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1)
우리집에서 2년동안 동거하던 거미가 죽었다.
집에 놀러온 친구가 샤워하다가 무섭다고 물줄기로 죽여 하수구로 k.o. 시켰다고 했다. 마음이 안좋았는데, 이틀후 샤워할때 그 거미가 물이 흥건한 바닥에 헤엄치는 모습을 발견했다. 꽤 반갑고 해서 샴푸 막대기로 건지려 했다.
나를 경계했다.
도통 막대기로 올라타지 않길래 샤워 도중 물을 껐고 괜찮다고 중얼거리면서 고놈을 화장실 밖으로 꺼내놨다.
당연히 살 줄 알았지.
그날 밖에 나갔다 집에 왔는데 거미가 고자리에 그대로 있더라. 반가워서 인사를 했는데 오래전에 죽어서 움직이질 않았다. 열심히 살려놨더니만..고놈은 이미 낙엽쪼가리가 되어 있었다.
유서(2)
한낱 거미야 살아보려고 애썼던 작은 생명체야,
흥건한 물바다 헤엄친다고 얼마나 힘들었나. 어디가 안전한 곳일지도 모르는데, 용기있게 거미줄도 열심히 치고 살았던걸 나는 보았다. 이제는 별이 되는 너는 그저 다리 여덟개 달린 검은 짐승의 모습이었지만, 빛나는 존재였구나.
살아가는 동안 많이 무섭고, 경계해야하고, 힘들고, 때론 용기를 내야 할때도 있었겠으나 이제 힘듬을 내려놓아라.
마지막 너의 모습은 평온하고 경건하였고, 또 폭풍처럼 몰려오는 졸림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너는 이제 흙으로 돌아가겠지만, 너의 힘찼던 그동안의 나날들은 내가 감히 성의있었고 아름다웠다고 말해주고 싶다.
너의 생명력을 다음 세계에서는 꼭 가질 필요도, 애쓰지 않아도 좋으니, 네가 가는 다음 세상에서는, 멋지고 견고한 너의 거미줄을 어디에도 마음껏 만들고 놀아라.