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1)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가 죽기로 마음먹었던 며칠전을 상기해보자면, 내가 죽기로 한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야생에서 사자는 몸이 약하거나 장애가 있는 새끼가 태어나면 자연의 이치에 따라 마음이 아프더라도 새끼를 버린다.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지만 자신 무리의 걸음걸이를 따라올수 없는 새끼를 평야에 두고 가는 것은 어쩔수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나는 마치 야생에서 뒤쳐진 사자 새끼일 뿐이다.
만약 마음이 너무 착하고 유리처럼 투명하거나 순진하다면 그것은 새끼 사자의 몸이 약한 것과 같다. 그것은 별종이며 사회에서 살아남기에 적합하지 않다.
이곳은 야생이다.
이유(2)
나는 본래 사람에게 착하게 굴고 싶은 사람이었다.
나의 순한 모습 그대로 보여주고 웃고 배려하고, 그리고 이를 만만하게 여기는 이가 있어 나에게 피해를 준다 하면 그때 방어를 하면 된다 생각했다. 근데 이젠 그게 아닌것 같기도 하여, 지금으로썬 내가 힘들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미리 어느정도의 방어벽은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면 이는 세상에 큰 이슈가 된다. 이슈는 종종 무엇이 문제였는가와 남은 사람들 중 누가 잘못했는가의 문제를 따지곤 한다. 또한 일반적인 사회 윤리를 따라 죽음이라는 것의 심각성을 들어 왈가불가하기도 하는데, 내가 봤을 때 그것보다는 차라리 떠난 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공감하고 왜 그랬을지 진심으로 귀기울여주는 것이 낫다. 그렇게 고인의 흔적을 찾아가는 것이 남은 사람으로써 고귀하였던 그의 삶을 대신 정리해주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