가 있었다. 사람들은 언제나 ‘무대’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듯 극장을 떠나 ‘식탁’에 둘러앉았고, 그곳에서 긴 얘기를 나눴다. 나 역시 그날 치 끼니 혹은 안주가 놓인 식탁에서 많은 걸 배웠다.’ (p.125)   

  

  작가노트 「커튼콜」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김애란의 「홈 파티」는 연극 관련 단편을 쓰고 싶다는 작가의 마음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연극이라는 키워드에 걸맞게 중심인물의 직업이 배우이고 셰익스피어, 소포클레스, 뷔히너 등 유명 극작가의 작품이 언급될 뿐 아니라 공연의 연장선인 뒤풀이 식탁이 오대표 집의 식탁으로 등장한다는 것이 참 재미있다. 

  그러나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을 보면 연극에 대한 열정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하기에는 이질적인 구석이 있다. 이 분석글은 이러한 이질감에 대한 풀이를 위해 쓰였다. 



  배우 이연은 후배 성민과 모 대학 ‘최고 경영자 과정’을 함께 이수한 오대표의 ‘홈 파티’ 게스트로 초대받는다. 성민 덕에 번번이 생활고를 넘긴 데다 그에게 500만 원의 빚이 있는 이연은 그의 체면치레에 협조하면서 오대표를 자신이 지원한 드라마 단역 모델로 삼기로 한다. 사람들은 이연의 직업과 공연 예술에 대해 담소를 나누다 상대역의 부주의로 이연의 마리 역할이 불발된 <보이체크> 이야기에 열을 올린다. 

  오대표는 술을 마시지 않는 이연을 위해 어머니에게 물려받아 소중히 여기고 있다는 빈티지 세트에 차를 내오며 자기가 봉사활동을 나가는 고아원의 여아들이 자립지원금으로 명품 가방을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모임원들은 그들이 ‘금융 문맹’이라며 비난하며 주식에 희망을 거는 다수의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아냥대기 시작한다. 성민은 ‘금융 문맹’이라는 말에 반기를 들어보지만 뜬금없이 담배 문제로 책을 잡혀 금세 주눅이 들고 만다. 

  모든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이연은 자립지원금으로 명품 가방을 사는 고아들에 대해, 가방이 가난을 손쉽게 가려주는 물건이기 때문일 거라는 의견을 펼친다. 방금의 발언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이연은 오대표의 집에서 ‘퇴장’하기로 한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서는 중 오대표의 티세트를 몽땅 깨버린 까닭에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일순간 오대표의 얼굴에 스친 승리감에 ‘홈 파티’의 진짜 목적을 깨닫게 된 이연은 그녀의 성취감을 빼앗을 목적으로 부러 환하게 미소 짓는다.     



  [Naked; 1. 벌거벗은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 2. 보통 씌우는 가리개 등이 벗겨진]


  ‘기역자로 꺾인 복도 너머에서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노란 불빛, 달콤한 알코올 냄새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이연이 마스크를 벗어 호주머니에 넣고 성민을 따라 그 빛 속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p.96)

  ‘이연이 코트 호주머니에서 마스크를 꺼내 얼굴에 썼다. 집에 갈 시간이었다.’ (p.123)


  이연이 오대표의 집에 들어서는 모습은 화려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묘사된다. 반대로 오대표의 집을 나설 땐 공연 관람을 마치고 좌석에서 일어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오대표의 집을 출입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이 ‘마스크’인데, 팬데믹 사태 이후의 작품에서 마스크는 너무도 쉽게 볼 수 있는 물건이되었다. 마스크는 단순히 시대상을 반영하는 소품에 그치지 않고 작품 속에서 하나 이상의 의미를 갖게 된 듯하다. 이전에 분석한 김혜진 작가의 단편, 「미애」에서 선우 엄마가 착용한 마스크가 진심을 가리려는 ‘가면’으로 읽힌 것이 그 예이다. 

  홈 파티에 참여하기 위해 마스크를 벗어야 한다는 것은 이 모임의 자격이 마스크를 ‘벗은 자’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자격은 호스트가 아닌 게스트에게 적용된다. 호스트인 상류층 사인방의 입장에서 게스트인 이연의 ‘없음’을 노골적으로 관찰하기 위한 조건이 '마스크를 벗는다'는 행위에 담겨 있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단순히 '벗다'라고만 표현하는 게 아쉬워 ‘벌거벗은,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보통 씌우는 가리개 등이 벗겨진’의 뜻을 가진 형용사 ‘naked’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성민호스트와 게스트 사이]


  ‘―이연 씨는 성민 씨랑 여기 앉으시겠어요?

  오대표가 식탁 한가운데 자리를 가리켰다. 이연을 중심으로 양옆에 오대표와 성민이, 맞은편에 나머지 세 사람이 앉는 구조였다.’ (p.100)


  오대표와 김, 박, 서가 이연과 성민을 관찰하고자 한다는 것은 자리배치에서도 드러난다. 게스트를 중간 자리에 앉게하는 것은 모임의 중심을 게스트로 여겨주는 듯 보이기도 하지만 두 사람을 둘러쌈으로써 더욱 면밀히 관찰하기 위한 것으로도 보이기도 한다. 

  이연과 성민, 상류층 사인방을 나누어 생각하다 보면 다른 모임원처럼 호스트의 입장이어야 할 성민이 이연과 한 데 묶여 구경거리 취급을 받는 것에 대한 의문이 따른다. 성민 역시 ‘모 대학의 반년짜리 최고경영자 과정’을 밟은 정식 모임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연의 시선을 통해 성민이 그들과 동등하게 대우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모임원들에게 자신을 ‘이벤트 회사 대표’라고 소개한 성민은 자신이 ‘결혼식 하객 대행 업무나 장례식 문상객 대행 사업’을 하고 있다는 걸 숨기고 싶어하며 이연에게도 입단속을 부탁한다. 그런 그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모임원들은 이미 그의 처지를 눈치챈 듯 ‘금융 문맹’에 대해 진솔한 자기 생각을 밝힌 성민에게 뜬금없는 담배 이야기로 무안을 준다. 결국 젊은 대표라 귀여움을 받고 있다는 성민의 말과 달리, 실상은 무시받으며 나머지 네 사람을 떠받들어 주는 것에 그쳤던 꼴이다. 

  사인방의 입장에서 성민은 이연과 더 가까이 위치한 인물이지만 막연히 이연과 같은 편으로도 볼 수 없다. 성민은 자신이 준비한 꽃다발을 ‘누나가 드리면 더 좋아하실 거’라며 이연의 손에 들려 갔으며 말로는 ‘좋은 지인이 있으면 한 번씩 모신다’지만 결국 예술인 인맥을 자랑하는 모임원들에게 뒤처지지 않게 이연을 이용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부르주아]


  ‘―그게 무대에 처음으로 프롤레타리아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연극이죠? 저도 젊을 때 베를린에서 봤어요.’ (p.103)


  프롤레타리아와 달리 입에 직접 언급되지는 않지만 오대표와 김, 박, 서는 ‘부르주아’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이 '부르주아' 사인방이 이연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단순히 그녀가 없는 처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아원에서 자립한 아이들에게 보인 싸늘한 반응과, 자신들보다 덜 부유한 성민에게 보이는 무시와는 다르게, 그들이 이연에게 갖는 감정은 ‘호기심’이다. 이연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가난한 ‘예술인’이기 때문이다. 

  대학에 다닐 무렵 직접 연극을 하기도 했다는 박은 사인방 중 연극에 대한 관심을 가장 강하게 드러내는 인물이다.  


  ‘―사람이 수지 안 맞는 일에 몰두한다는 게…… 아무튼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 같은 사람은 워낙 계산기 두드리는 게 일이라. (…) 존경스럽더라고요. 그 산수가. 그 힘이 뭔가 궁금하고.’ (p.114)


  박의 말에서 드러나듯이 그들에게 연극은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일과 같다. 가진 것을 계산하고 더 불릴 방법을 모색하는 사인방에게 연극의 진정한 가치는 '가난'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을 이해하지 못하고 두려워하면서 '가난을 낳는 선택'이란 미지의 영역에 관심을 갖는다. 그리고 가난한 예술가 이연을 초대하는 일은 자신들이 가난에 직접적으로 발을 들이지 않으면서 연극이라는 미지의 영역을 손쉽게 청취할 수 있는 편리한 일인 것이다. 

  모임의 중심이자 어쩌면 가장 계산이 빠른 오대표 역시 이연이 나온 <안티고네>를 직접 봤다고 이야기하며 이연에게 관심을 보인다. 이연에 대한 오대표의 태도는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소유욕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이는 이연이 오대표의 티 세트를 깨버렸을 때의 표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이연이 넋 나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오대표의 옆얼굴을 살피다 문득 몸이 굳었다.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p.122)


  이연이 깨버린 티 세트는 오대표가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무려 팔십 년의 역사를 간직한 진성 ‘빈티지' 상품이다. 그것은 박의 말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역사'와 '본질'을 갖췄다고 할 수 있다. 이연은 성민에게 500만 원을 빚진 데다 예식장 하객 아르바이트를 받는 등 경제적으로 도움을 받고 있고, 이연은 성민에게 진 빚을 의식하며 그의 기분에 맞춰주기 위해 애쓰게 되었다. 이연이 홈 파티에 참석하게 된 것도 빚의 여파라고 볼 수 있다. 성민 역시 이연에 대한 호의만으로 500이라는 돈을 천천히 갚게 해 준 것이 아니며 홈 파티와 같이, 이연을 필요한 데 이용할 속셈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민의 이런 태도는 사인방과의 모임을 통해 학습된 것으로 보이며 그 근원인 오대표 역시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게 분명하다. 물론 이연이 티 세트를 깨뜨린 것까지 오대표의 계산 안에 있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나 오대표의 기이한 미소로 하여금 이연이 갚을 수 없는 빚을 만듦으로써 그녀를 제 손아귀에 쥐려는 속셈만은 분명하다.

      

  젊었을 적 직접 연극을 했지만 대사도 작품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박, 프롤레타리아가 최초 등장한 작품은 인상 깊게 기억하고, 고아원으로 봉사활동을 가지만 사회적 약자의 가난은 이해하지 못하는 오대표 등. 김애란의 「홈 파티」는 모조와 흉내를 멸시하며 본질을 중시하는 부르주아들의 모순적인 모습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작품이다. 

  ‘금융 문맹’이나 ‘대출 상상력’, ‘금융 감수성’ 같은 말도 안 되는 표현도 인상 깊게 다가왔다. 가진 것은 셈하기 바쁘고 자신이게 미진한 구석은 어설프게 샘 하는 이들에게, 이연의 독백이 뼈아프게 다가오길 바란다.     



거기 있는 걸 없는 척하고 없는 걸 있는 셈 치는 건
연극의 중요한 약속 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건 가식이나 위선과는 다른 거였다.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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